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까지는 중국과의 대결을 피하라

2020년까지는 중국과의 대결을 피하라
중국의 작은 거인 등소평의 선견지명(先見之明)
“2020년까지는 미국과의 대결을 피하라”

2002년도에 훈련중인 미군의 장갑차에 치어서 사망한 효선.미선양 사건은 우리사회에 반미(反美)감정을 유발하는 분수령이 되었다. 반미가 유행처럼 한국젊은이들의 마음을 강타하고 있을 때 우리의 거대한 이웃인 중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은 미국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

근세의 역사에서 미국은 중국과 일본에게도 치욕스러울 정도의 모욕을 안겨준 역사적 갈등을 통한 힘겨루기를 하였다. 한국전에서 중국군은 유엔군의 이름으로 주축군이 된 미군과의 한 판 대결을 벌였다. 그 이후 크고 작은 미국과의 충돌에서 중국의 자존심이 많이도 훼손되었다. 일본은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탄을 맞은 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숫자의 사상자를 비롯한 아픔이 생겼고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중국은 중화사상(中華思想)으로 중원의 정상으로서 군림하는 정신문화를 이어가다가 청나라에 와서 서양의 문물 앞에 좌절하고 지금은 미국이라는 복병 앞에서 산업화를 통한 부국강병에 여념이 없다. ‘대동아시아공영권’을 모토로 강성대국 일본을 꿈꾸던 일본의 근대사는 미국의 힘에 의해서 일단은 처참하게 무너진 뒤에, 2차 대전 이후에는 오히려 미국과의 공조된 협조체제 위에서 제2기의 강성한 나라, 일본을 그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을 미워할 만한 많은 요인들이 산재해 있음에도 중국이나 일본내의 젊은이들이 그리 심한 반미감정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그들이 미국에 대해서 갖고 있는 감정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반감(反感)보다는 배우고 따라가야 할 배움의 대상이라는 측면이 큰 것 같다.

중국도 모택동 공산정권이 들어선 이후 미국과의 대결 속에서 의도적이든 아니든 자존심이 상하는 사건들을 접했다. 일본은 미국의 원자탄 투하로 60만 명이 생명을 잃는 대 참사를 겪었지만, 과거의 일은 과거로 묻고, 국익을 먼저 생각하면서 미국과 국제사회의 새로운 운영의 틀(framework)을 짜기에 바쁘다.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우리 한반도에선 역사적 아픔이 그들보다 덜 녹아있는 것이 아니지만 반미감정의 파고는 더 드세다.

왜 그럴까?

많은 생각을 해 보지만, 북한의 반미주체사상이 교묘하게 전파되어 남북교류의 물결이 터지면서 우리사회 내의 일부 국민들이 선호하는 근거 없는 폐쇄적 민족주의로 연결되면서 자주(自主)와 평등(平等)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부각시키는 교묘한 정치적 선전선동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주의(ism)’ 니 ‘사상(thoughts)’이나 하는 것이야, 민주주의 국가에서 얼마든지 연구하고 이야길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중요한 전환의 시대에서 내치(內治)의 영역을 벗어나 외치(外治)의 영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도의 과격한 논리로 파당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역사의 죄인에 다름이 아니다.

부패한 중국의 청나라 정치체제는 끝내 서구열강의 힘 앞에 처참히 무릎을 꿇고 중화사상에 기반한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보존해주지 못하고 나라의 운명을 서구열강의 손에 내어놓는 부패와 독선의 청 왕조를 외세의 영향력으로부터 건져내지 못했다.

중국을 개혁개방(改革開房)으로 이끌어서 실질적인 실용주의 노선을 도입한 등소평이라는 작은 거인은 국제정세를 꿰뚫어 보는 혜안으로 중국 공산당의 제1목표를 우선은 경제성장을 답보하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는 현실적인 모토로 국한했다.

우리사회의 지나친 외세배격 물결을 보면서 자존심을 이유로 혹은 국익쟁탈전의 틈바구니에서 “어떠한 굴욕적인 사건이 있어도 미국과의 대결을 유보하라”는 유언을 한 등소평을 생각 치 않을 수 없다.

근자에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국제정치의 현실을 보니 그 유언이 더욱더 가슴속 이 새겨진다. 중국이 강성대국(强盛大國)이 되려면 앞으로 약 20년은 미국의 협력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는 통찰력 있는 거인의 유언이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말을 시원하게 해서 정신적으로 만족감을 얻는 것이 실질적인 부(富)와 안보(安保)를 확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면 우리사회의 젊은이들의 미국에 대한 반감도 우리나라의 근세역사의 왜곡과 굴절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순 있지만, 중국과 일본의 예에서 보듯이 나라의 힘을 키우는 전략적인 측면에서는 심각하게 고민할 여지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1905년에 ‘가쓰라-태프트 비밀협정’으로 일본이 한국을 침략할 수 있게 한 역사를 생각하면 울분이 치미는 것도 사실이다. 제2차 대전이 끝나고 한반도 문제를 다루면서 한반도의 사정에 어두운 미국은 소련과의 합의로 정전처리과정에서 남(南) 과 북(北)으로 갈라놓은 실수를 한 것도 가슴이 아픈 우리의 역사이다.

상술한 부정적인 두 지의 역사적 과오가 있었지만, 남한을 미국의 경제 및 안보권 안으로 편입시키고 오늘날의 부와 번영을 가능케 하는 토대가 된 것도 맞는 이야기이다. 특히나, 2차 대전 이후 한국에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를 도입시켜서 우리가 이만큼 자유와 부를 누리는 토대를 마련해 준 것도 사실이다. 6.25때는 미군과 유엔군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을 수호하였으며 대한민국의 안보를 튼튼히 하면서 적극적인 원조 및 경제협력을 하여 오늘날 세계에서 11대 무역국가가 되는 데에 많은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업적을 성취 하는 에는 우리국민들의 피나는 노력과 열정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한 번쯤은 겸허하게 왜 중국과 일본이 미국에게 당한 수모와 패배의 아픔을 가슴속에 깊이 묻고, 경제성장과 안보협력을 얻어내기 위한 웃음과 화해의 제스쳐를 내 보이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미국이 좋아서가 아닐 것이다. 우리도 미국이 좋아서 한미동맹을 강화하자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는 약소국이다. 게다가 분단국이다. 미국에게 불만이 있어도 불만을 표출하는 방법과 시기는 나라를 경영하는 큰 틀에서 고민을 해 볼일이다. 그러한 감정의 표출 및 행위들이 특정 정치세력의 볼모가 되어서 전체적인 나라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는 우를 범해서야 되겠는가?
2005.5.13 박태우(대만국립정치대학 客座敎授, 국제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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