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는 수입 활성화 대책에 주가 곤두박질

[석유가스신문/이지폴뉴스]

할인마트 주유소 규제 완화, 지경부는 ‘모르는 일’

정부의 서민물가 안정대책 발표에 정유사들의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주유소업계는 대형 할인마트 주유소의 등장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정유사들이 주도하는 과점 체제를 뜯어 고치고 석유 수입을 활성화하겠다는 정책이 발표됐기 때문인데 그 과정에서 관련 부처간의 구체적인 조율 작업도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난을 사고 있다.

정부는 25일 국무회의를 열고 서민생활 안정대책을 논의했는데 특히 석유제품의 가격안정방안이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정부는 석유제품을 경쟁제한적 품목으로 정의하고 ‘정부가 직접적인 가격 규제는 하지 않되 할당관세 적용, 유통구조 개선, 시장경쟁 촉진을 통해 가격안정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했다.

정부는 석유제품 유통구조 개선 방안으로 ▲ 대형할인점의 주유소 시장진입 활성화 ▲ 정유사와 주유소간의 배타적 공급계약제의 타당성 검토 ▲ 석유수입업에 대한 단계별 규제 조사 및 진입규제 철폐 ▲ 정유사 공급가격 조사 주기 단축 등을 제시했다.

정부는 먼저 대형할인점이 자기 상표로 석유유통시장을 참여할 수 있도록 해서 경쟁을 촉진시키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처럼 대형 할인 마트가 주유소를 병설 운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상표표시에 대한 규제로 주유소의 독자 상표 게시가 제한이 되고 있다며 상표표시규제의 개선을 검토하겠다고도 밝혔다.

이렇게 되면 정유사 위주의 가격결정체제가 유통시장 위주로 개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정유사와 주유소간의 계약 관계에서 거래 정유사의 석유제품을 전량 공급받도록 규정하고 있는 이른 바 배타적 공급 계약이 허용되면서 복수상표표시제도가 어렵다는 상황 인식에 근거해 이 제도의 타당성 여부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석유수입업자에 대한 불합리한 진입 규제도 발굴해 없앤다.

한편으로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가격의 조사 주기를 현재의 1개월 단위에서 1주일로 단축해 실질적인 가격 감시가 가능하도록 개선한다.

또 주유소의 판매가격 실시간 제공 시스템을 내달 14일부터 가동한다.

석유선물시장의 상장도 추진한다.

정부는 올해 중으로 석유 선물 상장을 위한 관련 법령 개정 작업을 끝마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관계 기관과 전문가로 구성된 선물시장 상장 테스크포스팀도 구성할 계획이다.

◆ 석유 물가 안정 대책 재탕 일색

정부가 서민생활 안정대책의 중요한 축으로 석유유통구조 개선 방안을 발표하면서 석유업계는 그 진위 파악에 분주하다.

이번 발표 대책 역시 과거의 물가 안정 대책에서 언급됐던 내용들이 재탕됐거나 또는 뜬구름 잡는 식의 애매모호한 표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대형 할인마트의 주유소 시장 진입과 관련해 정부는 마치 독자적인 상표 표시 구축이 제한되고 있어 활성화가 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석유업계의 분석이다.

석유사업법을 비롯한 주유소 설립 관련 법령에만 충족하면 할인마트의 주유소 시장 진입은 언제든지 가능하고 특히 지금도 이른 바 독자 상표를 도입한 PB(Private Brand) 주유소가 전국적으로 운영중인데 정부는 규제에 의해 시장 진입이 제한되고 있다는 뉘앙스를 비치고 있다.

특히 삼성측과 손을 잡고 할인마트 시장에 진입한 영국계 유통 체인인 테스코를 비롯해 한국시장에서 철수한 월마트 등의 대형 유통 프랜차이즈들은 우리나라 진출 당시부터 주유소 병설 운영을 검토했지만 정유사들이 석유유통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이 용이하지 않고 대형 도심에 주유소 부지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어려움에 막혀 관련 사업을 포기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결국 석유 유통산업의 규제와는 무관하게 이들 기업 스스로의 경영적 판단에 의해서 시장 진입을 포기한 셈인데 정부는 막연한 규제 완화로 대형 마트의 석유유통시장 진입이 활성화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양판점이 보편화되어 있는 가전제품과 달리 벌크제품의 특성상 고유의 상표표시제도가 운영되고 있는 석유제품에 대해 배타적 공급계약 방식을 개선해 복수상표표시제도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발상 역시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급자 중심의 상표표시제도에 대해 소비자단체들이 지지하고 있는 상황인데다 정유사와 주유소간의 사적인 거래 방식을 복수 상표 형태로 강요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석유수입업종에 불합리한 진입 규제가 있는 것처럼 언급한 대목에 대해서는 반응이 더욱 싸늘하다.

지금도 지식경제부에 등록된 석유수입사의 수가 40여 곳을 넘고 있고 비축시설을 임대하면 누구나 석유수입업을 등록할 수 있는 상황인데 진입 규제를 없애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지식경제부도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물가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가 이번 대책을 기획, 주도하면서 실효성도 검증되지 않은 내용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산업과의 한 관계자는 “최소한 석유사업법에 근거해서는 지금도 이마트를 비롯한 할인마트에서 자체 상표로 석유제품을 팔 수 있고 법적 제한이 없다는 점을 기획재정부에 여러 차례 설명했는데도 석유유통구조 개선 방안의 하나로 포함됐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석유수입업의 활성화 방안 역시 석유사업법상 등록 사항으로 최소한의 조건만 갖추면 진입이 자유롭다는 점도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석유유통시장의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방법을 기획재정부와 함께 찾아보자는 큰 틀의 합의는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서민물가 안정대책은 가시적인 물가 안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느낀 기획재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한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 것.

하지만 알 듯 말 듯 애매모호한 정부의 석유유통구조 개선 방안이 해당 기업에는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

서민물가 안정 대책이 발표된 직후 국내 정유사들의 주가는 곤두박칠치며 큰 폭의 하락세로 마감했는데 정유사들의 과점 체계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투자자들을 자극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증권가의 주요 애널리스트들은 ‘석유에 부과되는 할당관세를 최대한 낮춰 수입사의 국내 진입 여건 기반을 조성하고 대형할인점이 석유유통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하겠다고 정부가 밝히면서 정유사의 과점체제가 깨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형성돼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1.19% 상승한 1674.93으로 25일 장을 마감했는데 SK에너지는 6.67% 떨어진 9만8000원에, GS와 S-OIL은 각각 6.98%와 6.41%가 하락한 3만7300원과 5만84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석유수입을 활성화하겠다는 실효성 없는 뜬구름 잡는 정부 정책에 토종 기업들은 흔들리며 투자자들만 골탕을 먹고 있고 규제만 없어지면 대형마트가 주유소 사업에 진출할 것이라는 정부의 발표에 주유소사업자들은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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