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프로필] 
△1945년생. 마산공업고, 서울법대 법학과.

△민주화운동 :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조직국장,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정책연구실장,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무처장, 전  태일재단 초대 이사장, 공안통치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 (사)백범정신실천겨레연합 공동대표.

△정치활동 : 민중당 정책위원장, 민주국민당 최고위원, 한국사회민주당 대표, 녹색통일당 대표.

△현재 :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 국민의힘 경남 김해시을 당협위원장.

◇‘장기표는 혁명아’다!

  어스름한 저녁때, 얼굴 전체가 먼지투성이인 가운데 콧구멍만 불그스레한 살이 드러나 반질반질한 소년이 먼 산을 쳐다보며 한숨 짓는다. 작은 방앗간에서 방아 일을 도왔던 소년은 매일 같이 먼지 속에 몸을 섞으며 생각했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

‘혁명아 장기표’.

  그랬다. 초등학생 시절, 그 어린아이의 마음이었다. ‘세상을 바꾼다’는 혁명이다. 어린아이가 혁명을 꿈꿨다. 어찌! 발칙하다.

  혁명을 마음에 품은 아이, 장기표의 실체다.

◇‘장기표는 열혈남’이다!

  대학 입학 후 30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졸업장을 딴 이 나라의 대학생. 시도 때도 없는 수배, 구속,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는 반복된 고문, 몇 차례인지 기억도 못할 정도의 학교 제적의 고난을 자초한 이 나라의 대학생. 혼돈의 시대, 어둠 속에서 이 대학생의 결기는 더욱 굳어졌다.  

“그래도 세상을 바꿔야 한다.”

‘열혈남 장기표’.

  이 나라 명문대생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앞길은 창창했다. 장기표는 그러나 안위 대신 고행을 자초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비인간적 세상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더욱 더 강해졌다. 청춘의 끓는 피가 뜨거웠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소년 시절 마음만이 간절했다.  그리고 그 ‘맘(마음)대로’ 대학 시절의 청춘을 불살랐다. 

  1966년 서울법대 신입생이 된 장기표는 30년이 지난 1995년이 돼서야 졸업생이 됐다. 그 세월에는 학생운동, 노동운동, 재야운동 그리고 진보정치활동에 이르기까지 장기표의 절절한 삶이 녹아 있다.

‘노동일꾼’이다!

  1970년 11월 15일 서울 성모병원 앞 3.1 다방, 20대 청년이 40대의 중년 여성과 마주 앉았다. 그 성모병원에는 불에 탄 20대 청년 전태일의 시신이 누워 있었다. 평화시장. 노동자. 분신...

“아드님의 뜻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찾아 왔습니다.”

‘노동일꾼 장기표’.

  이날, 서울법대생이던 장기표는 ‘전태일 분신 사건’을 접하자마자, 그의 시신이 안치돼 있던 성모병원으로 달려갔다. ‘전태일의 영혼’과 첫 공명한 순간, 장기표의 ‘노동운동’은 서막을 열었다. 대학생으로서가 아니라, ‘같은 청년’으로서, 아니 이 나라에 태어난 ‘같은 생명’으로서, ‘노동일꾼’ 장기표의 걸음은 그렇게 시작됐다. 

  장기표는 전태일 사건이 발생한 처음부터 4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전태일재단 이사장으로 역할 하는 등 그의 어머니를 통한 노동자 전태일의 ‘영혼투쟁’에 함께 했다. 장기표도, 전태일도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당위에서 둘이 아닌 하나로 만나기에, 장기표의 그 길은 자연스런 선택이었다. 

◇‘장기표는 운동권 대부’다!

  5차례에 걸친 9년여의 구속, 12년이 넘는 수배, 반복된 고문. 전태일의 서울법대 학생장(1970년),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1971년), 김대중납치 규탄시위사건(1973년) 민청학련사건(1974년), 청계노조사건(1977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1980년), 5.3 인천사태(1986년), 중부지역당 사건(1993년).

  박정희 정권에서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지는 그 엄혹한 압제의 시대, 그리고 그 이후 민주세력의 혼돈 시대까지 관통하는 대표적 민주투사. 

“평생 아내와 살 날이 별로 없겠구나.”

‘운동권 대부 장기표’.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이어 노동운동, 재야운동에 걸쳐 민주화 투쟁의 신화이자 전설로 불리우는 장기표에게는 1970년대부터 수십년 세월, 정상적인 삶은 ‘남의 얘기’였을 뿐이다. 그 탓인지, 덕인지 생각지도 못했던 호칭이 남겨져 있다. 민주화운동 인사들 중 가장 긴 수배와 구속의 세월들을 헤쳐 나온 이 나라, 한사람의 국민에게 붙여 준 역사의 훈장이다. 

◇‘장기표는 감갈공명’이다!

  서울구치소, 안양교도소, 마산교도소, 대구교도소, 전주교도소, 홍성교도소, 공주교도소. 성동구치소 재판투쟁, 재소자인권투쟁, 장기수 석방투쟁... 육탄충돌, 단식, 편지, 쪽지... 

“교도소가 내집이다.”

‘감갈공명 장기표’.

  20대부터 50대를 넘어서까지 30년이 넘는 세월, 장기표는 이 나라 감옥을 안방처럼 드나들었다. 전국 곳곳의 교도소를 유람하듯 전전했다.
구속은 차치하더라도, 구류 등으로 끌려 들어간 경찰서 유치장은 또 어느 정도이던가.

  장기표는 그러나 자유를 박탈당한 한계상황 속에서도, 온갖 협박과 회유, 고문 속에서도, 민주화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노라 하는 운동권 인사들조차 범접할 수 없는 ‘교도(矯導)운동’이라는 독보적 길을 개척했다. 때로는 몸으로 부딪혔고, 때로는 스스로를 굶겼고, 때로는 손으로 역사를 남겼다.

  사상범이기도 했고, 정치범이기도 했고, 죄의 이름도 가지각색으로 붙었던 장기표를 상징적으로 웅변하는 또 하나의 칭호가 감옥의 제갈공명, ‘감갈공명’이다. 한때 옥살이를 같이했던 민주화운동 동지가 장기표의 탁월한 옥중 투쟁, 여기에 더해 수배 중의 신출귀몰한 도피 행보 등에 감탄하면서 명명한 것이다. 교도소를 ‘내 집’으로 생각할 정도의 장기표이니 그런 표현이 넘치지 않다.

◇‘장기표는 정치문화재’다!

  민중당 1패...2패... 3패... 4패... 5패... 6패...7패. 도합 7전 7패. 30년 가까운 세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판판이 패한 기이한 정치 여정. 그래도 무소의 뿔처럼 거침없이 정치의 길을 나서는 그 걸음.

“죽을 때까지 정치한다.”

‘정치문화재 장기표’.

  장기표가 스스로 자신에 대해 유일하게 붙인 칭호가 정치문화재다. 정치에 대한 결기의 표현이다. 장기표는 제도정치권 진입을 위한 총선 도전을 7번 해서 전패했다. 독자정당을 통해 5전 5패, 기존 정당의 옷을 입고 2전 2패다. 1992년 첫 도전을 했으니, 강산이 세 번 바뀔 만큼 긴 세월의 상처다. 장기표는 그러나 여전히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고, 또 일어나며 ‘정치의 길’을 걷는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소년 시절 품었던 꿈을 이뤄야 하기에.

◇‘장기표는 자유인’이다!

  자유의지, 자아실현, 인간해방. 몸의 철학, 노동의 철학, 사랑의 철학. 신문명, 민주시장주의, 녹색사회민주주의. 

“정보화 세계화로 신문명 도래하니 바라던 인간해방 그 길을 찾았구나. 이제야 세상 바꿔서 해방세상 이루리.”

‘자유인 장기표’.

  그 가슴은 ‘자유’를 품고, 그 눈은 ‘자아’에 꽂히고, 그 발은 ‘해방’으로 내달렸다. 몸에서 우주의 섭리를, 노동에서 삶의 보람을, 사랑에서 세상의 평화를 깨우쳤다. 신문명을 앞서 보고, 민주시장‧녹색사회를 제시했다.

  장기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하는 일에서 자아실현의 보람과 기쁨을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 ‘인간해방의 세상’이 궁극에 이르러야 할 목표다. 민주화운동은 그 길을 가는 방편일 뿐이다. 장기표가 치열하게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뛰면서도, 끊임없이 이 시대 요구되는 철학과 사상, 이념, 정책까지 스스로 묻고 답을 찾아온 이유다.

◇‘장기표는 마지막 재야’다!

  해방의 논리와 자주사상, 사랑의 정치를 위한 나의 구상(전 8권), 지구촌시대 민족발전전략, 문명의 전환, 문명의 전환 새로운 비전, 신문명 국가비전, 한국경제 이래야 산다. 지못미 정치, 지못미 경제, 참된 진보정치를 선언하며, 불안 없는 나라 살맛 나는 국민, 청년에게 고함, 장기표의 행복정치론, 장기표의 정치혁명, 통일 초코파이, 새벽노래, 우리 사랑이란 이름으로 만날 때 ...

모두 다 책 제목이다. 모두 다 저자가 장기표다.

“새끼 손가락이 동상에 걸렸다.” 

‘마지막 재야 장기표’. 

  1990년대 중반, 재야운동권 주요 인사들이 ‘양김’, 김대중과 김영삼 품으로 경쟁적으로 안겨 기존 정치권으로 들어가면서 ‘재야는 죽었다’는 탄식이 흘러나온 시기에 장기표가 홀로 재야에 남은 상황에 주목한 한 중앙언론을 통해 대중화된 칭호다.

  이에 더해 장기표는 또 다른 의미에서 ‘마지막 재야’다운 노고를 스스로의 삶에 바쳤다. 장기표는 민주화운동의 전 과정에 30여 권에 달하는 저서는 물론 재판 과정의 정세분석서, 항소 이유서, 옥중에서 만들어 낸  비밀 문건인 편지와 쪽지 등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분량만 해도 셈 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하지만, 무엇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사상과 이념, 전략을 생생한 직간접 체험으로 기록했다는 데서 장기표만의 남다른 또 하나의 족적으로 평가된다. 추운 겨울, 옥중에서 글짓기를 강행하다 손가락에 동상이 걸려야 했던 ‘마지막 재야’로서 20세기에서 21세기에 걸친 한 시대의 묻혀지고 잊혀져선 안 되는 역사를 ‘마지막’까지 후대에 공명시키는 성과인 까닭이다.

◇‘장기표는 영원한 찐보’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
‘혁명아 장기표’의 소년 시절 마음이다.

“그래도 세상을 바꿔야 한다.”
‘열혈남 장기표’의 학생운동 시절 의지다.

“아드님의 뜻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찾아왔습니다.”
‘노동일꾼 장기표’의 노동운동 시절 결기다.

“평생 아내와 살 날이 별로 없겠구나.”
‘운동권 대부 장기표’의 재야운동 시절 실상이다.

“교도소가 천국이다.”
‘감갈공명 장기표’의 교도운동 시절 감탄이다.

“죽을 때까지 정치한다.”
‘정치문화재 장기표’의 정치적 여정이다.

“정보화, 세계화로 신문명 도래하니 바라던 인간해방 그 길을 찾았구나. 이제야 세상 바꿔서 해방세상 이루리.”
‘자유인 장기표’의 사상적 여정이다.

“손가락이 동상에 걸렸다.” 
‘마지막 재야 장기표’의 역사적 여정이다.
“꿈이 있고, 확신이 있고, 열정이 있다.”
‘영원한 찐보 장기표’의 현재진행형 여정이다.

  혁명아, 열혈남, 노동일꾼, 운동권 대부, 감갈공명, 정치문화재, 자유인, 마지막 재야.

  장기표는 자신에게 붙여지는 이 같은 칭호들에 대해 “과분하다” 손사래를 친다.

  그러나 여기에다 또 하나의 칭호, 장기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그 일생을 관통하는 ‘영원한 찐보’를 세상은 더할 수밖에 없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소년 시절의 초심을 70대 중반이 넘은 현재까지 흔들림 없이 부여잡고, 나아가고 있는 장기표는 ‘진짜 진보’, ‘찐보’라고 지칭해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 영속성을 가미해 ‘영원한 찐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장기표는 ‘신(新)진보’를 자처한다. ‘신(新)문명’의 청사진을 세상에 내놓고 행동해 온 일거수일투족이 사실적으로 뒷받침한다. ‘진보의 이름으로’ 진실을 가리고, 세상을 기만하고, 국민을 오도하는 ‘구(舊)진보’와 대비된다. ‘신진보’는 ‘진짜 진보’를 이름한다. ‘구진보’는 ‘가짜진보’이자 ‘수구적진보’ ‘사이비진보’이고, 그 실제적 정체는 ‘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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