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35] 전통복장을 통해서 본 문화 교류(한, 중,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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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의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35] 전통복장을 통해서 본 문화 교류(한, 중, 일)
  • (정리)김미연 기자
  • 승인 2019.06.0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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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지금까지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를 연재하며 주로 인종(인적교류)과 종교를 통해서 문화 교류와 다문화를 살펴보았다. 그만큼 인종(인적교류)와 종교가 각 나라와 종족의 문화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즉, 문화는 인종과 종교, 그리고 생활환경의 조건에 의해 형성된다. 그것이 고유한 문화를 형성하는 일차적 조건인 셈이다. 

그럼, 위 세가지 1차적 조건에 의해 형성되는 문화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가장 기본적인 생활양식을 드러내주는 의, 식, 주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정신세계를 구성하는 무형문화재 이전에, 생활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것이 의, 식, 주의 형태이다. 예를 들어 석회석 돌이 많은 지중해 연안에서 대리석 가옥을 지었던 것이 그것이고, 또 나무가 많은 곳에서 통나무집을 짓고 생활한 것이 그것이다. 

그렇게 1차적인 조건(인종, 종교, 기후환경)에 영향을 받아 고유한 의식주 성향이 나타나고, 그에 맞는 각각의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의복의 형태다. 특히 의, 식, 주는 인간이 생활하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지역의 기후 환경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 고유한 전통문화의 하나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입는 전통복장을 살피면, 우리 문화의 원형을 추적하는 것이 가능하다. 

지금 한국의 전통복장을 "한복"이라고 지칭한다. 한복의 원형은 삼국시대 이전에 형성된 것이지만, 그 이전의 복장에 대해선 단편적인 이야기만 전할 뿐, 고증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
에 "마한의 서쪽에 있는 큰 섬의 주호국(제주도)에 있는 사람들은 윗도리로 가죽옷을 걸치고 아래는 입지 않았다. 말과 돼지를 키우며 배타고 생활한다"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 전통복장의 원형은 고구려 고분벽화나 당나라 사신도 등에 나타난 것을 기본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고, 그러므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가 우리 전통복장의 원형이 형성된 때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 삼국시대 고분벽화에 나타난 복식을 생각할 때, 우리 전통복장의 기원은 처음 기마민족이었던 지금의 남러시아나 중앙아시아쪽에서 발원한 스키타이족에서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상하가 분리되고, 바지(궁고) 형태의 호복(북방 유목민족의 복장)이기 때문이다. 

즉, 원단을 두르던  것에서 상하가 분리되고, 바지형태가 나타난 것은 기마민족의 기원인 흑해 연안의 스키타이족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 복장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몽골과 북중국 만주 지방으로 전해지고, 그것이 한반도와 일본으로 전해진 복식인 것이다.  더구나 남러시아 스키타이 고분에서는 신라의 왕관과 형태까지 똑같은 관이 발굴되고 있어, 우리의 복식 원형을 추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삼국시대의 복장과 지금의 한복의 패턴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상하복 분리와 겉옷(두루마기)의 형태는 지금도 그대로인 것이다. 또한 남자 복장에서 기마민족으로 활동하기 편하고, 혹한 등 추위에 잘 견디도록 소매가 좁고, 활동성있는 복장은 현재까지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남자들이 상투를 튼 것도 그대로다. 다만, 차이가 있는 것은 신라와 조선 초기까지 남자들도 귀고리 등의 장신구를 달았는데, 이는 조선 중기(선조) 때부터 금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자들의 복장은 남성 복장보다 조금 더 변화가 많다. 예를 들어 윗 저고리가 삼국시대에는 무릎 가까이까지 늘어졌는데, 이것이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점차 짧아져, 조선시대 말기에는 윗 저고리가 가슴조차 가릴 수 없는 지경까지 위로 올라갔다. 다만, 머리의 경우 백제시대에는 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는 변발을 했는데, 결혼 후에는 두 갈래로 길게 따서 말아올리는 형태를 갖췄다고 한다. 귀고리나 코걸이 등 장신구는 조선 중기까지는 남녀 동일하게 애용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같은 호복 계통이면서 일본이나 중국과  크게 다른 것은 남녀 공히 속바지를 등을 갖춘 것이다. 이는 남방계의 영향이 많은 일본과 중국 남부와는 많이 다른 것이다. 즉, 일본은 남녀 모두 속바지(팬티)가 존재하지 않았고, 한국에서도 제주도 등 남방계는 윗 옷만 걸쳤을 뿐 아래쪽은 입지 않았다(후한지 동이열전 등)는 기록이 있다. 다시말해 기온이 온난한 남방계의 옷에서 속바지 등의 옷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일본 훈도시도 속바지는 아니다). 

따라서 한국의 호복계통의 전통복이 일본으로 전해지며 일본의 기모노(유카타) 등이 만들어졌는데, 이때 속바지는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일본은 근대는 물론 최근 20세기 까지도 남녀 모두 속바지(팬티)를 입지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1930년대 동경의 한 백화점에서 큰 불이 났는데, 여성들이 건물에서 뛰어내리지 못하고 불에 타 죽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때 속옷을 입지 않아 뛰어내리기 창피해서라는 일설이 존재한다).

이렇듯 일본의 전통복장(기모노)은 북방 유목민족인 호복에서 유래가 되고, 이것이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는데, 일본의 기후와 환경으로 인해 속바지를 입지 않던 남방계전통이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 기모노가 백제로부터 전달되었다는 것은 백제의 직공이 일본에 가서 직물 짜는 것을 전해줬다는 기록도 있을 뿐 아니라 형태도 백제 의복 특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백제나 삼국이 공히 윗도리와 아랫도리가 분리된 투피스 형태인 반면 일본의 기모노(남성은 상하 분리, 여성은 미분리)는 원피스 형태인데 어떻게 백제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겠는가 라고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일본 기모노가 당나라 계통의 여성 의복의 영향으로 윗 저고리가 길어져 하나의 원피스처럼 변형된 것일 뿐, 형태는 백제와 같다는 것을 모르는 소리이다. 또한 같은 호복임에도 만주족의 전통복장인 "치파오"도 여성의 경우 원피스 계통으로,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즉, 한국의 경우 전통복장에서 스키타이 등의 북방기마민족의 복장의 원형이 잘 유지되었지만, 만주족의 치파오(일부 어린 여성의 치파오는 투피스 형태도 존재한다)나 일본의 기모노 같이 여성성을 강조하면서 원피스 형태로 변형된 것도 존재한다. 하지만, 일본 남성의 기모노는 백제 의복 특징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일본 기모노가 여성성을 강조하게 된 것은 중국의 당나라 영향이 많았다. 즉, 당나라시대 여성들이 치마를 가슴까지 올리고, 윗 저고리도 길게 늘어뜨려 원피스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데, 이것이 일본 여성 기모노가 원피스 형태로 변형되는데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에 일본 여성의 키가 작다보니, 하체를 길게 하고 신체의 특징을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해 오비(기모노에서 허리에 매는 띠)를 착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일본 기모노에서 허리에 매는 띠인 "오비"는 기모노의 매력포인트가 되었고, 오비를 매는데도 단순한 것부터 혼자서는 도저히 맬 수 없는 복잡한 형태까지 발달하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당나라 시대의 여성복장으로 원피스 형태를 입게 된 일본 여성들이 자신들의 작은 키를 보완하고 긴 하체를 강조하는 매력포인트로 "오비"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과는 다르게 중국의 전통복장은 대단히 복잡하다. 왜냐하면 중국 안에는 여러 소수민족들이 산재해 있을뿐 아니라, 중국을 지배한 종족도 역사적으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다른 나라에서 중국의 전통복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치파오"의 경우도 "그것이 청나라 만주족의 전통복장일뿐 중국의 전통복장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중국의 전통복장은 "한푸(한자는 漢服)"라고 주장한다. 즉, 송나라와 명나라에서 입었던 한복(漢服)이 중국의 전통복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푸입기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청나라 이후 중국의 전통복장이 "치파오"로 알려져 있고, 또 한푸의 복장이 우리나라 사극에서 성균관 유생들이 입고 있는 복장과 비슷해 중국 사람들마저 "한푸"를 한국의 전통복인 "한복"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이러저러한 이유로 중국의 전통복장은 복잡하다. 일부 중국인들이 주장하는 "한푸"를 전통복장이라고 할 때, 그 원류는 당나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 즉, 위, 수, 당 등 호한연합의 시대 영향만큼 당나라 복장은 북방 기마민족인 호복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그래서 남성 "한푸"의 경우 고구려, 백제, 신라와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 다만, 여성의 경우 여성성을 더욱 강조하여 치마는 속치마로 변하고, 윗 저고리도 길게 늘어뜨리는 이중치마형태가 나타났다. 

이러한 당나라 여성복장은 크게 유행하여 통일 신라는 물론 일본의 기모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일본의 여성 기모노가 원피스 형태로 변형되게 된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통일 신라 이후 여성 한복에서 치마가 가슴 위까지 치고 올라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이렇게 치마가 가슴위까지 올라오다보니, 고려시대 이후 윗 저고리 길이가 한없이 짧아지게 되었다).       

이렇게 한, 중, 일 모두 스키타이에 기원을 두고 있는 호복에서 전통복의 원형을 두고 있는 셈이다. 그 원형에서 남성의 복장은 그다지 많이 변형되지 않았지만(한, 중, 일 남성의 경우 남방계통의 영향으로 좁은 소매가 넓어졌다), 여성은 그때 그때의 유행에 따라 크게 변형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의 여성 한복이 가장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계속...>

김성회 칼럼니스트는 레인보우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한국다문화센터 대표입니다. 김성회 대표는 연세대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장, 제2건국위원회 전문위원과 이인제 국회의원 보좌관, 반기문 팬클럽 '반딧불이' 회장,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 등을 지냈습니다. 김성회 대표는 일찍이 다문화 시민운동을  시작해 국내 최초로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하여 운영했으며 각종 다문화관련 행사와 방송출연, 전문패널 등의 활동을 통해 올바른 다문화 정책수립 및 문화 형성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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