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필자는 다문화 시민운동을 하면서 몇가지 특징적인 경우를 발견했다. 그 중 하나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로 구성된 레인보우 합창단을 운영하면서 동양인 혼혈은 거의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결혼이주여성과 한국 남자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눈으로 구분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백인과 한국인 사이의 다문화 자녀도 구분이 거의 안된다. 피부가 약간 하얗고, 머리색이 약간 갈색인 점을 제외하곤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흑인과 한국인 사이의 자녀나 백인과 흑인 사이의 자녀는 어느정도 구분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는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또, 이런 경우도 있었다. 레인보우 합창단에는 이라크 아버지와 어머니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있었다. 이 아이들이 한국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만났는데, 그 때는 분명히 구분이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자꾸 그 아이들을 보아서 그런지, 그냥 한국 아이들과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그 아이들의 외모도 여느 한국 아이들을 닮아가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비자 재발급 문제로 이라크에 1개월 넘게 다녀온 적이 있다. 그러고 나서 인천공항에서 만나니, 맨처음 그 아이들을 만날 때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그동안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한국 아이들과 닮아가고, 그래서 점차 외국인이라는 느낌이 적어졌는데, 한 달 동안 이라크를 다녀오고선 확연히 구분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아 사람의 모습이 이처럼 많이 변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왜 부부가 오래 살면 닮는다는 말이 생겨났는지 이해가 되었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생활하는 환경과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환경에 적응하고, 그 주변사람과 동일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처럼 환경에 뛰어난 적응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이고,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그 공동체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관념의 인식과정은 이와 정반대이다. 즉, 육체는 환경에 적응하고, 공동체에 적응하면서 동일한 모습으로 변해가는데, 관념은 끊임없이 이를 구분짓고 분리해서 분석하는 과정에 있다. 그래서 보다 본질적인 특징을 인식할 수 있고, 그 본질적인 특징을 재해석함으로서 서로의 차이를 명확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현실에 적응하는 육체는 동질화 과정을, 동질적인 것을 구분짓고 특징을 발견해내기 위한 인식과정은 현실과는 거꾸로의 과정을 걷는 것이다.  

사람들은 곧잘 타인과 자신을 비교한다. 그것은 타인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모든 사물의 인식 과정은 그와 동일하다. 즉, 타자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어느 생물이 생물임을 증명하는 것은 무생물과 비교해서 생명을 갖고 있는 존재로 생물을 의미한다. 또한 생물 중에서도 식물과 동물을 구분하는 것도 비슷하다. 식물의 특징과 다른 동물의 특징을 보고 구별한다. 

그렇다고 움직임만 가지고 동물이라고 할 수 없다. 살아 있고, 움직이는 것들 중에서는 곤충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동물을 특징짓기 위해 무생물과 생물, 식물과 동물, 그리고 곤충과 동물을 비교한다. 그렇게 해서 동물의 특징을 구별해내고 이를 통해 그것이 동물임을 인식하게 된다. 
이렇듯 타자와의 비교는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는 중요한 도구이며, 출발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종에 대한 구분 이전에 "민족"이라는 허구적 상징을 먼저 고안해냈다. 실제, 역사적으로 볼 때 인종에 대한 구분보다 민족에 대한 구분이 먼저 이뤄졌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즉, 인식의 전도과정이었던 것이다. 이런 인식의 전도과정은 인간 사회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창조물인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헤겔도 절대자의 자기 발현과정으로 인간과 세계를 보았는데, 이를 마르크스는 "헤겔의 전도"라고 통박했었다. 

어쨌든, 인류의 역사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실체가 불분명한 역사의식이며 허구적 개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민족의식을 기반으로 인종과 종교, 문화적 차이를 구분짓고 인식해 나갔다. 그러면서 몇가지 착각과 중요한 오류들을 반복했고, 결과적으로는 별다른 차이도 없는 것들을 절대화시키고 고착시켜 나갔다. 

인종에 대한 구분이 그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흑인, 백인, 황인으로 3종류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여기에 오스트레일리아와 태평양의 멜라네시아인, 등을 덧붙여 크게 4개 인종으로 구분한다. 더 세분화하면 백인과 흑인의 혼혈(물라토), 백인과 황인의 혼혈(메스티조), 그리고 흑인과 황인의 혼혈 등이 구분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엄청난 인식의 오류가 있다. 과연 현재 지구상의 인간을 "종"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 생물학자 린네가 구분한 종의 개념으로 인간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할까 백인종과 흑인종, 황인종이 다른 종이라면 그 혼혈은 이종교배에 의해 탄생한 종이 되는 셈이다. 그럼, 말과 당나귀의 이종교배에 의해 태어난 노새와 같다. 그런데, 그런 노새는 생식능력이 없다. 

즉, 종이 다른 경우 유전자 염색채 배열과 종류가 달라 이종교배가 이뤄져서 새끼가 태어난다하더라도 그 새끼는 후세를 만들어낼 생식능력이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 과연 혼혈이라고 하는 물라토, 메스티조 등은 후세능력이 없나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지구상의 인간은 하나의 종이라는 이야기다. 

다른 경우, 아종이라는 것이 있다. 즉 어떤 종이 지리적으로 물리적으로 오랜 기간(약 100백만년) 격리되어 존속할 때, 그 환경에 적응하면서 유전적 형질이 달라지는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 생식능력은 있지만, 혼혈된 후세가 몇 대가 지나가면 특징적인 유전적 형질이 바뀌어 원래대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개와 늑대가 그런 경우이다. 즉 개와 늑대는 생식능력이 있지만, 그 교배가 몇대에 걸쳐 지나가면 분리된 특징이 사라지고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경우는 어떤가 
인간이 가장 멀리 떨어진 경우 아프리카 흑인과 아메리카의 인디언 조차 완전히 격리된 것은 겨우 1만년을 넘지 않는다. 거기에 중간 중간 소통과 교류를 통해 유전자에 대한 공유가 끊임없이 이뤄졌다. 따라서 일부 동물들처럼 완전히 격리되어 전혀 다른 아종으로 변질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소통이 단절되었던 적이 없다. 따라서 흑인종, 백인종, 황인종을 "아종"이라고 구분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흑인종, 백인종, 황인종을 "종"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말한다. 차이도 없는 것을 절대적 차이가 있는 것인냥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된 과정에는 허구적인, 민족이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관념과 그 관념에 기반한 구분짓기가 개입된 것이다. 즉, 거짓말로 자신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타인과 다른 점, 타인의 문제점을 끄집어냄으로써 없는 차이도 절대적인 차이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거짓이 거짓을 낳고, 그 거짓에 기반한 관념이 편견으로 굳어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근대 서양을 중심으로 "인종주의" 또는 "인종차별주의"가 탄생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에서는 민족주의 = 인종주의 = 인종차별주의가 거의 비슷한 형태로 쓰이고 있다. 즉, 민족주의의 발흥과정과 인종주의, 인종차별주의의 발흥은 거의 동시적으로 이뤄졌기에 민족주의 = 인종차별주의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또, 그 폐혜를 경험했기에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심과 우려가 높은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4-5회에 걸쳐 인종, 종교, 문화...그리고 민족에 대해 연재하고자 한다.

<계속...> 

김성회 칼럼니스트는 레인보우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한국다문화센터 대표입니다. 김성회 대표는 연세대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장, 제2건국위원회 전문위원과 이인제 국회의원 보좌관, 반기문 팬클럽 '반딧불이' 회장,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 등을 지냈습니다. 김성회 대표는 일찍이 다문화 시민운동을  시작해 국내 최초로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하여 운영했으며 각종 다문화관련 행사와 방송출연, 전문패널 등의 활동을 통해 올바른 다문화 정책수립 및 문화 형성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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