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TK TIMES/이지폴뉴스] 날씨가 몹시 추었던 지난달 말경, 서울 명동 아바타 앞에서 피우진 중령을 만났다.
살이 에이는 듯 칼바람이 몰아치고 단 5분도 서 있기조차 힘든데도 꿋꿋하게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은 ‘피우진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하 피함사)’이다.
매주 목요일이면 이들은 장소를 옮겨가며 어김없이 집회를 벌인다.
이들이 이처럼 칼바람 속 영하의 추위와 싸우는 이유는 지난해 10월 피 중령에게 ‘국방부 강제 퇴역 취소 판결’이 내려졌으나 아직껏 복직이 되지 않아 국방부에 항소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녀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태권도’라는 강력한 무기였다.
피 중령은 딸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 딸들의 ‘지킴이’이가 되고자 중학교 2학년 때 태권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그녀는 태권도 4단으로 군 생활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태권도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한다.
한편 피우진 중령의 고향은 충주. 그녀는 청주대 체육과를 졸업한 후 6개월 동안 교편을 잡기도 했었다.
1979년 서울 여군 훈련소에서 6개월간 훈련을 마치고 소위로 임관해 본격적인 군무를 시작하였고, 2년 후 헬기조종술을 배워 26주간의 힘든 훈련을 마쳤다. 당시 여군 3명이 지원하여 마지막까지 남은 조종사는 그녀 한 사람 뿐이었다. 그녀의 첫 비행은 1981년 12월, 당시 피우진 중령의 임무는 조종사 관리와 작전, 군민 지원이었다.
피 중령은 79년, 80년대 초 항공부대로 옮기면서 태권도 경연, 시범 등에서 1등을 독차지했을 정도로 그녀의 실력은 두각을 나타냈다. 피 중령은 “태권도를 통해서 부대원들을 하나로 똘똘 뭉칠 수 있는 계기도 되었으며 이는 태권도를 수련한 덕”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심신장애 2급 판정을 받고 강제 퇴역 당한 후 자신의 건제함을 과시하기 위해 2006년 땅 끝 마을에서 임진각까지 국토종단 행군을 완수했으며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2006년도에 출간 자신의 군 생활 30년을 회고하며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부하들과 여군들을 위해 앞 장 서기도 했다.
당당하게 ‘대한민국 1호 여군 헬기 조종사’라는 영광의 닉네임을 달고 사는 그녀.
한편 피 중령이 이룬 명예에 걸맞게 하루빨리 복직이 돼 군 생활을 마무리 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피우진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염원은 쉴 날 없어 보인다.
[TK TIMES 박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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