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위기, 미-이라크 전쟁, 신용불량자와 카드채 사태…. 돌아보면 먹구름 뿐이었다. 2003년 위기 상황에서 출범한 참여정부는 신중한 경기조절 등으로 살얼음판 위를 조심스레 건너갔다. 인위적인 경기부양과 결별하는 대신 경제체질을 튼튼히 하고 중장기적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단기적 성과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을 추구하고, 본질적 문제 접근을 통한 제도화에 초점을 맞췄다. 혁신경제와 공정한 시장, 한미자유무역협정(FTA)등 적극적 개방정책, 금융허브 추진을 비롯한 금융산업 선진화정책, 지속적인 연구개발(R&D)투자 확대, 남북경협 등 오늘보다 내일을 위한 투자에 집중했다.



‘한 손에는 성장잠재력 확충, 다른 손에는 사회안전망 확대’. 참여정부는 특히 IMF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 사회투자를 확대했다. 경제성장과 사회복지가 함께 가는 동반성장전략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고질병이 된 ‘저성장 속 양극화’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고자 했다. 그럼에도 민생의 어려움은 짙은 그림자로 남았다. 우리 경제의 낡은 유산과 싸우며 새로운 성장전략을 추구했던 참여정부의 이러한 비전과 고투가 한국경제의 터닝포인트로 기록될지 여부는 역사의 몫으로 남아 있다.



국정브리핑은 재정경제부·한국금융연구원·한국조세연구원 등과 함께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탄생 배경과 전개과정, 정책효과와 의미 등을 실록 형태로 정리한 ‘실록 경제정책’을 기획, 연재한다. 전·현직 정책 담당자들의 증언과 각종 정부기록물, 학계 연구보고서 등을 밑그림으로 삼아 ‘읽는 재미’와 함께 경제정책의 원리와 방향을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안목을 제공하려 한다. 연재 내용은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할 예정이다. <편집자>




① 카드사태와 금융시장 안정: “문 닫을까요, 외국에 팔까요, 당신이 살 거요?”

② 신용불량자 뇌관 해체: 신불자 딜레마, 딜레마…“원칙이 이기더라”

③ 공정한 시장질서의 원칙과 현실: “투자와 출자, 그거 정말 구분이 됩니까?”

④ 인위적 경기부양의 유혹: 냄비 정책서 뚝배기 경제로…“어느 쪽이 건강한 겁니까”

⑤ 전략적 재정운영: “계산서 내놓았다가 박살나게 맞고 물러갑니다”

⑥ 한국형 성장모델의 모색: “개방과 양극화 해소, 선진한국 가는 양 날개”

⑦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육성: ‘미래 먹거리 10가지’ 씨뿌리기…과기 ‘부총리’뜨다

⑧ 일자리, 비정규직 그리고 양극화: “일자리 낳는 성장으로 가자”

⑨ 영세자영업자 문제와 민생 대책: “민생이라는 말은 저에게 송곳입니다”

⑩ 중소기업 상생협력: ‘9988’ 중기 땜질처방 끝…하청업체서 파트너로

⑪ 능동적 세계화, 한미FTA:“미국과 FTA 진짜로 하는 겁니까?”

⑫ 균형발전, 글로벌 시대의 국토경쟁력:“정말 지방은 포기해도 괜찮습니까?”



“우리가 동북아 구상을 내놓고 여러 측면에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조금 실감이 안 난다. 혹시 과욕 아닐까? 희망 사항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라고 갸우뚱거리는 사람들이 좀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비즈니스 중심 또 금융 중심 부분이다. 그러나 또한 우리 국민들은 그 동안 ‘그게 되겠냐?’라고 했던 것을 성취해낸 많은 실적들을 가지고 있다.…(중략)…숲을 기르면 호랑이는 저절로 오게 돼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12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국정과제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 로드맵’을 결정하는 자리였다.





물류중심이냐, 금융중심이냐


금융허브전략의 주창자는 정부가 아닌 민간이었다. 민간 제안이 채택된 대표적인 국가정책이었다. 학계는 국민의정부 마지막 해인 2002년 금융허브를 추진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금융허브란 세계 유수의 다국적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기업·금융 활동을 자유롭고 편하게 할 수 있는 금융환경이나 투자 인센티브 등을 제공하는 장소를 뜻한다.



그해 7월 17일자 헤럴드경제 기고에서 이재웅 성균관대 부총장은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을 제고하는 구조조정과 함께 금융의 효율성을 제고시키기 위해 선진금융시스템을 마련해 금융허브로 도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외 금융인들의 모임인 서울파이낸셜포럼의 김기환 회장은 2003년 1월 21일, “최근 인수위 관계자들을 만나 대통령직속 금융허브위원회를 민관 합동으로 설립할 것을 제안했고, 인수위측도 적극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인수위는 동북아 중심국가 전략을 위해 물류중심과 금융중심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를 놓고 검토에 들어갔다. 2003년 2월 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노무현 당선인이 주재한 인수위원회 회의에서는 인천, 부산, 광양 3대 권역을 물류, 금융, 연구개발 네트워크로 결합하는 동북아 복합허브육성방안을 발표했다. 노 당선인은 “물류와 비즈니스, 금융을 포괄하는 경제중심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낮은 영어구사능력 등이 걸림돌”


이를 계기로 금융허브전략에 대한 의견제시가 봇물을 이뤘다. 2003년 7월 컨설팅사인 맥킨지 서울사무소가 HSBC, 골드만삭스 등 아시아·태평양지역 주요 금융회사 고위간부 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서울의 입지 여건이 홍콩, 싱가포르, 도쿄, 상하이 등에 뒤진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들은 “서울이 정보통신, 교통인프라, 노동력 수준 등에서 높은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향후 2~3년 안에 구체적인 경쟁력으로 발전시키지 못하면 상당히 힘들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토마스 팰로 시티은행 전무는 “경쟁국에 비해 높은 조세부담, 외국계자본에 대한 비우호적 태도, 경직된 노동시장, 낮은 영어구사능력 등이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2003년 8월 16일 정부는 연말까지 금융허브 추진계획을 마련하기로 하고 금융연구원에 연구를 의뢰했다. 그해 12월 11일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국정과제회의에서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 로드맵’이 확정됐다.



2004년 6월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의 명칭이 동북아시대위원회로 바뀌었다. 기존 위원회가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라는 참여정부 국정목표에서 주로 ‘번영’ 관련 사업에 집중한 만큼 ‘평화’와 관련된 사업도 관장하기 위한 변화였다. 2005년 2월에는 동북아시대위원회가 맡았던 금융허브 등 경제관련 사업들이 국민경제자문회의로 이관됨으로써 금융허브 사업은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국정과제로 자리잡았다.



금융허브, 새로운 성장동력


왜 금융허브일까.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2003년 12월 금융허브 로드맵을 확정하는 국정과제회의에서 유종일 참여정부 인수위 제도개혁위 간사(현 한국개발연구원 교수)는 이렇게 짚었다.



“금융은 그 자체로써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뿐만 아니라 제조업 등 실물 부분의 원활한 자금 조달과 운영을 가능하게 해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법률·회계 컨설팅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의 발전과 수준 향상을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 대통령의 말처럼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중략) 반면 금융허브 달성이 실패하면 세계 10대 경제권 진입은 물론 우리의 지난 외환위기나 일본의 장기불황의 예에서 보듯 현재의 위상을 유지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으리라 예상된다. 금융허브는 필수 과제다.”



실제 한국경제는 IMF외환위기 이후 잠재성장률이 크게 낮아졌다. 1990~1999년 연평균 6.5%였으나 2000~2006년 연평균 4.8%로 1.7%포인트 떨어졌다.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국제적 분업구조에서 중국이 앞서가는 기존의 제조업보다는 금융부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했다.





김석동 재경부 차관의 말이다. “정부가 금융허브 정책을 추진한 것은 위기의식의 소산이었다. 대내적으로는 경제성장률이 정체상태에 있었고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잠재성장률 하락이 우려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인도의 경제가 급부상하고 그동안 장기불황을 겪었던 일본도 회복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금융허브 추진 로드맵


2003년 말 확정된 금융허브 로드맵은 싱가포르 등 우리보다 앞서 금융허브를 성공적으로 실현한 국가들에 대한 검토를 기초 삼아 참여정부동안 허브의 기반을 다진다는 것이었다.



2007년까지 금융허브기반을 구축하고(1단계), 2012년까지 자산운용업 중심의 특화금융허브를 완성하며(2단계), 2020년까지 홍콩·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지역 3대 금융허브로 발전시킨다(3단계)는 전략이었다. (이후 2단계는 2010년, 3단계는 2015년으로 단축된다.)





자산운용업 중심의 특화금융허브 전략을 수립한 근거는 뭘까. 2003년 12월 11일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국정과제회의에서 유종일 위원은 이렇게 정리했다.



“첫째, 자산운용업은 주식·채권 등 여러 금융자산에 대한 수요자로서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투자은행이나 여타 금융기관 발전에 중요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파급 효과가 크다. 둘째, 저금리 기조의 정착, 인구의 노령화나 연기금 규모의 급속한 확대 등 자산운용업 발전여건이 성숙됐다. 셋째, 자산운용업은 시설투자 부담이 적고 유동성이 높아 외국기관 유치가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다. 마지막으로 아시아지역이 경제잠재력에 비해 자산운용업 발전 수준이 미약하므로 우리에게 선점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로드맵은 자산운용업 중심의 특화금융허브를 1차 목표로 설정하고, 자산운용업 육성, 금융시장 선진화 등 7대 추진과제를 도출했다.





금융허브 로드맵 보완… 한국 비교우위 반영


1년 반 뒤인 2005년 6월 3일, 청와대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 제1차 금융허브회의가 열렸다. 그동안 진행됐던 금융허브 정책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금융허브 로드맵을 재검토·보완하는 과정에서 일정이 단축됐다. 2단계 특화 금융허브 구축은 당초 2012년에서 2010년으로, 최종 3단계 완성시점은 2020년에서 2015년으로 각각 조정됐다.



또 추진목표가 불분명했다는 반성에 따라 외국금융기관의 국내진출 확대, 금융시장 선진화, 금융거래 국제화 등 3가지 과제가 중간목표로 설정됐다.



이같은 결정의 배경은 이랬다. 중국을 중심으로 동북아지역의 경제활동이 크게 증가, 이 지역이 전세계 GDP의 20% 이상을 차지하게 되면서 금융중개 기능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상태였다. 한국은 IMF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채권시장, 구조조정시장, 파생상품시장 부문에 비교우위를 지니고 있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역내 선도 금융시장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았다.



2005년 10월에는 금융허브 구축에 민간 참여를 적극 유도하기 위해 금융허브추진위원회가 구성됐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민경제자문회의가 거시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금융허브정책을 총괄하면, 경제부총리가 맡는 금융허브추진위원회는 실무기능을 맡는다. 그리고 금융허브추진위원회 내 분야별 분과위원회에 민간인들이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투자공사(KIC)가 필요한 이유


금융허브 로드맵 추진과정에서 싱가포르 투자공사(GIC)를 본뜬 한국투자공사(KIC:Korea Investmnet Corporation)의 설립과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 제정이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KIC의 설립은 자산운용업 중심의 특화금융허브 전략과 밀접히 연관돼 있었다. 정부는 KIC를 설립해 외환보유액 중 일부와 연·기금의 외화자산을 통합 운용하면, 자산운용권을 따내기 위해 한국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최고급 정보를 제공하려는 외국 금융회사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2003년 12월 11일 국정과제회의에서 김창록 국제금융센터 소장은 이렇게 밝혔다.



“2001~2002년 싱가포르와 대만의 경제성장이 마이너스였다. 싱가포르는 신용등급이 오르고 대만은 떨어졌다. 왜 그랬을까. 싱가포르가 GIC를 통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GIC에 가서 ‘너희들은 뭘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자산운용을 하면서 매일 시장의 고급정보가 수집되기 때문에 이것을 정부와 기업에 전달한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책과제인 경우 외국계 기관에 주문하면, 그들은 막대한 자금력과 정보력을 기반으로 밤샘을 해서라도 자료를 만들어 전세 비행기를 타고 와서 갖다준다’고 답했다.”



반대측, “KIC는 전형적인 관치금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보유외환 운용을 책임지는 한국은행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보유외환 일부를 수익성 위주로 운용할 경우 안정성과 유동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같은 날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이렇게 말했다.



“1988년 무렵에 외환이 쌓여 골치였다. 그래서 정부나 민간은 외환을 쓰자고 캠페인을 벌였다. 당시 재무부는 한국은행에 문서로 지시해서 ‘보유고를 헐어서 좀 쓰자’고 했다. 결국 320억불을 산업은행과 시중은행 등에 넘겼다. 그 후 10년 뒤 보유고가 80억불로 뚝 떨어지고 외환사태를 맞았다. 정작 320억 달러를 회수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IMF 사태를 맞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30억 불만 유동자산으로, 보유고로 남겨 놓았었더라면 우리는 IMF를 면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중략) 한국은행의 기본 입장은 이렇다. 한국은행의 보유 외환을 KIC를 통해서 운영하는 것은 좋지만 유사시 즉시 회수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외환보유고의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2004년 9월 KIC법안이 국회에 상정된 이후에는 정치권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해 11월 야당은 공식적인 반대 성명을 냈다. KIC가 국민의 최후 보루인 외환보유액과 연기금을 동원한 전형적인 관치금융이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야당은 2004년 역외선물환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해 1조8000억원의 손실을 봤던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KIC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운영위에 민간위원을 대폭 참여시키는 등의 보완장치를 마련했다.



외환보유액의 일부를 떼줘야 하는 한국은행은 내내 부정적이었다. 보유 외환 중 KIC에게 운용자금으로 넘겨주는 200억 달러가 위탁인지, 예탁인지 성격을 규정하는 문제와 현재 외환보유액이 과다한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한은에 따르면 2003년 말 기준으로 외환보유액 규모는 1503억 달러였다. 이중 84%인 1269억 달러는 한은 소유(통안증권 발행자금으로 거둬들였거나 운용수익을 쌓은 부분)이고, 나머지 234억 달러(16%)는 정부가 환율 관리를 위해 한은에 위탁 운용하는 외평기금 몫이었다.



결국 한은은 KIC 초기 운영자금으로 외환보유액 중 200억 달러를 위탁하고, 이 자금은 절대 부동산이나 비상장주식, 사모펀드 등 고수익 위험자산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물러났다. 또 한은이 요구하면 즉시 현금화하는 ‘현금화특약’(Cashing Contract)도 맺었다.



한국투자공사 출범


2005년 3월 KIC설립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그해 7월 드디어 KIC가 출범했다. 금융허브 로드맵이 확정된 지 1년 7개월 만이었다. 정부가 설립자본금 1000억원을 전액 출자했고, 초기 운용자산은 한국은행의 보유외환 가운데 200억 달러(외환보유액 170억 달러와 정부의 외국환평형기금 30억달러)를 위탁받았다.





2007년 11월 29일, 3차 금융허브추진위원회에서는 KIC 운용자산을 2010년까지 500억 달러로 확대키로 했다. 또 직접투자비중을 2007년 10%, 2010년 30%로 계획했지만만 이를 더 늘려 각각 25%, 50%로 확대했다. 이와 함께 2008년부터 KIC에 맡겨놓은 외국환평형기금(30억달러 달러) 규모를 100억 달러 더 늘리기로 했다. 당초 금지됐던 사모펀드(PEF), 부동산, 신흥시장국 자산 등에 대한 투자도 허용했다.



이밖에 이날 회의에서는 은행지배구조 개선, 보험업 역량 강화 등 ‘동북아 금융허브 실천계획 후속조치’가 의결, 발표됐다.





특히 2008년 1월 15일, KIC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로 자금난을 겪는 세계적 투자은행인 메린린치에 20억 달러의 전략적 지분투자를 결정했다. 의무전환우선주를 인수해 연 9%의 배당을 받는다는 조건이다. 또 2년 9개월이 되는 시점에 보통주로 전환하면 KIC는 메릴린치 지분 3% 이상을 확보하게 된다. IMF외환위기때 해외 투자은행에 손을 벌려야 했던 처지에게 이들에게 급전을 빌려주는 입장으로 역전된 것이다.



이미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중국, 싱가포르, 중동지역의 국부펀드가 거액의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글로벌 투자은행과 헤지펀드, 대기업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KIC도 서브프라임 부실사태를 계기로 이 흐름에 뛰어든 것이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은 1월 16일자 기사에서 “한국 경제가 60년대 빈곤에서 90년대 풍요로 성장하기까지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한국이 해외 투자에 눈을 돌리고 있다”며 KIC의 메릴린치 지분 인수는 한국 금융의 지평 확대를 신호하는 것이라는 평가했다.



“자본시장과 투자업에 ‘빅뱅’이 필요하다”


2005년 6월 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제1차 금융허브회의. 노 대통령이 화두를 던졌다.



“처음 금융허브전략은 고학력 일자리 창출효과에 착안해서 시작했다. 토론과정에서 그 이상의 많은 국민경제적 연관효과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번 보고에는 원화국제화, 통합금융법, 규제포괄주의(negative system) 등 아직 쟁점이 되는 주제들이 포함돼 있다. 논의가 수렴될 수 있도록 오늘 참여하신 자문위원들께서 역할을 해달라.”



이 자리에서 진동수 재경부 국제업무정책관은 자본시장 관련 법안의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금융 규제를 제로 베이스에서 기능별로 전면 재검토해 업종 간 규제의 형평성을 제고하겠다. 특히 자본시장과 투자업에 ‘빅뱅’이 필요하다는 인식 하에 규제 체계를 포괄주의로 전환하겠다. 투자은행의 경우 성급하게 글로벌 투자은행을 지향하기 보다 증권사의 자기자본 확충과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대형화를 추진하고, 해외 증권사와의 제휴 합작 등으로 국제적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또한 금융허브를 위해서는 홍콩 싱가포르 같은 허브국가와 동등한 경쟁기반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그 나라들처럼 미국 일본 중국 아세안 등 주요 국가와 FTA를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



통합금융법은 은행법 보험업법 증권거래법 등 40개 금융관련법을 통합하고 금융규제와 감독 방식을 영국과 호주 등 금융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한다는 취지의 법안이었다. 여기엔 기존의 금융기관별 인가체제를 기능별 인가체제로 바꾸는 안도 포함돼 있다. 규제포괄주의는 각 금융기관이 금지된 일부 영역을 제외한 모든 상품을 자유롭게 취급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이날 회의를 계기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통법)’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칸막이식 법체계, 감독의 불투명성 가져온다”


진 정책관이 언급한 자통법은 노 대통령이 말한 통합금융법과 정확히 일치하진 않지만,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진 법안이었다. 사실 참여정부 출범 초기부터 정부 내에서는 통합금융법에 대한 생각이 상당히 무르익고 있었다. 2003년 3월 6일 ‘통합금융법’ 초안이 발표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은 2003년 3월 17일 머니투데이 기고에서 칸막이식 금융법체계가 지닌 비효율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네거티브 시스템에 기초해 통합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 금융법 체계는 기본적으로 칸막이식이다. 은행, 증권, 보험이 제각각이다. 현재 재경부가 관리하는 금융법이 42개다. 칸막이 방식 때문에 수가 많아졌다. 금융분야에서 나타나는 규제와 감독의 불투명성은 이런 금융법 체제에서 유래한다. 우리 법은 금융기관에서 할 수 있는 업무들이 법령에 열거되어 있는 포지티브 시스템이다. 금지사항만 정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꿔야 금융이 발전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앞으로 4~5년에 걸쳐 금융법 체계를 금융기관 중심에서 기능별로 전면 개편하고자 한다.”



통합금융법, 일단 자본시장통합법으로


변 국장의 문제의식은 참여정부 들어 추진된 일련의 금융선진화 전략에 녹아들어갔다. 2003년 초부터 논의되던 통합금융법은 2년 가까이 수면 아래에 잠들어 있다가 2005년 11월 자통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자통법은 변 국장이 기대한 것처럼 은행, 보험, 증권 등 모든 영역이 통합된 단일 금융법이 아니라, 자본시장만을 대상으로 한 법이었다. 자본시장관련 법체계를 통합해 증권업무와 선물거래, 펀드 운용 등을 모두 할 수 있는 금융투자회사 설립을 유도한다는 취지였다.



한국의 자본시장은 경제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다. 미국 포천지 선정 2004년 세계 500대 기업에 포함된 국내 금융사는 삼성생명이 유일하며 그나마 251위에 그쳤다. 또 삼성, 현대, 대우, 우리, 대신 등 국내 5대 증권사의 2000년~2004년 평균 총자산은 4조원, 시가총액은 1조5000억원으로 각각 미국 5대 증권사 대비 0.8%, 2.3%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국내 개인자금의 57.2%(2004년 연말 기준)가 현금과 예금에 몰려있어 개인금융자산을 저축에서 투자로 유도할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일본 정부가 금융통합작업, 이른바 ‘금융빅뱅’을 추진한 의도 역시 그것이었다.



자통법은 은행과 증권사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려있는 사안이었다. 어찌 보면 논란이 있는 게 당연했다. 입법을 둘러싼 대립은 2005년 11월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본격적으로 점화됐다.



한국판 ‘골드만삭스’ 만들자


재경부가 말하는 자통법안의 골자는 은행, 보험을 제외한 증권, 선물, 자산운용, 신탁 등 자본시장 관련 업종의 벽을 모두 허물어서 ‘한국판 골드만삭스’나 ‘한국판 메릴린치’ 와 같은 대형투자은행이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증권사는 종전처럼 단순히 펀드 상품을 파는 판매창구가 아니라 새로운 금융상품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다양하고 새로운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고객들에게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상품을 내놓으려면 결국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간 인수·합병 등으로 대형화를 꾀할 수밖에 없다.





증권사들이 금융투자회사가 돼 대형화하기 시작하면 한국의 금융산업은 은행(상업은행)-보험사-금융투자회사(투자은행)의 3대 축으로 재편된다. 이제 증권사들이 은행 및 보험사와 본격적으로 경쟁하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은행업계는 자본시장 인프라를 강화한다는 대의에 동감하면서도 초대형 금융투자회사가 탄생할 경우 은행의 핵심영역인 저축예금 업무를 위협할 가능성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100조원 가량 되는 은행의 저축성 예금이 금리가 더 높은 증권사의 고객예탁금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06년 2월 19일, 자통법 제정안이 발표되자 주식시장에도 곧바로 반응이 왔다. 2월 20일 주식시세를 보면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증권업종 지수가 9.06% 상승하며 기염을 토한 반면 은행업종 지수는 0.75% 하락하며 대다수 은행주가 동시에 약세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였다.



지급결제를 둘러싼 팽팽한 대립


법안을 둘러싼 가장 첨예한 쟁점은 증권사의 ‘지급결제업무’ 허용이었다. 지급결제업무란 계좌에서 공과금이나 카드대금을 결제하거나 다른 통장으로 송금하는 등의 기능이다. 법안은 이 지급결제가 증권사들의 대표금융기관을 통해 가능하도록 명시했다.



시중은행과 한국은행은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을 받지 못하는 증권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이 대표금융기관을 통해 지급결제 시스템에 참여하는 것은 결제시스템의 위험성을 증가시키고 안전성을 저해할 것”이라며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지급결제시스템은 국가의 통화금융정책의 전달경로일 뿐 아니라 10년 전 외환위기와 같이 금융위기의 전파경로이므로 지급결제시스템 참가기관의 결정은 적격성, 건전성, 위험관리능력에 따라 보수적으로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증권업계는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업무이며 혹시 있을지 모를 사태에 대해서도 다중안전장치도 마련했다”고 대응했다. 은행이 지급결제업무를 독점하는 바람에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수수료도 비싸다는 점도 지적했다.



재경부의 입장도 비슷했다. 하지만 양측 입장은 팽팽히 평행선을 달릴 뿐이었다. 애초에 법안의 연내통과를 기대했던 정부 입장에선 속이 타들어갔지만, 논란이 격화되면서 결국 자통법은 해를 넘기게 된다.





2007년 4월 국회 재경위가 자통법을 심의했으나 역시 지급결제시스템 참가허용과 자산운용업 내부 겸영에 관한 사항이 논란이 됐다. 의원들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4월 내 국회 통과가 무산됐다. 좀처럼 양측 입장이 접점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5월 3일 유지창 은행연합회회장은 명동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 회장은 “(자통법이) 증권사와 은행 간의 밥그릇 싸움으로만 비춰지는 상황”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하면서 좀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볼 것을 주문했다.



“증권사 소액결제시스템 참가문제는 전업주의와 금산분리를 토대로 하는 현행 금융산업 구조에 대한 재편방안을 논의하면서 함께 정리하는 것이 타당하다. ‘자본시장’통합법이 아니라 ‘금융시장’통합법으로 가야 한다.”



자통법, 2009년부터 시행


6월이 돼서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다. 재경부와 한국은행은 모든 증권사가 대표기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은행공동결제망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기존안 대신에, 지급결제를 허용하되 개별 증권사가 직접적으로 은행 공동결제망에 참여하는 방식에 전격적으로 합의하게 된다.



이에 따라 개별 증권사는 기존 안에 비해 은행 공동결제망 이용료 부담이 상당 부분 늘어나게 돼 일부 중소 증권사는 은행 공동결제망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2007년 7월 3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즉 자통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법안을 둘러싼 힘든 여정이 일단락됐다. 자통법은 칸막이식 기관주의와 포지티브 시스템 대신 기능주의와 네거티브시스템을 도입한 국내 최초의 금융법이 됐다. 법은 1년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09년 시행키로 했다.





“자통법 다음은 금융시장 통합”


2007년 7월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제2차 금융허브회의. 조원동 재경부 차관보는 향후 금융산업 4대 전략과제를 언급했다. 자통법이 금융허브 기반구축의 일환으로 추진돼 왔음을 정리하는 발언이었다. 또 향후 해외진출, 금융전문 인력양성이 주요 의제임을 선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자통법, 한·미FTA, 외환 자유화 등 1단계 허브 기반 구축을 계기로 금융 산업을 3만~4만 불 시대로 이끌 핵심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 이를 위해 규제 혁신을 통한 금융업권별 금융회사 역량 강화, 동북아 틈새시장으로서 자산 운용시장 육성,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 활성화, 금융 전문 인력 양성과 인프라 개선을 4대 전략 과제로 설정했다.”



IMF외환위기 이후 국내금융시장이 많이 개방됐지만 국내금융기관들의 해외진출은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이날 회의에서 이동걸 금융연구원 원장은 이런 문제점과 대응방안에 대해 발언했다.



“진출을 하다 보면 특정 지역에 쏠리게 된다. 특정 지역에 쏠리다 보면 몇 가지 문제가 생긴다. 금융기관들이 중복 투자를 한다든지 M&A를 할 때 현지 금융기관에 프리미엄을 많이 너무 주고 사야 된다든지, 현지 금융감독 당국과의 딜(deal)에서 좀 유리하지 못한 조건으로 진출하게 된다. 때문에 정부와 금융기관이 민관 협력체를 구성해서 조정할 필요가 있다. 금융은 결국은 사람이 하는 비즈니스이다. 금융 전문 인력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금융전문인력의 체계적인 양성을 위해 금융 인력 네트워크센터가 체계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해외진출에 관해 큰 관심을 보였다. 대통령은 2007년 8월 6일 김용덕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해외 시장도 없이 우리끼리만 대형화한들 국내시장에 대한 지배적 권력 행사만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대형화한다는 것은 그만한 시장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작은 시장에서 공룡 간의 싸움이 되는 그런 대형화가 된다면 엉뚱하게 전체 금융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



“자통법 등 금융법 4개 중장기적으로 통합 추진해야”


앞서 변양호 전 국장이 디자인했던 통합금융법 추진은 언제쯤 가능할까. 김석동 재경부 차관의 말이다.



“자통법은 2003년부터 추진한 ‘금융통합법’ 제정 작업의 첫 결실이다. 금융통합법은 모든 금융법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서 재정비하는 엄청난 작업이었다.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작업속도도 더뎠다.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다 우선 자본시장 관련 금융법 통합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영국 등 외국의 입법경과를 감안할 때 자본시장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실현 가능성도 높으리란 판단이었다. 자통법 제정을 통해 우리 금융법은 은행법, 보험업법, 자본시장 통합법 및 기타 서민금융관련법으로 크게 4분됐다. 이들 네 개 영역의 금융법을 통합하는 작업을 중장기적으로 계속 추진해야 한다.”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 중장기 경제비전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내세웠다. 그 구체적인 전략 가운데 하나가 ‘선진 금융 인프라를 구축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실물경제를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그 핵심이 바로 금융허브전략이었다. 이제 금융허브전략이 큰 첫걸음을 뗐다.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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