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없이 공권력에 의해 민간인 총살학살, 국가는 조사-진상규명 앞장서야

- 재판없이 공권력에 의해 민간인 총살학살, 국가는 조사-진상규명 앞장서야 -

* 편집자주: 눈비바람속 유해발굴봉사자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수일간 한민족비운의 현장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산93-1 민간인학살 유해발굴현장'을 지켜본 작은 한편의 뉴스가 진실규명과 화해에 조금이라도 기여되길 바라고, "인류평화-인권 존중 확립차원에서 '전쟁기 재판없는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총살학살은 인류공멸자멸-원한반복 재현이' 되풀이 될수있음을 엄중히 전한다".

2016년 3월6일 오후 2시경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산93-1번지 동굴 유해발굴 현장에서‘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의 박선주 단장 주축으로 제3차 유해발굴조사에서 '총 21구 유해-유품 발굴'에 대해 공개하면서 현장설명회가 전개됬다.

발굴 현장의 중요한 특이점은 총21구 유해(20~40대 남성 추정)와 M1소총 탄두 총3개가 발굴됬다. 즉 총기류에 의한 총살 학살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발굴현장에서 유해가 서로 뒤엉킨채 M1소총 탄두가 두개골내와 대퇴부에 박히고, 유해내 M1소총 탄두1개가 발굴, 발굴유품 라이터 1개에 "?병규" 성은 생략되고 이름만적힌 '병규"글자, 가죽혁대, 4열단추, 부패된 가죽신발류밑창 등이 발견됬다.

박선주 발굴단장(충북대 명예교수)은 "유족들의 증언과 유해발굴 결과물 등을 총 종합적으로 볼때 총기류에 의한 사망으로 결론"을 내렸다.

동굴 근처에서 총으로 사살 학살후 동굴내로 시신들을 투입한 것으로 보고있다.
박 단장은 '국군유해발굴, 일제침략기 강제징용 홋가이도 유해발굴,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등을 해온 세계정상급 발굴전문 단장이다.
 
광천 담산리93-1번지 총살 학살의 중요한 것은 재판과정 없이 "언제 누가 총기로 누구를 어떤 이유와 근거로 어떻게 총살했는가?" 이다.

M1소총으로 학살된 시점은 6.25 한국전쟁발발 직후 시기인 1950년 7월10일~11일~7월12일(오전경) 무렵으로 추정된다.

홍성경찰서 후퇴일(7월11일)과 북한공산군 홍성진입일(7월12일) 시기적 배경은 본 총기학살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남진하는 북한공산인민군이 예산-홍성 진입에 임박해 군-경-특무대가 후퇴하면서 국민보도연맹 민간인들을 급박하게 총살했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009년 1월19일 발간서인 "충남서부 국민보도연맹사건" 진실규명결정서에 나온 '홍성경찰서 연혁사'에서 1950년6월25일 한국전쟁발발로 북한공산군의 남침으로 인해 홍성경찰서 퇴각 일자가 1950년 7월11일이고 북한공산군 홍성진입이 7월12일이다.

어디까지 역사의 진실인지는 알수 없으나, 당시 '홍성경찰서장 박헌교' 증언에 의하면 예비검속으로 잡혀온 국민보도연맹원들이 경찰에 의해 분류되고 특무대 명령에 의해 군-경 협조로 수송되고 사라진것으로 보고있다.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을 규합해 친 이승만세력화 시킬 대상자들을 이승만 정권이 만든 단체명이다, 이승만 정권이 공직분야에 반강제 할당제로 마구잡이식으로 가입시켰고 어떤 유족은 사망자가 보도연맹에 가입된 것 조차도 모른다고 일부 피해자 유족들이 증언하고 있다.

당시 군-경-특무대가 급박하게 퇴각하면서, 공산인민군 치하에 처하면 적에게 공조세력으로 변할수 있다고 보고 의심되는 자들을 긴급 분류해 일부는 홍성 용봉산(83구 시신) 등지서 학살 후, 특무대에 인계된 보도연맹원들은 북공산군 남진으로 대전형무소 방향으로는 갈수없고(부여경찰서 후퇴일 7월14일) 광천 아래인 보령지역으로 퇴각 하면서(보령경찰서 후퇴일 7월13~14일) 그 중 일부(20-30여명)는 광천 담산리로 수송되고 급박히 퇴각중인 특무대 명령에 의해 M1소총으로(누구의 손으로 방아쇠를 당겨?) 학살된것으로 추정된다.

담산리 산93-1 총기 학살이후 약 3일간 횃불이 계속 밝았었다고 일부 지역민들이 증언함에 따라, 학살 사실이 인근지역에 퍼지기 시작해 일부 시신은 유가족들이 찿아가고 소식을 듣지못한 유가족들은 어디서 사라졌는지 조차 몰라 행방불명인채로 그대로 동굴내에 66년간 매몰된채 약 21구 시신은 유골로 발굴된것으로 보인다.

발굴이후 유족 2명은 유전자 감식을 통해 유골이라도 인도 받고 싶어 했다. 

홍성지역 공동대책위장 김용일은, "발굴 현장이 주는 교훈은 '평화-인권 국가로 지향 해야 한다'는 것이고, 국가가 나서서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사과 해야한다. 관련입법이 완성될때 까지 용봉산 추모공원에 안치하겠고, 영원한 위령 안장은 반드시 국가가 앞장서야 한다" 고 강조했다.

국가는 한국전쟁기(6.15전쟁) 재판없이 인권이 유린되는 '공권력 총기에 의해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6.25 전쟁기 동안 초기부터 휴전까지, 1) '1차 후퇴시 공권력에의한 민간인학살', 2) '인민군 공산치하에서의 민간인학살', 3) '수복후 공산치하당시 부역자 민간인학살'에 대한 역사진실 규명과 조사가 공정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당시 1949년 10월25일~11월30일 남로당 자수기간중, 남로당 충남도 자수전향자 3902명중 홍성군지역 자진탈당 신고에 응한 사람들이 1380여명에 이르는 것을 볼때 사회혼란에 쉽게 현혹되는 순진한 농민-농민운동원들이 대다수 많았음을 증명한다.

일제침략 패망후 해방에서 부터 6.25 종전까지 민족적 사회불안,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의 암살과 연관된 이승만 정권 등장 등, 국가정통성 결핍으로 자멸적비극을 파생시키는 남북분단 구조로 '남한은 친일파 세력화 북한은 공산주의세력화' 대립 상황속 동족상잔의 6.25 한국전쟁기 역사를 바라볼때, 66여년이 지난 오늘 "중립적 정통역사관"에서 볼때 "국민적 진실규명-화해와 통합을 위한 숭고한 정신"으로 국가가 발벗고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 남북 분단-대립의 시대에서 '피해받은 후손들은 원한속 원한을 잉태하고 또 다른 학살을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의 우려가 많다'.

또 다시 국가위기시 '내부자멸적상호학살' 은 재현될 가능성은 높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중립적 정통역사성 관점에서 억울한 피해계층구조 확립 차원에서 반드시 국가(정부-국회-지자체-기초단체-정통역사학계)가 발벗고 나서야 한다".
 

▲발굴조사단▲

발굴단장: 박선주
책임조사원: 안경호
조사원: 김민철,노용석,김영환,홍수정, 임영순, 박데비
조사보조원: 이영미, 오승래, 김병구, 한중경,
보조원: 윤정하, 최승원
발굴팀 자원봉사자:신명철, 박현주,한승주, 윤은영, 황미정, 영남대,충북대,경희대 한양대 여러분. //

1. 박선주 발굴단장 결과 발표: http://youtu.be/ixUynjr45xA  
 

2. 박선주 발굴단장 결과 발표: http://youtu.be/BnS1X887hlk
 

3. 비바람속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http://youtu.be/N_oi1eu1JQ8
 

4.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현장(광천 담산 93-1)

▲ 1. 한국전쟁이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박선주 단장(중앙 빵모자): [시사칼럼]6.25 한국전쟁기 국가공력에 의해 민간인 총기류-잔인 학살 역사진실 바로세워야
▲ 2. 박선주 단장 유해발굴 결과 브리핑: [시사칼럼]6.25 한국전쟁기 국가공력에 의해 민간인 총기류-잔인 학살 역사진실 바로세워야
▲ 3. 총기학살에 의함을 즈으명하는 유해 두개골에 박힌 M1 총알 탄두 : [시사칼럼]6.25 한국전쟁기 국가공력에 의해 민간인 총기류-잔인 학살 역사진실 바로세워야
▲ 4. 유해발굴현장 충남 광천 담산리 93-1 동굴 : [시사칼럼]6.25 한국전쟁기 국가공력에 의해 민간인 총기류-잔인 학살 역사진실 바로세워야
▲ 5. 허물어진 동굴내 유해가 땅속에 뭍혀있다. : [시사칼럼]6.25 한국전쟁기 국가공력에 의해 민간인 총기류-잔인 학살 역사진실 바로세워야
▲ 6. 유해 유골 조각들. : [시사칼럼]6.25 한국전쟁기 국가공력에 의해 민간인 총기류-잔인 학살 역사진실 바로세워야
▲ 7. 발굴 유해 유골: [시사칼럼]6.25 한국전쟁기 국가공력에 의해 민간인 총기류-잔인 학살 역사진실 바로세워야
▲ 8. 김용일 홍성지역 대책위장: "발굴 현장이 주는 교훈은 '평화-인권 국가로 지향 해야 한다'는 것이고, 국가가 나서서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사과 해야한다. 관련입법이 완성될때 까지 용봉산 추모공원에 안치하겠고, 영원한 위령 안장은 반드시 국가가 앞장서야 한다" 고 강조했다 : [시사칼럼]6.25 한국전쟁기 국가공력에 의해 민간인 총기류-잔인 학살 역사진실 바로세워야
▲ 9. 최홍이 유족 : [시사칼럼]6.25 한국전쟁기 국가공력에 의해 민간인 총기류-잔인 학살 역사진실 바로세워야
▲ 10. 정명호 서산유족대표 : [시사칼럼]6.25 한국전쟁기 국가공력에 의해 민간인 총기류-잔인 학살 역사진실 바로세워야
▲ 11. M1 탄두 총3점 발굴, 총기류에 의한 민간인 학살임이 입증되다. [시사칼럼]6.25 한국전쟁기 국가공력에 의해 민간인 총기류-잔인 학살 역사진실 바로세워야
▲ 12. 유품 라이터(0병규 : 이름으로 추정) 발굴: [시사칼럼]6.25 한국전쟁기 국가공력에 의해 민간인 총기류-잔인 학살 역사진실 바로세워야
▲ 13. 4열 단추류 발굴품: [시사칼럼]6.25 한국전쟁기 국가공력에 의해 민간인 총기류-잔인 학살 역사진실 바로세워야
▲ 14. 유해발굴 현장 무너진 동굴 입구 : [시사칼럼]6.25 한국전쟁기 국가공력에 의해 민간인 총기류-잔인 학살 역사진실 바로세워야
▲ 15. 유해발굴 자원봉사단원들 아세톤 세척제 악취를 무릎쓰고 유골의 흙을 세척하고있다.: [시사칼럼]6.25 한국전쟁기 국가공력에 의해 민간인 총기류-잔인 학살 역사진실 바로세워야
▲ 16. 멀리서 자진해서 봉사하러온 유해발굴보조자원봉사자들 철수전 한컷포즈 : [시사칼럼]6.25 한국전쟁기 국가공력에 의해 민간인 총기류-잔인 학살 역사진실 바로세워야
▲ 17. 유해발굴 세계정상급 전문가 박선주 단장(충북대 명예교수) 발굴된 유해의 유골을 세심하게 관찰 분류정리하고 있다: [시사칼럼]6.25 한국전쟁기 국가공력에 의해 민간인 총기류-잔인 학살 역사진실 바로세워야
▲ 18. 발굴된 유해 두개골과 조각난 뼈 와 유품들. : [시사칼럼]6.25 한국전쟁기 국가공력에 의해 민간인 총기류-잔인 학살 역사진실 바로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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