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소한 여론몰이식 정치의 폐해

협소한 여론몰이식 정치의 폐해
협소한 여론몰이 식 정치의 폐해
국가의 예산이 수반된 대북정책추진은 국민의 동의가 필요해

우리정부가 일본의 야치 외무성 사무차관의 ‘한미간의 불협화음 발언’에 대해 일본정부에 공식적으로 문책을 요구하는 수준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외교부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걱정을 지울 수가 없는 한 예로서 다시 한.일간의 외교전을 불 붙이는 형국으로 치달으면서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얼마 전의 독도 및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불거진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여론 몰이 식 접근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대북인식의 차이에서 나오는 한.미간 불협화음이 우리나라의 안보.경제이익에 치명적인 부정적 여파를 남길 것이라는 걱정 아닌 걱정이 우리사회내의 지성인들 사이에서 거론 된지도 꽤 오래되었다. 단지 언론에 제3국의 대북정책 담당자의 입을 통해서 기사화되고 불거진 것이다.

일본정부의 우리정부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점이 표출된 지난 번의 ‘독도 및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등을 통하여 국민들의 불편한 역사적 심기를 건 드린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이런 문제가 터진 것은, 한일간이 우방으로서의 큰 틀을 유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국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갈등의 여지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이다.

우리정부는 사안에 따라서 단호한 대처를 해야 하고 때로는 얼굴을 붉히는 강수도 두어야 마땅하다. 효과적인 외교전을 수행하려면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홍보로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이를 바탕으로 조성된 국민적 합의를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는 정부의 비젼과 역량이 전제됨을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번의 야치 차관의 발언내용이 과거 ‘독도나 역사왜곡문제’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우리의 심각한 안보상황을 반영하는 중차대한 사안 이라는 데에 있다.

우리 정부는 이미 수 주 전에 비슷한 정보를 갖고 있었지만 쉬쉬하다가 이 번에 야당국회의원의 입을 통해서 나온 사안을 강경대응으로 치닫는 근본적인 이유를 국민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정부는 좀 더 설득력 있는 외교적 힘을 얻기 위해서 야치 차관의 발언내용을 면밀히 분석하여 왜 그 언사가 틀리고 우리의 분명한 입장이 무엇인지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단지 “대단히 주제넘은 발언으로 우리가 묵과할 수 없다”는 식의 대응은 감정적인 파고만 더 잉태할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이 우리를 신뢰하자 않는 것 같다”는 대목에 대해선 여러 가지 객관적인 사실들을 들어서 반박하고 우리정부의 입지를 더욱더 강화시키는 실질적인 조치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정부가 아무리 외교적 무책임, 무관례 등을 거론하면서 일본정부의 조치를 촉구해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우리의 감정만 표출하는 외교적 대응은 우리국민들의 반일(反日)을 향한 감정적 수위만 높이고 아무런 외교적 이득을 취할 수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야치 차관이 한미간의 불편한 감정을 거론한 배경에 우리정부의 북한인식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한반도정책 담당자들의 견해가 자리잡고 있다면, 우리 정부는 그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이 나라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해서 바람직하다는 필자의 판단이다.

사실 그 동안에 북한 핵에 관련된 우리 정부의 자세나 견해에 관한 일본과 미국정부의, 특히 미국의 입장에선 ‘동맹공조체제’에서 ‘민족공조’로 이행하는 전환기적 인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정부의 민족공조에 기반한 대북정책추진에 대한, 우리정부의 중재자 역할 등의 자임에서 수 차례 경험하였듯이, 선험적 인식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국내의 어느 한 북한 전문가도 그의 글을 통하여 지적을 하였듯이, 지금 워싱턴의 분위기는 “한국정부는 북한을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 한국은 북한보다 미국을 더 위협적으로 느낀다. 한국정부는 북한의 대변자로 활동하고 있다. 6자회담 에서의 한국의 역할은 오히려 북한의 편에서 서서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다.” 등등의 시각으로 북한문제를 다루는 우리정부를 보려는 인식이 지배적인 주류가 되어 가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우리정부의 입장에선 오히려 우리가 무슨 이유 및 문제로 북한을 잘 다루지 못하고 핵 실험전의 폭풍전야 단계까지 오게 되었는지 더 진지한 성찰을 통해 내부적으로 문제점을 점검하고 상황에 맞는 대북정책을 입안하고 손질하는 계기로 삼는 지혜와 지도자의 대 결단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외교부가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항의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은 외교적인 조치이지만 우리의 안보의 근간을 형성해온 우리의 우방들과의 협력체제를 점검하고 지속적인 안보이익을 검증된 차원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또 다른 매우 중요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반도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우리정부의 입지가 이렇게 흔들리고 검증되지 않는 정책적 전환이 많은 문제점을 잉태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정부가 내놓은 ‘2+4 방식의 북한균형발전 모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당위성과 논리성에서야 장기적인 시각에서 우리가 우리민족의 일부인 북한영토에서의 국토균형발전 모델을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지금처럼 북한의 핵 놀음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민감한 시점에서 당국자의 입을 통하여 앞으로 ‘북한의 국토재개발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해 가는데 우리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것은 북 핵 문제의 본질에 대한 우방들과의 공조체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 개발 만큼은 불용하겠다”는 우리정부의 단호한 대응도 희석시키는, 시기적으로도 부적절하고 우리의 북 핵 전략의 비 현실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인도적인 지원도 국민의 혈세를 쓰기에 국민들의 동의를 얻는 절차가 필요하지만 특수한 남북관계를 고려하여 통치권자에게 상당부분 국민들이 정책적 판단을 일임하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엄청난 국가의 예산을 요구하는 프로젝트를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서민들의 감정적 파고를 무시하고 발표하는 정부의 속내를 이해 할 수 가 없다.

바로 이러한 우리정부의 성급하고 과격한 대북지원 정책의 마련이 몰고 올 국제사회의 반응과 우리의 대북인식의 현주소에 대한 겸허한 성찰이 부재한 상황에서 ‘북한의 핵 개발 포기 및 남북간 평화정착’을 명분으로 추진한다는 것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우물 안의 개구리 식 발상인지 따져 볼 일이다.

평화가 돈으로 살 수 있었다는 역사적 사례가 많이 있다면 몰라도, 상호주의가 수반되지 않아온 일방적 퍼주기 식의 대북지원이 북한의 핵 개발 자금으로 쓰인 주장이 공공연히 나오는 이 시점에 또 다시 철저한 검증도 없고 국민들의 이해와 동의도 없이 대북정책의 명확한 우선순위에 대한 고찰도 부족한 상황에서, 이러한 발상을 이야기하는 대북정책담당자의 북한상황에 대한 시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기에 걱정이 앞선다.

정책적 판단과 입안과정에서 국민들을 대변하는 야권과 학계와의 광범위한 협의 채널의 부재가 낳은 협소한 정파의 여론몰이 식 정치가 낳고 있는 비현실적이고 철저한 검증을 요하는 ‘북한균형발전 모델’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주민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민주화된 국가로의 탈바꿈을 통한 의식주(衣食住)를 해결하는 최소한의 경제적 부(富)를 일구겠다는 지극히 소박하고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민주국가를 향한 일반론(一般論)이다.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 질 것인가?

이제는 ‘북한균형발전모델’이니 뭐니 하면서 지금의 왕조적 독재체제를 유지 변혁시키겠다는 위험하고 얄팍한 정치적 흥정에서 과감히 나와서 인류사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국제사회의 양심의 목소리들과 손을 잡고 현 북한 정권의 핵 놀음은 물론이고 열악한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 테러집단 후원문제, 불법 대량 살상무기 프로그램의 중단문제, 미사일 기술 확산 문제 등에 대한 우리 정부의 분명한 태도를 북한에게 전하고 국제사회의 공조를 활용해야 한다.

당근(carrot)만으로 북한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비효과적인지를 그 동안에 뼈저리게 경험하고도 엄청난 국가의 예산을 요하는 ‘북한균형발전모델’을 지금 이 시점에서 정부의 인사가 공식적으로 특강을 통하여 입에 담는 것 자체가 ‘무엇이 우리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무엇이 이 꼬이고 얽힌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인지’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만약 문제점을 알고도 국민들이 잘 모르는 정치적 지향점을 갖고서 이러한 접근을 하는 것이라면 이는 더욱더 걱정하고 국민모두들이 나서서 점검할 사안이라 사료된다.
2005-05-27 박태우(대만국립정치대학 외교학과 客座敎授,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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