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검찰총장 사임 압력의 진실 추가*

 남의 나라 권력 악취를 이야기하기엔 우리 주변의 냄새가 너무도 고약하다. 하지만 권력의 본질은 동서와 고금을 떠나 비슷한 것이기에 지금 미국 정치의 중심 워싱턴에서 요란하게 터져 나오는 소위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잠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미국 정치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선거 반칙행위, 근현대 외교사에 기록될 막장 깡패 외교의 놀라운 사례에서 크게 배울 대목이 있어서다.

 ● 군사원조 예산 미끼로 정적 수사 요구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을 관행 파괴자(disrupter)라고 부를 정도이니, 기괴한 짓 자체에 놀랄 이유는 없다지만 지난 7월 25일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2020년 미국 대선 상대 후보로 유력한 조 바이든 관련 수사를 요구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엔 벌어진 입이 닫히질 않을 정도이다. 

 지난주 워싱턴포스트의 특종보도로 터져 나온 사건의 진상을 지금까지 일부 드러난 부분만 요약해보면 이렇다.

 『CIS연방 시절인 1996년 핵무기를 모두 포기한 우크라이나는 2014년 러시아의 군사개입으로 총 한번 못 쏴보고 크리미아 반도를 빼앗겼다. 국민의 좌절했고, 경제는 나락에 빠지고 정치는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흔들렸다. 

 2019년 5월 대선에서 미국과 서방은 무능하고 부패한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의 재선 대신 친서방 성향을 분명히 한 코미디언 출신 정치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후보를 밀어 당선시킨다.

 영국과 EU 국가들이 서둘러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그런데, 미국 정부의 태도가 이상했다. 트럼프는 새로 당선된 젤렌스키와 2달이 넘도록 전화 통화도 하지 않았고, 의회가 지출을 의결한 군사협력 지원예산 2억5천만$의 집행도 유보시켰다. 쌍수를 들고 우크라이나 새 정부 지원에 앞장서야 할 미국 정부가 러시아와 흡사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 7월25일 통화의 진실

 그 이유는 곧 드러난다. 올해 7월 25일,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첫 통화에서다. 여기서 트럼프는 2016년 중단된 우크라이나 최대 가스회사 부리스마(Burisma) 회계부정 사건을 다시 수사할 것을 요구한다. 무려 아홉 번에 걸쳐 관련 언급을 하며 압박했다. 이게 해결돼야 군사협력 예산이 집행될 거란 점도 분명히 했다.

 ※부리스마(Burisma)는 우크라이나 최대 에너지 회사. 미국 前부통령이자 현재 가장 유력한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의 아들 Hunter Biden이 고액 연봉의 임원으로 있었던 기업. 바이든이 부통령 시절인 2016년 우크라이나 검찰의 수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있는 곳이다.

 트럼프는 동유럽 외교에서 전략요충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중단시켜놓고, 젤렌스키에게 자신의 정적 관련 검찰 수사를 종용한 것이다. 

 초강대국 대통령의 노골적인 압력 전화를 받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이 언론에 당시 상황을 설명한 대목에 사건의 진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 관계에 가로놓인 부패사건 수사를 마무리함으로써 우크라이나의 이미지를 개선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 줄리아니, 젤렌스키 보좌관 스페인 비밀회동

 트럼프는 후속 조치를 위해 자신의 개인 변호사인 Rudy Guiliani를 만나 상의하란 디테일까지 요구를 했고, 젤렌스키의 고위 보좌관과 줄리아니는 곧바로 스페인에서 만나 관련 논의를 하게 된다.』

 미국 대통령이 우방국에 대해 의회가 승인한 군사지원 예산을 붙잡아 두고, 다음 대선에서 맞붙을 자신의 상대를 곤경에 빠뜨릴 검찰 수사를 우방국 대통령에게 요구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외교 패악질이다. 

 ● 고위 정보관리의 내부고발

 최악의 깡패 외교이자 정치 공작질이 세상에 드러난 계기는 백악관 고위관리의 ‘내부고발 절차’(whistle-blow process) 였다. 트럼프-젤렌스키 통화에 관여한 백악관 고위 정보기관 관계자가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심각하고 위급한 내용’이라며 내부고발을 접수(8월12일)했고, 그 사실을 지난 수요일(18일) Washington Post가 취재해 폭로한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와 언론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증거이다. 닷새째 관련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사실상 접어뒀던 탄핵 청문회 개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탄핵 신중론자인 하원 정보위원장 애덤 쉬프(Adam schiff)마저 탄핵 절차로 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민주 탄핵 신중파, ‘탄핵으로 간다’

 쉬프 위원장은 “우리는 이미 루비콘江을 건넜을 수도 있다. 나는 탄핵의 길에 들어서길 무척 망설여왔지만, 탄핵이 그의 악행에 상응하는 유일한 처방일 수 있다.”(We may have crossed the rubicon here.. I have been very reluctant to go down the path of impeachment…but…that may be the only remedy that is co-equal to the evil that conduct represents.)고 했다. 

 얼굴에 철갑을 한 트럼프지만 쏟아지는 언론의 보도에 부인만 할 수는 없었던지, 문제의 통화에서 바이든이 거론된 건 시인했다. 그렇지만 통화 기록도 정보기관 관계자의 내부고발장도 공개하지 못하겠다는 태도이다.

 ● no collusion → no quid pro quo

 이번에는 ‘대가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no quid pro quo)는 말과, ‘바이든을 해치려거나 그 사건에 묶어두려는 게 아니다’(I’m not looking to hurt Biden or even hold him to it)란 말을 반복하고 있다. 뮬러특검 보고서 때, '공모는 없다'가 변이한 것이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의 논조는 이번 사건이 그간의 많은 「트럼프짓」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행태라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우크라이나 전화스캔들은 트럼프가 자신이 난공불락임(invincibility)을 확신한다는 의미’라고 썼다. 

 싸구려 법논리를 동원해 내부고발장 의회 제출을 거부하고 있는 행태는 ‘트럼프와 뒤틀린 민주제도(warping of democratic governance)’란 말로 비판하고 있다.

 ● 뒤틀린 민주주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어떤 양태로 진행될지 예측은 쉽지 않지만, 이 사건이 미국 대통령의 직권남용(abuse of power)의 대표 사례로 정치학 교과서에 남을 것이다. 권력의 행태를 폭로하는 뉴스의 표면에는 거짓과 가식이 가득하지만, 뉴스의 저변에는 진실과 교훈이 흐른다는 점도 일깨운 사례이다.

 우방국 대통령에게 자신의 정적을 수사하라고 압박하는 트럼프의 정신세계는 100% 내년 재선에 몰입된 상태임이 분명하다. 판단체계가 뒤틀어진 상태(warping)이다. 

 그런 트럼프가 포괄적 비핵화 원칙을 견지해온 존 볼튼을 내쫓고 폼페이오를 견제하면서 김정은과 ‘새로운 방식’(a new method)을 거론하고 있다. 그래서 24일 뉴욕 한미정상회담을 걱정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 주목되는 25일 뉴욕회담

 다음날 25일엔 트럼프와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가 유엔에서 회담을 한다. 세계가 주목할 회담에서 술수의 달인이 코미디언을 속일까, 코미디언의 재치가 협박 외교를 넘을까. 회담 뒤 기자회견을 지켜보자. 

 아마 젤렌스키는 내년 11월 미국이 누굴 다음 대통령으로 뽑을지 확신이 없기에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참고/2016년 3월 우크라이나 검찰총장 사임요구 진상]
 ※ 7월25일, 트럼프의 수사요구는 나름의 근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 그에 앞서 美바이든 부통령이 2016년 3월 우크라이나 Kiev 방문時 검찰총장(Viktor Shokin) 해임을 요구한 것도 사실. 

 문제는 바이든의 해임 요구가 자신의 아들(Hunter Biden)이 임원으로 있는 우크라이나 가스회사 Burisma 수사를 막기 위한 것이었는지다. 

 당시 검찰총장 Viktor Shokin(2015.2.10.~2016.5.29)은 2015년 포로센코 대통령의 임명을 받았으나 당시 우크라이나의 국민적 열망인 반부패 수사에 소극적이어서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었다. 본인 역시 각종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2016년 2월엔 급기야 자신의 측근 검찰 부총장 Vitaliy Kasko가 항의 사임했을 정도.
 
 EU 등 유럽 국가 외교사절은 우크라이나 기업들의 불공정·부패행위에 대해 제기한 각종 수사가 아무런 진전이 없어 사업을 할 수가 없다면서 외교채널로 강력히 항의하는 상황이었고, 오바마 미국 정부도 같은 입장이었다. 이 시점에서 Joseph Biden 부통령이 키에프를 방문해 Shokin의 해임을 요구한 것이다.

 Shokin은 자신의 부총장이 항의 사임한 이후, 사임발표와 이를 번복한 업무복귀 선언을 반복하다가 결국 2016년 5월 우크라이나 의회의 불신임 표결로 해임됐다.
Shokin은 올해 5월 돌연 기자회견을 열고 ‘2016년 바이든이 자신의 해임을 압박한 이유가 자신이 Hunter Biden 소속 회사인 Burisma를 수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Shokin의 행태를 비판하고 사임했던 부총장 Kasko의 증언은 다르다. 2012년부터 진행돼온 Burisma 수사가 Shokin 임기 중엔 오히려 완전히 중단됐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 바뀐 것은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했다.//
 

저작권자 © 뉴스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