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26] 다문화와 종교 선택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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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의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26] 다문화와 종교 선택의 자유
  • (정리)김미연 기자
  • 승인 2019.06.0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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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한 사회의 다문화 감수성, 수용성을 평가하는 척도에서 중요한 요소가 3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종과 국적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는가 두번째는 종교 선택의 자유가 존재하는가 세번째는 문화의 차이에 대한 멸시와 차별이 존재하는가 라는 것이다. 그 외에도 언어의 문제라든지 기타 등등이 있지만, 언어에 대한 차별 등이 현저하지 않기 때문에 평가의 척도에서는 그다지 고려되고 있지 못하다. 

어쨌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다문화에 대해 인종(혈통)에 집중되어 있었고, 국적에 따른 경제력 차이, 종교의 차이에 대해 그다지 주목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문화 문제를 이야기할 때도 인종에 대한 차별(인종의 차별에는 국적에 따른 차별도 포함된다)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평가하였다. 

그런데, 인종의 차별과 함께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이 바로 종교에 따른 차별과 박해가 있는가 아니면 종교 선택의 자유가 있는가의 문제이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 선택의 자유에 대해 긍정하고 있다.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며 터부시하는 공산주의를 빼놓고, 또 일부 극단적 이슬람 국가를 빼놓고 종교 선택의 자유는 인류 보편적 인권의 하나로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교 선택의 권리가 획득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처음 종교선택의 자유가 선언된 것은 1649년 영국의 국민협정이며, 1689 권리장전에서 였다. 그리고 헌법에 명문화된 것은 미국 헌법에서였다. 미국은 독립 전쟁 후 헌법을 기초하면서 제퍼슨 등이 종교선택의 자유를 명문화하였다. 이는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몽골 제국의 징키즈칸이 끼친 영향이라는 것을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13, 칭기즈칸 편에서 다뤘다. 

그 전의 인류 역사에서는 종교 선택의 자유가 존재했던 곳도 있고, 그렇지 않았던 곳도 있다. 예를 들면 키루스 2세의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각 종족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바빌론에서 풀려나 고향(가나안)으로 돌아가도록 했고, 유대교를 신봉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했다.
 
또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과 이후 전개된 헬레니즘 시대에서도 종교 선택의 자유는 보장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동방 원정을 한 후 동서 문화의 융합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래서 헬레니즘 시대는 인류역사에서 가장 다문화가 꽃핀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이때 각 개인은 종교 선택의 자유를 누렸을 뿐 아니라, 결혼 및 거주 이전의 자유를 만끽하였다. 

헬레니즘 시대를 계승한 로마에서도 종교 선택의 자유는 보장되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거론되지만, 그것은 좀 다르게 평가될 문제이다. 즉, 로마의 평화시대에 시작된 그리스도교는 로마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어갔다. 하지만, 다양한 종교와 다신교를 바탕으로 한 로마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되 국가의 최고 권능에 도전하는 것까지는 허용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하나님에게 최고 권능을 부여하고, 그 안에서의 평화를 추구하는 초기 그리스도교리와 충돌하게 되었고, 그 시작이 로마의 대화재 때 일어났다. 서기 64년 황제 네로가 로마의 대화재를 그리스도교의 소행으로 보고 박해를 한 것이다. 그후에도 몇 번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진행되다, 313년 밀라노칙령이 발표되면서 그리스도교도들에 대한 박해가 중지되었다. 

밀라노칙령은 로마의 공동황제였던 콘스탄티우스 1세와 리키니우스가 공동으로 발표한 칙령으로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에 대해 자유를 부여한 칙령이다. 한마디로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에 대해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칙령으로 발표한 것이다. 여기에 그리스도교에 대해선 특별한 규정을 두어 몰수된 재산을 반환하고 제례의식을 장려할 것이 명문화되었다. 

밀라노 칙령이 발표된 이후에도 일부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탄압하기도 했지만, 그 흐름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이르러 그리스도 외에 이교의 신을 숭배하는 것을 전면 금지시킴으로서 로마의 국교가 되었다. 즉, 초기 그리스도교는 로마의 국가 권능과 충돌하면서 박해를 받았으나, 이후에는 그리스도교만 인정되면서 타 종교 선택의 자유가 말살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종교 선택의 자유가 말살된 이후 1647-1649년 영국의 국민협정과 1689 영국의 권리장전에서 선언되고, 1776 버지니아 선언과 1789년 미국 헌법이 채택되면서 다시 종교 선택의 자유가 본격화 된 것이다. 
이렇게 종교 선택의 자유가 부활되기까지 서양에서는 끊임없는 이단과의 투쟁, 그리고 다양한 종교적 박해와 개혁운동이 뒤따랐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마녀사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질적 유대교인들에 대한 탄압이었고, 다른 하나가 새롭게 대두된 프로테스탄티즘과의 혈투였고, 영국에서 진행된 청교도 박해였다. 

이렇게 보장된 종교 선택의 자유권은 프랑스 혁명을 거치며 보편적 인권의 하나로 간주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후 등장한 맑시즘과 공산주의는 종교에 대해 "민중의 아편"으로 규정하며 백안시 하였다. 그리하여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대외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였지만, 실제적으로는 종교 선택의 자유를 억압해 왔다. 

하지만, 인류 보편적 흐름을 거역할 수 없었기에 소련 등 사회주의권은 몰락했고, 종교 선택의 자유는 어느정도 보장되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이슬람교를 국교로 채택하고 있는 이슬람권에서도 일부 극단적 이슬람국가를 제외하면 부분적으로 종교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중동의 국가들에서도 소수 종족의 종교적 자유에 대해 차별적이기는 하지만 원천 봉쇄하고 있진 못하다. 

이와 달리 동양권은 어떠했나 

동양권에서 종교 선택의 자유에 대한 박해는 훨씬 덜했다. 물론 초기 종교가 전래되면서 박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반도로 불교가 전래되어온 과정에서 "이차돈의 순교"라든지 하는 억압적 태도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불교는 이내 3국에서 공인되고 국교로 채택되어 계승되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역사에서는 현대 문화대혁명 기간을 제외하면 종교가 국가에 의해 금지되거나 탄압당했던 적이 별로 없다. 

다만, 유교가 완전한 생활윤리로 자리잡은 조선에서는 불교 등 민간신앙에 대해 억압하였으며, 조선 후기에 전래된 천주교에 대해 심각한 탄압이 진행되었다. 이것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타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유일신 사상으로 개인의 종교선택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여겼을뿐 아니라, 국가의 권능에 도전하는 종교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이렇듯 종교 선택의 자유는 페르시아와 헬레니즘시대, 그리고 초기 로마시대에 완전한 자유를 누렸으나, 특정 종교가 국교가 되거나 종교간 전쟁으로 또다른 종교 선택의 자유는 억압되어 왔다. 그후 영국의 권리장전과 미국의 헌법에서 최초로 개인의 종교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고, 프랑스 대혁명을 겪으며 점차 인류 본편적 인권의 하나로 인식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종교 선택의 자유는 인류역사에서 해결되지 못한 미완의 숙제이다. 그것은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예를 들면, 식민지 개척시대에 서양은 선교사를 앞세워, 그들에 대한 탄압을 빌미로 식민지를 개척했고, 원주민들에 대한 학살을 통해 그들의 종교를 억압했다. 그러면서 카톨릭과 기독교를 강요해나갔다. 이러한 종교 선택에 대한 강요행위는 2차대전을 끝으로 식민지국가들이 독립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중동의 이슬람 국가에서 종교 선택의 자유는 억압당하고 있으며, 특정 종교를 제외하곤 용납되지 않는 국가들이 존재한다. 또 자신의 종교를 신봉하며, 타종교를 백안시하는 태도나 타 종교에 대한 테러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다문화 시대인 현대에 인종(출신국)에 따른 차별과 함께, 타 종교에 대해 존중하지 않는 행위 역시 인종차별에 준하는 행위로 처벌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두가지의 원칙이 필요하다. 즉 자신의 종교를 선택할 자유와 이를 선교할 자유이다. 여기서 종교를 선택할 자유는 타인의 자유와 충돌하지 않지만, 자신의 종교를 선교할 자유와는 충돌하게 된다. 여기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법률을 통해 "적극적 자유(선교할 자유)"가 "소극적 자유(선택할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자신의 종교를 선교할 자유는 있지만, 상대의 선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소위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라고 지칭하며 행하는 각종 종교에 대한 공격행위"를 포함하는 것이다. 즉, 이단이거나 사이비 종교 일지라도, 그 종교적 행위가 국법을 위반하거나 심각한 사회안정을 훼손하지 않는 이상, 명시적으로 금지하거나, 언론 등을 통해 그들의 선택에 대해 공격하는 행동은 종교의 자유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계속...>

김성회 칼럼니스트는 레인보우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한국다문화센터 대표입니다. 김성회 대표는 연세대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장, 제2건국위원회 전문위원과 이인제 국회의원 보좌관, 반기문 팬클럽 '반딧불이' 회장,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 등을 지냈습니다. 김성회 대표는 일찍이 다문화 시민운동을  시작해 국내 최초로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하여 운영했으며 각종 다문화관련 행사와 방송출연, 전문패널 등의 활동을 통해 올바른 다문화 정책수립 및 문화 형성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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