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15] 대표적 다문화 국가이자, 세계패권국가인 미국의 다문화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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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의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15] 대표적 다문화 국가이자, 세계패권국가인 미국의 다문화 흑역사
  • (정리)김미연 기자
  • 승인 2019.06.0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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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인류 역사상 로마와 당나라 같은 문명의 꽃을 피운 다문화 국가들이 많지만, 그 어떤 다문화 국가도 미국과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로마와 당나라 등은 초기 자신들만의 종족을 중심으로 국가를 형성하다가 점차 강성해지면서 "포용적인 다문화 국가"로 성장했던 예이다. 

하지만 미국은 처음부터 다양한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이 중심이 되어 대륙회의라는 것을 거쳐 아메리카 합중국으로 출발했다. 

미국의 이주민 역사를 보면 매우 다양한 경로를 거쳐왔다. 처음 아메리카대륙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다. 이들이 아메리카대륙에 흘러들어오게 된 과정에 대해선 분명하게 증명된 것은 아직 없다. 

그 중 세가지 학설이 존재한다. 하나는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잇는 베링해가 빙하기에 육교로 이어져서 몽골로이드가 넘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남아시아쪽에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왔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아시아쪽에서 배를 타고 왔다는 설이 있다. 

그 중 빙하기로 바다 수면이 낮아져 베링해협이 육교로 이어졌던 bc 1만년 전부터 2-3000년 경까지 몽골로이드가 집중적으로 넘어왔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신체적 특징 중에 몽골반점이 나타난다는 점, 그리고 수염이 별로 나지 않는 점, 그리고 마른 귀지를 갖고 있는 점 등이 몽골로이드와 닮았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들은 인디언이 쓰는 언어와 아시아 북방 유목민족의 언어나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일부는 멕시코라는 발음이 맥족의 땅이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유럽의 백인 계통은 콜럼버스 이전에 바이킹족에 의해 그린란드와 캐나다, 미국 북동부지역이 개척되었다는 설이 있다. 실제 바이킹족의 초기 정착지와 그들과 아메리카 인디언간의 전쟁이 진행되었던 것 등이 역사적 유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정착을 하지는 못했고, 이탈리아 출신의 콜럼버스에 의해 신대륙이 발견된 후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후, 미국은 뉴잉글랜드 등을 중심으로 영국계 이민자들이 많은 인구를 차지했다. 영국 이민자들은 초기 카톨릭계가 많았지만, 유럽에서의 종교개혁운동 이후에는 "청교도"들이 대거 이주하였다. 

그 외에 루이지에나 등지에서는 프랑스계 이민자들이 많았고, 뉴욕과 뉴저지에는 네덜란드인이, 델라웨어에는 스웨덴출신이, 플로리다에는 스페인 출신들이 많이 거주하였다. 

이런 미국이 하나의 국가로 성장하게 된 과정은 유럽에서는 국제관계와 깊은 연관이 있다. 즉, 영국과 프랑스의 7년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한 전후 부담금을 인지세를 통해 충당하려던 영국에 반발을 하면서 "보스턴 차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에 영국과 앙숙인 프랑스과 네덜란드 등이 독립운동 세력 편을 들면서 파리조약에 의해 미국이 독립을 쟁취하게 된 것이다.  또한 유럽문제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고 전쟁재정을 충당하려는 프랑스의 나폴레옹으로부터 루이지에나 등을 인수하면서 영토를 확장하며 실질적인 국가로 성장해나갈 수 있었다. 

이처럼 미국은 독립전쟁과 국가의 성립과정 자체가 다민족, 다국적 무대를 통해 탄생하고 성장한 나라였다. 
하지만, 그 성장과정을 보면 결코 순탄치 않은 성장과정을 거쳤고, 또한 이민자나 다문화에 대해 그다지 포용적인 태도를 취하진 않았다.
 
이민자들에 의해 다문화 국가로 출발했지만, 주류인 백인 이민자들, 심지어 백인 이민자들 사이에서조차 끊임없는 차별과 저항, 그리고 수동적인 다문화 수용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아메리카 인디언 학살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유럽 이민이 미국으로 건더갈 즈음에 전체 인구가 1300만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발견된 미시시피 문화는 물론, 일리노이주 세인트루이스 지역에는 1만명 이상이 거주한 대유적지도 발견되었다. 이렇게 나름대로의 역사를 가꾸어온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학살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땅을 사고 파는 행위에 대한 경험이 없는 인디언을 대상으로 땅에 대한 인수계약을 맺고, 그 다음에는 인디언들을 보호구역 내로 추방하는 조치를 취해나갔다. 특히 13개주를 장악한 뒤 서부개척시대에는 유럽에서 들어오는 새로운 이주민과 몰몬교도 등이 중심이 되어 중서부 인디언들을 대거 학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세차례에 걸친 학살전쟁에서 300만에 달하는 인디언이 학살당하기도 했다. 또한 주요 식량인 버팔로를 멸종시킴으로써 인디언 인구를 줄여나갔다. 그 과정에서 4천만 마리 이상의 버팔로가 1만마리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흑인 노예 문제도 참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메리카 플랜테이션 농장의 노동력 필요에 의해 아프리카에서 끌어들인 흑인 노예들은 주로 남부지역의 농장에서 노예노동을 강요당했다.
 
그러다가 북부공장지대의 산업자본에서 노동자가 더 필요하게 되어 노예해방의 필요성이 대두됨으로써 남북의 대립이 첨예하게 대두되었다.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에 따라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지만, 유럽 산업자본의 지원을 받는 연방군이 남부 동맹군으로부터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인권적 의미에서 이뤄진 노예해방이 아니고, 산업인력 수급의 필요성에 따라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노예해방으로 나아가기까지는 험난한 우여곡절이 많았다. 

일부 주에서는 노예에 대한 즉결 처형 등이 합법적으로 이뤄지기까지 하는 등, 노예해방은 멀고도 험난한 길이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1차 대전이 끝난 1930년대에 참정권을 갖게 되었지만, 흑인들은 2차 대선이 끝나서야 참정권을 갖게 되었고, 1960년대까지 식당과 교통수단에서 강제로 끌어내려지고 린치 당하는 사태가 비일비재 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밀려드는 아시아로부터 엄청난 이주민이 밀려들어왔고, 1900년대 후반에는 중남미에서 엄청난 숫자의 히스패닉계 이주민이 남부와 서부쪽으로 밀려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인도계와 중동의 이슬람 세력의 이주민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에따라 미국을 가리켜 "지구촌 인종 전시장"이라고 지칭한다. 특히 세계적인 수도인 뉴욕의 맨하탄에서는 "한시간 동안 서 있으면 100가지 언어를 들을 수 있다"고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표적 다문화지역"으로 거론된다. 

이렇듯 미국의 다문화 역사는 로마나 당나라, 그리고 페르시아와 몽골과는 다른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들 나라들이 중심 종족이 나라와 세력을 확장하면서 "다문화 포용력"을 발휘해 나간 역사라면, 미국은 그 반대로 처음부터 다문화 국가로 출발했지만, 끊임없이 밀려드는 이주민과 다문화에 대해 반대하고 저지하다가 어쩔 수 없이 포용하는 역사가 반복되었다. 

1300만이나 달하는 인디언에 대한 학살과 추방이 그것이며, 흑인에  대한 지속적인 차별과 배척, 수용의 반복된 역사가 그것이다. 지금은 그 역사가 아시아계와 인도, 히스패닉계, 그리고 이슬람계로 넘어가고 있다.  

학살과 추방을 하다가 포용하고(인디언), 차별과 배척을 하다가 수용하고(흑인), 배제하고 저지하다가 용인하고(아시아계와 인도계), 저지하고 투쟁하다가 공존하는 과정(이슬람계)이 이어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국만의 독특한 다문화 국가 형태가 형성된 것이다. 그 첫번째가 이민자 사회통합중심의 "용광로 정책"이다. 즉, 출신이 어떠하든, 문화가 어떠하든 "성조기 아래 하나의 미국인"이라는 모토가 성립된 것이다. 두번째로 다양한 문화에 대한 수용성 보다는 "철저한 미국식 법치주의"를 전제로 한 "다문화 포용"의 정신이 지배하고 있다. 

2000년대 이전에는 유럽의 주류 백인문화를 중심에 두고, 그외 흑인, 인도계와 아시아, 이슬람계를 차등 계열화하는 모습도 존재했지만, 지금은 일부 백인 우월주의 세력을 제외하고는 출신지역에 따른 차등 계열화 문제는 줄어드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트럼프의 당선과 정책과정에서 보여지듯이 이민자들에 의한 국가임에도 이민자들에 대한 경계와 배척 분위기는 여전한 것으로 판단된다. 

즉, 미국의 성립과 발전과정, 그리고 지금 전세계 패권을 장악하고 승승장구하는 바탕에서 "다문화"를 생각하지 않으면 어떤 해석도 불가능하지만, "다문화 포용성"을 놓고 보면, "능동적인 다문화 포용성 보다는 매우 보수적이고 수동적인 다문화 포용성"을 보여왔다는 것이다. 

이것이 로마와 당나라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하기야,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끊임없이 밀려드는 이주민을 생각할 때, 미국의 보수적이고 수동적인 다문화 포용성을 유지하지 않았으면, 미국은 이미 수개의 나라로 나뉘어졌거나 "혼돈의 땅"이 되었을 것이다.

<계속...>

김성회 칼럼니스트는 레인보우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한국다문화센터 대표입니다. 김성회 대표는 연세대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장, 제2건국위원회 전문위원과 이인제 국회의원 보좌관, 반기문 팬클럽 '반딧불이' 회장,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 등을 지냈습니다. 김성회 대표는 일찍이 다문화 시민운동을  시작해 국내 최초로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하여 운영했으며 각종 다문화관련 행사와 방송출연, 전문패널 등의 활동을 통해 올바른 다문화 정책수립 및 문화 형성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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