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영원자력기업 로사톰 근무 IAEA 사무차장...공정성 의심
초르노빌 원전 반경 30km의 접근 제한구역 치사선량의 수십 배

그린피스 초르노빌 조사단이 초르노빌 원자로 4호기를 향해 16일  가고 있다.(사진=그린피스)
그린피스 초르노빌 조사단이 초르노빌 원자로 4호기를 향해 16일 가고 있다.(사진=그린피스)

[뉴스캔=황경숙 기자]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18일 러시아군이 지난 2월부터 약 한 달간 점령했던 초르노빌(체르노빌의 우크라이나 발음 표기) 접근 제한구역의 방사능 오염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시간으로 16일부터 이날 아침까지 현지 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 초청으로 진행된 이 조사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 4월 초르노빌 원전 일대 방사능 수치가 정상이라고 밝힌 결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조사 지역은 1986년 원전 사고로 가동 중단된 초르노빌 원전 반경 30km의 접근 제한구역으로, 현재까지도 치사선량의 수십 배에 다다르는 방사선량을 내뿜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은 초르노빌 원전 점령 당시 접근 제한구역에 대형 지하 참호와 방공호를 구축한 것으로 확인되며, 현장에 주둔했던 약 600명의 군인 중 상당수가 고농도 방사능에 피폭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지난 4월 말 초르노빌 원전의 방사능 탐지기가 작동하지 않는 등 위험한 상황에 처했지만 초르노빌 접근 제한구역 내 방사능 수치는 전쟁 이전의 정상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IAEA의 보고서에는 러시아군 주둔으로 인한 접근 제한구역의 방사능 오염 확산 문제를 검증할 객관적인 수치 근거나 구체적인 조사 결과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IAEA는 러시아군이 주둔한 참호의 토양을 채취한 후 그 분석 결과를 공개하지 않은 채, 방사선 수치가 ‘정상’이라고만 밝혀 조사 결과가 신뢰성에 의문을 낳습니다.  

그린피스 독일사무소가 이끄는 현지 조사팀은 영국·벨기에 등 유럽 지역 사무소의 방사선 방호 전문가들로 구성됐으며, 팀원 대다수는 수십 년 동안 초르노빌과 후쿠시마 등 원전 사고로 오염된 지역을 조사한 경험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주 정부 기관인 거주 금지 구역 관리청(State Agency of Ukraine on the Exclusion Zone Management, SAUEZM)을 비롯한 정부 소속 과학자들도 이번 조사에 동행했습니다. 

그린피스는 이번 조사를 위해 토양 내 방사성 물질을 바로 측정할 수 있는 휴대용 장비와 원거리에서 방사선량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린피스 자체 제작 드론 등을 활용했습니다. 

에이드리안 카울(Adrian Kaul) 그린피스 독일사무소 드론 조종사가 초르노빌 접근 제한구역 내 조사를 위해 그린피스가 자체 제작한 드론의 비행을 준비하고 있다.(사진=그린피스)
에이드리안 카울(Adrian Kaul) 그린피스 독일사무소 드론 조종사가 초르노빌 접근 제한구역 내 조사를 위해 그린피스가 자체 제작한 드론의 비행을 준비하고 있다.(사진=그린피스)

조사를 통해 확보한 데이터는 현재 초르노빌 과학자와 함께 분석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20일 우크라이나 정부 소속 관계자들과 수도 키이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할 예정입니다. 

조사에 참여한 숀 버니(Shaun Burnie) 그린피스 독일사무소 수석 원자력 전문가는 "IAEA는 원전 사업의 부흥을 위해 초르노빌 방사능 수치에 문제가 없다고 밝힌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현재 IAEA 사무차장 미카일 추다코브(Mikhail Chudakov)는 1995년부터 러시아 국영원자력기업 로사톰(Rosatom, 전 세계 1위 원자력 기업으로 전 세계 여러 국가의 신규 원전 건설 추진) 등에서 근무한 만큼, 공정성에 의구심이 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린피스는 같은 이유로 지난 3월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에게 미카일 추다코브 공식 업무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린피스는 1986년 초르노빌 원전 사고 직후부터 방사능 오염 지역을 방문하고 그 피해 상황을 조사해왔습니다. 

특히 2006년 현지 과학자들과 공동으로 진행한 조사를 통해 초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20만 명에 달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최근에는 방사성 물질의 확산 방지를 위해 초르노빌 접근 제한구역 내 산불을 막기 위한 캠페인을 펼쳐왔습니다.

초르노빌 접근 제한구역 내 도로의 방사능 농도를 확인하는 스탠 빈센트(Stan Vincent) 그린피스 캠페이너(사진=그린피스)
초르노빌 접근 제한구역 내 도로의 방사능 농도를 확인하는 스탠 빈센트(Stan Vincent) 그린피스 캠페이너(사진=그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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