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앞서 한국의 다종교 다문화 융합사회를 형성하게 된 근거로 "정교분리의 전통"과 "다층적 종교신앙의 세계관"을 이야기했다. 그 중에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다층적 종교세계관이다. 그것은 한국민의 종교 세계관에는 가장 밑바닥에 무속신앙이 있고, 여기에 새로 들어온 외래종교들이 얹혀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종교들이 큰 충돌없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에는 독특한 종교 세계관이 있다. 한국은 신명에 토대를 둔 무속신앙이고, 중국은 도교라는 선의 세계관이고, 일본은 신도라는 토속신앙이다. 

중국에서는 도교를 기반으로 하는 선의 세계가 불교와 연을 맺으며 독특한 세계관을 형성했고, 또 동방기독교도 중국에 정착하면서 도교의 사찰과 접맥되며 당나라 황실의 종교가 되었다. 또 시대별로 독특한 기공체조 형태를 통해 교세가 유지되고 있다. 지금 맹위를 떨치고 있는 "파룬공"이 그것이다. 

중국에 도교의 전통이 있다면, 한국에는 신명에 바탕을 둔 무속신앙이 있다. 무(巫)..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나무, 그리고 사람이 존재하는 무속신앙이 그것이다. 
여기서 중심되는 정신세계는 바로 "신명나는(신나는)" 것이고... 이 샤머니즘의 정령이 한국인의 독특한 정신세계관에 있는 것이다. 신명이 날 때 하늘과 땅은 연결되고, 그 과정에서 만물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의 무속신앙은 매우 다양하다. 중국 도교의 영향을 받은 "선인(신선)"도 그렇고, 각종 불교의 컨셉도 무속신앙에 들어와 있다. 심지어 무속신앙을 미신이라고 공격했던 유교(유학)조차 주역 등 점술형태로 무속신앙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조만간 기독교의 예수도, 성모 마리아도, 아니 천주교와 기독교의 성인들도 관우나 최영장군처럼 무속신앙의 한 갈래로 들어오게 될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한국 종교 세계관의 밑바닥 뿌리는 "신명"에 바탕을 둔 무속신앙이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는 사람들도, 종교를 갖고 있다는 사람들도...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신명의 세계관"이다. 
한국의 무속신앙은 외래종교들이 미신으로 공격해도, 그것마저 포용한다. 예를 들어 "산신령"도, "관우상과 최영장군"도, "각종 보살과 부처님"도 무속신앙의 영적 영감을 주는 대상이다. 여기에 "예수"도, "마리아"도 포함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또 다른 한편으로 "신명"에 바탕을 둔 한국의 무속신앙은 외래종교의 제례 의식에 투영되어 있다. 무속신앙과 한몸이 되어 버린 도교(신선도)는 말할 것도 없고, 불교 도량인 사찰에도 고정화된 "삼신각"뿐 아니라, 각종 위령제는 "무당의 굿"과 비슷하다. 
심지어 무속을 "미신"이라며 최고의 공격을 퍼부었던 유교조차 주역과 점술 형태로 무속신앙을 차용하고 있다.  천주교와 기독교는 안그런가 이미 대중화된 기독교의 부흥회, 그리고 통성기도는 무당의 굿판과 아주 흡사하다.

이렇듯 한국에 들어온 외래종교는 하나같이 무속신앙의 신명을 차용하거나, 무속신앙 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산신령도, 보살도, 관우나 최영장군으로 변신하거나, 주역과 주술 형태로 들어가 있는것이다. 거꾸로 무속신앙은 각종 외래 종교의 제례의식으로 차용되고 있다. 무당 굿판이 위령제나 부흥회나 통성기도로 변신해 기성종교의 틀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지금 식자층이나 외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무속신앙을 "미신"으로 공격하고 있다. 그 역사는 불교가 들어왔을 때부터 시작되었고, 합리성을 추구하는 성리학이 융성한 조선 초기부터 지금까지 600년 넘게 지속되어 왔다. 특히 근대 과학과 합리성에 기반을 둔 철학이 융성하면서, 유일신 사상에 기반하여 우상숭배를 배격하는 천주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민중을 혹세무민하는 미신"으로서의 "무속신앙"에 대한 공격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무속신앙의 뿌리는 여전히 강력하다. 한국에서 무속신앙 관련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무당)이 30만이나 된다. 즉, 다른 종교로 본다면 종교업무를 직업으로 하는 성직자가 30만이 된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최대 종교라는 불교도 승려들이 겨우 1만명 정도다. 그럼 기독교의 목사나 선교사는 천주교의 신부나 수녀는 아마 30만의 숫자는 그 어떤 종교도 따라올 수 없이 숫자이다. 

따라서 무속신앙을 "미신"이라는 식자층도, 정치인들도 은근히 무속신앙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사주팔자, 역술, 관상 등으로 상대를 깍아 내리려 하거나 자신을 높이려고 한다. 또한 기성 교회나 사찰, 성당에서도 은근히 무속신앙에 빗대 설교를 하거나 제례의식을 행한다. 한마디로 겉으로는 합리성과 과학을 빌려 공격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무속신앙을 이용하고 있다. 

이렇듯 한국인은 "신명"이라는 무속신앙에 뿌리를 둔 다층적, 다원적 종교관을 형성하고 있다. 그것이 "종교 선택의 자유"라는 근대 자유주의 정치사상과 결합되어 전세계에서 보기 힘든 "다종교 다문화 융합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다종교, 다문화의 평화적 공존과 공생이라는 다문화 선진국의 모델이다.  


또 하나 한국의 독특한 종교 세계관을 분석할 때 고려해두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종교에 대한 정치의 영향력이다. 다른 나라처럼 종교가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정치적 힘이 종교확장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불교가 정치세력과 결합한 후 국교가 되어 확장되었던 과정, 유학과 성리학이 국정철학과 국시가 된 후 확장된 과정, 그리고 해방후 그리스도교 계통(천주교, 기독교)이 흥성을 하는 과정은 정치적 영향력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즉, 정치와 종교 분리의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정치적 영향력에 따라 종교의 흥망성쇠가 결정되었던 셈이다. 따라서 한국의 종교는 단순히 종교적 의미로만 평가될 수 없다. 정치적 영향력과 이해관계라는 세속적 가치가 종교의 흥망성쇠에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종교는 종교의 내면적 가치, 정신적 가치보다는 대단히 세속적인 가치속에 평가되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매번 되풀이 되는 것은 외래종교가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흥할 때, "무속"에 대한 공격이 진행된다. 불교가 국교가 되었을 때도 그렇고, 합리성으로 무장한 유교(성리학)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또한 유일신앙에 기반한 그리스도교 계통은 "미신"과 함께 "우상숭배"를 덧붙여 공격하고 있다. 

이렇게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할 때는 민속신앙과 결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잘 나가기 때문에 민속신앙과 결부될 필요가 없다. 문제는 그 정치적 영향력이 서서히 약화되고, 열악한 환경에 놓이게 될 때이다. 이때부터 외래종교는 기존의 민속신앙(무속신앙)과 접목하기 시작한다. 조선시대 불교가 대표적인 모습이다. 

조선시대 "억불숭유정책" 속에 승려와 불교에 대한 탄압이 진행될 때, 한국의 불교는 산속으로 들어갔고, 무속신앙과 결부가 되어 민중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래서 무속신앙+불교, 민중+불교화 되었다. 이제는 불교와 무속신앙에서 무엇이 다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생겨났다. 각종 점집, 무당집에 불교의 상징인 만(卍)의 깃발을 내걸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그리스도교 계통(천주교, 기독교)이 발흥하고 있다. 근대 개항기 이후 서양과 미국에서 전래된 종교이고, 또 미국이라는 강력한 정치적 기반을 바탕으로 한 종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은 물론이고 윤보선 대통령도 김영삼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도 기독교도였다. 또 김대중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천주교 신자였다. 또 정치 경제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미국이다. 그런 발흥기의 기독교 계통에서 한국의 무속신앙을 공격하고 있다. 예전에 불교, 유교가 했던 것처럼.. 

하지만,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겉으로 공격한다고 속까지 완전히 배격하는 것은 아니다. 즉, 자신들의 발흥기에 무속신앙을 공격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무속신앙을 차용하며 교세 확장의 도구로 이용한다. 구복신앙과 점술을 적절히 이용하고, 제례의식에서 "신명나는 굿판"을 이용하고 있다. 마치 정치인들이 미신을 공격하지만, 각종 점술이나 관상 사주팔자를 이용하는 것처럼...기독교안의 제례형식과 성령인도의 방식으로 무속신앙이 차용되고 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교 계통이 무속신앙 속으로 스며들어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즉 도교나 불교, 심지어 유교까지도 신선, 보살, 최영, 관우로 변신해 무속신앙 속으로 들어갔지만, 아직 예수, 마리아는 신선과 보살처럼 무당의 신당에 모셔져 있지도 않고, 무당집에 만(卍)처럼 십자가가 깃발로 걸려있지도 않다. 
그런 그리스도교 계통이 쇠락기를 맞이하게 될 때에는 어떻게 될까

현재, 그리스도교 계통은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서서히 기울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교인이 더 늘어나지도 않고, 교세는 축소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득이 증대하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그리스도교가 쇠락하는 징후는 뚜렷하다. 더구나 한국사회에 대한 미국 영향력도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 그리스도교 계통의 쇠락은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천주교, 기독교가 어떤 형태로 자기 변신을 할 지는 미지수다. 불교처럼 민속신앙(무속신앙)과 접목하면서 민중속으로 들어가게 될 지... 또 민중 속에서 하나의 전통신앙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결합하지 못하고, 일본의 기독교와 같이 사멸의 길을 걷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범신론적인 불교와 유교와는 달리, 그리스도교 계통은 "유일신앙"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한국의 종교 세계관은 대단히 다층적이고 다원적이다. 다원적으로 제각각 존재하면서 공존하는 정도가 아니라, 상호 컨텐츠가 융합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을 다원적 종교사회로만 이야기하면 안된다. 다원적이면서 융합적인 종교사회인 것이다. 

<계속...>

김성회 칼럼니스트는 레인보우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한국다문화센터 대표입니다. 김성회 대표는 연세대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장, 제2건국위원회 전문위원과 이인제 국회의원 보좌관, 반기문 팬클럽 '반딧불이' 회장,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 등을 지냈습니다. 김성회 대표는 일찍이 다문화 시민운동을  시작해 국내 최초로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하여 운영했으며 각종 다문화관련 행사와 방송출연, 전문패널 등의 활동을 통해 올바른 다문화 정책수립 및 문화 형성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