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36] 우리는 중국의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다문화 중국과 환빠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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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의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36] 우리는 중국의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다문화 중국과 환빠 한국)
  • (정리)김미연 기자
  • 승인 2019.06.06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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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특이한 나라가 있다면, 필자는 중국을 꼽을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오늘 날 중국을 있도록 만든 것은 그들의 "융합능력"이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은 이것을 "중화주의"라는 말로 하고, 또 다른 이는 "중화패권주의"라며 경계한다. 하지만, 필자는 중화패권주의라는 천박한 움직임으로 중국 역사를 보기 보다는 "중화주의"라는 포용성을 중심으로 중국 역사를 본다. 

지금의 중국은 "중화주의"라는 포용성을 빼고는 형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의 중국은 예전의 그 어떤 중국보다 면적이 가장 크며, 가장 강대하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은 미국과 글로벌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입장이지만, 또 미국이 중국의 성장을 크게 우려하며 제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중국은 또다시 도약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중국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처음엔 작은 나라였다. 또 끊임없이 이민족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던 나라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때마다 중국은 크게 성장했다. 다시말해 중국은 혼란기와 이민족의 지배를 받을 때마다 크게 성장했다. 첫번째가 춘추전국시대였다. 그때 중국의 강역은 그 전시대인 주나라의 강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인구도 불어났다. 또한 각종 제자백가가 난무하며 사상적 깊이나 넓이도 크게 성장했다.

그 다음은 진, 한나라를 거쳐 5호 16국 시대이다. 이때 북방의 수많은 유목민족들이 남하를 하면서 중국 국토를 유린했다. 모용선비, 탁발선비, 투르크(돌궐), 거란, 등 한나라와 흉노제국이 쟁패하며 북방으로 쫓겨갔던 유목민족이 대거 남하를 했고, 그들이 황하강 지대를 휩쓸었다. 그리고 이어진 위, 수, 당의 시대는 "호한융합의 시대"였다. 즉, 북방 유목민족과 한족의 융합을 통해 문명이 크게 발달했다. 

이 5호 16국과 위(진), 수, 당시대에 중국의 강역은 황하 북쪽으로만 넓어진 것이 아니라, 양자강 남쪽으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양자강 지역이 본격적으로 중국의 중심으로 편입된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동진을 비롯해 수, 당의 시대에는 동남쪽을 석권하고 남서쪽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황하와 양자강, 그리고 해안가 중심의 중국에서 내륙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송나라와 금나라, 몽골의 시대에 중국의 강역은 내몽고와 만주까지 확장되고, 동남아 베트남과 마주하게 되었고, 사천, 운남, 티벳까지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날 중국의 강역으로 확대한 청나라 시대가 도래했다. 이렇듯 중국은 송나라, 명나라 등 중국 전통의 한족 왕조가 들어섰을 때 오히려 강역이 축소되었지만, 수 당 금 원 청이라는 이민족이 중국 대륙을 지배할 때, 중국의 강역은 급속히 확장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민족은 섞이고 또 섞였다. 지금 중국에서 한족이 지배적 민족이라고는 하지만, 중국을 한족만의 나라로 판단할 수가 없다. 아니, 그 한족마저 과연 한족인지 의구심이 많다. 왜냐하면, 같은 한족이라고 하더라도 DNA를 검사하면, 남쪽과 북쪽의 한족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친연성보다 서너배가 더 멀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의 한족은 다 한족이라고 하는 말은 엥글로 색슨족이나 알바니아 출신의 슬라브족이나 미국인이면 다 미국족이라는 소리와 다를 것이 없다.  

이렇게 중국은 혼란기와 이민족의 지배를 받을 때마다 자신의 강역과 문화, 문명이 풍선처럼 더 크게 부풀어올랐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의 중국을 만든 것이다. 그 밑바탕에 어머니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고 빨아들이는 "중화주의"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 "중화주의"는 한족의 순혈주의가 아니다. 중화주의는 다를지라도 포용하는 중국식 다문화주의이고, 미국식 용광로인 것이다. 

한 때 중국에서 "아리랑"을 자신의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하려고 한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난리가 난적이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고 말도 안되는 짓을 중국이 감행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아리랑"은 중국내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민요이고, 따라서 중국 소수민족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유네스코에 등재하려고 한 것이라는 말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같은 주장은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의 문화유산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아리랑까지는 이해했지만, 필자가 한 때 실소를 머금었던 일화가 있다. 중국인들이 등려군의 "첨밀밀"을 자신들의 민요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등려군의 첨밀밀은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민요가락에 중국식 가사를 붙여 편곡한 노래이다). 등려군의 "첨밀밀"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치더라도, 그 다음엔 정말 어이가 없었던 일화가 있다. 그것은 1970년대 미국의 사이먼 & 가펑클이 불러 크게 유행시켰던 "El Condor Pasa"를 자기들 민요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지금 이야기는 우스개 소리지만, 위에 처럼 중국의 중화주의는 다른 것조차 자기 것으로 빨아들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예전에 전혀 중국의 것이 아니었을지라도 역사의 어느 순간을 지나며 중국의 것이 되었던 것이 한 두개가 아닐뿐 아니라, 영토마저 그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자바섬의 민요조차 중국의 것이 되지 말란 법은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중국은 자기 것도 자기 것, 남의 것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왔던 역사였다. 

그것이 중국식 다문화주의인 "중화주의"의 힘이다. 문화적으로 순혈주의는 고립되고 좁아들고 망하는 길을 걸어왔지만, 포용주의(다문화주의, 또는 용광로주의)는 넓어지고, 확장되고, 성장해왔음을 중국의 역사는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 "중화주의"의 포용성은 지난번 "재미있는 다문화이야기 7편"에서 썼던 로마의 카이사르와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말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 로마인은 다른 종족들에게 뛰어난 관습이 있다면 배우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에 사용하는 무기는 삼니움인에게서 배우고 권위를 표시하는 상징물은 에트루리아인에게서 배웠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다른 자들의 뛰어난 것을 시샘하기 보다는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 카이사르

" 우리 조상들은 출신을 가리지 않고 능력있는 자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이탈리아 내의 모든 사람들, 모든 부족들이 시민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포강 너머에 살던 이탈리아 인들에게 시민권을 주었더니, 그들은 우리 군대에 자원하여 모자란 병력을 채워주었습니다. 뛰어난 전쟁 능력을 갖고 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왜 멸망했습니까 그들이 정복한 자들을 이방인으로 배척했기 때문 아닙니까 하지만, 노믈로스(로마 창설자)는 정복한 자들을 동료 시민으로 받아들였으며, 그들은 금과 자산을 로마로 가져왔습니다."
- 로마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반면 한국은 어떠한가
중화주의가 다른 것도 함께하다보면 같게 된다는 포용적 생각이었다면, 한국의 소중화의식은 그와 정반대로 비슷한 것조차 다른 것으로 배척해왔다. 조선시대 유학의 극단적 학문인 성리학이 지배하면서 만들어낸 풍토이다. 심지어 초와 록이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다르다고 주장하고 파벌을 나누어 죽이고 죽었던 과정이 한국의 역사가 아니었는가 이른바 순혈주의 역사관이고 세계관이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 일부에서 남의 역사도 우리 역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기 위해 없는 역사까지 만들어서 어거지로 이어붙이고 있다. 예를 들어 흔히 말하는 유사 역사학의 환빠들이 그 사람들이다. 그들은 고조선 위에 "환국"이라는 가상의 왕국을 만들어 고조선의 강역을 아시아 대륙 전체로 넓히고,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문명까지 환국 일파의 문명이라고 주장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진작부터 중국의 중화주의처럼 포용적 세계관을 지녔으면, 이민족이 와서 지배를 해도 그때마다 더 넓게 확장되고 더 크게 성장했으면, 지금처럼 어거지로 유사 역사를 만들지 않아도 그들이 다 우리 것이 되었거나, 아니면 되어갈 것이었는데..."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순혈주의를 내세워 자신을 좁혀놓고, 이제와서 없는 역사까지 만들어 "원래부터는 다 내 것이었어!"라고 주장해봐야, 돌아오는 건 비웃음 밖에 더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더 크게 성장하고 확장하면서 미래로 갈 것인가 아니면 어거지로 꾸며낸 옛 영광을 "우리가 왕년에..."라고 되새김질하며 초라한 현재를 살 것인가의 문제이다. 다문화 포용의 나라가 그려줄 내일은 전자이고, 순혈주의가 보여줄 오늘은 후자이다. 앞은 오늘날의 중국이고, 뒤는 오늘날의 한국이다.   

<계속...>

김성회 칼럼니스트는 레인보우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한국다문화센터 대표입니다. 김성회 대표는 연세대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장, 제2건국위원회 전문위원과 이인제 국회의원 보좌관, 반기문 팬클럽 '반딧불이' 회장,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 등을 지냈습니다. 김성회 대표는 일찍이 다문화 시민운동을  시작해 국내 최초로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하여 운영했으며 각종 다문화관련 행사와 방송출연, 전문패널 등의 활동을 통해 올바른 다문화 정책수립 및 문화 형성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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