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대북정책은 포퓰리즘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앞으로 대북정책은 포퓰리즘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6자회담마저 버리고 있는 북한의 핵(核)
외교부의 바른 대응이 포퓰리즘(populism)에 희생되지 말아야

한반도에 몸을 언고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근자에 느끼는 안보체감 지수는 대단히 불안하고 예측을 불허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 동안에 외교부가 북한 핵(核)을 다루는 애매한 입장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느낌을 주는 25일의 연설에 반영된 반기문 외교부장관의 단호한 어법에 많은 국민들도 공감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 동안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헌법에 보장된 설치내규를 벗어나는 월권행위로 외교부의 정당한 발언권 및 정책집행권이 축소지향적으로 흘러온 것을 감안하면, 이 번 반 장관의 단호한 어법은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외교부의 당연한 모습일 것이다. 반 장관은 25일 열린 21세기 동북아미래포럼 토론회에서 “북한이 핵(核) 실험까지 하게 되면 그 때는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길로 가게 될 것이며, 북한의 미래를 위해서도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라는 점을 강력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생거(David E. Sanger)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기자도 25일자로 “미국정부는 현재 특정국가가 핵 물질이나 핵 관련 부품을 반입.반출할 경우 이를 막는 권한을 모든 국가에게 부여하는 유엔의 결의안을 논의 중 이고, 이 결의안의 숨은 의도중의 하나가 중국에게 중국.북한 국경을 감시할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을 주기 위한 것으로 실제적으로는 북한을 지목한 것”이라는 주장의 기사를 적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과 우리 정부의 더 강경한 목소리에 북한은 또 다시 외교적 강성 수사(修辭)를 동원하여 국제사회를 비롯한 미국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북한의 외무성 대변인은 “우리는 미국이 제재를 곧 선전포고로 간주할 것”이라는 반격을 하였다. 북한은 아직도 6자회담 참가를 위한 명분과 조건이 마련되지 않았으며 6자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위하여 미국은 하루 빨리 ‘폭정의 전초기지(outpost of tyranny)’ 발언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전 같으면 침묵으로 답을 했을 우리 정부가 반 장관의 동북아미래포럼 연설을 통해 “북한이 무모하게 핵실험까지 하는 조치를 취하면 이제까지 고립되어 왔던 북한 스스로의 고립을 더욱 심화시키고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기로 가는 것”이라는 나름의 응당한 답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외교부가 본래의 위상을 되 찾고 당당한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노대통령이 한 북한에 대한 말 중에서 “얼굴을 붉힐 일이 있으면 붉힐 것”이라는 뜻을 잘 새겨들은 결과가 아닌가 싶다.

오늘 한 조간신문의 칼럼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지난 15일 국가안전부장회의 사무처는 최근에 ‘신한.일 독트린’을 채택하고 ‘작계 5029’의 추진중단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는 행위에서 보듯이, NSC가 사실상 우리 외교.안보정책의 최고 사령탑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하는 좋은 예이다.

법규적인 면에서도 헌법(91조 1항)과 국가안전보장회의법(3조)상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대외.군사정책과 국내정책의 수립에 관한 대통령 자문기구로 되어있으나, 작금의 행동반경을 보면 NSC가 사실상 우리 외교.안보정책의 최상위 기관처럼 군림하고 있는데, 이러한 운용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점이 있다는 지적에 정부의 최고 통치권자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번 반기문장관의 연설을 계기로 외교부는 그 동안에 행사하지 못하던 정당한 외교활동영역에서의 타당한 발언권 행사를 통해 외교문제에 대한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길 바란다.

필자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한 가지 중요한 이론적 고찰이 있다. 수 십 년간 외교활동에 종사한 외교부의 전문관료들은 이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가장 합리적이고 적절한 정책을 수립.시행하는 능력이 있을 것이다. 그 전문관료들에겐 통치자의 국가의 운영에 대한 큰 지침이나 철학을 반영하여 자신의 영역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국익을 최우선의 잣대로 소신껏 외교활동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권의 획득으로 정치적인 고려로 인해 자리를 맞게 되는 경우는 그 복잡한 전문성이 하루 아침에 쌓이기도 어렵고, 단시간에 공부를 해서 정확한 분석을 가능케 하는 지적.경험적 틀을 만들기가 쉽지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참여정부 출범 이후, 우리 정부의 정책추진의 큰 화두(話頭)는 개혁을 통한 부당한 기득권세력에 편향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에 대한 체질개선을 이루기 위한 ‘변화와 참여’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원래는 학자들 사이에서 ‘포퓰리즘(populism)’ 혹은 대중인기영합주의’ 라는 것이 대중을 동원하고 이들의 직접 참여에 의한 정치체제에서 민중들의 표를 의식해 경제논리에 반(反)한 정책을 펴는 것을 의미하였는데, 우리 나라의 경우는 안보영역인 대북문제까지도 대중주의의 영향을 받는 것은 인상을 주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 땅의 젊은이들의 바람과 희망을 저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감상적인 우리정부의 ‘북한정권두둔 및 감싸기 전략’은 이제 현실적으로 대내외연건상, 그리고 북한의 비현실적인 처신으로 인하여 한계에 봉착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필자는 이번에 모처람 나온 외교부 장관의 심각한 북한체제인식에 기반한 단호한 발언이 우리 정부가 앞으로 추구할 대북정책전환의 기조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오래 전에 한 신문의 컬럼니스트도 “포퓰리즘으로 인해, 대북 대공 안보개념의 해체와 반세기 혈맹의 우의가 지워졌으며 그 자리에 어이 없게도 가상 주적(主敵) 개념이 자리잡게 됐다”고 지적한 기억이 생생하다. 과감한 개혁과 분배에 대한 열망을 안고 시작하는 포률리즘은 ‘정치적 편의주의와 기회주의’로 전락하는 함정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아르헨티나의 페론과 그들의 추종자들이 인기위주의 정책을 추진한 결과, 그 나라의 위상이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질 않는가?

하지만, 대북문제 같은 국가의 중차대한 사안에서 ‘대중주의적 견해로 북한체제에 대한 낭만적이고 모호환 접근이 이제는 설 자리가 점 점 더 없어질 것이다. 이제 미국을 중심으로 한 회담참가국과 우리 정부는 현실적으로 북한이 계속 일방적인 주장만 하는 경우에 6자회담의 틀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우리가 인지할 필요가 있다.

외교부의 미국채널과의 허심탄회(虛心坦懷)한 대화를 통해서 급박하게 전개되는 현실인식을 담은 반기문 장관의 마음을 비록 외교에 문외안인 다른 안보관련 부처들일지라도 사려 깊은 마음으로 경청하길 바란다. 최근에 급박하게 대두되고 있는 북 핵 사태의 해결의 실마리는 북한의 정확한 현실인식에서부터 가능할 것이다.

국제정치무대에서 지금의 우리 정부처럼 북한을 감싸는 북한의 우방은 점 점 더 없어질 것이다. 설사 북한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옳아도 자국의 이익을 위한 협상에서 그 들은 언제든지 북한을 버리고 더 큰 빵을 줄 수 있는 강대국에게 협조를 하는 자세를 취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의 영변 5MW 원자로 가동중단, 미국의 북 핵 문제 유엔 안보리 회부 경고, 북한이 핵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 및 정황적인 증거 등은 한반도의 보이지 않는 새로운 안보위기의 출현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모처럼 나온 외교부장관의 북한에 대한 정확한 판단 및 단호한 메시지가 비(非)외교부서 및 인사들에 의해서, 단지 우리 국민들의 순수한 뜻과 바람을 핑계 삼아서, 다시 이 문제에서만큼은 유화적인 대북 제스처로 전환되질 않기 바란다. 이 번에 “북한이 하루 빨리 현실적으로 국면을 판단해 조속히 6자회담에 복귀하라”는 외교부의 메시지는 국제사회의 의중을 담은 최후 통첩성 경고이기에, 우리의 국민들도 냉정한 판단으로 북한체제의 대응을 지켜 보아야 할 것이다.

2005-04-26 박태우(대만국립정치대 외교학과 客座敎授, 국제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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