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인하대 교수

1999년 동주민자치센터가 시범실시 되고 그 후 읍.면으로 확대되면서 ‘주민자치’라는 말이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지방자치가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어렵게 되었다(강기홍, 108).
먼저 지방자치를 단체자치와 주민자치로 구분하여 논의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본다. 이 논쟁은 독일에서 비롯된다. 독일에서 1808년 지방자치제도(도시법)가 시행된 이후에 19세기 중엽에 와서야 지방자치법에 자치개념이 등장한다. 독일에서 자치개념이 널리 사용되면서 자치개념에 대한 논쟁이 100년을 넘게 지속되었다. 정치적 의미의 자치개념(주민자치)과 법적인 의미의 자치개념(단체자치)간의 논쟁이 있었지만 지방자치의 이해를 돕기는커녕 지방자치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해를 초래하기도 했다. 오늘날 독일에서는 이러한 개념으로 지방자치를 설명하는 견해는 없다(자세한 것은 이기우,1996 참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지방자치를 100년 전의 독일이론을 답습하여 지방정부와 국가의 관계(외부관계)에서 지방자치는 단체자치이고, 지방정부와 주민과의 관계(대내관계)에서 주민자치라고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최창호/강형기,2016,82).
필자는 지방자치를 주민자치와 단체자치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지방자치를 그 개념요소에 따라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먼저 지방자치는 누구의 자치인가 하는 문제이다. 즉, 지방자치의 주체문제이다. 다음으로 지방자치는 무엇에 대한 자치인가 하는 문제이다. 즉, 자치의 대상의 문제이다. 셋째로, 지방자치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의 문제이다. 즉, 지방자치의 방법의 문제이다.이기우(인하대 교수)
 먼저 지방자치의 지방자치는 지방정부의 자치이고 지방정부는 주민의 단체이다. 즉 지방정부는 공법상의 지역사단(地域社團)이다. 사단은 사람의 단체이다. 지역사단은 각 지방정부의 자치구역에 사는 사람(즉, 주민)의 모임을 실체로 한다. 즉 지방정부는 주민의 단체이고, 주민을 그 구성원으로 한다. 지방정부의 자치로서 지방자치는 결국 주민의 자치를 의미한다. 지방자치는 궁극적으로 지방정부를 구성하는 주민의 자치, 즉 주민자치이다. 다른 말로 지방자치는 집합체로서 주민의 자치라고 할 수 있다. 지방자치권은 결국 주민의 집합적 권리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지방자치를 이해함에 있어서는 무엇에 대한 자치인가에 대한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즉, 자치의 대상이 문제된다. 이는 결국 헌법과 법률에 의해서 정해진다. 우리 헌법은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라고 규정하고 있다. 주민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므로 주민복리사무는 결국 지역적 사무를 의미하게 된다. 지방자치의 대상은 법률에 열기한 것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법률에 달리 정하지 않는 한 모든 주민복리에 관한 사무를 의미한다. 이를 전권한성의 원칙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는 기초지방정부에 해당하는 것이고 광역지방정부는 법률에 규정된 사무에 한한다고 할 것이다. 국가사무도 광역 지방정부의 사무처럼 법률에 명기된 것에 한한다.
셋째로, 지방자치를 이해함에 있어서는 자치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자치란 자치주체의 자기결정을 의미한다. 사적자치가 개인의 자기결정을 의미하듯이 지방자치란 결국 지방자치의 주체인 주민의 자기결정과 그 결정에 대한 자기책임을 의미한다. 주민이 자기결정으로 스스로를 책임을 지는 것이 된다. 이 점에서 지방자치는 결국 지방차원에서 ‘치자와 피치자의 자동성’을 의미하게 된다. 이는 결국 지방차원의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그런데, 읍.면.동의 주민자치센터 혹은 주민자치위원회, 주민자치회 등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자치개념의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개념의 혼란은 사고의 혼란을 의미하며 사고기능의 마비를 가져온다.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래서 조지 오웰은 1984년에서 전체주의 국가가 국민들의 비판적 사고기능을 마비시키기 위하여 왜곡된 개념의 신어(新語)를 국가사업으로 보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방자치는 본질적으로 주민자치이다. 주민들의 자기결정 내지 자기지배와 자기책임이다. 자치대상인 자치사무에 대해 자치주체인 주민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읍.면.동에는 주민들이 자기결정을 할 사무도 보장되어 있지 않고,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할 권한도 없다. 주민들의 결정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징수할 수도 없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읍.면.동의 ‘주민자치’는 주민자치가 아니다. 따라서 지방자치가 아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을 강변하는 조지 오웰의 오세아니아 같은 발상이다(Orwell, 10). 만약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지방자치가 아닌 것이 지방자치로 둔갑할 우려가 있다. 현재의 읍.면.동 ’주민자치’가 일반화되면 시.군.자치구와 시.도의 지방자치도 지방자치가 아닌 것으로 변질할 위험이 있다. 이에 현재의 읍.면.동 주민참여형태를 주민자치라고 불러서는 안 되며, 현상에 부합하는 적절한 개념으로 대체해서 불러야 한다.
물론 필자는 읍.면.동에 진정한 지방자치 즉, 주민자치를 실시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 지방자치의 역사에 있어서 치명적인 실수는 읍.면자치를 폐지하고 군자치를 실시한데 있다고 본다. 읍.면자치를 폐지함으로써 풀뿌리 자치는 실종되었고, 주민들은 자치적 행동규범과 책임, 효과를 익히고 체험할 기회를 상실하게 되었다. 주민생활이 주민의 결정에 좌우된다는 자치체험과 자치책임을 학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군.구자치하에서 주민은 실명으로 구체적인 생활정치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익명과 통계숫자로 참여하는 추상적인 정치 내지 권력정치의 객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이고 책임성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고 지방의 주인이 되어야 할 주민은 거대규모의 시.군.구 자치제하에서 수동적이고 무책임한 관리대상으로 전락한다. 지금이라도 읍.면.동을 기초지방정부로 환원하여 진정한 주민자치가 풀뿌리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즉, 읍.면.동의 지방자치이고 읍.면.동 주민자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