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일본을 비난하면

독일에서 일본을 비난하면
누구를 칭찬할 때 당사자 앞에서 하면 하책(下策)이다. 자칫하다가는 상대가 모욕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3자에게 누구를 칭찬하면 그 소식을 들은 사람은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비난은 정반대이다. 꼭 비난할 일이 있으면 당사자에게 직접 해야 한다. 그러면 서로 논쟁하고 싸울 수 있어도 지나고 나면 서로 상대를 이해하고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3자에게 가서 누구를 비난하면 그것은 곧 욕(辱)이 되고 험담이 된다. 그 소리를 전해들은 당사자는 불같이 화를 내게 되고 양자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국제관계에서는 어떨까. 이 법칙은 더 엄격하게 적용된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우리가 일본을 비난할 일이 있으면 대놓고 일본을 향해 말하면 된다. 그렇지 않고 독일에 가서 독일 사람들에게 일본을 비난하면 일본은 이를 욕설이나 험담으로 받아들이며 수치심과 분노로 몸을 떨 것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대통령이 말이다.

나는 독도문제에 관하여 이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주한 일본대사나 외무장관이 말하면 주일 한국대사나 외무장관이 응수하면 된다. 시네마 현이 행동하면 경상북도나 경상남도 의회가 대응하면 된다. 말도 되지 않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니 우리도 대마도를 말하면 된다.

그런데 노 정권의 대응은 궤도를 이탈한다. 먼저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것이다. 일본도 천황이나 수상이 직접 나선다면 모르지만 말이다. 이것은 포커 게임에서 상대에게 나의 패를 모두 보여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나아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독도 차원을 넘어 과거 역사 전반과 유엔의 미래문제까지 여기에 결부시켜 싸움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는다.

이렇게 서둘러 확전을 꾀하면 우리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될까. 당장 일본이 독도를 무력으로 점령할 것도 아닌데 양국관계를 필요 이상으로 악화시키면 두 나라 가운데 어느 나라가 더 큰 손실을 입을까.

이미 밝힌 것처럼 독도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우리의 국력과 국제질서의 재편에서 승부가 결정된다. 국력을 키우고 동맹과 협력을 튼튼히 해야 한다. 싸울 땐 싸워도 협력의 기본틀을 붕괴시키면 안 된다. 그런데 노 정권은 거꾸로만 간다.

그것도 모자라 대통령이 독일에 가서 작심하고 일본을 비난한다. 우리가 독일과 동맹을 맺고 일본과 싸우는 상황도 아닌데 왜 거기에 가서 일본을 말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일본이 우리보다 큰 나라인가 작은 나라인가는 문제가 아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라. 일본이 중국에 가서 우리를 비난하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모두 다 목적은 다른 곳에 있다고 본다. 우선 우리 국민들의 뿌리 깊은 반일 감정을 고조시켜 이를 약화되는 노 정권의 에너지로 삼으려는 것이다. 물론 일시적으로 성공하는 듯이 보인다. 언론에서는 지지도가 많이 오른다고 야단이다. 그러나 그 성공은 오래 가지 못하고 나라와 국민에게 큰 부담만 안겨줄 것이 틀림없다. 일본은 싸울 때는 싸워도 결국 협력해야 할 나라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타협과 해결의 퇴로를 끊은 채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막가는 싸움을 선도하면 결국 더 큰 피해는 우리가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다른 목적도 있을 것이다. 현재 동북아의 질서를 일별(一瞥)하면, 냉전시대와는 물론 성격이 판이하지만, 한.미.일의 축과 북.중.러의 축이 느슨하게 긴장하는 양상이다. 물론 북핵 문제 등에 관하여는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노 정권은 우리가 미국, 일본과 같은 축에 있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독도문제가 불거진 이번 기회에 국민정서를 이 전통적인 축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 한다. 소위 “동북아균형자론”이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를 미국, 일본 축으로부터 떼어내어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알아야 한다. 그들의 음험한 미소 뒤에 숨은 의도를 밝혀내야 한다.

독일과 일본은 동맹을 맺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축국(主軸國)이었다. 독일은 히틀러의 나치체제가, 일본은 천황의 군국주의체제가 제국주의 침략의 원흉이었다. 그런데 독일은 항복을 한 것이 아니라 히틀러가 자살하고 나치체제가 완전 괴멸됨으로써 침략의 막이 내렸다. 그래서 전후 독일의 질서는 자연히 나치의 부정(否正)위에서 세워졌다. 나치가 저지른 침략과 범죄를 부정하고 사죄하는 것이 곧 새로운 질서를 정당화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사정이 달랐다. 천황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끝이 난 것이다. 무조건 항복이라고 했지만, 일본은 승전국인 미국에 대하여 천황제의 존속을 간곡히 요청했다고 한다.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미국은 천황제의 유지는 물론 히로히또 천황을 전범으로 처벌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해서 일본 국민은 침략전쟁의 상징인 천황을 중심으로 다시 전후 질서를 만들게 되었다.

이것이 일본으로 하여금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부정하지 못하고 틈만 나면 이를 정당화하려는 망언을 되풀이하는 구조적 모순이다. 따지고 보면 미국의 전후처리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 때 침략전쟁에 책임이 있는 인물과 체제를 철저하게 처리했던들, 일본 국민들 자신도 그 망령에 사로잡히지 않고, 피해를 입은 나라들도 상처를 헤집는 아픔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오래 전에 이러한 나의 분석을 일본의 지도자들에게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에게 일본이 그만큼 더 피해 당사국들에게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해야 하며, 그럴 때 일본이 장차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겨날 것이라고 충고한 일이 기억난다. 그러한 믿음 없이 일본이 세계는 물론 아시아에서조차 참다운 지도적 역할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충고도 덧붙였다.

지금은 일본과 중국이 남지나해 열도의 영유권 문제로 정세가 점점 험악해지고 있다. 그러나 두 나라 정상들이 싸움을 확대하지 않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는 머지않아 두 나라가 상황을 수습하고 관계를 정상화할 것으로 믿는다. 왜냐하면 지금 두 나라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국제사회에서는 힘이 곧 정의이다. 명분과 논리는 생산되고 동원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력을 키워야 한다.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 “국익”보다 더 우선하는 원칙은 없다. 우리가 처한 엄중한 정세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시장경제의 번영을 함께 성취해온 전통적 친구들과의 동맹과 협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싸움은 잠시지만, 결국 우리는 그들과의 우호적인 협력과 건강한 경쟁을 통해 우리의 힘을 키워야 하며, 결코 고립에 빠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어제는 4.19혁명 45주년이 되는 날이다. 국민이 이 땅의 주인임을 증명한 순간이었다. 국민의 힘보다 더 위대한 힘은 없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잘못된 길을 갈 때 국민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2005. 4. 20

이 인 제

이인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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