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진실, 정의와 카타르시스(catharsis)

권력과 진실, 정의와 카타르시스(catharsis)
폭풍의 바다와 싸우다(27)

권력과 진실, 정의와 카타르시스(catharsis)


진실을 억압하는 권력은 이미 민주적 권력이 아니다. 독재자는 권력의 강화와 유지를 위해서는 거짓을 만들어 진실을 짓밟는다. 이념을 내세우는 파시즘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은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거짓은 부끄러워 숨길 대상이 아니라 목적을 위해 언제든지 동원되어야 할 떳떳한 존재가 된다.

요즘 무슨 오일게이트다, 행담도 개발 사업이다 하며 온통 야단이다. 어떤 의원의 단지(斷指) 소동도 요란하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우선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머리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사자가 진실을 이야기하기 전에는 어떻게 그런 일들이 가능했는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과연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 것인가. 권력의 비호가 없다면 대한민국의 수시기관이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데 그리 큰 힘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들은 바로 권력의 핵심과 연결되어 있다. 개인 차원의 비리가 아니라,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사건이다.

만일 노 정권이 스스로를 민주적 권력이라 자임한다면 지금 즉시 이 사건들의 진실을 해방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거짓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권력은 백색(白色)이던 이념이던 독재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건강한 권력은 사회 정의를 위해 헌신한다. 그리하여 국민들로부터 열광적인 환호보다 든든한 믿음을 추구한다. 이에 반하여 부도덕한 권력은 카타르시스를 통해 대중들의 감성을 휘어잡으려 한다. 열광이 식으면 대중을 흥분시킬 또 무엇인가를 찾아 헤맨다. 결국 부도덕한 권력은 국민의 정신과 사회의 활력을 모두 병들게 만들고 만다.

고대 로마 원형경기장에서는 사람이 사자에 잡혀 먹히는 광경을 보며 시민들이 흥분하였다. 가끔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본다. 그 운동장에 무슨 정의랄 것이 있을까. 정의는 없다. 그저 피(血)가 있고 대중의 억압된 감정의 분출, 즉 카타르시스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로마의 권력은 통치를 위해 그것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 역대 정권 가운데 노 정권만큼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정권이 있었던가. 없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대선자금 수사와 탄핵선풍이었다. 전자는 검찰 권력을 활용하였고, 후자는 방송을 비롯한 매체를 동원하여 이루어졌다.

오늘은 대선자금 수사를 살펴보자. 검찰은 이 사건을 통해 정치부패를 척결하여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검찰의 위상을 세웠다고 자부하는 모양이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정치인들이 줄줄이 잡혀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 국민들이 검찰에 박수를 보내고 부패한 정치권에 울분을 쏟아내며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은 분명하다.

국민들이 느낀 그 카타르시스의 정치적 이득은 고스란히 노 정권의 몫이 되었다. 권력으로 급조된 당이 이어진 총선에서 단숨에 과반 의석을 석권했으니 말이다. 사자에 먹히는 사람을 보며 흥분하는 시민들 뒤에 웃고 있는 로마 황제의 모습이 연상된다.

물론 정치부패는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그 척결은 사회정의와 합치되어야 한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검찰이 정의의 칼을 휘둘러 부패를 척결한다면, 국민으로부터 환호와 동시에 믿음을 얻게 될 것이다. 지난 대선자금 수사가 과연 그러했는가.

첫째, 검찰이 독자적인 수사의지를 가지고 수사한 것이 아니다. 최고 권력자가 수사를 지시하고 검찰이 마지못해 착수한 것이 대선자금 수사였다. 2002년의 경선 당시 검찰수사에서 꼬리가 잡힌 노 정권 핵심 인사들의 비리가 집권 후 불거지자 대선자금수사라는 전례 없는 태풍으로 맞선 것이다.

둘째, 검찰이 자체적으로 수집한 단서나 증거가 없다 보니 대선자금을 제공할만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자백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들 표현대로 물을 막고 품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들이 살아있는 권력에 준 돈을 자백할 것인가, 아니면 죽어있는 권력에 준 돈을 자백할 것인가.

노 정권은 자기들의 받은 돈이 야당의 그것보다 10분의 1이 넘으면 이유 없이 정권을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이 무슨 해괴한 말인가. 한창 수사 중인 사건에 피의자 신분의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또 10분의 1이 사퇴의 기준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하여튼 결과는 그 비슷하게 맞아 떨어졌다. 검찰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서슬이 시퍼런 살아있는 권력에 준 돈을 자백하고 싶은 회사는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그 결과는 진실일 수 없다.

대선 종료 한 달 전부터 시종 우세를 유지한 후보, 5년 간 집권한 세력이 밀고 있는 후보를 외면하고 야당으로서 열세에 허덕이는 후보에게 10배의 자금을 제공하였다? 소가 웃을 일이다. 시간이 걸릴 뿐 언젠가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셋째, 대선자금이라면 마땅히 후보에게 준 것이지, 중간에 심부름한 사람에게 준 것이 아니다. 거액의 돈을 후보 모르게 줄 기업이 어디에 있겠는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대선자금 수사에서 주범(主犯)은 어디 가고 기껏 종범(從犯)에 불과한 사람들만 감옥에 갔다. 야당 후보가 스스로 검찰에 찾아가 자신이 감옥에 가겠다고 해도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것이 민주주의 공화국 대한민국 사회의 정의(正義)란 말인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수사를 하지 말든지, 하려면 최소한 주범과 심부름꾼은 구별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 우리 사회에서 이것이 통하고 있다. 권력과 정의가 혼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렇게 대선자금 수사는 이렇게 진실과 정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다만 우리 국민들의 응어리진 감정을 폭발시켰고, 그로부터 집권세력이 망외의 정치적 이득을 챙겼을 뿐이다.

보라! 오늘 노 정권은 거침없이 검찰을 뒤흔들고 있다. “공수처”라는 친위 경찰을 만들어 사정중추기관으로서의 검찰을 무력화하고, 경찰 수사권을 독립시키려 한다. 검찰과 사개추(司改推)가 형사소송절차 개혁을 놓고 정면충돌한다.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에서 진정으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진실과 정의를 구현함으로써 국민의 믿음을 확보했다면, 노 정권이 이런 태도를 보이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노 정권이 검찰을 무력화하려는 이러한 기도를 단호히 반대한다. 검찰의 문제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진정한 독립이지, 그 칼날을 무디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노 정권은 대선자금 피고인들을 사면하려 한다. 이미 상당 수 기업인들을 사면하였다. 정치인들까지 사면할 것을 우려해 비난 여론이 끓어오른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대선자금 수사는 원초적 모순을 갖고 있으며, 그 원죄(原罪)는 바로 이 정권에 있다. 그 원죄로부터 벗어나려는 발버둥이 바로 사면 기도이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사면으로 결코 원죄를 덥지는 못하리라. 진실과 정의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구치소에서 대선자금 당사자들을 모두 만나 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은 수긍하면서도 진실과 정의가 왜곡되고 있는데 대하여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분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사면도 하나의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역시 정도(正道)는 아니라고 믿는다.

나는 아직도 진실을 위한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다. 나는 이 투쟁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운다. 그렇다! 권력이 진실을 가리고 정의를 왜곡하도록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나 한 사람만의 불행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절망에 빠트리기 때문이다.

나는 법과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를 꿈꾸며 정치를 해 왔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신념을 버린 일이 없다. 나는 나에게 닥친 이 시련을 통하여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민주사회의 적이 무엇인지를 통찰할 수 있게 되었다. 진실과 정의에 입각한 권력을 세우지 않고 민주사회를 향한 진정한 진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여기에 나의 투쟁이 있다.

2005. 5. 26

이 인 제

이인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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