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일요일에 만난 ‘장지연 선생’의 통한과 울분
국내외의 안보 및 경제상황을 국민들이 바로 보아야

6월의 일요일은 본격적인 경제개발이전의 농촌에서 일하는 들판에서 먹던 샛밥이 생각난다. 신록(新綠)이 완연함을 다 갖추고 자연적인 모성의 성숙함을 녹색으로 물들이며 자연이 인간에게 준 사랑의 체험을 가장 많이 할 수 있었던 6월이었다. 모내기를 하는 도중에 논두렁에서 국수 한 그릇을 오염되지 않는 지하수와 조선간장으로 말아먹던 그 맛을 그 시절을 함께 걸어 온 한국인은 아무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30여 년 전에 필자가 시골에서 느끼던 6월과 2005년도에 필자가 이 나라의 지성인으로서 느끼는 감정이 사뭇 다름은 시간의 흐름도 영향을 주고 있겠지만 한반도 내외의 정세가 전환기적 상황에서 불확실한 먹 구름 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볼거리를 하고 있는 것처럼 힘들고 거칠게 다가오는 역사라는 이름의 파고(波高)의 깊이와 넓이가 크게 보인다.

예배로서 지난 일주일의 삶의 무게와 기쁨을 되돌아 보면서 항상 부족한 필자의 역량과 덕목을 탓하면서 조용히 보내는 일요일이다.

가슴속 깊이 누르고 있는 온당치 못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 및 시국흐름을 단 하루도 접어두지 못하고 이렇게 또 애국시민들의 고민과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글 하나를 쓰겠다는 신념으로 같은 시대의 깨어있는 구성원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차원에서 그래도 공부를 더 한 선배로서 공부하는 방법을 강의하는 도중에 아들의 교과서에서 만난 정신이 살아있는 우리민족의 선비였던 장지연님의 ‘시일야방성대곡(이 날에 목놓아 통곡하노라)’의 살아있는 민족정신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급히 자판을 두드린다.

우리사회의 위기에 대한 총체적인 진단과 이를 수정하려는 역사적인 운동의 온당한 성과는 온 국민의 몫이다. 이를 모르고 소시민의 이기적인 삶에 도취되어 일부의 현세의 문제에 무사안일적인 국민들이 있다면, 장지연님은 이들을 보면서 우리보다 1세기를 앞서 살다 간 분이지만 이미 나라가 위기에 처한 처절한 아픔과 고통을 어떻게 표현했을 것인지 상상으로 나마 귀담아 들어야 마땅할 것이다.

시대정신(時代精神)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편협한 정파의 이익을 위해서 민족적 대의(大義)와 명분(名分)을 도둑질하고 자기합리화를 꾀하는 위정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바로 장지연님이 일본의 을사조약 체결에 대하여 격분하는 심정으로 황성신문에 쓴 논설의 내용을 되새겨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 오! 슬프도다. 개, 돼지만도 못한 우리 정부의 대신들이 자기 혼자 잘 살고 부귀를 누리는 데 눈이 어두워 위협을 이기지 못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도적이 되었으니, 4천년 강토와 5백년 사직을 다른 나라에 갖다 바치고, 2천만 백성을 다른 나라의 노예로 만들었으니…..,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굳이 나라 잃은 시점의 글을 100년이 지난 지금에서 다시 새겨보는 것이 다소 불편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형태와 형상은 바뀌어도 원칙(原則)과 원론(原論)은 변하지 않는다는 기본명제를 일깨워 주기에 충분한 명문장들 인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전지구적 삶의 행태가 보편화된 디지털문명에 기반한 정보통신기술의 범람을 목격하고 있는 현시대의 고독한 삶 속에도 자신의 편의만 좆아서만 살아선 안될 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이웃의 삶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하는 공공의 선(善)과 이를 실천하는 윤리의 문제는 같은 것이다.

한 해에 한강에 투신하는 사람의 숫자가 180명 정도이고 이중에서 약 120명이 자살로서 생을 마감한다고 하는 우리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을 제대로 보고 민생경제가 침체되고 있는 이 대한민국 삶의 현장의 무게를 우리 모두가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우리의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줄 것인가?

오늘 새벽에는 군기를 생명으로 먹고 유지되는 최전방의 군부대에서 한 사병이 군생활에 대한 염증으로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동료에게 투척하여 8명의 전우가 즉사하고 많은 부상자를 내었다니 안보에 구멍이 뚫리고 있는 현실을 무시하고 아직도 한 개인의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치부하고 이 엄청난 사건을 덮을 것인가?

이 사회가 우리 후손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선진조국으로 갈려면 우리 모두 우리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더 큰 희생으로 이 사회의 건강성을 찾아내고 유지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바로 이러한 국가관과 공동체의식을 몸소 실천한 병장으로 마감한 군대생활을 매우 자랑스럽고 소중한 삶의 한 부분으로 각인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글을 쓰고, 아무리 느끼고 깨우치면 뭘 하는가?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고 바로 행동하지 않는 지성은 휴지조각과 같은 것이다. 장지연님이 백 년 전에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보호조약의 체결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것의 아픔을 이야기 하기에 앞서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리 선조들의 무능함을 더 탓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당시 소리(小利)에 탐닉하던 위정자들은 오늘 이 나라의 분단에 대한 책임을 지하에서라도 통곡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국정을 담당하는 중차대한 자리를 잘 채우고 관리하기에 함량미달이었고 정신도 썩었던 당시의 위정자들을 탓하던 그 마음을 우리가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당시는 외세와의 싸움에서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무능한 위정자들의 혹세무민(惑世誣民)과 일반 백성들의 무지함이 나라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일 백 년이 지난 지금의 현세에선 21세기의 담론과는 거리가 먼 사상적 편향성에 몰입되어 있지 않은지 둘러 볼 일이다. 또한 시대정신을 잘못 읽고 있는 분단체제의 또 다른 한 축인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내느냐는 민족내부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형국이다.

한반도의 비핵화 문제만 갖고도 필자는 수십 편의 칼럼을 통해서 분명한 진리(眞理)를 이야기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도 우리사회의 일부 세력들은 급박한 21세기의 국제적인 조류를 잘 읽지 못하고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우리민족의 살 길을 이야기하는 충정을 탈색시키고 비판하면서 잘못된 역사인식으로 우리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고 있다.

아마도 장지연 선생님이 다시 살아나서 오늘날의 우리사회내의 극심한 경제적.사상적.지역적 분열상을 인지한다면, 그는 눈물로서 우리 대한민국이 피.땀 흘려서 이룩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소중함을 갈파할 것이지만 반대로 오로지 가부장적 독재정권 유지에 모든 힘을 들이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가엾게 희생당하면서 굶주리고 있는 인민들을 위한 민족적 대 결단을 내리라고 하소연하는 글을 쓰리라고 확신한다.

역사가 흐르고 또 흐른다는 것은 만고(萬古)의 진리(眞理)이다.

그러나 이 역사의 흐름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정신과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다 같이 누리는 나라의 건설은 모든 한 나라의 구성원들이 이기주의적이고 편협한 삶의 행태에서 벗어나 공동체에 대한 많은 애정과 희생을 기꺼이 받칠 수 있을 때만이 이룰 수 있는 큰 과업임을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큰 교훈을 생각하면서 혹시나 우리는 말로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천민자본주의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고, 정치적으로는 소인배들의 패거리 놀음에서 방황하고 있으며, 안보적으로는 검증되지 않은 감상적인 통일놀음의 노예가 되어서 크나 큰 민족의 정기를 훼손하고 있지 않은지 자성하고 되새겨 볼 일이다.
2005-06-19 박태우(대만국립정치대학 외교학과 객좌교수, 국제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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