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현재 다문화 문제의 전문가연 하는 사람들은 "다문화"에 대해 복지적 차원을 생각하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복지 전문가랑 무엇이 다른지, 또 TV프로그램 미수다나 비정상회담 수준을 가지고 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다. 이것은 워낙 우리나라가 다문화 문제에서 초보적이고 원시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문화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문화 인류학과 연관되어 있고, 정치철학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더구나 종교가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때, 종교문제에 대해서도 어느정도는 지식을 갖춰야 한다. 이렇듯 다문화 문제는 복지와 문화라는 피상적 수순의 지식이 아니라, 문화인류학과 철학, 그리고 종교와 정치철학 나아가 사회 산업문제까지 깊숙히 얽혀져 있다. 이것을 먼나라 이웃나라 수준의 지식과 사회 복지적 관점만 가지고 전문가 행세를 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중 다문화 문제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관통하는 정치사상은 바로 "민족주의"와 "세계 시민주의"이다.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의 철학과 흐름에 대한 지식이 없이 다문화에 대한 전문가라는 것은 수박 겉핥기 수준의 전문가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다문화 문제는 곧 국경의 문제이고, 국경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다문화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 국경의 문제를 다루는 정치사상이 바로 "민족주의"와 "세계 시민주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23회째는 지금까지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의 중간 결산을 하는 셈치고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1. 민족주의

앞서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18(천의 얼굴을 가진 민족주의) 편에서 민족주의의 탄생배경과 성장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즉, 민족주의(nationalism)는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국민국가가 생겨나면서 생겨났다. 다시말해 왕정이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도 있듯이 개인기업과 같은 개인국가였다면, 국민국가는 국민이라는 주주가 모여 만든 "주식회사"와 같다. 

십자군 전쟁 등으로 교황의 권위가 무너지고, 왕들이 자신의 권력을 경쟁적으로 강화하면서 절대왕정이 수립되었다. 하지만,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절대왕정이 갖고 있는 권력의 힘만 가지고는 상대를 쓰러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왕정은 빚에 허덕이게 되고, 그로 인해 시민혁명이 촉발되었다. 그리고는 국민들이 참가하고, 국민들이 애국주의로 무장하면서 국가는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이것이 영국에서 청교도 혁명 이후 애국주의가 발양된 경우이고, 이어 벌어진 식민지 쟁탈 국제전인 7년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한 요인이기도 하다. 그후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국민국가적 모습을 드러냈고, 이어 후발 자본주의국인 독일도 위로부터의 개혁을 통해 국민국가적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국민국가에서 국민들의 "애국심"을 동원하기 위해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민족주의는 국민의 애국심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또한 국가간 경쟁체제라는 것을 전제로하고 있다. 즉 국가간 경쟁체제에서 승리하기 위해 국민국가가 만들어졌고, 여기에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민족주의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주의는 국가간 경쟁체제, 식민지 쟁탈전에서 태어난 것이고, 전개된 것이다. 그리고 제국주의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이러한 국가간 경쟁체제와 타국에 대한 승리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는 식민지 민족자결주의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1900년대 초 미국의 윌슨에 의해 주창된 피악박 식민지를 위한 "민족자결주의 선언"이후, 식민지에서는 민족해방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우리나라의 3.1독립운동도 그렇고, 중국의 5.4운동도 그렇다. 또한 인도와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사회주의 정신세계에도 "민족주의 열풍"은 대단했다. 

결국 민족주의 열풍으로 전세계는 1차,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최대의 참상을 겪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또한 수많은 독립전쟁이 진행되었고, 식민지가 독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민족주의는 국민들의 애국심을 동원할 수 있는 최대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있다. 스포츠 경기뿐 아니라, 경제전쟁까지 국가간 경쟁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는 아직도 식을 줄 모른다. 

이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주의는 이웃사촌이다. 즉, 타국과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식민지가 필요하고,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어야 한다. 따라서 같은 인류로서 서로 지배하고 지배받는 것은 세계 시민주의로는 불가능하고, 오직 자국 이익우선이라는 민족주의로 무장할 때 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면 자기와 다른 인종이나 국가 출신은 차별하고 지배해도 된다는 인종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심지어 르완다의 경우 같은 국가 안에서 종족간 유혈 내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100만명 이상이 학살당한 후투족과 투치족의 전쟁, 또 수단과 나이지리아 등지에서는 종교를 외피로 쓴 내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금 전개되는 미중 패권전쟁도 결국엔 애국주의적 바탕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트럼프, 시진핑, 푸틴, 아베까지...현재 전세계를 이끄는 정치지도자들이 자신의 입지기반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애국주의"인 것이다. 

2. 세계 시민주의 

민족주의와 반대되는 이념이 세계 시민주의이다. 세계시민주의는 말그대로 자신을 국가적 틀안에 갇힌 사람이 아니라 "세계 시민"으로 생각하는 사상이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사상은 알렉산더가 동방원정을 떠나면서 주창한 것이고, 따라서 헬레니즘 시대에 발전된 사상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고 스토아 학파였다. 근대에 들어와선 칸트가 세계시민주의의 입장에 서 있다. 

세계 시민으로서의 인류.. 이것은 인류는 동등하고 평등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스토아 학파는 이성적인 인류는 피부와 인종에 상관없이 평등하다고 보았다. 당시의 신은 그리스의 제우스 등의 신이었기에, 그 신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동등한 존재들로 생각한 것이다. 세계화된 종교도 마찬가지다. 즉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누구나 동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렉산더는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들의 혼인을 적극 권장했고, 문화적 융합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디오게네스도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한 전 지역을 떠돌면서 신앞에 동등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역설했고, 그렇기 때문에 국가적 입장보다 개인의 입장을 중시하라고 설파했다. 스토아 학파도 "이성적인 개인"에 주목했고, 그 이성적인 개인이 보다 많은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이후 근대에 들어와 칸트는 보다 적극적으로 세계시민주의를 설파하며, "세계 시민국가 건설" 구상을 내놓았다. 그에 의하면, 세계시민국가는 국가를 떠나 세계적 차원에서 하나의 국가(군주정이 아니라, 공화정)를 구성하는 것이 이상적이긴 하나, 현실적으로 볼 때 국가간 연합과 국제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세계를 구상했다. 1차 대전후 구성된 국제연맹과 2차 대전후 만들어진 국제연합(UN)이 그것이다. 

이와는 결이 조금 다르지만, 마르크스 등에 의해 주창된 "국제주의"가 있다. 이는 브로조아지가 중심이 된 국가에 대해 프롤레타리아 입장에서는 하등 고려할 필요가 없고, 프롤레타리아는 전세계적으로 동일하므로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고 외친 것이다. 이런 것을 가리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프롤레타리아만을 놓고 상정하기 때문에, 전 인류가 동등하고, 전세계적 공공선을 위해 노력해야하며, 그럴때 영구적 평화가 찾아온다고 역설한 "세계시민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할 것이다. 

하지만, 칸트가 이야기한 영구적 평화가 과연 가능할까에 대해선 의구심이 많다. 그가 말한대로 동등한 입장에서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국제연맹"을 만들었더니, 각국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2차 대전후 국제연합은 현실적인 강대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제도를 설치한 것이다. 다시말해 단순히 모이는데 그치지 않고, 힘의 균형과 현실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3. 민족주의, 세계시민주의, 그리고 다문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민족주의(국민주의, 또는 애국주의)는 한 국가의 발전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사상이다.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진 국민교육헌장에는 "우리는 민족 중흥의 사명을 띄고 이땅에 태어났다"는 표현이 있다. 이렇듯 민족주의는 개인보다 민족(국가)의 발전에 최상의 가치를 두는 사상이며,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희생과 국가주의로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상이다.  또한,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타국과 타문화에 대한 침해와 침략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였다. 그래서 제국주의에서는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민족주의(애국주의)를 내세웠다. 

반면, 세계시민주의는 "폴리스에서의 나" 또는 "국가 안에서의 나"를 생각하기 보다는 "평등한 인류와 세계시민으로서의 나"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인류애적인 휴머니즘을 제외하곤 보다 자기 개인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그런 측면에서 공동체적인 사명보다는 개인의 행복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사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시민주의가 만연했던 헬레니즘 시대에는 개인의 행복에 관심이 높았고, 예술분야도 관능적이거나 역동적인 예술품들이 많았다. 

그런데, 민족주의가 극단화되면서 인종주의와 파시즘(히틀러의 나찌즘이 대표적이다)으로 치닫게 되고, 세계시민주의가 극단화되면 "획일화된 세계시민"이라는 것을 강요하게 된다. 즉, 예전에 마주잡이로 썼던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용어가 그것이다. 글로벌 스탠다드는 각각의 고유한 문화와 관습을 무시하고, 획일화된 세계화를 추구하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런 글로벌 스탠다드의 입장에서 "약소국"의 문화와 관습은 무시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칸트도 세계시민주의와 영구적 평화를 원하긴 했지만, "획일화된 세계시민"에 대해 우려를 했다. 그래서 그가 중요시 여긴 것은 "지역 공동체"였다. 즉, 지역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를 발양시키고, 이를 근거로 세계시민과 교류하고 연대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다시말해 칸트는 세계시민주의가 가져올 "획일화"에 대한 해악을 방지하는 수단으로 "지역 공동체의 문화발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렇다면, 칸트말대로 지역 공동체의 문화를 중시하면 되는 것인가 국가의 존재는 무시되거나, 계속해서 약화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민족(국민)국가는 전쟁과 경쟁체제만 유발할 뿐, 더이상 필요없는 존재인가 그럴 때, 세계국가 안에서 무정부적 상태 등에 대해선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민족주의를 지양하고, 세계 시민주의를 지향하되, 다문화 문제를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가 핵심 논점으로 떠오르게 된다. 즉, 전쟁의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에 대해 충분히 경계하면서 세계시민주의로 나아가야하지만, 고유의 문화가 어울어지고,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문화 전문가라면,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뿐 아니라, 문화와 평화에 대한 비전까지 갖추지 않고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계속...>

PS :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 관련 동양의 사상

1. 민족주의와 유사한 동양의 사상은 유가의 "별애사상"이다. 즉 별애사상은 혈연적인 가족부터 사랑하고, 동네 어른 공경하고, 점차 인류애로 발전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국가의 민족주의 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즉, 자기 나라부터 사랑하고 그 다음 인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2. 그 반면 세계시민주의와 비슷한 것은 묵자의 겸애사상이다. 즉,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면 다툴일이 없고, 그러면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다시말해 가족, 지역, 국가, 세계...이런 틀보다는 자기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넓게 사랑하면 자신에게 이롭다는 생각이다. 

김성회 칼럼니스트는 레인보우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한국다문화센터 대표입니다. 김성회 대표는 연세대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장, 제2건국위원회 전문위원과 이인제 국회의원 보좌관, 반기문 팬클럽 '반딧불이' 회장,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 등을 지냈습니다. 김성회 대표는 일찍이 다문화 시민운동을  시작해 국내 최초로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하여 운영했으며 각종 다문화관련 행사와 방송출연, 전문패널 등의 활동을 통해 올바른 다문화 정책수립 및 문화 형성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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