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탈당 사태와 정치인의 신의
2007. 1. 29(월)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꼴이 말이 아니다. 대선을 불과 1년도 남겨두고 있지 않은 시점에서 모든 의원과 당원들이 똘똘 뭉쳐 ‘누구를 후보로 결정할 것인가’, ‘상대방을 어떻게 격파 할 것인가’ 등 선거 전략에 몰두해도 부족할 터인데 마치 풍랑에 난파한 배에서 서로 먼저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겨울방학을 맞아 중국의 중근대사(中近代史)를 읽는 재미에 빠져있다. 역시 역사로부터는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어 좋다. 송사(宋史)에 보면 지나치게 문(文)을 숭상했던 송조(宋朝)는 항상 북방의 여러 민족에 시달림을 받았다. 그 중 하나가 만주지역에서 발흥한 금(金)인데 송은 금 태조(金太祖)의 침략을 받아 1127년 수도인 개봉(開封)을 점령당하였고 흠종과 태상황 휘종이 금에게 포로가 되는 신세가 됨으로써 북송(北宋)은 멸망하게 된다.
북송을 멸망시킨 금태조는 송에 꼭두각시 황제를 세워 간접통치를 하고자 하였고 그 대안으로 북송의 재상 장방창(張邦昌)이 떠오르게 되었다. 장방창이 타의에 의해 제위에 오르니 이 나라가 곧 초(楚)다. 그러나 장방창은 제위에 오른지 32일 만에 제위에서 내려와 응천부(應天府 : 현재의 河南省 商丘市)에서 남송(南宋)을 건국한 고종(高宗)에게 죽음을 청하였다. 비록 강제에 의한 것일지라도 신하가 제위에 오른 것은 대역죄에 해당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종은 장방창이 제위에 오를 때 금(金)에 요구했던 여러 가지 충절스런 행동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를 위로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번 섬긴 왕조(王祖)에 대한 신하의 충절과 그를 믿는 군주(君主)의 신의(信義)를 발견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지금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사태 덕을 입지 않고 당선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물론 자기를 당선시켜준 정당을 깨부수고 새로운 정당을 만든 대통령의 실착에서 오늘의 사태가 연유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든 한번 결사(結社)를 했으면 마지막까지 함께 가는 의리가 있어야 할 터인데 지금의 모습들은 너무나도 실망스럽다.
더욱이 호남지역의 의원들에게는 또 다른 요구가 가능하다. 우리가 호남을 이야기 할 때 흔히 이충무공의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若無湖南, 是無國家)는 말을 자주 인용하곤 한다. 이는 어려웠을 때 이곳 사람들이 발 벗고 나섰던 헌신성을 이야기한 것이며, 해방이후 타 지역사람들이 이쪽을 폄하할 때마다 이를 반박하는데 자주 인용했던 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여정부의 태동은 이른바 ‘천․신․정’이라고 불리 우는 3인의 핵심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으며, 그 때문에 ‘참여정부의 정신적 고향은 호남’이라는 말이 가능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탈당사태 속에서 크게 부각되는 사람들이 거의 호남쪽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타 지역으로 하여금 도대체 호남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하고 있다. 자칫 우리의 후손들에게 의리 없는 지역이라는 불명예를 남겨줄까 염려스럽다.
사람으로 태어나 삶을 영위하면서 가장 커다란 소망은 아마도 건강과 함께 부귀공명이 아닐까 싶다. 4500만 국민 중, 일생에 한번이라도 금 뱃지를 달아 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만한 영광을 맛 본 사람들이라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사람에 대한 신의를 저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근래에 크게 히트했다는 영화 ‘타이타닉’의 성공에는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 스케일도 한 몫 했지만, 침몰의 혼란 속에서 보여준 질서와 인간미가 크게 감동을 준 것이라는 사실을 정치인들이 깨달았으면 한다. 모름지기 혼란스러워져가는 정권 말기에 저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정치인들의 모습으로 국민들의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오수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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