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권의 기본적인 모순에 관심을 기울여야

북한정권의 기본적인 모순에 관심을 기울여야
북한은 선군정치(先軍政治)로 아사자를 배가시키고 있다
억압과 통제의 체제유지에만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정권

오늘도 북핵은 국제사회의 뜨거운 감자(hot potato)로 오리무중(五里霧中)의 행보 속에 있다. 인류의 양심을 담은 목소리들이 북 녘 땅의 상공에 메아리 쳐도 김정일과 북한의 군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주민들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고 사상투쟁을 강화하는 우민화 정책을 통하여 특권계층의 정권유지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그러한 시대착오(時代錯誤)적인 정권놀음의 가장 큰 지렛대(leverage)가 북핵 이기에 김정일 정권은 최대한 그 지렛대를 이용하여 시간을 벌어 협상력을 키우는 전략.전술을 전개하며 확실한 무기 급 핵 물질 추출에 여념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남한인질론’을 적절히 민족공조의 토대를 통해서 이용하면서 최대한의 물질적 보상을 얻어내는, 위험스럽지만 밑지는 것이 없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는 기만책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모두 파멸의 길로 갈 수 있는 위험성이 큰 생존전략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경직된 도그마(dogma)에 기반한 북한의 정치체제가 이론적으로도 유지되기가 힘이 든 21세기의 디지털시대에 권력의 냉정한 속성을 잘 알고 있는 김정일 정권은 태연하게도 북한의 인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나가는 것을 잘 알면서도 미국 및 국제사회를 상대로 남한의 국민들을 일질로하여 체제생존을 위한 힘겨운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4일자에 국내의 한 일간지에 심각한 북한의 식량난을 짐작하는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의 평양사무소장을 맡고 있는 리차드 레이건은 “현재 북한의 식량사정을 고려해 볼 때 300만 가까운 아사자가 발생한 1995~1998년의 대기근을 웃도는 대참사가 일어날지도 모르고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이 없으면 350만 명이 올해 8월에 굶게 된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전하였다.

말이 3백만이지 굶어 죽은 사람의 숫자가 이 정도면 인간의 탈을 쓴 제아무리 악독한 독재자라도 권력을 내어놓더라도 불쌍한 백성을 구하겠다는 인간적인 번민을 할 만도 하지만, 최근의 북 핵 행보 및 우리정부를 상대로 진실을 가장한 거짓 선동으로 먹을 것을 얻어내는 북측의 철면피에 가까운 얼굴에서 북한의 주민들이 이 김정일 체제하에선 내일에 대한 희망을 볼 수가 없을 것이라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해 본다.

선군정치만이 유일한 정권유지의 길이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체제단속을 위한 목적으로 국가예산에서 물적 자원의 불균형 배분을 계속하고 있으면서 국제사회로부터는 인간의 얼굴을 한 인도적 도움요청으로 자존심 상하는 구걸 행각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는 북 체제의 이념적.현실적 한계성에 우리 국민들이 하루빨리 눈을 떠야 할 것이다.

북한의 지도부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군대우선주의(military first policy)를 채택하고 국가재정의 대부분을 핵 개발을 비롯한 군비로 전용하면서 한편으론 일반주민들이 먹을 것이 없는 사실을 국제사회의 구호단체에 알리고 원조를 통한 식량문제 해결전략을 아무런 부끄럼 없이 계속적으로 집행하고 있다. 우리정부가 그 동안 햇볕정책의 이름으로 지원한 대부분의 현금도 이미 군비확장에 쓰였다는 보도를 접하고 있는 우리들이 아닌가?

북한경제전문가들도 이야기 하듯이 2005년도 말까지 매월 4만 톤의 식량이 외부로부터 지원 되야 그럭 저럭 최악의 기근을 면할 수 있다고 한다. 한 전문가도 지적했듯이 이 정도의 물량은 약 매월 316만 달러 정도가 소요되는데 북한이 2000~2004년까지 무기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1억 달러에 가까운 외화수입만 식량구입에 일부를 전용해도 북한인민들의 아사(餓死)는 막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기근이니 기타 자연재해를 이유로 국제사회의 인도적인 지원을 계속 요청하는 김정일 정권 이면의 고민은 주민들의 죽음을 대가로 하더라도 체제유지의 골간인 선군정치 및 핵개발 등 김정일 개인의 군대나 다름없는 군 예산에 모든 것을 걸고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는 반증(反證)인 것이다.

정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이나 우리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고민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번에 외싱턴을 방문하여 딕 체니 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면담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6자회담이 개최되고 지난해 3차 회담에서 미국이 제기했던 제안과 한국이 북한에 설명한 ‘중대한 제안’이 결합해서 추진되면 핵 문제를 해결하는데 탄력을 갖고 올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과연 우리의 소망대로 그렇게 될 수 있는가?

중대제안의 내용이라는 것이 결국은 북한의 요구를 지나치게 수용하는 내용으로 미국이 어느 선까지 합의할 지도 모르는 원론적인 협의 의사만 밝힌 상황에서 낙관적인 전망을 할 근거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핵 동결에 대한 초기 상응조치로 미국이 참여하는 대북에너지 지원확대, 잠정적 다자안전보장의 구체적 틀 제공, 핵 폐기 이행 시에 대규모 대북 경제지원 등을 골자로 하고 있는 중대제안이 미국정부의 원칙적인 입장에서 크게 벗어난 내용을 담고 북한의 의도대로 한쪽의 의견만 담아낸 방향으로 갈 확률은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중국이 앞으로 미국과의 잠정적 대결국면을 염두해 둔 상황에서 ‘북한살리기 전략’을 적절히 6자회담에서 구사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미국 정부가 어느 정도의 신뢰성으로 우리정부와 중국정부의 대담한 제안을 수용할 지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지난 달 25일 북한민주화동맹 위원장인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우리 정부가 새겨 들어야 할 귀중한 견해를 피력하였다. 우리 정부는 한반도주변의 역학관계를 더 들여다 보고 너무 앞서서 우리 안보의 큰 틀을 움직이고 있는 강대국의 입장을 거스르면서 까지 민족공조를 이야기 할 상황도 아닌 것 같다.

그에 의하면 “현재 김정일 정권의 명맥을 쥐고 있는 것은 중국이다. 중국을 향한 우리의 입장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개혁개방으로 나가는 중국은 투쟁 대상이 아니라 동맹의 대상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난 북한과 동맹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북한을 감싸고 돌면 우리의 적(敵)이다. 북한과의 동맹관계에서 모든 것을 떼어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6자회담도 결국 미국과 중국의 문제이지 북한이나 한국의 문제가 아니다. 김정일을 만나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에 근거한 잘못된 행동이다.”라고 북한체제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충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지난달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 면담 이후 눈에 띄게 미국 비난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북한의 본질이 변하는 것이 아님을 미국이나 우리 정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한반도에서 전쟁은 막아야 한다’는 우리정부의 강박관념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는 정책 입안 및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우리정부가 정확하고 객관적인 분석에 기초한 자문이나 자료를 더 활용해야 하는데도 아직은 검증되지 않는 감정적이고 낙관적인 ‘민족통합론’에 너무나 큰 무게를 두고 대북정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토록 고대하는 민족통일은 힘에 기반한 물질적 토대가 확실하게 형성되었을 때만이 역사적 의의를 더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보도 북한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미국정부의 북한에 대한 분석 및 관점에 귀를 더 기울이고 중국정부의 고민과 북한에 대한 진심이 무엇인지도 다시 점검하여 미국이 제시하고 있는 원칙론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북 핵 문제 해결에 균형 잡힌 시각을 담은 현실적인 방법으로 물고를 트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우리정부의 바람이나 의지와 아무런 상관이 없이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서 우리정부 및 국제사회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얻어내려 할 것이다. 6자회담도 최대한 지연시켜서 중국과 러시아가 주창한 ‘21세기 신 공동선언’의 주요 목적인 미국을 견제하는 대열에 일정부분 기여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한의 김정일은 우리정부 및 우리사회내의 근거 없는 대북낙관론을 피력하는 세력들과 연대하여 민족공조 대열을 확대하는 전략으로 미국을 계속 견제하려 할 것이다. 김정일 정권의 최대목표인 체제보장 및 대폭적인 경제지원의 목적을 미국 및 우리정부의 결단을 강요하면서 그 들의 궁극목적인 핵 개발을 통한 체제생존의 전략을 달성하려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그들의 전략을 실천하는 가장 큰 희생은 불쌍한 북한주민들의 아무런 명분 없이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가는 생명 및 짓밟히고 있는 인권일 것이다. 우리정부가 만에 하나 민족적 감정에 지나치게 몰입되어 국제정치의 객관적인 틀을 보는 노력을 등한시 하고 동맹체제의 와해를 촉진하는 정책적 실수를 통해 우리사회내의 국론분열의 파고를 막지 못하는 악수를 둘까 걱정이 앞선다.
2005-07-04 박태우(대만국립정치대학 외교학과 客座敎授, 국제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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