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상의 현란한 수사에 현혹되지 말아야

표면상의 현란한 수사에 현혹되지 말아야
6.17합의의 표면성과 이면성
표면상의 현란한 수사(修辭)에 현혹되지 말아야

18일자 조간신문들의 대문짝만한 기사제목들이 1면에 즐비한 시점이다. 북핵이 해결되면 NPT 복귀-IAEA 사찰도 받아들이고 8.15에 금강산서 이산상봉에 합의하고 화상상봉도 추진할 것이며, 남국장성급회담을 재개함과 동시에 서해상에서의 NLL 긴장해소 방안을 논의한다는 포괄적 합의를 했다는 기사다.

필자도 민족적인 감정의 소중함과 외세의 개입으로 얼룩진 우리 역사의 비참한 현실을 돌아보면서 우리민족차원에서 할 수 있는 자주적인 역량에 대한 희망적인 기대를 폄하 하고픈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한반도의 생사가 달려있고 올 때까지 온 북 핵을 중심으로 펼쳐진 한반도의 위기가 단지 몇 시간의 만남에서 합의된 사항으로 인해 검증 없는 낙관론(樂觀論)으로 해결 될 수 있을 것 처럼 국민들이 착시현상(錯視現象)을 하고 있는 위험성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7월에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의도와 책략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없이 1992년도의, 실천에 대하여 아무런 검증장치 없이 단지 구호성 성과로 전락한, ‘남북기본합의서’와 같은 합의로서 실천과 행동이 따르지 않는 책략(策略)차원의 접근이 아니길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이다.

우리가 단기적인 성과주의적 대국민 홍보를 하기에 앞서서 깊이 성찰해야 될 몇 가지 대목이 있다.

북한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그들의 예측을 불허하는 행동과 신뢰성에 있어서 ‘양치기 소년’이 되어서 무슨 말을 어디에서 하든 국제사회는 그 진의를 믿지 않는 것이 관행화 되었다는 것이다. 특수한 처지에 있는 같은 민족으로서의 우리정부가 대하는 태도는 국제사회와는 달라야 하는 측면도 있지만, 안보와 직결된 사안에 대한 애매모호한 태도는 훗날 큰 화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분명히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강화되는 압박분위기에 상당한 부담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 국내적으로도 매우 심화되고 있는 식량난으로 주민들의 체제불만이 증가되는 이중고(二重苦)를 풀 묘안을 찾고 있는 상황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고민을 풀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카드가 민족감정에 기반한 우리정부의 유화적인 대북정책에서 찾아 진 것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민족주의적 성향을 많이 갖고 대북정책을 추진중인 대한민국정부는 동맹국인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박전술을 완화시킬 수 있는 훌륭한 카드임에 틀림이 없다.

지난 6.10 한미정상회담에서의 미국과 우리정부의 단호한 ‘한반도 비핵화 원칙’과 6자회담 복귀에 대한 마지막 기회로서의 충고가 북한의 수뇌부를 매우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시점임에 틀림이 없다.

과거보다는 약간의 진전된 입장을 표명하였지만, 기본적인 입장을 약간 우호적인 제스처로 포장하고 우리정부의 대북(對北)라인이 민족공조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한 전략적 접근이라는 인상을 많이 풍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그 동안 우리정부의 북한에 대한 정책이 너무나 유화적이고 원칙이 상당부문 상실한 점에 북한의 지도부가 착안하여 다시 한번 ‘시간 벌기 작전’으로 ‘핵 보유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펼쳐진 ‘숨 고르기’가 아닌가 하는 필자를 포함한 지식층의 우려이다.

지난 2월 10일에 ‘핵 보유 선언’을 공식적으로 한 김정일 정권이 또 다시 진부하게 김일성 유언 등을 인용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하는 이중적인 태도에서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강화되는 국제사회의 포위전술에 대한 대응책으로 미국과의 담판을 성사시키기 위한 향한 수순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북한은 이제 주체 및 외세배격이라는 구호하에 자력으로 핵을 이용한 술수로 이끌어온 국제사회와의 명분이 적은 대결구도에서 우리정부마저 적이 되어서 단호한 입장으로 선회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있다.

16일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북한의 핵 안전 조치 불이행과 핵무기 보유 선언을 우려하여 모든 핵무기 프로그램이 완전히 폐기되어야 한다는 의장결론을 채택했다. 동 IAEA 이사회는 또 북한의 핵 문제가 핵무기 비확산조약(NPT) 체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면서 북한이 모든 핵무기 프로그램을 신속 투명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완전폐기하고 IAEA 검증을 가능케 하라고 촉구했다고 한 언론이 전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점증하는 압력을 의식하고 있는 북한의 지도부는 미국이 북한의 체제와 이념을 존중해야 만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기존입장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황이지만, 앉아서 그러한 압력을 감내하기도 버거운 상황일 것이다.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17일 6.15 민족통일 대축전에 참가한 정동영 통일부장관과의 면담자리에서 “미국이 우리의 체제와 제도를 인정하면 우리도 미국을 우방으로 대할 것”이라고 밝힌 사실을 우리가 면밀히 볼 필요가 있다.

베트남도 공산화가 성공한 이후, 죄 없는 수백만의 백성들을 사상 혁명 등의 명분으로 숙청하고 반미(反美)를 기반으로 체제를 공고히 하는 전략을 실행했지만, 개혁.개방으로 가난을 탈피하려는 전제조건으로 대미(對美)수교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경험한 베트남 지도부의 사례도 우리가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국제정치국도의 냉정한 힘의 질서 및 외교력의 한계를 알게 된 베트남 사회주의 정권도 결국에는 미국의 현실적인 위상을 인정하고 수교 후에 미국으로부터 경제개발에 최대한 협조를 구하는 노선으로 외교노선의 기본방침을 대폭 수정한 역사적 사실을 우리가 보아야 한다.

미국은 지구상의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어느 나라와도 수교를 하고 미국의 이념인 민주주의와 인권을 확산시키는 국제정치외교전략을 실천하는 유일한 초강대국이다.

김정일 정권이 아무리 현란한 수사(修辭)로 눈속임을 통한 체제유지전략을 강행할 지라도, 언젠가는 체제의 경직성, 비민주성, 열악한 인권상황으로부터 스스로 정권의 운명까지도 족쇄를 채우는 현명치 못한 정권이 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정권의 운명을 걸고 순수한 백성들을 사랑하는 인민위주의 정치로의 대전환을 위한 과감한 핵 포기 및 개혁.개방노선을 채택해야 한 다. 김정일 위원장은 굶주리고 있는 인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정말로 자기의 백성을 사랑하고 진실로 민족을 위한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정부는 표면상으로 나타난 알맹이 없는 수사(修辭)성 접근에 대한 위험성도 국민들에게도 잘 알리고 흥분과 근거 없는 낙관론(樂觀論) 보다는 침착하고 냉정한 분석에 기반한 정책홍보와 대비책마련을 국민들의 동의를 얻는 방법으로 추진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필자가 그 동안에 꾸준히 북한의 행태를 연구하고 보아온 결과는 과거의 상투적인 ‘우리정부대하기 전략’과 비교해도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는 판단이다.

아직도 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자기들만의 프리즘으로 세상사를 조명하면서 선전선동전술의 진부한 면을 노출하고 있다. 김정일 정권이 국제사회로부터 체제보장을 받는 가장 좋은 길이 개혁.개방으로 투명한 국가가 되어서 북한 일반주민들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민주국가가 되는 것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알면서도 실천 못하는 그들의 괴로운 측면을 우리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투명한 민주국가가 된다는 것은 독재체제의 종식과 더불어 ‘우물 안의 개구리 식’으로 살아온 민중들의 폭발적인 저항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섣부른 민족감정에 편승하여 우리 선배들이 피땀 흘려 애써서 가꾸어온 오늘의 이 대한민국의 경제적 부(富)와 안전을 위협하는 북한의 어떠한 선전선동전술에도 우리정부와 국민들이 놀아나서는 더욱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한반도에서의 정통성과 합법성을 우리 대한민국정부가 갖고 있고 이에 기반한 헌법수호의지를 담고 우리가 주체적으로 북한을 이끌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김정일 정권의 거짓 협박 및 선전선동에 속아서 피동적인 심부름 꾼의 역할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아마도, 미국의 행정부는 이 번의 김정일 정권의 급작스런 정동영 단장 면담 및 이 면담을 통해서 밝혀진 북 측의 의도를 접하고서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애매모호한 언질 이외에는 판에 박힌 과거의 대남(對南), 대미(對美) 유화제스처를 반복했다는 이상의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2005-06-18 박태우(대만국립정치대학 외교학과 객좌교수, 국제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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