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동 충남대 교수

1. 자치구역의 근린화

 자치의 본질은 주민주권을 통한 공유서비스 공급의 자치관리 폴리스(polis,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주민은 주권자로서 자치관리 폴리스에 참여하여 의사결정하는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체험하면서 통치자로서의 리더십을 길러내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리더들이 양성되고, 이들은 전문성에 입각한 덕성(arete)를 함양하여, 폴리스로서의 자치역량을 길러내고, 외부의 다양한 폴리스들과의 유대와 신뢰를 형성하여 연합체를 구성하여 보다 광역적인 공공서비스의 공급을 결정하고 관리하는 정부를 운영하게 되는 것이다. 폴리스이기에 자치입법과 자치관리가 중요한 요소이며,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분립시켜서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제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가장 기초적인 자치구역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즉 자치에는 구역을 자치적으로 관리하는 자치체도 있지만, 자치체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풀뿌리의 다양한 개인들이 자유롭게 모인 공동체가 있어야 하고, 이들 공동체가 자치하는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공동체의 자치 없이 바로 자치체를 형성하려고 하면, 자치과정에서 오는 갈등과 이기적 행동들을 극복하기가 어려워 외부로부터의 통치관리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공동체가 형성되고, 공동체의 필요한 공유서비스를 자치관리하는 공동체자치의 경험과 역량이 곧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되는 것이다. 사회적 자본의 기반이 없이는 지방자치의 실질화도 쉽지 않고, 민주주의의 발전도 어려워진다.

이 점에서 개인과 가정들이 네트워크화되거나 특정한 목적을 위한 공동체를 형성하여 폴리스(polis)를 경험할 수 있는 제도설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 공동체 자치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보다 광역의 공공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한 자치체를 형성할 수 있는 상향적 자치제도 설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만일 한국의 지방자치를 재도입할 때, 진지한 자치제도설계를 어떻게 해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성숙시킬 것인가에 대한 학계와 전문가들의 논의가 있었다고 하면, 한국의 지방자치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지방자치를 재도입할 때인 1980년대 후반, 국가영역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지방자치를 부활하여야 한다는 정치적 투쟁과정 속에서 정파적 이해관계의 타협을 통해 지방자치가 재도입되었다. 그리하여 당시의 지방행정제도였던 시군자치와 도자치를 그대로 계수하였던 것이었고, 도시지역인 광역시구역에도 2층 자치를 평등하게 획일적으로 도입하자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광역시도와 시군구의 2층제 이중자치가 제도적으로 도입되었다. 결과적으로 광역자치행정에 도농분리방식이 도입되었고, 기초자치행정에도 도농을 분리하는 시군자치를 도입하였다. 여기서 도농분리방식이라 함은, 농촌지역이 도시화가 되면, 도시로 경계를 별도로 구분하여 기존의 농촌지역인 군에서 독립시켜 분리(separation)하는 방식이다. 광역행정기법 중에서 급진적 방법 중의 하나이다.

한편, 근린구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읍면동 구역에는 자치를 도입하지 않았다. 그리고 국가사무를 처리하는 행정관리계층으로 둔 셈이었다. 그리고 통리계층에도 통장과 리장이라고 하는 관변조직을 두고, 시민사회와 소통하려고 하였다. 여기서 리계층은 농촌지역으로서 지역에 따라서는 리장을 마을총회를 통하여 선출하기도 하였고, 이들을 읍면동장이 임명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즉 리단위의 자치에 상위계층인 읍면단위에서 통제하는 민선관치(民選官治)의 연결관계를 형성하였다. 국가의 관점에서는 대행적 관리였고, 시민사회의 관점에서는 공동체 자치였지만, 법적 자치권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지 못한 취약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태는 2000년에 주민자치위원회가 도입된 이후와 2013년 이후 주민자치회 시범실시가 도입된 이후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해, 읍면동 계층에서는 자치다운 자치가 여전히 도입되지 않은 것이고, 통리계층에는 리장선거를 주민총회에서 실시하는 일부 농촌지역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자치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주민주권에 입각한 주민자치개혁

계층

구역

자치여부

주민주권에 입각한 자치개혁

광역자치행정

광역시/

자치

 

기초자치행정

/

자치

 

근린구역

읍면동

관치

자치제도설계

(읍면 자치단체화, 동은

아파트단지협의체)

공동체

통리

관치

(,농촌의

리지역에는 자치)

자치제도설계

(리는 총회형자치, 통은

아파트단지 자치관리에 준하게)

 

2. 총회와 자치재정에 입각한 근린정부구성

자치다운 자치를 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주권자로서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정부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정체로서의 정부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는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정치 체제의 구조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아테네의 민주정치의 역사를 보면, 기원전 11세기에는 왕정이었다가 귀족정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리고 평민과 귀족간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스파르타는 군사화를 기반으로 한 전체주의로 이행해 간 반면, 아테네는 귀족의 특권을 없애고 민중의 권력화를 통해 민주주의로 이행하게 된 것이다.

기원전 5세기경 아테네의 민주화개혁은 드라콘의 만민평등법, 솔론의 민회(ekklesia)창설, 클라이스테네스의 구역제도로서 데모스(demos) 등을 만들어서 혈연기반의 통치제제를 지역기반의 통치체제로 전환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500인회(Boule)는 각 데모스에서 인구비례에 따라서 추첨으로 대표를 선출하였고, 에피알레스는 기원전 462년에 원로귀족의 모임인 아레이오스 파고스(Areios Pagos)의 권한을 민회로 옮김으로써, 민회가 정부관리에 대한 임명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기능을 이관받게 되었다.

민회의 장소는 아고라(Agora)와 프닉스언덕에서 이루어졌고, 40회이상의 회의를 하였다고 한다. 중요안건의 경우 정원이 6000명이었고, 재정과 외교, 도편추방 등 공공질서유지에 대한 법적 기반 등 주요문제에 대한 토론과 의사결정을 하였다. 기원전 4세기에는 민회참석에 대한 수당지급도 하였다고 한다. 민회의 진행이 안정성을 가지도록 500인 회의에서 의제를 준비하였다.

500인 회의는 50인이 돌아가면서 35일 정도씩 의석을 지키면서 민회의안준비와 정부관리의 감독, 행정관 임용 등의 기능을 수행했다. 500평의회의장은 매일 추첨으로 선출하는 방식을 택해 특정개인의 영향력을 배제하였다. 구역별로 추첨하여 지역대표성을 높이도록 하였고, 2회 이상 선출이 불가능하도록 하였다.

한국의 주민자치를 자치답게 설계한다고 하면, 아테네의 직접민주정의 자치방식을 벤치마킹하게 될 것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주민자치를 어떻게 재설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민주권에 입각하여 근린구역의 자치를 설계한다고 하면, 구성원인 주민들이세대별로 참여하는 총회를 구성하여야 한다. 근린구역의 공유서비스 혹은 공공서비스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모든 주민들이 참여할 필요는 없을 수 있다. 이 점에서 근린구역에 거주하는 상가나 기업별로 법인주민으로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주민들이 세대별로나 법인주민이 참여하는 총회와 별도로 총회의 운영을 위한 평의회가 필요하고, 이의 선출은 추첨을 통하여 선출함으로써 일부 집단의 영향력을 배제한다. 평의회의 수는 50인정도로 하고, 이중 5명씩 일년을 10회로 나누어서 순환하여 분담하는 상임집행위원회를 둔다.

셋째, 총회에는 근린구역의 공유서비스나 공공서비스의 공급을 위한 법제도적 기반이나 재정과 과세, 대외관계 등을 결정할 수 있는 자치권이 있어야 한다. 특히 주민들에게 주민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과 공유서비스 공급에 필요한 근린세(neighborhood tax)를 부과할 수 있는 자치재정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도록 자치입법권도 근린정부의 총회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

3. 상향적 자치계층형성

자치는 자기입법과 자기통제라고 하는 기본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자치와 자치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연대성과 호혜성이라고 할 것이다. 즉 자치체와 자치체간에 공유서비스의 필요를 규모의 경제에 의하여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광역자치의 기법이다. 광역자치의 기법에는 협의체(COG)를 만드는 것이나 조합을 형성하는 것, 그리고 연합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간단한 경우에는 사무위탁의 방법을 통해서 이웃한 자치체의 공공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연대성과 호혜성의 개념은 공동체의 기본 개념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자치란 내적으로는 자기입법과 자기통제를 통하여 공유서비스를 공급하는 정부이지만, 외부적으로는 다른 자치체들과의 연대성과 호혜성을 가지고 보다 전문적인 공공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형성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상향적(bottom-up) 자치계층을 형성할 수 있는 자치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주민자치가 제대로 설계되지 못한 이유 중에 가장 본질적인 것은 시민사회의 자치의 기본권을 인식하고 있지 않은 채 지방자치와 주민자치를 운영하였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자치를 구성원들의 주권을 인정하고 민주적으로 자기결정과 자기책임을 질수 있는 근린정부의 형성권한을 인정하지 않고 제도설계를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주민자치위원회이고 주민자치회의 시범실시였다.

여기에 더하여 이들의 연대성과 호혜성을 가지고 협의회나 중앙회를 조직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지 않아서, 원자화된 주민자치 조직들이 행정의 통제와 관리에 의존하고 예속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만일 협의회나 연합회가 조직화되면, 보다 영향력을 가지고 국가영역에 해당하는 행정관리과정에 의견을 표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에서는 협의체나 연합체를 조직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현상은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2010년의 주민자치회 모델연구에서는 주민자치회들 간의 네트워킹에 의한 협의회와 연합회를 제도설계에 반영되어 있었지만, 2013년의 시범실시에서는 이러한 광역적 자치조직을 제도설계과정에 도입하지 않았다.

또 하나 상향적 자치계층의 형성에서 빠뜨려서는 안 되는 것이 공동체자치와 자치체와의 관계이다. 이 관계도 상향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할 것인데, 공동체자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공간에 대해서는 자치체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 라는 문제가 있다.

이 경우 자치체는 공동체자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공간에서 필요로 하는 공유서비스에 대해서는 시혜적으로 지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 자치체의 공공서비스는 최소한에 머물러야 할 것이고, 주민들이 공동체를 형성할 때까지 한시적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치체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는 공동체자치가 이루어지는 공간과 비교하여 차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평하게 할 필요가 있다. 즉 과잉으로 공급되어서도 안 된다.

현재의 주민자치회 시범실시는 국가행정과의 관계에서 읍면동의 행정관리에 부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읍면동은 국가행정과 자치행정의 깔대기 조직이다. 다시 말해 중앙정부-광역지방자치단체-기초지방자치단체-읍면동으로 이어지는 하향적 관리계층에서 행정의 협력적 참여조직으로 평가된다.

서울시의 서울형 주민자치회의 경우도 현재의 주민자치가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지원하기 위한 지원관을 동과 자치구에 공무원신분으로 임명하여 배치하고 있다. 또 동지원관과 자치구지원관의 관계도 하향적 지휘통제관계로 되어 있어, 주민자치회의 위원들의 입장에서는 주민자치가 스스로의 역량을 함양하기 위한 예산투입이 아니라는 비판을 하게 된다. 차라리 그 예산을 주민자치회에 직접 주어서 주민자치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인력을 직접 채용하도록 하는 것이 주민자치회의 자치적 역량강화에 기여할 것이란 점이다.

 

*출처: 김찬동(2019), 주민주권과 민주주의: 주민자치관련 중앙정부정책 및 사례분석, 마을자치와 마을민주주의 공동학술회의 발표논문집, 한국NGO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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