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전술의 끝은 어디인가?

벼랑끝 전술의 끝은 어디인가?
‘벼랑끝전술(brinkmanship)’의 끝은 어디인가?
북한식 허장성세(虛張聲勢)의 함정

북한이 원하는 것을 간파한 워싱턴의 한반도 및 핵(核) 문제 정책 담당자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이미 정책집행을 위한 가상 시나리오를 오랜 시간의 준비기간을 거쳐서 다 끝내 놓았을 것이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도 북한의 조선방송은 11일자로 미국이 한반도에서 언제 전쟁을 일으킬지 예측할 수 없다며 북한주민에게 경각심을 높이는 체제단속 및 내부결집을 위한 선전선동을 펼치고 있다.

중앙방송은 “우리 공화국을 무력으로 압살하려는 미국의 대조선 침략책동이 극도에 달하고 있다. 어떤 구실과 조건을 날조해사라도 군사적 침공을 감행하는 악의 제국 미국이 조선반도에서 언제, 어느 시각에 전쟁의 불을 지를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앙방송은 한발 더 나아가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우리 민족에게는 강력한 군사적 힘이 있다. 우리 군대와 인민이 마련한 핵 억제력은 그 어떤 침략자도 능히 때려 부술 수 있는 정의의 보검이며 필승의 무기”라고 체제단속을 위한 선전선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김정일에게 가해진 정의(正義)가 무엇이고, 철저한 통제에 의한 우민화의 희생물이 된 북한주민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인류의 역사가 발전하면서 역사의 전개는 국익을 추구하는 외교활동에서 명분축적을 위한 도덕적.논리적 정당성을 중요한 협상력의 토대로 삼아왔지만, 그러한 명분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잘 담아내고 현실적인 힘의 받침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한 시행착오(試行錯誤)로 인류는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의 부정적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고 오늘도 전쟁과 대결의 악순환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김정일 정권에게는 주체니 민족자주만을 무기 삼아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도 박탈당한 채 강요된 우민화 교육을 거쳐서 보편적 인류시민으로서의 인식능력도 결여하고 있는 굶주리고 있는 북한의 인민들이 명분상 시대에 뒤떨어진 왕조체제를 유지하는 한 도구로만 보이지, 민족과 양심의 이름으로 보다듬고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를 실천하는 소중한 섬김의 대상은 아닌 듯 싶다.

현재 북한의 인민들에게 필요한 정의는 사상적 압제와 의식주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지, 미국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무모한 억압적인 체제유지놀음의 가련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훗 날의 사가(史家)들이 무엇을 어떻게 기록할 지를 염두 해 두고 원리원칙(原理原則)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주체(主體)가 우리에 줄 것이 무엇인가? 민족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는 시대는 상호의존과 국경을 초월한 협력과 경쟁을 모토로 한 새로운 인식의 패러다임이 등장하면서 점 점 그 실효성이 줄어들고 있는 이 현실을 보아야 하지 않는가?

물론 캐나다의 요크대학(York Univ.) 데니엘 드레체(Daniel Drache) 교수 같은 분이 주장하고 있는 국경 및 영토의 개념이 더 소중해 지고 있는 지구촌시대의 새로운 현상도 우리가 무시하면 안 될 것이다.

왜 세계의 경찰국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미국의 와싱턴이 북 핵 이야기로 술렁이고 있는지 우리가 좀 더 현실적인 시각으로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난 달 28일에 부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나쁜 용어(폭군, 위험한 사람)의 사용을 통해 발설한 불편한 심기 이후에 앤트루 카드 백악관의 비서실장이나 칼 로부 부실장이 언론을 통하여 연일 김정일의 무모한 행위를 규탄하고 나섰다. 미 국무부는 외교를 담당하는 부서로서 부드러운 언어를 쓰면서 북한을 회담장으로 유인 하려는 마지막의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정작 우리정부의 체감온도는 현장의 실무자들의 긴장감과는 반대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니 국제정치를 아는 이 땅의 국민들이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양자회담의 개최를 통해서 미국에 양보를 압박하려는 북한의 단기 전술은 국제사회에 핵 보유국 기정사실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파기스탄식의 학습효과를 통한 핵보유국의 위치를 확보하는 매우 위험한 벼랑끝 전술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지금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미국의 강경파가 이미 북한의 전술을 다 읽고 단계적으로 주변국에 주문하고 있는 대북압박의 강도 및 수순이다. 폐연료봉의 재처리과정을 거쳐서 수개월내에 몇 개의 핵무기를 추가로 제조할 가능성을 알고 있는 미국의 대북 강경라인은 어떻게든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우리정부 및 중국의 어중간한 입장에 찬물을 끼 얹을 수 있는 가능성도 농후하다.

최근에 교토통신이 관련소식통을 인용하여 보도한 10일자의 워싱턴 발 보도는 미국정부가 최근에 중국정부에게 7월말까지 사태를 타개해 북한의 회담복귀를 위한 길을 닦아 줄 것을 부탁했다 한다. 이 소식통은 미국이 특정한 기한을 염두 해두고 중국정부에 협조를 요청한 것은 중국 정부에 좀 더 긴박한 사태인식을 촉구한 것이며 한.미.일 3국도 이달 중순 이후 정책조정에 착수하여 과거와는 다른 사태인식을 공유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저런 한반도의 핵 관련 정황들을 면밀히 보면 볼수록, 어제의 북한이 행한 폐연료봉 8000개 인출사건은 북한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협상력 확보를 위한 정치적인 포석이 있지만 필자는 반대로 북한의 입지를 더 악화시키는 악수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지난 1994년의 북 핵 위기는 ‘제네바합의’로 충돌을 모면했지만, 이번의 북한식 북 핵 해법의 돌파구는 그리 간단치가 않아 보이기에 더 걱정이 앞선다.

페연료봉을 꺼낸후, 앞으로 약 2개월 정도 인출기간을 거쳐서 냉각수조를 통한 2,3개월간의 냉각시간, 사용연료를 질산에 녹여 플루토늄을 추출한 뒤 화학처리를 통한 2~4개월간의 정제기간을 통한 핵무기제조의 시나리오는 득(得)보다는 실(失)을 가져올 북한의 벼랑끝 전술(brinkmanship)이다.

지난 10여 년간에 행해진 ‘북한의 치고 빠지는 전술’을 겪어온 미국은 지난 2월 10일의 북한의 외무성을 통한 ‘핵 보유선언’이후 북한의 냉정하고 현실적인 북 핵 접근자세를 계속적으로 주문했다.

필자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한반도위기를 촉발하는 불씨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걱정할 따름이다. 조금 시간이 더 지나면서 볼 일이지만 중국도 북한을 도울 명분을 점 점 잃게 될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오늘이라도 북한은 당장 6자회담에 돌아와 현실적인 협상을 통한 경제원조 및 협력의 확보로 북한사회 재건의 단초를 마련하기 바란다 회담 당사자들의 인내력이 소모되고 강경노선이 더 현실화되는 단계가 온다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굶어 죽고 있는 가련한 우리의 북한 동포들에게 더 비참한 고통만 가증시켜 줄 것이다. 정치의 목적도, 정권의 목적도 그 국가와 나라의 구성원인 국민을 받들고 섬기는 것이지, 그들을 불모로 가당치 않은 정권연장을 꾀하는 사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2005-05-12 朴 泰 宇 (臺灣國立政治大學 外交學科 客座敎授, 國際政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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