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예술인 발레계 꼭대기에 한국 무용수들이 대거 올라서고 있는데, 한때 한국 발레하면 울퉁불퉁한 발 사진의 강수진 현 국립발레단장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그러나 이제는 다르며,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등 세계 최정상급 발레단에서 맹활약 중인 한국 무용수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죠?

=. 우선 최근 '무용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한 박세은은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 제1무용수(프르미에르 당쇠즈·premiere danseuse)로 활약 중입니다. 그는 1669년 설립된 세계 최고(最古) 발레단인 파리오페라발레의 첫 동양인 제1무용수입니다.

김기민 역시 콧대 높기로 유명한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에 동양인 발레리노로 최초로 입단한 뒤 수석무용수 자리까지 꿰찼습니다. 긴 체공 시간과 섬세한 연기로 러시아 내에서도 팬덤이 상당합니다. 그는 발레리나 강수진(1999년), 김주원(2006년)에 이어 세 번째로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받은 무용수입니다. 발레리노로는 그가 최초입니다. 한국 발레리노 새 이정표를 써나간다는 평을 받습니다.

-. ABT 간판스타로 활약 중인 서희 역시 이 발레단 첫 동양인 수석무용수이며, 서희재단을 꾸려 후배 무용수들을 돕는 데도 앞장선다고요?

=. 강수진에 이어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두 번째 한국인 수석무용수가 된 강효정, 네덜란드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약 중인 최영규, 스페인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 김세연 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유망주도 곳곳에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윤서후는 작년 파리오페라발레 입단 오디션을 거쳐 김용걸, 박세은에 이어 이 발레단 세 번째 정단원이 됐습니다. 전준혁은 작년 가을 영국 로열발레단에 발레리나 최유희에 이어 한국인 무용수로는 두 번째, 한국인 발레리노로는 최초로 입단했습니다.

-.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한국 발레 성가를 체계적 발레 교육과 서구화한 체형, 한국 무용수 특유의 근성이라는 3박자가 고루 더해진 결과로 분석했다죠?

=. 심정민 무용 평론가는 "과거보다 한국 무용수들의 체형과 몸선이 많이 좋아진 데다가 섬세한 감정 표현과 연기 부분은 우리 무용수들만이 지닌 장점"이라며 "서양 무용수들의 동작과 선이 큰 데 비해 우리 무용수들은 세밀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에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예술 영재 시스템 등이 갖춰지면서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집중적 교육을 받는 점도 한국 무용수들의 경쟁력을 높인 원인으로 꼽힙니다. 심 평론가는 "한국에서도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교수법 등 좋은 커리큘럼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며 "재목도 좋아졌는데 키워내는 방법까지 좋아졌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습니다.

-. 장광열 무용 평론가는 "실기 중심 한예종 시스템, 콩쿠르 참가 및 입상을 통한 국제적 감각 제고, 해외에 진출한 선배 무용수들의 활약을 보고 자란 경험 등이 더해져 더 많은 발레 스타가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면서요?

=. 네, 파리오페라발레에서 솔리스트 자리에까지 오른 발레리노 겸 안무가 김용걸은 "한국 무용수들은 목숨을 걸고 발레를 한다"며 "집착에 가까운 열정을 보여주는데 서양 무용수들에게는 찾아보기 어려운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아직은 한국 발레의 성과라기보다는 개개인의 성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큽니다.

심 평론가는 "잘한다는 무용수들이 대거 해외로 진출하다 보니 국립발레단 정도를 제외하고서는 무용수 수급 문제를 심각하게 겪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어 "무용수뿐 아니라 발레단도 함께 성장할 방법, 즉 창작진 육성을 통한 양질의 레퍼토리 확보를 통해 무용수들이 해외에 나가지 않고서도 발레단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장 평론가 역시 "지금은 몇몇 스타와 국립발레단 위주로 국내 발레계가 돌아가고 있다"며 "축적된 힘을 더 다양한 층위의 무용수, 더 다양한 지역 발레단 육성에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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