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로 공공요금 급등’ 거짓 판명

“한미FTA는 물, 가스 등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들까지 사유화시켜 공공서비스 요금을 폭등시킬 것이며 이는 민중의 삶을 벼랑으로 내몰 것이다.”

지난해 12월5일 미국 몬태나 빅스카이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5차 협상이 개최되고 있을 즈음 국내에서 열린 반대집회에서 나온 주장이었다.

한미FTA 협상내용에 대해 구채적인 내용을 잘 모르는 대다수의 국민들로서는 ‘공공요금이 폭등하고 지금까지 누리던 공공서비스마저 못 받게 된다는데 미국과 FTA를 굳이 할 필요 있나’하는 생각을 갖게끔 하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난 한미FTA 8차 협상 중 완전타결된 경쟁분과의 협상내용을 보면 이 같은 주장이 사실과 전혀 상관없는 ‘반대를 위한 반대’였음을 실감케 한다.

한미FTA 8차 협상에서 한미 양국은 공기업을 유지함은 물론, 우편, 전기요금과 같은 공공요금의 책정도 정부의 고유권한으로 명문화함으로써 한미FTA 체결로 인해 공공요금이 줄줄이 인상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켰다.





한미FTA 협상단 윤수현 경쟁분과장(공정거래위원회 국제협력팀장)은 “양국은 정부의 공공정책에 따른 공공요금에 대해서는 상업적 고려를 따르지 않아도 되도록 명확화하고 (독점)지정조건은 향후 개정가능 하도록 해 미래의 정책적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고 밝혔다.

상업적 고려란 정책, 정치적 동기 등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조건 하에서 거래 행위를 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한미 양측은 정부가 지정한 우체국의 우편배달요금, 한국전력공사의 산업용·가정용 요금 등과 같은 공공요금은 상업적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동의명령제 도입, 정부·기업·소비자 ´윈-윈´ 기회

또 이번 경쟁분과 협상에서는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미국, 유럽연합(EU),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동의명령제를 도입키로 합의했다. 우리나라의 경쟁법도 선진국 못지않은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된 것이 사실이지만, 동의명령제는 아직 도입 논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동의명령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어느 기업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조사할 경우에 법위반 여부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않고 해당 기업과 시정방안에 합의해 조사를 종결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피해소비자에게는 실질적인 피해구제가 이루어질 수 있고 정부는 행정력의 낭비를 줄일 수 있으며 기업은 조사 및 소송 등으로 인한 비용을 절감하고 기업이미지 손상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이해당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제도로 평가 받고 있다.

윤 분과장은 “현재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조사가 이뤄지면 많게는 4~5년이 걸려 경쟁당국은 행정력, 기업은 소송 등에 따른 비용과 이미지 손상에 부담이 크다”면서 “또한 시정조치가 내려지더라도 기업은 과징금만 내면 끝날 뿐 피해소비자에 대한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실에서 보면 기존의 시정조치가 소극적으로 위법행위를 금지하는 수준에서 머무는 것과 달리, 동의명령제가 도입되면 정부는 기업과 합의해 피해소비자에 대한 배상, 위법행위 예방에 필요한 조치 등 다양한 시정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동의명령제 도입과 관련해 ‘국내 법집행을 무력화(검사 형사소추권 제약)시키는 것 아니냐’, ‘경쟁당국과 기업이 ‘뒷거래’를 용인해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지만, 이는 오해에서 생긴 과장이다.

동의명령제 적용 위반행위는 시장지배력남용행위나 M&A 등과 같은 형사소송 대상이 아닌 경우에만 적용하는 것이며, 카르텔과 같이 형사소송 대상은 이 제도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 경쟁법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

또 동의명령제에 따라 정부와 기업이 합의한 시정내용은 인터넷이나 관보를 통해 공개하고 소비자나 시민단체에 의견을 제출할 기회를 보장하기 때문에 ‘뒷거래’는 불가능하다.

한미 양측은 또 국경간 거래에서 발생하는 소비자 피해에 대해 대응방안에 대해 협의하는 등 상호 소비자 정책에 대한 공조와 정보 교환, 사기·기만적 상행위 방지를 위한 협력 강화 등에도 합의했다.

무엇보다 이번 경쟁분과 협상이 다른 분과에 비해 가장 빨리 완전타결에 이르게 된 배경에는 미국과 우리나라가 경쟁법과 같은 경쟁제한적 행위에 대한 규제조치가 거의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이견이 많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윤 분과장은 “이번 경쟁분야 협상은 한미 양측이 서로 윈-윈하는 전략을 짰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며 우리의 경쟁법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신현기 (nollst@korea.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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