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수/경기도의원(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사이먼 쿠즈네츠하버드대 교수는 후진국이 공업화를 통해 중진국으로 도약할 수는 있지만, 농업·농촌의 발전 없이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농사를 짓는 농민이 중류층 이상으로 잘 사는 나라가 돼야 비로소 선진국이라는 말이다.

▲ 김달수/경기도의원(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농사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라 했다. 농업은 생존을 위한 안전한 먹거리의 원천이며, 우리 전통문화의 진원이다. 특히 농업은 국토보전과 자원 관리, 생태계와 생물다양성 유지, 환경교육의 장을 제공한다. 이것이 바로 농업의 다원적 공익기능이며, 농업은 거의 모든 국가의 자주와 민족의 유지·발전에 반드시 있어야 할 최소한의 기본조건이다. 선진 각 국이 무리하리만큼 농업·농촌에 투자하고 지원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농촌인구는 고령화되어 있고, 농지는 온갖 개발과 토지황폐화로 해마다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최근 들어 도시농업이 활성화되면서 농업·농촌의 중요성과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농업, 도시를 자연과 더 가까이

 

도시농업이란, 도시의 다양한 공간과 토지 등을 활용한 모든 농사활동을 말한다. 여기에는 농작물과 화초는 물론 양봉까지 포함한다. 농사에는 각종 여가 체험적 성격의 농사활동도 포함한다. 이를 통해 도시민은 경제적, 사회문화적 유익을 얻고, 도시 생활환경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결국 도시농업은, 식물 생물 다양성 보존, 도시의 흙 살리기, 기후순화, 경관보존, 전통문화, 공동체 정서함양, 여가활동 지원, 생태교육 등 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도시에서 실현하기 위한 시민참여활동, 도시와 농업의 지속 가능한 상생을 실천하는 각종 경작활동이 모두 도시농업의 유형들이다.

독일의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이나 영국의 애롯트먼트 가든(Allotment garden), 캐나다의 커뮤니티 가든(Community garden), 러시아의 다차, 쿠바의 아바나 도시농업 등 외국에는 도시구획 안에 다양한 형태의 시민농원이 위치해 있다. 대부분은 공유지에 조성되어 활발하고 안정적인 이용이 보편화되어 있다.

현재 선진국의 거의 모든 도시에서는, 도심의 빌딩이나 주택의 옥상 또는 가로변의 유휴지를 이용해 유용식물을 재배하는 등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광범위하게 도시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도시농업은 도시를 자연과 더 가까이하는 것이며,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흙을 살리는 도시혁신모델이기도 하다. 텃밭에서 노인과 아이가 만나고 이웃과 이웃이 만나 지역 공동체가 되살아난다. 안전한 먹거리와 자급적 삶을 이야기하고, 농업·농촌에 대한 이해와 공감·교류를 확대되는 소통의 장이다. 선진국에서는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한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도시농업을 활용하고 있다.

영국 버킹엄 궁 뒤뜰에 여왕의 텃밭이 있다. 영국 왕실은 '승리를 위한 경작 운동(dig for victory)'이 벌어졌던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2009년부터 다시 텃밭 경작에 나섰다. 여왕이 신선한 채소들을 왕실의 식탁에 올리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 종의 종자를 보존하기 위해 이 같은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버킹엄 궁 뒤뜰에 마련된 '여왕의 텃밭'360 평방피트(33) 규모로, 왕실에서는 6주 전부터 이곳에 토마토, 강낭콩과 완두콩, 양파, 부추, 당근 등을 가꿔 왔으며, 실제로 이 중 일부는 왕실의 식탁에 오른다고 한다. 현재 영국 런던에는 737개의 도시텃밭이 있는데. 구획 수로는 36천 개에 이른다고 한다. 공공임대 텃밭은 10년 가까이 기다려야 차례가 돌아올 정도로 인기 있고, 런던 시민 3만 명이 임대텃밭 농사를 즐기고 있으며, 런던 가구의 14%가 자신의 집 정원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과일이나 채소는 매년 23만여t으로 런던 전체 수요의 18%를 충당한다고 한다.

미국 백악관에도 텃밭이 있어, 퍼스트레이디인 미셸 오바마가 두 딸과 함께 백악관 관저에 있는 키친 가든에서 야채와 허브를 심고 있는 모습이 종종 언론에 실리기도 한다. 캐나다 몬트리올에는 약 8,200곳의 텃밭이 있고, 벤쿠버의 인구 44%가 도시농업에 관여하고 있으며, 밴쿠버시는 시청 부지에 도시텃밭을 만들어 1년에 20달러 정도의 사용료를 받고 텃밭을 분양한다.

베를린 시민 8만 명이 커뮤니티 농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쿠바의 아바나는 채소의 50%를 자급자족하고. 미국 뉴욕엔 옥상 텃밭을 운영하는 빌딩만 600여개가 넘는다. 방송 다큐에서는 뉴욕 빌딩 옥상에서 양봉하는 장면이 방영되기도 했다. 도시농업의 일상화와 저변확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독일은 19세기 후반부터 도시민에게 소형 가족농장 보급운동이 펼쳐졌고, 지금은 도시농업 관련 협회나 단체가 15천여 개에 이른다. 일본 도쿄엔 긴자농업주식회사가 있어, 2009년부터 긴자 한복판에서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임금님도 창덕궁 안의 작은 논에서 그 해 농사를 가늠하기 위해 직접 모내기를 했고, 궁궐의 유일한 초가지붕 정자인 청의정은 이 논에서 수확한 볏짚으로 지붕을 이었다.

유엔 조사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도시 주민이 소비하는 음식의 약 3분의 1이 도시 내부에서 생산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약 8억 명이 도시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 중 6억 명은 자신이 먹기 위해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도시농업은 인문학?

 

매년 서울시에서 인근 지자체의 농지를 임대해 서울시민들에게 제공하는 1만여 개의 텃밭은 단 몇 초 만에 분양이 끝난다. 이처럼 도시농업의 저변확대에 힘입어, 최근 도심 한복판의 텃밭 등 서울시 농지면적이 최근 2년간 4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2009년 제정된 광명시 시민농업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시작으로 이제 거의 모든 지자체에서 도시농업 지원조례 제정됐고, 도시농부 교육 및 각종 지원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은, 1989특정농지 대부에 관한 농지법 등의 특례에 관한 법률’(특정농지대부법)이 제정됐고, 1990시민농원 정비촉진법 제정’, 2005특정농지대부법개정, 20063월에는 시민농원에서 재배한 농작물의 판매를 허용하는 법안까지 제정해서 도시농부를 키우는데 매우 적극적이다. 지난해의 경우 도쿄에만 시민농원 448곳과 체험농원 63곳이 조성됐고 한다. 특히 일본에서는 1974년에 생산녹지법이 제정되어, 도심의 농지(생산녹지)를 보전하기 위한 세제상의 우대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주말농장이란 이름으로 도시농업이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주말이라는 시간적인 한계에 갇혀 있는 듯한 어감이 조금 아쉽다. 영국의 애롯트먼트 가든(Allotment garden)’구획이 나누어져 있는 정원이란 뜻이고, 독일의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작은 정원이란 뜻이다. 러시아의 다차(Dacha)’나누어 주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은 시민농원이라 부른다. 우리도 좀 더 정감어린 명칭을 만든다면, 우리나라의 도시농업도 일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지난 20124, 주간지 <한겨레21>지금은 도시농업 시대라는 특집을 다루었다. 특히 수도권 도시민들에게 인기 있는 주말농장과 도시텃밭 등 도시농업의 열풍을 르포 형식으로 다루었다. 그동안 천대받고 사라질 것이라고 여겨졌던 농부농업이 다시 특집뉴스감으로 재조명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도시농업은 여러 가지 면에서 혁신적이다. 우선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비용(보관비, 운송비, 포장비 등)이 절감되고, 가장 신선한 상태의 곡물과 채소를 바로 먹을 수 있다. 특히 농사를 통해 자연과 교감하고 사람과 소통한다는 점에서, 도시농업은 인문학과 연결되어 있다. 농업이 미래인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죽은 자연을 재료로 하는 공업의 시대에서 산 자연을 재료로 하는 농업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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