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14] 동양문명의 꽃이된 다문화 국가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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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의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14] 동양문명의 꽃이된 다문화 국가 '당'
  • (정리)김미연 기자
  • 승인 2019.06.0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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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중국과 동양문명에서 가장 찬란한 꽃을 피운 것은 당나라시대였다. 지금도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지향하는 사회를 "소강사회(공자에 의하면 백성들이 충분히 먹고 살며 법과 질서가 바로 선 사회로 대동사회 전단계를 의미한다)"로 지칭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일대일로를 강조하며 "당나라 시대"를 거론하고 있다. 그만큼 중국에서는 동양문명의 꽃을 피운 시대를 당나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당나라는 위나라 - 수나라를 계승하며 만들어진 나라였다. 당나라를 세운 이연, 이세민 부자는 수나라의 귀족출신이었다. 따라서 위나라와 수나라가 선비족 출신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당나라 역시 선비족 계열이 세운 나라로 볼 수 있다. 북방민족인 선비족은 한무제의 북벌에 밀려 북방으로 밀려갔으나, 한나라의 쇠퇴에 따라 대거 남하하였다. 그 중 탁발선비, 모용선비가 두각을 나타냈는데, 그들이 세운 나라들이 발호하면서 5호 16국 시대가 전개된 것이다. 

이 5호 16국 시대는 선비족을 비롯해, 흉노, 저, 갈, 강 등 유목민족이 남하함으로써 한족 중심의 농경민족과 북방 유목민족이 대거 혼합되는 대혼란의 시대였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유목민족이 세운 국가들은 한족을 지배하기 위해 점차 한족의 문물과 제도를 수용하면서 "호한 융합시대"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차 북쪽에는 위나라, 남쪽에는 진나라(동진)이 대립하는 위진남북조시대를 거쳐 수나라에 의해 통일되게 된다. 

위나라와 수나라가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몰락하면서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당나라"였다. 당나라 역시 선비족 계열이었지만, 위나라와 수나라가 펼쳤던 호한융합정책을 그대로 계승했다. 즉 한족의 문화를 수용함으로써 한족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려고 한 것이다. 이와함께 당나라는 주변 나라들의 선진문물을 적극 수용하며 지배력을 확대해 나갔다. 이는 이민족의 문화와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모방함으로써 지배력을 확장해나갔던 로마의 방식과 비슷하다.  

당나라가 다문화 국가의 면모를 갖춘 것은 다방면에서 드러난다. 
그 첫번째로 군사적으로 당나라 군대는 당의 군대와 이민족 세력이 연합한 연합군대의 성격을 띄었다. 대표적인 것이 고구려 왕족 출신의 고선지가 당의 군대를 이끌고 서역정벌을 한 것, 백제 출신의 흑치상지가 당나라의 장군이 되어 전쟁을 수행한 것을 보아도 드러난다. 즉, 정복한 국가의 왕족과 귀족, 장군들에 대해서 출신을 따지지 않고 그 재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활용한 것이다. 

이 같은 모습은 당나라에서 관료들의 등용문인 과거제도에서 잘 드러난다. 즉, 이민족 출신들에게 "당의 관료"가 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래서 최치원 등 신라에서 출세가 가로막힌 6두품들이 대거 당으로 몰려가 당에서 과거시험을 보고 관료로 등용되었다. 이는 신라뿐 아니라 다른 이민족과 국가에도 적용되었다. 즉, 다른 나라나 이민족 출신이라도 과거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고 일정비율을 선발한 것이다. 이는 로마에서 속주 출신 노예나 평민들이 관료로 출세했던 과정과 비슷하다. 

종교에서도 비슷하다. 당나라에서는 인도로부터 전해진 불교가 융성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했다. 동방으로 진출한 기독교(네스토리우스파의 경교)는 물론 이슬람교까지 공존했다. 그 중 중국에 진출한 동방기독교(경교)는 당나라 황실 이씨의 시조인 노자의 도교와 결합하여 황실의 보호를 받으며 세력을 확장했다. 당이 지배하고 있는 지방의 6백개 현에 동방기독교 예배당이 설립되고, 일정한 봉토를 하사받아 운영하는 혜택을 누렸다. 

또한 당나라 시대에는 각종 문화와 문물의 교역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래서 당나라에서는 주변국가들의 이주민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방"이 존재했다. "신라방" "파사(페르시아)방" 등이 그것이다. 그곳을 통해 수많은 문화와 문물의 교역이 이뤄짐으로써 서양의 로마, 동양의 당나라라는 양대 산맥이 형성된 것이다. 또한 한나라시대에 개척된 실크로드가 실질적인 역할을 하게 되어 중앙아시아는 물론 로마와도 활발한 교역이 이뤄졌다. 

하지만, 당나라 후기에 들어와 당 황실이 안락과 부패에 젖은 사이 "안록산의 난"과 "황소의 난" 등 민란이 거세게 일어나며 다문화, 이주민에 대한 배척분위기가 높아지고 혼란스런 상황이 전개되며 "다문화 국가인 당의 몰락"이 가시화 되었다. 그러면서 이민족의 지배에 대한 저항의식이 높아지며 한족 중심의 국가건설 욕망이 높아지며 조광윤의 송나라가 세워진다. 
이렇게 중국 역사에서 가장 화려했던 문명의 꽃을 피운 당은 무너졌다. 

하지만, 서양의 로마와 함께 동양의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운 당나라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다문화 정책"이었다. 애초부터 "호한 융합정책"을 계승하고 표방했으며, 관료 등 인재선발에서도 주변 국가와 이민족출신을 적극 등용했고, 종교와 문화에서도 이민족의 종교와 문화를 적극 수용하여 꽃을 피웠다. 심지어 군대마저 이민족 세력을 적극 수용하여 "연합군대"를 편성하고 전쟁을 수행했던 것이다. 

<계속..>

김성회 칼럼니스트는 레인보우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한국다문화센터 대표입니다. 김성회 대표는 연세대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장, 제2건국위원회 전문위원과 이인제 국회의원 보좌관, 반기문 팬클럽 '반딧불이' 회장,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 등을 지냈습니다. 김성회 대표는 일찍이 다문화 시민운동을  시작해 국내 최초로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하여 운영했으며 각종 다문화관련 행사와 방송출연, 전문패널 등의 활동을 통해 올바른 다문화 정책수립 및 문화 형성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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