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대통령님께 드립니다.>


대통령님께 드립니다.

중동 순방 정상외교에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한미 FTA 막바지 협상이 진행되는 중이라 이번 순방외교는 여러모로 노고가 더 크셨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바쁜 순방일정 중에도 연일 FTA회의를 주재하셨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습니다.
국내 사정이 대통령님의 정상외교를 뒷받침하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통령님께서도 한미 FTA 협상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임을 헤아리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김근태의 단식 소식을 듣고 무척 서운하셨을 것 같습니다. 충분히 이해하고, 인정합니다. 저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단식 밖에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결단하기까지 속앓이를 해야 했으니까요. 그러나 협상시한 내 타결을 목표로, 브레이크도 없이 달려가는 상황, 한미 FTA에 찬성하지 않으면 경제를 모르거나 우리 사회의 패자로 간주하는 분위기에서 ‘지금 되돌아보지 않으면 바로 잡을 기회가 없다’는 호소를 전달할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귀국하시자마자 이렇게 서신을 올리는 것 역시 우리에게 시간은 오늘 하루뿐인 상황에서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분이 대통령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김근태는 FTA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지난 2003년.2004년, 국회는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을 놓고 심각한 진통을 겪고 있을 때, 저는 비준동의안 국회통과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결국 네 차례의 시도 끝에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비준동의안 통과를 위해 제가 대통령님께 국회 방문을 요청했고, 대통령님께서 제 요청을 받아들여 국회를 방문하셨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원내대표 임기를 마치고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일본 정치인들에게 한-일 FTA 협상재개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더 나아가 한-중-일 FTA 체결을 위한 공동노력을 제안 했습니다.

김근태는 한미 FTA협상이 시작됐을 때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FTA는 결코 선악의 문제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정부를 믿고 정부에 시간을 주고 진행과정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일관된 제 입장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1년여 협상과정에서 시한에 구속되지 않고, 투명하게 진행되고, 피해계층 설득과 보상대책이 병행하는 협상이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촉구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협상과정과 협상결과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김근태의 주장은 한미 FTA 반대가 아닙니다. 세계화.개방화 시대에서 자유무역협정 FTA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호소하는 것은 지금 이대로 협상을 타결해선 안 된다, 살자고 추진하는 일이니 살 길을 찾으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다음 정부, 다음 국회에서 할 수 있도록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몇 가지 이유에서 지금 당장 무리하게 협상을 타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한미 FTA는 국민의 일상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당장 아파서 병원에 가고 약국에서 약을 살 때 국민은 한미 FTA가 가져온 현실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수혜자가 되건 피해자가 되건 한미 FTA가 만들어낼 변화는 결국 국민이 감당할 몫입니다.
그런데 정작 국민은 앞으로 닥칠 생계와 일상의 변화가 어떤 것인지 그 누구에게서도, 어디에서도 보고받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대로 보고받고 판단할 권리와 기회는 일방적 협상추진과 찬반양론의 추상적 논쟁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아가 친미냐 아니냐, 반미냐는 식의 논쟁이 일종의 이데올로기 적으로 확대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국회에서 비준동의권을 행사하면 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과연 그것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고 현실적 방법인지는 회의적입니다. 보다 분명히 말씀드리면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국민이 충실한 판단의 근거를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협상이 타결되고, 혹시 우리의 우려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닥칠 때, 사회 전체가 또 얼마나 심각한 갈등과 소모적인 논쟁에 휩싸일지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두 번째로 지금까지 진행된 협상과정에서 확인된 상황의 엄중함입니다. 한미 양국에 균형되게 이익을 가져옴으로써 공동 이익을 증진시켜야 한다는 양국 정상의 정치적 의지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내용은 매우 심각합니다.
도저히 협상대상이 될 수 없는 쌀과 뼛조각이 있는 쇠고기 문제까지 등장했습니다. 이번 협상 대상이 아니며 또한 상대방이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사안임을 모르지 않으면서 이 문제를 제기한 미국의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을 거둘 수 없는 상황입니다. 반면 우리에게 평화이상의 상징을 갖는, 그래서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개성공단은 논의대상에서 조차 배제되어 있습니다. 협상이 진행될수록 도처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음이 드러나다 보니, 갈수록 의견이 엇갈리고 논쟁의 강도가 세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협상을 시작할 때와는 달리 타결이 임박한 지금은 다수 국민이 한미 FTA 협상이 미국에 유리하게 조정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사회적 갈등과 국론분열을 덮어두고 무리하게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분명치 않습니다. 설사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이후 정치일정을 감안하면, 참여정부 임기 중 국회 비준동의를 받는 것이 가능한지 의심스럽습니다.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도 제출로부터 통과까지 7개월이 넘게 걸렸습니다. 협상에서 명백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국이 더욱 유리한 협상을 위해 TPA 기간 연장을 검토하는 것을 보면, 한미 FTA는 우리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게도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너무 초초해하며 서두르지 않아야 합니다.
개방과 한미 FTA에 대한 대통령님의 소신과 신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존중합니다. 더 나은 미래와 국익 증진을 향한 대통령님의 일념이 미래의 구상이 아니라 당장의 현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태로 협상이 타결되면, 구상과 현실이 어긋나는 위험한 결과가 올수도 있다는 것이 제 솔직한 판단입니다.

이제 대통령님께서 용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협상 중단을 선언해주십시오.

대통령님께서 보내실 오늘과 내일이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좌우할 것입니다. 어쩌면 대통령님의 인생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힘겨운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앞장서 대통령님께 부담을 지우는 것도 같아 김근태의 마음도 편치 않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님의 결단으로 한미 FTA 협상을 시작했듯이, 지금 역시 중단할 수 있는 대통령님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냉혹한 경제논리의 심판자, 외로운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국민과 함께 가는 지도자가 절실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제가 뻔히 예상되는 비판과 비난, 그리고 비아냥거림까지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너무나 절박해서입니다. 제 몸에 생길 생채기를 두려워하는 사이 우리 사회 전체가 회복하기 어려운 생채기를 입게 될 것이 아닌가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제가 느낀 절박함과 두려움은 저 만의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처럼 마음을 드러낼 기회조차 갖지 못한 수많은 분들, 그분들의 절박함과 두려움은 아마 이 김근태보다 몇 배나 크고 깊을 것 같습니다. 최종 결정을 앞둔 대통령님의 힘겨운 싸움에 그 분들의 마음이 응원군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대통령님의 용단을 요청드립니다.




2007년 3월 30일 국회의원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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