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민 장군과 전두환 장군

김시민 장군과 전두환 장군
김시민 장군과 전두환 장군
참 군인과 정치군인

사람이 자리를 얻어 갈수록 자기의 직분과 역할범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 실세에 있을 때 자기가 가진 권력과 지위를 남용하여 개인적인 야망을 펼치는 데 쓰는 군인이 있었기에 우리 헌정사는 굴절과 아픔의 산고를 생산적인 창조를 위한 것이 아닌 권력 그 자체를 위한 파워게임에 국한시키고 만 것이다.

임진왜란 때에 진주목사라는 직분으로 약 10배에 달하는 왜군에 대항하여 고작 3800여명의 관군으로 만 6일을 결사 항전하면서 일본 육군의 전라도 진출의 교두보를 필사항전(必死抗戰)으로 지킨 임진란의 또 다른 영웅, 김시민 장군은 백 번을 양보해도 자기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무능한 조선 군왕 선조의 충직한 부하요, 장군이었다.

만약 그 때에 진주성 전투에서 패배하여 전라도로 가는 육로를 왜군에게 열어주었다면 이 순신 장군의 23전 연승을 향한 행진도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중간에서 좌절를 맛 보아야 했었을 것이다. 세계의 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그 엄청난 승리가 있기까지 군관민의 단결된 투혼이 상승작용으로 꽃을 피우는 이 역사적인 교훈을, 군인다운 군인으로 삶을 마감한 조선의 영웅 김시민 장군을 생각하면서, 곱씹어 보는 일요일의 늦은 밤이다.

다시 역사를 400여 년이 흐른 1980년대로 몰고 와서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후에 군의 정보를 총괄하는 군 보안사령관의 직책을 이용해 결국에는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는 전두환과 노태우 장군을 만나게 된다.

만약 전란시에 야전사령관으로 전두환 장군이 지휘봉을 잡았더라면 그 가 또 다시 어떤 모습으로 전장에서의 지휘권을 군인답게 행사했을지 추측에 맡겨보지만, 우국충정(憂國衷情)에 사로잡힌 군인의 순순한 정신을 벗어난 그의 출세를 위한 헌정사의 왜곡을 통한 권력창출은 참 군인과는 거리가 먼 정치군인의 불행한 길이라는 인상을 지울 순 없는 일이다.

약 400년 전의 한 장군은 나라가 위기에 처한 처절한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열악한 전장에서 온 힘을 다 모아 나라를 지켜낸 평범한 장군이지만, 그 당시 조선의 주인이었던 선조보다는 더 훌륭하고 존경 받는 역사의 인물로 자리매김되었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군의 통수권을 정치 군인 몇 몇이서 권력을 잡는 데에 남용한 12.12 및 5.17세력을 대표하는 정치군인들은, 비록 그들이 권력을 장악하여 12년 동안 현대판 무인정권을 이어왔었지만, 국민의 존경을 받는 측면에선 김시민 장군과 비교할 바는 아닐 것이다.

자기 직분에 충실한 정도(正道)를 가는 아름다움을 실천적 윤리로 몸에 담고 살아야 할 무인들이 국가의 안보를 핑계로 권력을 찬탈하여 국가의 공권력을 사(私)권력화한 우리 역사의 불행은 국민들의 존경을 받기는커녕 민주주의 국가의 정신이 살고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접어 들수록, 오히려 멸시와 불행한 역사를 이야기 하는 역사적 아픔의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국민을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공직자의 실천윤리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군인답게, 지도자답게 부하들을 독려하면서 마지막 남은 힘까지 왜적 하나를 더 베려다가 조총에 맞고 절규하면서 이 세상을 하직한 김시민 장군이야 말로 우리가 존경할 수 있는 진정한 영웅이요, 우리의 젊은이 들이 구국의 화신으로 배워야 할 우리 역사의 살아있는 정신을 일깨워 주는 큰 어른이신 것이다.

반면에 비록 권력 쟁탈에 성공하여 대통령을 하였지만, 지금도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기다리고 있는 정치군인 전두환과 노태우 장군이 이야기 한 군인정신은 역사적 대의(大義)에 기반한 사심이 없는 구국의 결단이었다기 보다는, ‘하나회’라는 군인패거리가 권력의 절차성과 국민적 동의를 무시하고 권력을 찬탈한 아 주 불행한 역사적 사례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젊은 후대들이 결코 배워서는 안 될 불행한 역사적 사건인 것이다. 군인은 전장(戰場)에서 군인의 길을 걷고 마감하는 것에서 가장 큰 아름다움을 볼 수가 있지만, 본래의 신분에서 벗어난 정치의 영역에 발을 딛고 권력의 흐름을 바꾼 사건에 가담하여 군인정신을 이야기 하는 것은 웬 지 어색하기 그지 없는 우리의 후대들이 배워서는 안될 불행한 사건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항상 글을 쓰면서 특정한 인물과 사건을 이야기 하는 것은 당연히 가야 할 공인의 길에다 기준을 삼고 국민들의 염원을 담은 기대를 섞고 하는 충언이기에 개인적인 품격을 이야기하는 험담의 장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러한 두 인물에 대한 논의를 역사의 장(場)에서 과감히 때어놓고 개인적인 인격과 처신에 관한 평가를 가까운 사람들의 입장에서 해 본다면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우리 역사의 정당성(正當性)을 이야기 하고, 민주주의라는 대원칙을 이야기 할 때엔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분명히 가리는 것이 논객들의 역할이라 사료되기에 이 땅의 역사를 걱정하는 우국지사(憂國之士) 및 국민들과 나의 조그마한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 일요일 밤에 몇 자 적어 보았다. 우리 위정자들이 새겨들을 구석이 있는 나의 조그마한 견해라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이 글을 끝낼까 한다.
2005-06-05 박태우(대만국립정치대학 외교학과 객좌교수,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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