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는 왜?’ 저자-강동호 정치칼럼

ㅡ세간의 큰 화제가 됐던 ‘안철수는 왜?’ 공동저자이며 ‘뉴딜정치연구소’ 강동호 소장의 정치 칼럼이 ‘뉴스캔’에서 새롭게 연재됩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ㅡ

 

4.29 재보선 전패의 후유증으로 지금 제1야당은 엉망진창이다. 지난 5월 11일 문재인 대표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전당대회 이후 저의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는 듯했지만 재보선 패배 이후 원점으로 돌아간 게 현실”… 글쎄, 친노-비노 분열 프레임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4.29 재보선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성과를 봤다는 그의 인식에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문 대표의 ‘탕평’ 노력은 자기도취였을 뿐.

▲ 강동호 뉴딜정치연구소 소장

야권의 4.29 재보선 결과를 통해 나는 네 가지를 기억하고자 한다. 첫째, 전통적 좌파의 설 자리가 거의 없어졌다는 것, 둘째, 제1야당의 기반에 뭔가 파국적 균열이 생겨 있다는 것, 셋째, 호남發 도전세력이 형성될 수도 있다는 것, 넷째, 내년 총선에서도 야권은 답이 없다는 것.

새정치민주연합(이하 ‘민주당’)은 왜 전패했나? 이미 많은 의견이 개진됐고, ‘새누리당은 어떻게 이길 수 있었나’ 하는 문제에 더 알뜰한 관심이 가긴 하지만.

본론을 펴기 전에 다음 두 가지는 언급돼야 한다. 첫째, 민주당 지도부는‘이기는 정당, 이기는 혁신’ 운운하면서도, 정작 4.29 재보선이 다가오면서는 일종의 책임 회피 전략을 구사했었다. 어설프고 교만했다. 둘째, ‘통합의 정치’ 운운하면서도, ‘동교동’과 손잡고 천정배, 정동영 등 주류 이탈 흐름에 대해 배신자로 낙인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포용의 정치는 기득권 집단 안에서만 적용되는가?

뜬금없지만, 한상진‧최종숙의 『정치는 감동이다』(2014, 메디치미디어)를 소재로 꺼내본다. 이 책은 민주당이 지난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원인을 분석하고, “민주당이 사회 협치의 틀로 탈바꿈 정치를 지향”할 것을 주문한 제18대 대선 평가서다. 이 책에서는 민주당의 패배 원인으로 후보단일화 후 이탈층 최소화 실패, 정권심판론의 전략적 경직성, 5070세대 방치, 저소득층에 대한 잘못된 접근, 고질적 계파갈등, 핵심지지층 결집도의 상대적 열세, 문 후보의 정치 경험 미숙 등을 꼽았다.

여기서 다른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핵심지지층 결집도의 상대적 열세를 분석한 대목이다. 나는 ‘핵심지지층의 결집도 여하’가 선거 성패의 가장 중핵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머지 원인들은 핵심지지층 결집도 문제를 중심으로 연결돼 있는 고리들이다.

이 책은 민주당의 핵심지지층을 2040세대, 호남지역, 중간소득계층, 이념적 진보 등을 들었는데, 호남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세 부분의 결집도가 왜 상대적으로 떨어졌을까?

-“무엇보다도 지지층의 결집 정도는 결국 상대 정당과의 비교에서 그 수준을 가늠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민주당 핵심지지층은 새누리당 핵심지지층에 비해 시종일관 그 결집 정도가 낮았다. 대선에서 민주당은 주변지지층을 희생하면서까지 핵심지지층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핵심지지층의 결집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중략) 민주당 핵심지지층의 선택은 민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미워도 다시 한 번’같은 심정의 결과였다는 점이다. ‘좋아서 선택하는 것’과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차이는 결국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핵심지지층 간에 결집도 차이로 나타났다.”(110-111)-

 

반항할 상대는 있어도 사랑할 대상은 없다 … 민주당 핵심지지층의 고뇌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사실 1997년 대선에서의 김대중 당선은 핵심지지층 결집도의 상대적 우세 없이 설명될 수 없다. 김영삼 정부의 경제적 실패, 이회창-이인제의 여권 분열은 DJ 지지층 결집도 우세의 요인들이고, DJP 연합의 효과는 그것의 파생적 산물이었다. DJ가 지지층을 강력하게 결집시킬 수 있는 매력이 없었다면, IMF 사태가 터지고 여권이 분열되고 DJP 연합이 이뤄졌더라도 DJ 당선은 쉽지 않았다는 말이다. 너무 결과론적인 얘긴가?

2002년 노풍, 그리고 노무현 당선은 어떤가? 노무현에 대한 호남민의 전략적 선택, 노무현에 의한 영남지역 잠식 등으로는 노풍과 노무현 당선의 기적을 전부 설명하기 어렵다. 노무현을 노무현이게끔 하는 그 매력이 핵심지지층을 강력하게 결집시킬 수 있었기에, 이회창보다 더 강력하게 결집시켰기에 2002년의 기적이 가능했던 것이다. 당시 호남 유권자들은 대세 이인제로부터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에 전략적 선택을 하지 않았다. 당시 영남의 야 성향 유권자들은 노무현의 매력 때문에 최대 결집을 이뤘다. 2030세대의 결집은 말할 나위 없다. 2002년 대선 당시에도 계급배반투표, 계파갈등, 후보의 미숙 등이 없었던 게 아니다. 2004년 총선, 2010년 지방선거 역시 마찬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이번 4.29 재보선 결과도 이런 측면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 전패의 배경과 원인을 놓고 야권 분열 때문이다, 인물(후보자의 지명도) 약세 때문이다, 계파갈등 때문이다, 민주당과 문 대표의 전략적 무능 때문이다 등 설이 많다. 하지만 야권 분열론은 선거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설득력이 떨어지고, 인물 약세론은 새누리당 후보들과 비교해보면 억지 주장에 불과하고, 계파갈등론은 늘 나오는 레퍼토리에 지나지 않고, 전략적 무능론은 맞는 얘기지만 언제나 맞는 얘기여서 문제다.

이런 각도에서 생각해보자. 이번 재보선에서 민주당과 문 대표는 그 핵심지지층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만한 어떤 구석이 있었을까? 내 맹한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 없었다. 2.8 전당대회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세월호 1주년의 분위기에서도, 성완종 리스트가 정국을 뒤흔드는 분위기에서도 없었다. 민주당은 이번 재보선에서도 오직 ‘미워도 다시 한 번’만을 지지층에게 호소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핵심지지층의 일부는 민주당 후보를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했고, 다른 일부는 ‘싫어서 선택하지 않았다.’ 광주의 다수 유권자들은 민주당이 ‘싫어서 선택하지 않았다.’지지층이 민주당을 좋아할 이유를 만들기에는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문 체제로서는 너무 시간이 모자랐다고 할 수도 있다.

시간은 앞으로 더 주어질 테니 이제 지켜볼 밖에. 다만 탕평 정치, 대선 캠페인 유사 정치, 본질적 문제 회피의 정치, 가식적 혁신주의는 시간이 더 주어져도 핵심지지층으로 하여금 ‘사랑할 이유’를 찾게 하긴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의 핵심지지층은 너무도 오랫동안 탈바꿈 정치를 갈구해왔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탈바꿈 정치를 통해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지 못했다. 여태까지 줄곧.

핵심지지층을 강력하게 결집시키려는 노선은 지지층 확장 노선(5070세대에 대한 어필, 무당파층에 대한 어필 등)과 상충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문제에 대해서 한 마디 언급이 필요하겠다. 첫째, 시대 상황에 따라서는 집토끼 노선과 산토끼 노선은 상충할 수 있고 상통할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집토끼를 결집시킬 수 있는 매력이 없다면 산토끼는 산에 가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둘째, 지금은 집토끼와 산토끼 모두 기성 정치를 거부하고 새로운 정치를 원한다. 셋째, 그래서 새로운 정치는 집토끼의 결속과 산토끼로의 확장을 동시에 성취할 수 있다. 넷째, 합리적인 개혁정치, 진정한 생활정치는 ‘이념적 진보’층과 2040세대에게 새로운 비전과 동기를 부여한다.

야권, 특히 제1야당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대략 3가지로 전망해볼 수 있겠다.

제1전망은 민주당의 수습이다. 문이 대표직을 유지하는 가운데 내분 봉합, 본질적 문제 회피, 적당한 수사학(rhetoric)과 쇼맨십 발휘, 공천에서 대국적 담합 등의 과정을 통해 내년 총선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다. 제1전망은 문 대표의 지지기반과 리더십이 매우 취약하지만 그럼에도 문 체제를 뛰어넘을 대안이 없기 때문에 성립되는 것이다. 여기서 문 대표의 민주당 기득권 구조에 대한 창조적 파괴와 혁신은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문 대표는 기득권의 본체를 건드리지 않는 한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처방을 다 써볼 것이다. 안타깝게도 최악의 길이다. 호남의 균열, 2040세대의 이반, 무당파층의 외면 등으로 민주당에게는 내년 총선 역시 4.29 재보선의 꼴이 될 것이다.

제2전망은 문-박-안 동맹이다. 민주당 내 유력 대선주자 3인이 당의 혁신을 위해 경쟁적 협력을 가시적으로 꾀할 가능성이다. 이 전망은 어디까지나 문 대표가 적극적으로 박과 안의 협력을 이끌어내 계파 청산을 실행하고 가시적 혁신 조치를 취하며 당권을 재구성할 의지가 있을 때 성립되는 것이다. 하지만 박과 안의 당내 기반이 거의 없는 관계로 동맹의 실질적 근거가 약하고 동맹이 혁신의 시너지를 얼마나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동맹이 자칫 지분 나누기로 비치기라도 하면, 동맹은 문-박-안의 무덤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박과 안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럴 듯하지만 위험한 길이다.

제3전망은 야권의 다극화다. 민주당 안팎의 여러 도전세력이 일어나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야권 개편 압력을 비등시키면서 제각기 내년 총선에서의 생존을 도모할 가능성이다. 제3전망은 사실 천정배의 ‘뉴DJ’, 즉 호남發 도전세력이 다른 지역들의 도전세력과 공명하여 2040세대 및 무당파층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때 성립되는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 기득권에 도전하는 신진개혁그룹이 생길 수 있다면 더 유력해질 것이다. 여기서 성패는 도전세력으로서의 명분과 브랜드를 어느 정도 갖출지에 달려있다. 곧바로 신당 창당 프로세스에 들어가게 되면, 길을 열어가는 것보다는 성을 쌓게 되는 것이어서 오히려 공격받는 위치에 서게 될 공산이 크다. 유목민의 길이다.

어떤 전망이 어떤 양상으로 현실화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어느 경우든 지지층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이다. 지금 야권에서 지지층을 결속시킬 수 있는 매력은 봉합과 담합의 정치가 아닌 탈바꿈의 정치, 수성의 정치가 아닌 창업의 정치, 이기는 정당이 아닌 죽어서 살고자 하는 정당에서 나올 수 있는 게 아닐까.

 

강동호  

현)뉴딜정치연구소 소장

'안철수는 왜?'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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