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幻想, fantasy)과 희망(希望, hope)

환상(幻想, fantasy)과 희망(希望, hope)
현실적 기초가 전혀 없는 헛된 꿈을 쫒는 것이 환상이다. 환상을 추구하는 개인은 곧 현실의 벽에 부닥쳐 절망에 빠진다. 그러나 더 불행한 것은 환상이 일으킨 체면상태가 어느 사이에 그의 몸에서 절망을 극복할 힘조차 빼앗아 간다는 사실이다. 평생을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희망 없이 살아가야 할 운명을 맞게 된다.

한 국가나 집단도 마찬가지이다. 그릇된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진 세력이 힘을 얻어 사회 구성원들에게 환상을 퍼뜨리기 시작하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가까운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저 볼세비키 혁명이나 문화대혁명, 파시즘이나 페로니즘의 광기가 일으킨 역사의 폭풍이 진실을 말해 준다. 하나의 집단이 환상을 추구할 때 얼마나 무서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또 그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를 말이다.

이에 반하여 인간의 이성에 의해 언젠가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을 이상(理想)이라고 한다.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은 언제나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 비록 뜻하는 시간에 소망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 노력은 보람이 있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한 국가나 집단도 똑같다. 그러므로 올바른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무장한 지도력을 건설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이렇게 환상은 절망을 잉태하고, 시간이 길어지면 다시 일어설 힘조차 앗아간다. 이에 반하여 이상은 희망을 잉태하며 땀을 흘릴수록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작년 한해를 돌아보자. 대한민국의 건국과 자유민주주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정에서 미국은 우리의 동맹이요 협력자였다. 미국을 적대할 역사적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면 그것은 평양의 입장일 것이다.

그런데 권력을 잡은 자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미국과의 적의(敵意)를 증폭시키며 동맹의 축을 약화시켰다. 그러면서 아직 형성되지도 않은 중국이나 평양정권과의 공조(共助)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무엇이 돌아왔는가. 중국이 이른바 동북공정으로 우리 역사를 침탈하고, 야당 국회의원들의 기자회견을 물리력으로 저지하는 무례를 범하고도 오히려 큰 소리를 치고 있다. 평양이 우리의 선의와 평화의지를 아랑곳하지 않고 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한 발짝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모두 다 환상을 추구한 냉혹한 결과이다. 중국이나 평양과의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실재(實在)하지 않는 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미국과의 동맹은 오랜 시간동안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실체이다. 미국을 적대해야 할 이유는 평양에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미국을 좋아하고 싫어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냉엄한 현실의 문제일 뿐이다.

또 작년 한해 수도이전 문제를 놓고 나라가 요동을 쳤다. 수도이전의 당위성 문제를 따지기 전에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를 먼저 생각해보자. 수도이전은 적어도 십 수 년이 걸리고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는 그야말로 국가 대사중의 대사이다. 정권이 몇 차례 바뀌어도 차질 없이 추진이 되어야 완성되는 역사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국민들이 마음속으로 수도이전을 지지해야 가능한 사업이다.

나는 노 정권에게 말했다. 당신들이 하겠다고 했고 또 가능하다고 했으니 국민들을 설득해보라고 말이다. 국민들이 반대하는데 마치 되는 것처럼 추진하면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 후일 이 사업이 무산되면 그 뒷감당은 누가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국가적 손실, 국론의 분열, 충청지역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는 결국 국민의 몫으로 남게 된다.

그런데 노 정권은 국민을 설득하여 지지를 확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충청지역 사람들을 달래고 또 무엇인가 기대감을 심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이른바 무슨 대안(代案)이란 것을 내놓는다고 한다. 여기에는 야당인 한나라당도 합작하고 언론들도 가담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눈으로 보면 이 대안이란 것도 하나의 환상일 뿐이다. 이성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

보자. 수도를 옮기면 옮기고 못 옮기면 못 옮기는 것이다. 약속을 지키면 지키고 못 지키면 책임을 지는 일만 남는 것이다. 하나 뿐인 수도인데 대안은 무슨 대안인가. 행정부처를 수도에서 떼어 지방에 갖다 놓는 나라가 동서고금 어디에 있는가. 정부가 좋은 학교를 세운다고 하면 좋은 학교가 세워지는가. 정부가 기업중심도시를 만든다고 하면 좋은 기업들이 몰려드는가. 이것은 상식과 현실을 도외시한 환상일 뿐이다.

결국 수도이전이라는 환상이 국민에게 절망을 가져다주자 이 정권은 대안이라는 또 하나의 환상으로 대처하려 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절망은 커져만 간다. 나는 야당과 언론이 절망을 키우는 일에 가담하지 않기를 바란다. 노 정권은 지금이라도 국민을 설득하여 약속을 지키던지, 국민을 설득할 자신이 없으면 무릎을 꿇고 사죄하면 될 일이다.

경제상황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특히 서민경제, 민생경제는 절망을 향해 치닫고 있다. 올 들어 이 정권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일자리 창출이 최우선이다, 경제에 올인 하겠다며 야단이다. 다 좋은 말이다. 말은 좋은데 감동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믿지 않는 것이다.

왜 믿지 않을까. 그들이 경제에 관하여 국민들에게 환상을 심어온 결과이다. 그들이 내세운 개혁과 정의의 깃발이 생산, 분배, 소득까지도 다 잘되게 할 수 있는 것처럼 국민을 현혹시켜오지 않았던가. 경제위기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신경질을 냈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도박사들이나 쓰는 올인을 외치면서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니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 경제가 다시 활력을 찾고 일자리와 소득이 만들어지고 소비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기업가정신과 근로의욕이 솟아나는 사회경제적 환경을 만드는 길밖에 없다. 그 길을 닦기 위해서는 피나는 개혁이 요구된다. 지금이라도 이 정권이 그러한 개혁을 추진하고 나온다면 나부터 팔을 걷고 앞장을 설 일이다.

그런데 경제를 살린다고 하면서 나오는 이 정권의 자세는 어떠한가.

우선 금년 상반기에 100조 원 이상의 돈을 풀어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활성화시킨다고 한다. 뭐가 닮았는지 모르지만 한국판 뉴딜 정책을 쓴다고 한다. 김대중 정권 시절 신용카드를 남발하여 사람들이 미래의 소득을 미리 꺼내 함부로 소비하도록 만든 정책을 쓴 일이 있다. 일시 소비가 확대되어 경제가 따뜻해지기는 했어도 그 후 돌아온 것은 500만이 넘는 신용파탄이요, 세계 제1의 자살률이다.


농부가 영농비를 가지고 직접 쌀을 만들지 못한다. 정부도 재정을 가지고 직접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는 없다. 오직 시장을 통하여 생산, 고용, 소득, 소비가 촉진되도록 작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이 정권의 자세를 보면 정부가 직접 고용도 창출하고 경제를 살릴 것처럼 덤빈다. 거기에다 그 재원 중에는 상당액이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장래를 위해 적립한 연기금이라고 한다.

나는 이 정권이 지난 정권의 우(愚)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그 때는 국민들이 미래 소득을 미리 탕진하여 오늘 감당키 어려운 고통을 당하도록 하였는데, 이대로 가면 이 정권은 국민들의 장래를 위한 돈을 오늘 태워 잠시 추위를 이겨내지만, 내일 사회안전망이 무너져 우리 사회가 붕괴되는 참화를 가져올까 두렵다.

나는 이 정권이 경제에 관하여도 국민들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일을 포기하기 바란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법이다. 경제에 요행이 어디 있는가. 올인은 무슨 올인인가. 국민에게 땀과 눈물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정권이 진심으로 이성과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이 이 정권을 믿고 희망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희망만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

벌써 금년 1월도 반이 지난다. 나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환상과 절망으로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는 강렬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 기간이 길어지면 다시 일어설 힘조차 녹아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나는 이 정권이 처절한 자기 성찰을 통해 환상을 버리고 이상으로, 절망의 확산이 아니라 희망의 확대로, 나서주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나름대로의 희망을 향해 땀과 눈물을 흘릴 때, 2005년은 도약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2005. 1. 17

이 인 제

이인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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