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지난 번에 "다문화는 컨텐츠다"라는 글을 통해 다문화가 가지고 있는 속성을 이야기했었다. 즉, 글로벌화라는 외형적이고 범주적인 규정과 달리 글로벌의 또 다른 면인 "다문화"라는 용어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는 말임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글로벌화는 주로 형식적이고 범주적인 접근으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다문화는 그보다 심층적이며, 내용적인 세밀함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즉,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글로벌화는 결코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산적인 것은 그 씨앗이 있어야 하는데, 씨앗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다문화에는 생산적인 산업을 창조하는 힘이 있고, 글로벌화는 이를 확장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글로벌화에 주목을 하고, 다문화를 부담스러워하거나 거부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왜 껍데기인 글로벌화는 숭배하면서 그 내용이자 컨텐츠인 다문화에 대해선 부담스러워하는가 

여기에 정부 다문화 정책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즉,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력만 취하고, 그 외에는 복지 위주의 다문화 정책을 펼치다보니, "다문화 = 국민부담"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은 것이다. 이런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국민의 다문화 인식은 퇴화되고, 거꾸로 "이상한 민족주의"가 발흥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잘못된 다문화정책으로 또 다른 다문화 인식 퇴화 현상이 있다. 그것은 "다문화"라는 말이 차별을 낳고 있는 만큼, 그 용어를 폐기하자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유럽도 다문화주의를 폐기하고 상호문화주의로 나가고 있다"며, "다문화적 관점이 아니라 상호문화적 이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얼핏보면 그럴듯하다. 서로가 다름을 인식하고, 존중하자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말장난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또 정확하지도 않다.  

"다문화"라는 용어가 처음 한국에 소개될 때, "혼혈" "튀기" "코피노" "코메리칸" 등의 저속한 용어를 대체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즉, 무엇이라고 규정하기는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용어는 적절하지 않으니, 보다 순화되고 긍정적인 용어로,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 널리 쓰이는 단어인 "다문화(multiculture)"를 그대로 직역한 말을 채택한 것이다. 한마디로 "순화된 이름표"인 셈이다.

그 이름표가 또다른 규정을 하게 되고 차별을 낳는다고 핑계를 댄다면, 그럼 어쩌자는 것인가 

이름없이 살자는 것인가 소나무, 참나무, 호랑이, 토끼..등 모든 생명에는 구분짓는 이름이 있고, 심지어 지리산, 백두산, 한라산, 할매바위, 독수리바위 등 무생물인 사물까지도 구분짓는 이름이 있는데, 구분자체가 차별이어서 구분짓지 말자니, 그럼 어쩌자는 것인가 언어가 문제니 아예 말을 하지 말고 살자고 해야 하나

상호문화주의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나아가 서구 유럽에서 다문화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발흥하는 상호문화주의를 우리가 그대로 수입하여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선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상호문화주의는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이 다른 집단, 또는 내용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처럼, 완전히 구분짓고 다른 것을 전제로 하는 용어이다. 그것을 우리나라 다문화가정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면, 좋을까 

여기에서 우리는 두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학계의 고질병인 철학의 허약함이고, 다른 하나는 지적 허영심이다. 즉, 그런 용어들이 나오게 된 배경과 환경을 이해하지 않고, 서구에서 사용하면 그냥 무턱대고 따라가려는 태도, 밑바탕이 허약한 사람들의 모습이며...또 마치 새로운 것이 있으면 그걸 자랑하며 지난 것을 업신여기는 허영심 말이다. 

전에는 한국의 다문화를 말하면서 "동화주의"니 "다문화주의"니 하는 용어를 마구잡이로 사용하면서 이념논쟁화하더니, 이제는 상호문화주의까지 끌어들여서 한국의 다문화 현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탁상논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그런 논쟁이 한국의 다문화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얼마나 큰 보탬이 된다고...

앞서 이야기했듯이 다문화는 "컨텐츠(내용)다". 다문화는 서로 다른 문화가 융합하고, 충돌하며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뭐 어때서

 "다문화"라는 용어에 대해 회피하거나 또 다른 용어를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오히려 정면으로 돌파할 문제인 것이다. 다문화적 사고를 통해 새로운 창의를 끌어내고, 그것을 실생활에 연결하여 현실에서 한단계 더 도약할 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지...이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이름지으면 화산폭발이 일어나지 않는단 말인가 아니면 화산폭발로 인한 피해가 줄어들기라도 한단 말인가  

따라서, 다문화라는 용어는 폐기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의미지어지고, 제대로 정책화되고, 제대로 규정되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김성회 칼럼니스트는 레인보우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한국다문화센터 대표입니다. 김성회 대표는 연세대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장, 제2건국위원회 전문위원과 이인제 국회의원 보좌관, 반기문 팬클럽 '반딧불이' 회장,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 등을 지냈습니다. 김성회 대표는 일찍이 다문화 시민운동을  시작해 국내 최초로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하여 운영했으며 각종 다문화관련 행사와 방송출연, 전문패널 등의 활동을 통해 올바른 다문화 정책수립 및 문화 형성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