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한국으로 가는 지름길 : 독일편

선진한국으로 가는 지름길 : 독일편
유럽 선진국들의 정치제도와 정치문화, 정당활동 및 유권자의 행태분석을 통하여 우리 정치의 현 주소를 점검해보고, 선진한국에 이르는 지름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그 첫걸음으로 독일을 소개한다.

1) 본(Bonn), 독일 생활정치의 태생지
2) 아데나워와 독일통일 그리고 유럽연합(정책과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
3) 독일 정당의 현황
- 정당의 이념과 노선, 권력획득의 과정 및 정당활동
4) 유럽연합 출범과 유럽의 변화
5) 독일통일 15년(인터뷰) - 무례한 동독인, 배부른 서독인 -
6) 통일한국 대비를 위한 제언
- 권력구조 개편을 통한 선진정치 정착 -

본(Bonn), 독일 생활정치의 태생지

대선 공약으로 신행정수도가 거론 될 때, 필자는 독일의 본(Bonn)을 먼저 떠올렸다. 본이 통일 이전까지 실질적인 행정수도와 ‘일하는 의회’의 모습을 보여준 전형적인 생활정치형 도시였기 때문이다. 전후 서독은 본에서 정말 부지런하게 그리고 합리적·실용적으로 정치활동을 펼쳐, 전후복구와 통일은 물론 국민의 삶을 파고드는 생활정치를 접목시켰다. 다시 말하면 본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켜 강국으로 부상했고 급기야 통일까지 실현시킨 것이다.

충청지역에서 포효하는 신행정수도 건설 촉구 소식을 접하면서, 필자는 본을 다시 찾았다. 왜 우리는 책임정치, 삶의 정치, 생활정치를 위한 법과 제도 또는 정치문화가 부실한지를 다시 느껴보기 위해서다. 특정집단만의 생존을 위한 정치(politics for survival), 권력쟁취와 유지를 위한 투쟁의 정치(politics for struggle)가 아니라, 삶속에 녹아드는 생활정치(politics for life)가 우리에겐 언제나 도래할 수 있는가.

먼저 본의 과거를 살펴보자. 2차 세계대전 직후에 서독은 분단과 함께 수도를 물색한다. 베를린이 봉쇄되고 미영불이 서독을 분할통치 하던 시기라 당연히 전승국들의 목소리만 나왔다. 미국은 두 번씩이나 유럽을 초토화 시킨 독일을 농업국가로 만들어서라도 철저하게 쪼개서 분할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의 통치하에 있던 프랑크푸르트를 새 수도로 제안했다.

프랑스의 사사건건 반대도 만만치 않았지만, 서독 초대수상 아데나워(Konrad Adenauer)는 영국을 설득하여 라인강변의 조그만 촌락도시 본(Bonn)으로 수도를 정한다. 그 설득과정이 참으로 지난했다. 수도결정 이전의 본은 베토벤의 고향 정도로 알려진 작은 도시였지만, 패전국 서독 스스로가 염두에 둔 본(Bonn)으로 수도가 정해진 것은 그들의 자존심과 새출발을 위한 용기를 챙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훗날 아데나워도 새로운 출발을 위해 독일민족의 자존심을 걸고 본으로 수도를 옮겼다고 토로한 바가 있다.

@P1C@

일하기 좋은 환경과 공간구조

1949년부터 199년까지 수도 본은 독일 생활정치의 산실로서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다. 통일 이후 베를린으로 수도가 이전된 탓에 지금의 본은 이전보다 조용하지만, 한편으론 유엔캠프가 들어오는 중이라 어수선하다. 연방하원 옆에 3천-5천명 규모의 국제적인 대회의장도 들어 설 예정이다. 이전 정치권(연방상하원 및 수상청과 대통령 관저 등)의 효율적, 실용적 활동이 펼쳐졌던 공간에 대한 관심이 큰 탓에 유엔 등 국제기구들이 탐내는 도시로 변한 것이다. 규모보다는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그런 공간구성과 독일인 특유의 합리성·실용성이 결합된 결과라고 본다. 독일 지인 건축가를 대동하여 공간구조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연방 상하원과 의원사무실 등을 꼼꼼하게 살펴보니 한마디로 일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환경이라는 점을 새삼 느꼈다.

@P2C@
연방상하원이 같이 붙어있고, 그 옆에 20-30여미터 떨어져 의원사무실이 들어 있는 고층건물이 들어서 있다. 어떻게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있을까 싶더니, 연방수상청과 대통령 사저 등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다시 말하면 나라의 살림과 민족의 미래를 논의하는 의회와 행정부의 주요인사들이 한 곳에 모여 지내면서, 서로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논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및 환경 구조였다. 우리에게도 신행정수도에 이런 식으로 의회와 대통령 사저 및 행정부 등이 한데 어울려 효율적·실질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인간사가 그렇듯이 가깝게 있으면 서로의 맘과 행동이 한 곳으로 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P3C@

한시적 회원인 의원

의원직을 소개 할 때 공식적인 직함은 “연방의회 회원(Mitglied des Bundestages)이다. 4년 임기가 있기에 연방의회 소속 한시적인 회원일 뿐이다. 시간이 없어 다른 직업을 병행 할 정도로 여유도 없고, 그렇다고 임기가 연장되면 연장될수록 노후를 챙길 수 있는 여력도 함께 취약해진다. 이에 따라 시간당 수당 또는 보상(Diaet) 형식으로 이것저것 합치면 매월 3,503유로 정도를 더 받고 있다. 물론 보좌관과 비서 등 전문가들과의 회합 등에 소요되는 경비는 매월 8.979유로를 받지만, 여기에서 지역구까지 챙겨야 하니 그 돈으론 부족해 자신이 직접 차를 몰고 다니는 의원들이 태반이다.

필자가 고향으로 출마한다는 기사를 보고 어느 어르신이 전화를 해왔다. “당신 독일에서 공부했다면서 내가 찍어주면 국회에 들어갈 때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겠냐고 물었다”. TV에서 보니까 독일이 그렇다면서 그런 정신으로 정치 할 결심이 섰는지 물어온 것이다. 그 분이 사시는 곳은 “집으로” 영화촬영지로 소문난 산간벽지다. 그런 곳에서도 생동하는 정치관심이 상존할 줄은 미처 몰랐다. 선거 홍보물에 그 어르신을 직접 소개한 바가 있지만, 사실 독일 의원들의 씀씀이를 보면 궁색할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의 세금으로 쓰는 돈이라 일일이 영수증을 철저하게 챙겨야 한다. 정치자금 관리가 그만큼 투명한 것이다. 한번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들통이 나면 정치권에서 발 붙이지 못하고 엄정한 법적 처리로 넘어간다. 철저하게 도덕성이 중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뇌물건으로 자살까지 한 의원들도 있다. 우리처럼 받은 액수의 규모를 놓고 도덕성의 경중을 저울질 하진 않는다.

우리 국회처럼 보기만 해도 위압감을 느끼고 권위주의 냄새가 물씬나는 그런 모습에 국민은 주눅이 들기 마련이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출입도 철저하게 견제당하고, 게다가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의원들이 검정색 대형차를 타고 내리는 그런 모습이 우리의 현실이다. 독일의 경우 애시당초 걸어서 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도록 조그만 대학캠퍼스 처럼 그것도 라인강변에 바짝 붙여서 만든 것이다.


80시간 짜리 중노동 직업

연방하원(Bundestag)이 추구하는 방향은 확실하다. “공개와 투명성”이다. 민의의 전당인 의회부터 그렇게 변하지 않고서는 정치는 물론 나라의 발전이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의원들은(현재 603명) 정말 부지런하지 않을 수 없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꽉 짜인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의원직은 ´주 80시간 직업´(Der 80-Stunden-Job)으로 불린다. 이에 비하면 일반노동자들은 주 40시간이 채 안 된다.

의원들은 매일 아침 8시 30분에 출근하여 사안에 따라 밤 늦게 까지 일한다. 그러다 보니, 토요일은 지역구 활동에 주력해야 하고 잘하면 일요일 반나절만을 가족에게 줄 수 있다고 한다. 후진정치에서 누릴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의 맛도 못 보면서 이런 중노동을 왜 자청할까. 그래서 정치인은 다수를 위해서 자신의 희생을 각오해야 하고 소신과 철학이 없으면 버텨내지 못한다.

@P4C@
의원들의 활동은 치밀하게 짜여진 의정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월요일은 각 상임위원회가 열리고, 화요일엔 관계법안 및 사안을 다루기 위해 전문가와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조사위원회(enquete-Kommission)에 참석해야 한다. 수요일에는 정부 각료들을 불러 대정부질문을 하고, 목요일엔 본회의 토론을 거쳐 금요일에 각종 투표가 행사된다. 이렇듯 꽉 짜여진 일정을 소화하다보면 개인적인 스케쥴은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의원실에서 밤을 세워 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겨우 주말이 되면 지방으로 내려가 지역구를 챙기거나 가족과 시간을 갖을 수 있다. 이처럼 의원들 대다수가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경쟁적으로 일하고 있다.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얼마를 버는가 보자. 경찰(29세) 2.343유로(1유로=약 1500원), 회사자문역할(36세) 8,600 디스크쟈키(33세) 6,400만 증권분석가(33세) 8,950 조산원(26세) 2,085 은행지점장(45세) 6,625 트럭기사(45세) 2,200 그리고 연방하원의원은 기본급이 6,878유로를 받는다. 기본급 이외에 이전에는 시간수당을 받았는데(매월 1,100마르크), 1970년 중반에 의원직은 풀타임(full-time)직이라 부적합하다는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다. 그 이후 시간당 수당문제는 아직도 격론중이다.


의정활동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

의회는 회의체다. 회의를 통해 일을 하는 곳이기에, 회의 참석 여부는 정치활동의 중심에 있다. 시간관리 스케쥴은 의원 개개인의 효율적 활동과 훗날 업적으로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독일의원은 “누구(Chef)의 통제도 안 받고, 오직 양심(Gewissen)에 따라 행동한다”라고 기본법에서 보장한다. 따라서 권리와 의무가 확실하다. 당내에서도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론으로 결정되는 과정에서 할 말을 다한다. 그래서 다양한 의견제시와 심지어 충돌도 나오지만, 결국은 합일점을 찾아서 조정과 화합의 과정을 거친다. 우리처럼 당론이 무조건 중시되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의원 개개인의 견해와 주관 및 철학이 우선시 된다. 정치란 어차피 다른 견해와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지난한 작업이지, 소수가 이미 결정해 놓고 다수에게 무조건적인 추종을 요구 하는 것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의원들이 회의에 불참하면 세비에서 삭감한다는 점이다. 주 80시간짜리 중노동임에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철저하게 적용되고 있다. 회의(본회의와 상임위 등)가 있는 날 출석체크를 안 할 경우엔 50유로(약 7만 5천원), 휴가-병가신청도 안 하고 빠질 경우엔 100유로, 몸이 아파서 빠질 경우엔 의사의 소견서 첨부하되 20유로, 기명투표 시에 빠지면 추가로 50유로가 삭감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런저런 이유로 회의에 불참하면 빠듯한 세비마저 제대로 못 챙길 처지다. 우리처럼 일 안하고도 꼬박꼬박 세비를 타가는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P5C@
작년에 독일은 통일 15주년을 맞이했다. 필자가 참석한 통일관련 세미나에서도 각종 문제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만큼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보다 국력도 강하고 선진정치를 행하는 독일의 사정도 이런데, 한반도의 현실을 고려하면 갈 길이 멀다. 다음에는 독일정치의 큰 인물, 정치제도, 정당의 활동과 현황 및 통일 독일의 현실은 어떤지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보겠다.

서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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