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공무원 40만 명 구조조정, 속으론 리비아 대사 부정 의혹

【서울=뉴스한국/이지폴뉴스】리비아 정부가 주한 리비아 대사관을 폐쇄할 뜻을 우리 정부에 공식 입장을 전해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대(對) 리비아 관계에 정통한 한 외교 소식통이 최근 뉴스한국에 전달한 내용에 따르면 외교 단절이 아닌 대사관 자체 사정으로 주한 리비아 대사관이 폐쇄될 예정이라고 했다. 시기는 대략 6월 말경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해 본 결과, 리비아 대사관 측이 자국의 폐쇄 입장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기 위해 내부적으로 단속하듯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리비아 정부의 주한 리비아 대사관 폐쇄 입장이 우리 정부에 전달된 것은 지난 2006년 9월 한명숙 전 총리(현 열린우리당 의원)가 지난 리비아를 방문할 때부터였다. 카다피 리비아 원수를 만난 자리에서 한 전 총리는 대사관 폐쇄를 재고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워낙 의지가 확고해 올 4월 첫째 주경에 우리 정부에 최종 답변이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리비아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한 전 총리는 한국과 리비아가 정치, 경제 분야에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설명하며 주한 리비아 대사관 폐쇄 조치를 재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며 “당시 무아마르 카다피 원수(최고지도자)도 이를 긍정적으로 고려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 전 총리의 순방 전 리비아 외무성은 남한과 북한 내 자국 대사관을 비롯한 몇몇 해외 공관폐쇄와 조정을 이미 결정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리비아 정부, “철저히 국내 사정 때문”
리비아 정부가 한국 주재 자국 대사관을 폐쇄하는 공식적인 이유는 철저히 자국 국내 사정 때문인 것으로 해명하고 있다. 외교통상부 아주동국의 고위 관계자는 “리비아 정부가 40만 명에 달하는 공무원을 구조조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17~20개국에 나가있는 자국 대사관을 폐쇄하는데, 이 중 한국도 포함된 것이다. 현재 우리 정부 측이 재고해달라는 요청을 한 바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부 관계자은 이 같은 이유가 선뜻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주한 리비아 대사관의 한 비서관은 “폐쇄 결정이 났다. 리비아 정부로부터 통보를 받은 후 직원들은 폐쇄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다. 사실 리비아가 미국과의 관계도 좋아지고 있고 한데 대사관을 폐쇄하는 이유는 납득하긴 어렵지만 리비아 정부의 결정인 만큼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주동국의 한 사무관은 “현재 리비아와 우리 정부가 협의 중에 있어서 상세 설명은 불가능하다. 우리로서는 리비아 측이 결정을 재고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면서 “1997년 한국이 외환위기에 처해있을 때도 리비아와 비슷한 조치를 취한 적이 있다. 당시 우리나라도 20여 개국의 재외 공관을 폐쇄한 바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논의 하고 있음을 전제로 하면서 “최악의 경우라도 리비아에 진출 했거나 예정 인 업체의 직원 및 CEO가 비자를 발급받는 데 어려움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과 리비아의 경제ㆍ 외교적 관계를 생각한다면 리비아 국내 상황으로만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국과 리비아는 지난 1980년 12월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 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1983년 경 리비아는 한국 동아건설에 당시 최대 규모의 수로 공사를 맡기기도 했다.

게다가 최근 들어 리비아는 경제 개방을 위한 개혁 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코트라 박태화 차장은 리비아 경제 상황에 대해 “경제 사정이 안 좋다기보다는 소비전략과 자국 산업육성 차원에서 예산 절감을 하고 있다. 경제가 악화된 것은 아니다. 리비아는 산유국이지만 향후 원유 생산 감소를 염두에 두고 미래 투자 차원에서 산업 육성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개방 경제로 변모하려는 리비아 입장에서 경제 강대국으로 급부상한 한국과의 관계는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라크 등을 비롯한 다른 중동국가는 주한 공관을 재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왜 리비아만 자국 대사관을 폐쇄하려고 하는 것일까. 공무원 구조조정을 인한 폐쇄 방침이라고는 하지만 리비아가 폐쇄 공관 20개국 리스트에 한국을 포함시킨 속사정은 따로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리비아 외교부 관계자가 한국에 서운한 감정 토로”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향후 리비아에 다른 나라의 투자가 대거 유입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도 진출을 강화하려고 준비 중이다. (양국 간의 경제적 교류가)좋아지려는 계기에 이런 결정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양국 간의 교역 상황을 살펴본다면 리비아의 결정에도 일리가 있다고 설명하며 “리비아는 현재 약 120개 국가에 재외공관이 있다. 이 중 100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재외 공관을 폐쇄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소요되는 비용 절감이나 교역관계 등 나름의 기준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리비아는 한국을 무역 역조국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실제로 2006년 한해 한국이 리비아에 수출한 규모는 4억 3300만 달러에 달하지만 수입 규모는 191만 달러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이 원유 수입국을 다변화하는 과정에서 리비아는 원유수입국에서 제외된 상황이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한국 주재 리비아 대사관 폐쇄가 리비아 측에서는 그야말로 예산 절감 효과가 있을 수 있다.

2005년 5월경에 민간친선협회와 함께 리비아를 방문한 적이 있는 한나라당 이규택 의원(현 한국 리비아 국회친선협회 회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술회한다. “2박 3일 동안 리비아에 머무르면서 외교부 관계들과 만난 적이 있다. 관계자들은 ‘요즘 대한민국이 돈을 좀 벌었다. 석유를 얻는 곳이 다변화되었다’고 언급하면서 ‘한국이 세계 정보 기술이나 반도체 특히 IT 분야에 으뜸가는데 (리비아를)안 도와준다’며 서운한 감정을 비취더라.”

또한 이 의원은 “주한 리비아 대사관 폐쇄는 국교 단절을 의미한다. 물론 원수 사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과의 관계를 끊겠다는 것 아닌가. 심하게 말하면 한국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경제적 요인 외 노무현 대통령의 순방 외교가 리비아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3월 중순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카타르를 연쇄 방문했다. 중동지역의 경제 관계 활성화와 외교력을 확보하기 위한 행보였다. 반면 리비아에는 지난 2006년 한 전 총리가 방문한 것이 전부다.

물론 외교부 측은 “대통령이 순방하지 않은 것이 폐쇄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국내 고위 인사가 리바아를 방문해왔다. 숫자로 비교하자면 리비아 고위 인사의 한국 방문보다 한국 고위 인사의 리비아 방문이 많았다”고 반박했다.

아라파 리비아 대사 부정행위 한 몫
리비아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주한 리비아 폐쇄와 관련해 압둘살람 아라파 대사의 부적절한 처신을 지적했다. 그는 “그간 아라파 주한 리비아 대사의 무분별한 부정부패 개입을 묵인하고 철저한 감사와 책임을 묻는 신속한 조치를 외면했다. 이 때문에 한국과 리비아 양국 정상뿐 아니라 양국 국회를 빙자해 양국 관계를 해치는 데 일조했다. 여기에서 파생된 심각한 책임소재를 은폐하기 위해 주한 리비아 대사관을 폐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005년 5월 한 주간지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아라파 대사는 카다피 원수의 둘째 아들인 세이프 알 이슬람의 서울 전시회를 빌미로 국내 기업에 협조금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에 따르면 아라파 대사는 2005년 3월경 대한통운 곽영욱 회장에 협조금 3억 원을 요청했고,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에는 각각 1억 원을 요청했다. 이들 기업은 모두 리비아 현지에서 건설 사업에 참여하고 있어 아라파 대사의 요청이 상당히 곤혹스러웠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주한 리비아 대사관은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또한 아라파 대사는 한국 국회를 상대로 기이한 행동을 벌였다. 지난 3월 2일 개최된 자마히리야 체제 도입 30주년을 축하하는 국가 행사를 앞두고 그는 1월 23일에 임채정 국회의장 앞으로 한 통의 팩스를 보낸다. 세계 각국의 수장이 참석하는 국가 행사에 초청한다는 내용. 그는 임 의장의 참석으로 한국과 리비아의 관계가 돈독해질 것을 강조하며 참석해줄 것을 요청했다.

아라파 대사에게 참석 요청을 받은 임 의장 측은 이미 짜인 일정을 이유로 그 달 26일 불참의사를 밝힌다. 그리고 국회 국제국장이 임 의장을 대신해 이규택 의원이 참석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2월 21일 경 국회 국제국장이 이 의원께 전화해 임 의장 대신 리비아 국가 행사에 참석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의원께서는 당연히 행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틀 뒤 아라파 대사로부터 ‘경축행사의 날짜가 연기되었다. 본국에서 새로운 정보가 오면 곧바로 알려주겠다’는 팩스를 받았다. 하지만 알고 봤더니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상당히 의아했다”고 설명한다.

위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한 소식통은 당시 아라파 대사의 행동에 대해 “양국 관계를 훼손하는 행위이며 대한민국 국회를 우롱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당시 리비아 정부 측에서 정식으로 초청받은 다른 한국 인사가 있다는 사실과 비교해 볼 때, 아라파 대사의 공문은 리비아 정부나 관련 기관에서 수락되고 결정된 사실이 아니었다”고 지적하며 “자신이 한국 정부에 영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자작극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한 아라파 대사의 이 같은 부정행위들로 인해 한국과 리비아의 외교 관계에도 혼선을 빚은 것으로 보인다. 국내 한 아랍 전문가는 “올해 초 리비아에서 감사단이 나와 주한 리비아 대사관을 감사한 바 있다. 리비아 정부에서도 아라파 대사의 이상 행동을 감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비아 정부의 주한 자국 대사관 철폐가 아라파 대사의 부정행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아라파 대사가 저지른 또 다른 몇 가지 부정행위를 거론하며 “주한 리비아 대사관을 폐쇄하려는 리비아 외무성의 조치는 아라파 대사의 행위를 방치하거나 비호해 온 외무성 내의 일부 세력들이 리비아 지도부의 사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에서 발현된 것이라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예정대로라면 리비아 정부는 한국 주재 자국 대사관을 오는 6월 말에 폐쇄한다. 한국 외교부가 현재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번 결정을 유보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만큼, 리비아 측이 어떤 결정을 내릴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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