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종교문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필자가 2008년 한국다문화센터를 만들고 mbn에서 다문화 대담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함께 참여한 패널로 독일 출신의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지낸 이참(당시는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되기 전)씨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참씨는 당시 대담에서도 밝혔지만, "한국민은 다문화 포용력이 대단히 높은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그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대뜸 "한국은 다양한 종교가 함께 공존하는 사회"로 "전세계적으로 하나의 사회에서 다양한 종교가 이토록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는 찾아보기 힘
지난 시간에 한반도 이주민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살펴보며, 한반도는 끊임없이 이주민이 밀려들어와 정착한 곳이고, 지금의 우리들은 그 후예들이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좀 특이한 존재를 이야기했다. 바로 농경민족화된 한반도에 전혀 이질적인 집단으로 "백정"이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말했다. 그 숫자는 전국적으로 3-40만에 달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왜냐하면, 조선시대 초기 인구는 40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그 중 1/10일이 이방인인 "백정"이었던 셈이다. 지금 한국에 거주하는 다문화 관련 인구가 216
앞서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첫번째에서 우리 나라의 최대 성씨인 김씨마저 이주민 출신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결국 전세계 어느나라도 마찬가지듯이 원래부터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없는 셈이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이방인에서 주인으로 변한 셈이다. 원래 한반도에 거주했던 신석기 시대 남방계 아시아인을 지배하면서 들어온 북방계 유목민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인 셈이다. 그 이후 한반도에서는 이방인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그리고 오늘날까지 수없는 이방인들이 한반도에 정착하고, 또 섞여서 역사를
요즘엔 "한국형 페미니즘"이 유행이라서 심히 두렵고 꺼려지는 것이 여성문제를 거론하는 것이다. 필자도 여성문제와 페미니즘에 대해 많은 부분에서 문외한에 가까워 자칫 "화를 자초()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한다. 특히 다문화 정책에 대한 예산을 주무르고 있는 곳이 여성가족부이기 때문에, 잘못해서 조자룡 헌칼 휘두르듯하는 여성 페미니스트들에게 찍혔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하지만, 다문화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 문제는 비켜갈 수 없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어머니란 존재가 다문화 사회의 정체성을 풀어
현재 다문화 문제의 전문가연 하는 사람들은 "다문화"에 대해 복지적 차원을 생각하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복지 전문가랑 무엇이 다른지, 또 TV프로그램 미수다나 비정상회담 수준을 가지고 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다. 이것은 워낙 우리나라가 다문화 문제에서 초보적이고 원시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문화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문화 인류학과 연관되어 있고, 정치철학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더구나 종교가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때, 종교문제에
인류의 역사를 다문화적 관점에서 보면, 가장 이상적이었던 시대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과 대제국 건설, 그리고 그의 사후에 진행된 300년간의 헬레니즘 시대였다. 물론, 이외에도 다문화가 꽃핀 시기는 키루스 2세의 페르시아와 세계제국 로마, 그리고 중국의 당나라(이세민의 정관의 치)와 미국이 주도한 2차 대전 이후의 세계를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키루스 2세의 페르시아, 알렉산더의 헬레니즘 시대, 그리고 로마와 당나라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다문화 융합을 적극 권장하고 이끈 반면, 현대의 미국은 끊임없이 다른 집단에 대해
한 사회의 다문화 감수성, 수용성을 평가하는 척도에서 중요한 요소가 3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종과 국적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는가 두번째는 종교 선택의 자유가 존재하는가 세번째는 문화의 차이에 대한 멸시와 차별이 존재하는가 라는 것이다. 그 외에도 언어의 문제라든지 기타 등등이 있지만, 언어에 대한 차별 등이 현저하지 않기 때문에 평가의 척도에서는 그다지 고려되고 있지 못하다. 어쨌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다문화에 대해 인종(혈통)에 집중되어 있었고, 국적에 따른 경제력 차이, 종교의 차이에 대해 그다지 주목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
앞서 종교가 민족종교와 세계종교로 나뉜다고 말했다. 즉, 종교는 처음엔 종족의 탄생신화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점차 보편적 세계관을 갖게 되면서 세계종교가 된다. 이렇게 세계 종교가 된 것에는 기독교 계열에는 카톨릭과 그리스정교회, 그리고 개신교가 있으며, 이슬람교가 있고, 그 외에는 불교와 유교(종교라기보다는 생활윤리에 가깝다)가 있다. 먼저 종교 이전에 형성된 신화를 보자. 신화는 대체로 그 종족의 탄생과 관련있는 수호신들이다. 수메르지역의 안(an) 또는 아누(anu)와 엘릴, 엔키 등의 신들과 그리스 로마신화의 제우스, 미트라
인류는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지구상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생활하게 된 것은 살고 있는 지역의 기후와 생활환경이 다르고, 종교와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다양한 문화의 뿌리는 기후와 생활환경, 그리고 종교와 언어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기후와 생활환경이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기후는 사람의 얼굴 색깔뿐 아니라, 신체구조까지 영향을 미친다. 흑인의 경우 자외선 차단을 위해 흑색 피부를 갖게 되고, 신체의 탄력과 순발력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있다. 그러다보
앞서 이야기했듯이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는 서구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개척해 나가는데 있어서 두개의 수레바퀴 역할을 했다. 인종주의는 식민지와 노예들을 지배하고 착취하는데 정당성을 부여한 이데올로기였다면, 민족주의는 내부 국민들의 역량을 동원하는 수단이 되었다. 즉 국민들의 민족의식, 주권의식, 자부심을 갖도록 해서 국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이를 밑바탕으로 식민지를 개척해 나갔던 것이다. 서구에서 민족주의의 탄생과정은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과정과 일치한다. 기업으로 비교하자면, 개인이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인기업에서 불특정 대다수의
인종주의는 근대 서구에서 만들어진 철학이다. 근대 인종주의는 민족혈통주의, 제국주의와 어울어져 성장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지배, 차별을 정당화 하는 논리로 개발된 것이고, 그 지배와 착취, 차별에 대해 죄의식을 갖지 않도록 고안된 논리이다. 따라서, 지배자가 자신의 비인간적인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였던 것이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인간은 단 하나의 종이다.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으로 나뉠 수 없을 뿐 아니라, 유대인종 등이라는 말도 성립될 수 없는 단일종이 현생 인류다. 현생인류 외에 호모 사피엔스에는 여러 아종의
필자는 다문화 시민운동을 하면서 몇가지 특징적인 경우를 발견했다. 그 중 하나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로 구성된 레인보우 합창단을 운영하면서 동양인 혼혈은 거의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결혼이주여성과 한국 남자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눈으로 구분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백인과 한국인 사이의 다문화 자녀도 구분이 거의 안된다. 피부가 약간 하얗고, 머리색이 약간 갈색인 점을 제외하곤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흑인과 한국인 사이의 자녀나 백인과 흑인 사이의 자녀는 어느정도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인 링컨에 대해선 수많은 전기와 책들이 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링컨 관련한 책이 1만 6천권에 달한다고 한다. 그 정도로 링컨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추앙받고, 칭송받는 정치인이다. 우리 나라 정치인들에게 존경하는 인물을 뽑아 달라면, 둘 중 하나는 김구선생이고, 또 다른 한명은 링컨을 꼽는 사람들일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는 전세계 정치인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반하는 주장도 없지 않다. 그들에 따르면,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엄청난 가난과 역경을 뚫고 성장하지도 않았으며
현재 이민 다문화국가의 대표격인 미국은 그 역사를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실제는 반자유주의적이고 "반 다문화적"인 역사를 걸어온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조지 워싱턴이고, 위대한 미국의 기초를 닦은 링컨 대통령이다. 이들은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달리 자유를 숭상하지도 않았으며, 노예해방을 원하지도, 또 인권보다는 인종차별주의자에 가까웠다.그럼에도 사람들은 조지워싱턴과 링컨에 대해 자유독립의 정신과 노예해방의 정신이 깃든 인권주의자로 알고 있다. 그것은 역사가 승리한 자의 기록이다 보니
인류문명의 선구적 지역인 중동에서 최초의 대제국을 형성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와 비교되는 인물이 바로 몽골제국을 일으킨 칭기즈칸이다. 키루스 2세와 칭기즈칸은 태어나고 자라던 환경이 거의 비슷했다. 다만, 칭기즈칸보다는 키루스 2세가 조금 더 나은 환경이었을 수는 있다. 왜냐하면, 태어나면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긴 했지만, 목동과 함께 도망쳐 자라다가 아버지가 지배하던 변방 제후국의 왕을 계승한 뒤, 메디아를 장악해 나갔기 때문이다. 키루스 2세의 성장과정과 칭기즈칸의 성장과정은 매우 닮긴 했지만, 칭기즈칸의 성장과정은 키루스 2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역사의 흐름을 바꾼 영웅들이 존재한다. 초라한 유목민족의 후예로 전세계 패권을 차지한 징키스칸이 있었고, 프랑스령 조그만 섬 출신인 코르시카의 나폴레옹이 그랬다. 또한 그리스 북쪽의 조그만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가 있었고, 별 볼일 없는 시골 이장노릇하던 한나라 고조 유방이 그렇다. 또한 지금의 위대한 미국의 초석을 놓은 에이브라함 링컨도 시골 촌뜨기에 선거에는 나가면 떨어지는 초라한 법률가에 불과했다. 이렇게 별 볼일 없이 태어나서 성장했지만, 인류역사에서는 그 이름들을 빼놓고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
21세기 다문화 국가의 발전모델을 거론하며, 반드시 거론되는 나라들이 있다. 바로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호주), 그리고 뉴우질랜드가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영연방의 일원으로 되어 있지만, 서서히 자치권 확대의 과정을 거쳐 지금은 선진 다문화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1. 캐나다 그 중 캐나다의 형성과 발전은 미국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즉, 미국보다 아메리카 인디언이 먼저 정착했고, 14세기 전후에는 덴마크의 바이킹이 탐험과 주거지를 갖고 정착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유럽이민이 유입된 것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
인류 역사상 로마와 당나라 같은 문명의 꽃을 피운 다문화 국가들이 많지만, 그 어떤 다문화 국가도 미국과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로마와 당나라 등은 초기 자신들만의 종족을 중심으로 국가를 형성하다가 점차 강성해지면서 "포용적인 다문화 국가"로 성장했던 예이다. 하지만 미국은 처음부터 다양한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이 중심이 되어 대륙회의라는 것을 거쳐 아메리카 합중국으로 출발했다. 미국의 이주민 역사를 보면 매우 다양한 경로를 거쳐왔다. 처음 아메리카대륙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다. 이들이 아메리카대륙에 흘러들어오
중국과 동양문명에서 가장 찬란한 꽃을 피운 것은 당나라시대였다. 지금도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지향하는 사회를 "소강사회(공자에 의하면 백성들이 충분히 먹고 살며 법과 질서가 바로 선 사회로 대동사회 전단계를 의미한다)"로 지칭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일대일로를 강조하며 "당나라 시대"를 거론하고 있다. 그만큼 중국에서는 동양문명의 꽃을 피운 시대를 당나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당나라는 위나라 - 수나라를 계승하며 만들어진 나라였다. 당나라를 세운 이연, 이세민 부자는 수나라의 귀족출신이었다. 따라서 위나라와 수나라가 선비족
동서양을 망라한 인류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국가들은 하나같이 다문화를 포용한 국가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다문화 포용성"이 그 나라를 위대하게 만들었고, 찬란한 문명을 만들었던 토양이었다. 물론 그 반대도 있다. 즉, 그 위대했고 찬란했던 국가들이 망하게 된 원인도 바로 다문화 정책의 문제였던 것이다. 다시말해, 동서양에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국가들은 모두 다문화 포용성이 높은 나라들이었지만, 그 나라들이 망하게 된 것도 다문화 문제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우선 가장 위대한 문명을 꽃피웠던 로마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