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웅 국방부장관이 4월4일에 행한 기자회견을 통하여 과거와는 매우 다른
어조(tone)로 앞으로 구체적인 미군과의 제(諸)문제 실무협상에서 한.미간의 불협화음이 다소 드러나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국방장관은 “과거에는 현안을 조용히 해결했으나 앞으로 절충과정에서 만족.불만족이 그대로 노출 될 것”이라고 말함으로서 지난 1일에 행해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삭감에 대한 미국측이 불편한 심기를 담은 찰스 캠벨( Charles Campbell) 미8군사령관의 통상적인 의전을 벗어난 기자회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세계의 경찰국가 노릇을 담당하고 있는 미국의 세계전략운영의 축과 전략은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변화하고 있다.

유럽에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탈냉전 이후에도 폴란드, 헝가리 등의 국가를 받아들여 더 확대개편 하면서 전통적인 군사적인 역할에서 이제는 문화적인 영역까지도 관심을 갖고 다자안보(collective security)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것은 미국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개념과 이를 실천하는 역할을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경제적.군사적 다극체제의 출현 속에서도 결코 멈출 수 없다는 적극적인 개입전략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유럽에서는 이러한 미국의 역할을 미군주둔 당사국인 독일은 물론 독일과 불편한 전쟁의 역사를 경험한 프랑스를 비롯한 모든 회원국들이 큰 불만이 없이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반면에 아직도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의 질곡이 남아있는 한반도가 위치한 동아시아에서는 미국의 전략과 개입이 팽창주의를 지향하는 중국과 민족주의가 더 강화되고 있는 러시아에 의해서 견제를 받는 상황에서 미일동맹의 강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의도하고 있는 ‘한미일 군사동맹이 중국과 러시아의 민족주의 팽창을 견제한다’는 전략이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의도는 최근에 우리정부가 추구하는 ‘균형자론’에 의해서도 일정부분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다.

현재 동아시아에 미국의 군사력 전진배치의 두 축인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역할과 위상이 급격하게 조정되고 있는 전환의 시기에 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의 군사장비의 이동을 포함하여 운영전략의 조정기에 있다. 앞서 말한 윤광웅 국방부장관의 공식적인 ‘미국에 대한 불협화음감수’ 언급이 얼마 전에 우리의 대통령이 강조한 ‘동북아 균형자론’과 맥이 닿아 있다고 판단되기에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닐 것이다.

다소 진보적인 국제정치학도들이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온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의 주한미군의 ‘안정적 균형자 역할’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 하는 것 자체가 일정부분 전쟁억지기능을 수행함으로써 동북아의 세력균형에 이바지 해온 역할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군비통제를 실행하고 실질적인 군축을 이행하는 세부과정에서 주한미군이 장애요인으로 남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축으로서의 주한미군의 역할에 변화가 불가피하고 이제는 탈냉전을 전제로 한반도도 미국의 종속적인 운영전략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세력균형을 주문하는 진보적인 시각이다.

이와 같은 다소 진보적인 견해를 표방하는 일부 학자들은 이제는 오직 미국을 축으로 한 종속적 구조에서 과감히 이탈하여 주한미군으로부터 전시작전권의 환수를 포함한 독자적인 안보역량의 실현을 통하여 전통적인 미국의 군사무기판매 통로로서의 역할도 조정되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을 한다. 미일동맹, 한미동맹 등 미국이 주도하는 종적인 동맹체제에서 과감히 이탈하여 횡적인 연결망(network)의 확충을 통한 보다 재량권이 확보된 군사협력구도의 확립을 주문하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주장을 하는 논리적인 정당성의 근저에 중국과 북한, 그리고 러시아 및 일본을 미국과 동등한 민주주의에 기반한 보편적 이념을 실천하는 믿을 수 있는 친구로 설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국도 좋은 이미지만 갖고 국제정치경제를 이끌어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자국의 국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제국주의적이고 다소 독선적인 정책을 채택 함으로서 약소국들의 원망을 산적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미국을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여러 우방중의 하나로 설정할 수 있는 진보적인 안보환경이 한반도가 위치한 동북아시아에 조성이 되고 있질 않다.

아직도 북한은 우리의 민족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독재국가요, 중국이 추구하고 있는 팽창주의는 갇힌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협소한 국익추구의 도구일 뿐이다. 최근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서 우리가 분개한 이유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유럽에 비교해서 아직 동아시아의 안보지형은 냉전의 골짜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유럽은 역사적인 국가간의 통합실험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안정적인 지역협력구도가 정착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 과오의 인정 및 관용의 측면에서 매우 협소하고, 자기중심적인 세계관 및 정치체제를 갖고 있는 주변국들이 위치한 한반도 주변은 아직도 강력한 힘에 기반한 굳건한 안보동맹체제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진보적인 시각인 미국과도 일정거리를 두고 추구할 우리자신의 아시아전략 마련은 이 깊은 냉전의 질곡을 벗어나고, 예측 가능한 주변국들의 정치민주화가 이루어 졌을 때 가능한 대안(代案)이 될 것이다.

비록 자국의 이익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어도 동시에 냉전시대로부터 우리의 강력한 후원자로 우리의 안보를 책임져온 우리의 우방에게 갑작스런 태도변화를 요구하기에 앞서서 더 인내와 설득력을 갖고 우리의 입장을 조용히 전달하는 지혜와 실사구시(實事求是) 실력이 필요한 것이지, 검증되지 않는 현란한 수사(修辭)가 우리의 국익을 지켜주지는 않을 것이다.

난세(亂世)의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독립성과 창의성을 내세우며 아직은 시기상조로 보이는 ‘조정자 역할’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수단과 방법이 다소 우리의 바람과 어긋난다 해도 우리의 불안정한 안보체제를 추스르고, 제2의 경제기적을 잉태할 토대가 되는 무대를 같이 공유할 진정한 우리의 친구를 더 신뢰감을 갖고 만들어 가는 것이 현자(賢者)의 처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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