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인종주의는 근대 서구에서 만들어진 철학이다. 근대 인종주의는 민족혈통주의, 제국주의와 어울어져 성장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지배, 차별을 정당화 하는 논리로 개발된 것이고, 그 지배와 착취, 차별에 대해 죄의식을 갖지 않도록 고안된 논리이다. 따라서, 지배자가 자신의 비인간적인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였던 것이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인간은 단 하나의 종이다.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으로 나뉠 수 없을 뿐 아니라, 유대인종 등이라는 말도 성립될 수 없는 단일종이 현생 인류다. 현생인류 외에 호모 사피엔스에는 여러 아종의 인간들이 존재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멸종하고,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만 존재하게 되었다. 

이들 인간의 아종들은 서로 교배를 하고 후세를 생산했다. 따라서 현생 인류의 유전자 안에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조금씩 남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유전자만 남겼을 뿐, 스스로 멸종하였고, 이제 지구상에는 오직 하나인 현생 인류만이 존재한다. 

그럼 인종주의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인류의 확산과정을 간단히 짚어보자. 
처음 현생 인류는 아프리카 북동부(지금의 이디오피아나 소말리아 수단 등지)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러다 6-7만년전 빙하기가 도래하며 먹을 것이 줄어들자 아프리카를 떠나 지구 각지로 흩어져 나갔다. 

처음 아프리카를 나온 인류는 따뜻한 바닷길을 따라 움직였다. 당시 빙하기로 지금보다 해수면이  150m정도 낮았으니, 인도 남부쪽과 인도차이나 반도는 물론, 보로네오, 인도네시아 여러 섬들, 그리고 지금의 호주대륙까지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프리카를 처음 떠난 인류는 기후 조건이 비슷한 이들 지역으로 확장되어 나갔다. 그래서 지금도 인도 남부의 드라비다인(흑인), 남태평양의 멜레네시아인들이 아프리카 흑인들과 가장 유사한 얼굴과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다른 한편 인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 오면서 이들처럼 남쪽 바닷길이 아니라 북쪽 육지의 길을 택한 인류가 있었다. 이들은 육지로 연결된 중국과 한반도, 그리고 일본으로 확산되었고, 최종적으로는 만주와 연해주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들은 기후에 적응하며 아프리카 흑인과는 다른 형태의 갈색인(말레이인) 계통의 황인종으로 변화되어 갔다.  

이들과 다르게 터키와 중앙아시아 흑해 연안의 북쪽으로 진출한 인류가 있었다. 이들은 일조량의 변화에 따라 자외선을 차단하던 멜라닌 색소를 벗고 백인으로 변화되었다. 털도 곱슬머리를 벗고 직모로 바뀌고, 차고 습한 기후에 맞게 털도 많이 나게 되었다. 그리고 지중해를 끼고 있는 남유럽과 중부유럽, 서북부 유럽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마지막으로 극성을 부리던 빙하기가 점차 후퇴하자, 중앙아시아 천산산맥과 알타이 산맥을 뚫고 티벳, 몽골 고원으로 진출한 인류가 있었다. 그들은 추운 빙하지대를 넘어오며 신체적 변화를 겪어야 했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털도 많이 없어지고, 얼굴도 이목구비가 뚜렷하기보다는 둥글넙적해지고, 코와 같이 돌출된 부위는 되도록 작아졌다. 

이들은 만주와 중국 북부, 한반도와 일본, 베트남까지 남하해 기존에 남쪽에서 올라왔던 고아시아인과 충돌하고 결합했다. 그래서 북경과 한반도, 일본에서는 남성 유전자는 북방 몽골로이드 계통의 유전자형질을 간직하고 있고, 여성은 남쪽에서 올라온 남방 아시아계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 북방 몽골로이드는 또 한번의 극단적인 추위를 넘어 알레스카 베링해를 거쳐 아메리카로 진출한다. 그러다보니 이누이트족이나 인디언은 아예 턱수염이 나지 않을 정도로 털이 없어졌다.  

이렇게 6-7만년 전부터 아프리카를 떠난 현생 인류는 3만년 정도 되어서 남극 대륙을 제외한 전 지구상에 흩어져 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정착한 곳의 기후 조건에 맞게 신체를 변화시켰다. 태양빛이 많고 더운 지방에서는 흑인의 모습을 갖추고, 습하고 태양빛이 약한 곳에서는 힌 피부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극단적 추위을 돌파한 몽골리안으로 그에 맞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그런데, 인류가 흩어지기 시작한 6-7만년이라는 시간은 인간이 또다른 아종으로 변화되기엔 지극히 짧은 시간이었다. 보통 생물학적으로 보아 완전 분리된 종에서 새로운 아종이 생겨나기까진 약 100만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기간동안에 서로간 교류가 없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최대 6-7만년, 그것도 끊임없이 교류하는 현생인류에서 아종이 생겨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지구에 살고 있는 현생인류는 오직 단하나의 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15-6세기에 들어와 신대륙이 발견된 후 유럽에서는 식민지 개척의 붐이 일어났다. 식민지 개척을 위해선 중앙 집중적인 권력이 필요하고, 강력한 국가의 무장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절대왕정이고 국민, 또는 민족국가였다. 그 민족국가 절대왕정에서 국민들의 통합이데올로기가 필요했다. 그것이 내용적으로는 민족주의이고, 밖으로는 제국주의였다. 

즉, 대외확장을 하려는 민족국가의 내부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였고, 외피는 제국주의였다. 그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였다. 그래서 17-8세기는 서구 유럽에서 민족주의의 일대 발흥기라고 볼 수 있다. 민족주의를 통해 애국심과 국민통합도 달성하려했다. 그리고 타인과 구별하기 위한 배타적 우월의식을 갖추어야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인종주의였다.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그리스 로마에서 인종주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집트의 경우 흑인도 파라오가 될 수 있었고, 백인도 노예생활을 했다. 그리스에서는 자신을 제외한 지역의 주민들에 대해 야만인이라는 배타의식이 있었지만, 그렇게 심한 것은 아니었다. 흔히 고대 중국에서 주변 종족들을 오랑캐로 불렀던 것과 비슷하다. 

그것이 중세에 들어오면서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배척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즉,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민족이라는 종교적 증오심의 발로였다. 중세를 휩쓴 마녀사냥의 주요 대상이 집시와 유대인이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소수 집단이면서 거지처럼 떠돌아다니는 "보기 싫은 집단"에 대해 종교적 증오심이 결합된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인종주의는 식민지 개척을 하면서 탄생했다. 즉, 식민지 개척을 위해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또 식민지배와 노예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종주의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 인종주의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들이 이뤄졌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다인종설"과 "인종퇴화설"이다. 
"다 인종설"은 말그대로 인류는 처음부터 다른 종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즉, 열등 인종과 고등 인종 등 다양한 인종으로 만들어졌고, 따라서 고등인종(백인종)이 열등 인종(흑인종, 또는 인디언)을 지배하고 부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이론이었다. 하지만, 이 다인종설은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낫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또한 혼혈을 통한 후세 생식의 과학적 관점이 등장한 뒤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졌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인종 퇴화설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 저주받은 햄족 등이 점차 퇴화되어 열등하게 변모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윈의 종의 기원과 맞물리고, 스펜서의 사회학 이론과 맞물려 더욱 고도화 되었다. 즉, 처음에 시작된 것은 하나였지만 자연환경과의 투쟁, 계급투쟁 등으로 경쟁력이 부족한 인류들은 점차 퇴화되어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종주의는 결국 열등 인종과의 혼혈에 대해 배척하게 되고, 순수혈통을 찾는 것까지 비화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게르만족이 가장 순수한 혈통을 지녔고,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는 유대인, 집시 등은 순수한 혈통을 훼손하는 집단으로 간주되어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집시 학살, 장애인 학살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 자행된 것이다. 

지금은 인종주의가 비도덕적이고 심각한 병리현상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20세기 초반 이전까지만해도 멀쩡한 사람도 인종적 편견을 갖고 있었고, 심지어 오늘날 존경받는 저명한 인물들도 말도 안되는 인종주의에 심취해있던 경우가 허다하다.  인종퇴화론을 주장한 블루멘하흐를 비롯해 존 로크, 디드로, 달랑베르, 흄, 칸트, 헤겔까지 합리주의 경험주의 철학자들을 망라해 인종주의적 편견에 빠져있었던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심지어 앞서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15"편에 거론한 노예해방의 선구자 링컨까지.. "흑인은 열등한 인종이기 때문에 그들이 백인과 같은 직업을 갖고, 같이 생활하며, 결혼하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절대 생각할 수 없다"고 하며, 아메리카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태평양이나 대서양 연안의 섬에 흑인들이 집단 거주하는 식민지를 개척하고자 했었다. 

그런 인종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 편견에 대해 지금은 소리 높여 주장하는 사람들이 없지만, 여전히 제도적인 잔재로 남아있을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편견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독일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혈통주의 국적법이 바로 그것이며, 배타적 민족주의 경향과 타 민족, 타 인종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차별의식이 그것이다. 

특히 제국주의가 후퇴하고, 민족자결주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탄생한 신흥 국가에서도 제국주의자들이 남기고 간 식민지 잔재로 배타적 민족주의와 인종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그곳에서 인종주의는 때로는 자학주의(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다는 말 등)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때로는 극단적 테러 형태로 나타난다. 또한 자기들보다 경제력이 부족한 국가의 국민들을 멸시하거나, 아무 이유없는 적개심(트와이스 사나가 일본연호 이야기를 했다고 증오심을 드러내는 경우)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한국은 물론이고 전세계에서 인종적 편견에 대한 국민교육이 제대로 활성화되고 있지 못하다. 그것은 서구 열강이 가해자 역할을 한 이상,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감추고 싶어서일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에서는 원주민 학살에 대해 국가가 사죄를 했지만, 정작 가장 잔혹했던 미국정부는 아직도 인디언 학살에 대해 사죄하고 있지 않다. 

또 다른 하나는 인종적 편견에 대한 감수성이 취약한 국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도 일본을 증오만 했지, 또 다른 한편에서는 동남아나 아프리카 출신에 대한 멸시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반면 서양 백인에 대해선 말도 안되는 열등의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인종적 편견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다문화와 글로벌, 세계시민을 외치기 이전에 교육과정에서부터 인종주의와 인종적 편견, 그리고 배타적 민족주의의 폐혜를 차근차근 짚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것이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 소양교육이며, 다문화와 글로벌 사회로 나아가는 기초이다.  

<계속...>

김성회 칼럼니스트는 레인보우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한국다문화센터 대표입니다. 김성회 대표는 연세대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장, 제2건국위원회 전문위원과 이인제 국회의원 보좌관, 반기문 팬클럽 '반딧불이' 회장,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 등을 지냈습니다. 김성회 대표는 일찍이 다문화 시민운동을  시작해 국내 최초로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하여 운영했으며 각종 다문화관련 행사와 방송출연, 전문패널 등의 활동을 통해 올바른 다문화 정책수립 및 문화 형성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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