우리나라에서 다문화 이야기를 하면서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사람이 바로 가야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후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다문화 활동과 연구가 주로 결혼이주여성이 본격화된 1990년대 후반 이후 2000년대 초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역사적 사료에 의해 최초의 결혼이주여성이라고 할 수 있는 가야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에 대한 이야기를 빠짐없이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허황옥 외에 결혼이주여성이라고 할 수 있는 왕비들은 수없이 많다. 고려를 부마국으로 삼았던 원나라 공주들도 따지고 보면 결혼이주여성들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37편부터는 우리나라 역사에 등장하는 다문화 인물들에 대한 열전 시리즈를 연재하려고 한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미 우리나라의 토종 성씨라고 이야기하는 김씨조차 이주민이었다는 것을 말했다. 어찌보면 고구려의 주몽도 동부여에서 졸본부여로 이주한 이주민이었고, 백제의 소서노와 비류 온조로 이주민출신의 왕이었다. 또한 신라의 원형을 이루는 진한의 6부족 역시 중국 진나라 북방에서 살고 있었던 진나라 이주민들이었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이주민으로 들어왔던 사람들 중심으로 다문화 인물 열전 시리즈를 진
앞의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5편과 6편에서 한국인의 신체 유전적 형질을 볼 때, 현재의 한국인은 대략 남방 아시아계와 북방 유목민족의 유전자가 섞인 혼혈민족이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즉, 이미 석기시대까지 한반도에 도래해 거주하고 있던 남방 아시아계 토착민에 청동기, 철기로 무장한 북방 유목민족이 남하하면서 지배층을 형성하고, 혼혈을 통해 형성된 것이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언어적으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즉, 농사관련 용어 등은 인도 남부의 드라비다족 언어와 유사한 것이 매우 많다(일부 학자에 따르면
앞서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를 연재하며 제일 먼저 우리나라 최대 성씨인 김씨조차 중국 북부의 흉노족 출신으로 한반도에 이주해온 성씨라는 이야기를 했다. 즉, 흉노제국의 선우 아래에는 좌현왕과 우현왕이 있었는데, 그 중 좌현왕의 아들인 김일제가 한무제 휘하의 장군이었던 곽거병의 포로가 되어 노예로 살게 되었다. 노예생활을 하면서 말을 잘 키워 한무제에게 발탁되어 "투후"라는 제후직과 김씨성을 하사받았다는 것이다. 그 후 그의 증손이 전한을 무너뜨리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의 외척이었고, 이후 신나라의 반란이 진압될
현생 인류의 시원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지만, 전 지구상으로 퍼져가면서 다양한 문화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겨난 문화는 그 자리에서 꽃피우기도 했지만, 문화가 전파되면서 원래 있던 자리와는 전혀 다른 곳에서 꽃피우기도 했다. 종교도 마찬가지고, 음식도 마찬가지다. 원래 태어난 곳에서 꽃피운 것들도 있지만, 태어난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꽃피우고 전통이 된 문화들이 많다. 그런데, 왜 인류는 다양한 문화를 소유하게 되었을까 일차적으로는 생활 환경의 차이에 따라 인종이 분화되고, 그 생활환경에 맞는 신체구조를 갖게 되면서일 것이
종교와 다문화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데, 이번엔 한국과 이슬람 교류의 역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지금은 중앙아시아나 중동지역이 모두 이슬람교를 믿는 지역으로 변모하긴 했지만, 처음 우리나라와 교류한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은 이슬람교의 문화권이 아니었다. 우리가 중동, 중앙 아시아 지역과 처음 교류한 것은 이슬람교가 중동과 중앙아시아에 퍼지기 전이었다. 처음 역사에 등장한 것은 사마르칸트의 아프로시압 박물관 벽화에 조우관을 쓴 고구려 사신이다.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 때 동페르시아쪽의 소그디아 왕국 때의 일이다. 중국의 사서 "전당문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카톨릭, 기독교(개신교, 성공회 포함), 그리고 이슬람교는 유일신(아후라 마즈다, 야훼, 하나님, 알라)을 믿는 종교들이다. 이 유일신앙은 단 하나의 신에 의해 만물이 창조되었고, 그 신에 의해 모든 것이 심판된다는 종교 사상이다. 그 신은 믿는 종족이나 지역에 따라 다른데, 처음 유일신앙이 나온 조르아스터교에서는 아후라 마즈다가 유일의 신이었고, 유대교에서는 야훼, 카톨릭과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이슬람교에서는 알라신이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유일신앙을 믿고 있지만, 인류역사에서 유일신앙은 그리 많지 않았
인류 역사상 가장 특이한 나라가 있다면, 필자는 중국을 꼽을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오늘 날 중국을 있도록 만든 것은 그들의 "융합능력"이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은 이것을 "중화주의"라는 말로 하고, 또 다른 이는 "중화패권주의"라며 경계한다. 하지만, 필자는 중화패권주의라는 천박한 움직임으로 중국 역사를 보기 보다는 "중화주의"라는 포용성을 중심으로 중국 역사를 본다. 지금의 중국은 "중화주의"라는 포용성을 빼고는 형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의 중국은 예전의 그 어떤 중국보다 면적이 가장 크며, 가장 강
지금까지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를 연재하며 주로 인종(인적교류)과 종교를 통해서 문화 교류와 다문화를 살펴보았다. 그만큼 인종(인적교류)와 종교가 각 나라와 종족의 문화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즉, 문화는 인종과 종교, 그리고 생활환경의 조건에 의해 형성된다. 그것이 고유한 문화를 형성하는 일차적 조건인 셈이다. 그럼, 위 세가지 1차적 조건에 의해 형성되는 문화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가장 기본적인 생활양식을 드러내주는 의, 식, 주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정신세계를 구성하는 무형문화재 이전에, 생활과 문화
앞편에서 한국인의 종교적 세계관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양한 종교가 함께 어울어져 공존하고 있는 한국의 종교세계는 세계적으로 특이한 현상 중의 하나인데, 그 이유가 정교분리의 역사뿐 아니라, 한국만의 다층적 종교문화 때문이라는 것을 말했다. 그리고 기층의 무속신앙과 기성 종교들이 컨텐츠를 상호 교류하며 융합되고 있다는 것을 말했다. 그래서 이번 29편에서는 또다른 문화 현상으로 최근 굉장히 융성하고 있는 K-POP분야를 다문화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소녀시대 이후 싸이, 그리고 BTS(방탄소년단)까지 K-POP은 그야말
앞서 한국의 다종교 다문화 융합사회를 형성하게 된 근거로 "정교분리의 전통"과 "다층적 종교신앙의 세계관"을 이야기했다. 그 중에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다층적 종교세계관이다. 그것은 한국민의 종교 세계관에는 가장 밑바닥에 무속신앙이 있고, 여기에 새로 들어온 외래종교들이 얹혀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종교들이 큰 충돌없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에는 독특한 종교 세계관이 있다. 한국은 신명에 토대를 둔 무속신앙이고, 중국은 도교라는 선의 세계관이고, 일본은 신도라는 토속신앙이다. 중국에서
한국의 종교문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필자가 2008년 한국다문화센터를 만들고 mbn에서 다문화 대담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함께 참여한 패널로 독일 출신의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지낸 이참(당시는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되기 전)씨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참씨는 당시 대담에서도 밝혔지만, "한국민은 다문화 포용력이 대단히 높은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그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대뜸 "한국은 다양한 종교가 함께 공존하는 사회"로 "전세계적으로 하나의 사회에서 다양한 종교가 이토록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는 찾아보기 힘
지난 시간에 한반도 이주민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살펴보며, 한반도는 끊임없이 이주민이 밀려들어와 정착한 곳이고, 지금의 우리들은 그 후예들이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좀 특이한 존재를 이야기했다. 바로 농경민족화된 한반도에 전혀 이질적인 집단으로 "백정"이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말했다. 그 숫자는 전국적으로 3-40만에 달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왜냐하면, 조선시대 초기 인구는 40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그 중 1/10일이 이방인인 "백정"이었던 셈이다. 지금 한국에 거주하는 다문화 관련 인구가 216
앞서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첫번째에서 우리 나라의 최대 성씨인 김씨마저 이주민 출신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결국 전세계 어느나라도 마찬가지듯이 원래부터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없는 셈이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이방인에서 주인으로 변한 셈이다. 원래 한반도에 거주했던 신석기 시대 남방계 아시아인을 지배하면서 들어온 북방계 유목민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인 셈이다. 그 이후 한반도에서는 이방인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그리고 오늘날까지 수없는 이방인들이 한반도에 정착하고, 또 섞여서 역사를
요즘엔 "한국형 페미니즘"이 유행이라서 심히 두렵고 꺼려지는 것이 여성문제를 거론하는 것이다. 필자도 여성문제와 페미니즘에 대해 많은 부분에서 문외한에 가까워 자칫 "화를 자초()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한다. 특히 다문화 정책에 대한 예산을 주무르고 있는 곳이 여성가족부이기 때문에, 잘못해서 조자룡 헌칼 휘두르듯하는 여성 페미니스트들에게 찍혔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하지만, 다문화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 문제는 비켜갈 수 없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어머니란 존재가 다문화 사회의 정체성을 풀어
현재 다문화 문제의 전문가연 하는 사람들은 "다문화"에 대해 복지적 차원을 생각하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복지 전문가랑 무엇이 다른지, 또 TV프로그램 미수다나 비정상회담 수준을 가지고 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다. 이것은 워낙 우리나라가 다문화 문제에서 초보적이고 원시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문화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문화 인류학과 연관되어 있고, 정치철학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더구나 종교가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때, 종교문제에
인류의 역사를 다문화적 관점에서 보면, 가장 이상적이었던 시대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과 대제국 건설, 그리고 그의 사후에 진행된 300년간의 헬레니즘 시대였다. 물론, 이외에도 다문화가 꽃핀 시기는 키루스 2세의 페르시아와 세계제국 로마, 그리고 중국의 당나라(이세민의 정관의 치)와 미국이 주도한 2차 대전 이후의 세계를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키루스 2세의 페르시아, 알렉산더의 헬레니즘 시대, 그리고 로마와 당나라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다문화 융합을 적극 권장하고 이끈 반면, 현대의 미국은 끊임없이 다른 집단에 대해
한 사회의 다문화 감수성, 수용성을 평가하는 척도에서 중요한 요소가 3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종과 국적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는가 두번째는 종교 선택의 자유가 존재하는가 세번째는 문화의 차이에 대한 멸시와 차별이 존재하는가 라는 것이다. 그 외에도 언어의 문제라든지 기타 등등이 있지만, 언어에 대한 차별 등이 현저하지 않기 때문에 평가의 척도에서는 그다지 고려되고 있지 못하다. 어쨌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다문화에 대해 인종(혈통)에 집중되어 있었고, 국적에 따른 경제력 차이, 종교의 차이에 대해 그다지 주목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
앞서 종교가 민족종교와 세계종교로 나뉜다고 말했다. 즉, 종교는 처음엔 종족의 탄생신화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점차 보편적 세계관을 갖게 되면서 세계종교가 된다. 이렇게 세계 종교가 된 것에는 기독교 계열에는 카톨릭과 그리스정교회, 그리고 개신교가 있으며, 이슬람교가 있고, 그 외에는 불교와 유교(종교라기보다는 생활윤리에 가깝다)가 있다. 먼저 종교 이전에 형성된 신화를 보자. 신화는 대체로 그 종족의 탄생과 관련있는 수호신들이다. 수메르지역의 안(an) 또는 아누(anu)와 엘릴, 엔키 등의 신들과 그리스 로마신화의 제우스, 미트라
인류는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지구상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생활하게 된 것은 살고 있는 지역의 기후와 생활환경이 다르고, 종교와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다양한 문화의 뿌리는 기후와 생활환경, 그리고 종교와 언어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기후와 생활환경이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기후는 사람의 얼굴 색깔뿐 아니라, 신체구조까지 영향을 미친다. 흑인의 경우 자외선 차단을 위해 흑색 피부를 갖게 되고, 신체의 탄력과 순발력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있다. 그러다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