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을 멈추고 역사의 방향을 과거로 돌려놓고 있다"


【서울=한강타임즈/이지폴뉴스】


 


잘못된 정책에 대해 국민이 심판하고 제재를 가하는 것은 국민의 애국이 살아있음을 확인케 하는 긍정적인 대목이다.  그런데 강제 해산이라니 말이 되지 않는다. 역사는 과거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가는 열차이다. 그런데 지금 정권은 가던 길을  멈추고 역사의 방향을 과거로 돌려놓고 있다."






▲  시청 앞 대 국민 촛불집회

거리에 쏟아져 나온 촛불들만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는 시민은 아니다. 도심 곳곳을 배회하는 반대의 촛불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안방과 산업 현장에서 불을 밝히는 정책의 반대 촛불은 이미 그 빛을 합치면 이 나라 국토를 밝히는 성화요 뜨거운 열을 합치면 태양에 비할 바 아니다. 생존의 목을 조이는 가정경제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산업 현장 일터를 지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지 않았을 뿐 촛불은 거리 뿐 아니라 온 나라 속에서 불을 밝히고 있다.  
 
사정이 이러할 진데 현 정부는 거리에 쏟아져 나온 촛불 숫자만 보고 이정도 저항쯤은 다 스릴 만 하다고 생각 한듯하다. 서울 인구에 비례해 보면 시청 앞에서 불타고 있는 촛불은 조족지열이요, 번데기 주름으로 비쳐 질수 있다. 
 

다른 많은 국민들은 생업에 열중하고 있고 그 넓은
서울구석 구석은 촛불은 커녕

반딧불 하나 없이 평온하기 까지 하니 보기에는 애송이 몇 사람들만 외치고 설쳐 대는 꼴이 두 눈에 양이 안차는 건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왜 정부는 시청 앞에서 밝히고 있는 촛불 만 을 저항과 반대의 물결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가. 왜 시청에 나오지 않는 저항의 촛불은 생각하지 않고 있는가.
 
안방에서 산업현장에서 불타고 있는 도도한 역사적 심판의 함성을 헤아리지 않는지 정말 알다 가도 모를 일이다. 불타고 있는 촛불은 그렇다 쳐도 국민 개개인의 가슴 속에서 타고 있는 촛불의 숫자는 왜 헤아리지 못 하는 가. 만약 현 정부가 안방과 일터와 가슴속에서 타고 있는 국민의 촛불 숫자를 헤아렸다면 국민의 가슴속에 배신과 실망의 상처를 남기고 먼 훗날 무역 외교 역사에 치욕의 날로 기록 될 수 있는 무모한 단견의 결단은 결행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청에 모인 촛불 숫자만을 세이고 바라보면서 국민의 반대 저항의지를 판단하고 결단을 내리기위해 고심했을 이명박 정부의 얕은 정책결단회의 분위기를 연상하게 되어 여간 조소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 많은 정부 인사들이 살아가는 파란기와집에서 시청 넘어 있는 민의를 파악해 낼 수 있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양반이 체면을 잃으면 상투를 자르고. 선생이 학식이 없으면 학생 앞에 서서는 안 되듯이 민의를 파악하지 않고 정면으로 맡선 정부의 책임자들은 스스로 옷을 벗던지 아님 각성의 촛불을 들고 장도의 길을 나서야 할 것이다. 민심을 받드는 것이 정치의 도인데 오히려 민심을 위반하고 대적하려고 하고 있으니 민족의 장래를 심히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명박 정부는 자신이 구상한 미국과의 교역정책이 다소의 문제가 발생하여 인기가 추락해도 나중에 국민을 잘살게 해주면 정치는 성공하는 것이고 국민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식단에 오르는 음식에 지레를 뭍어 두고 아무리 배불리 먹는 다고 국민의 삶의 질이 격상될 수가 있겠는가. 국민의 식단에 오르는 음식하나 조차 안전하게 보장해주지 못하는데 어찌 태평성대의 역사를 이끌어 갈수 있겠는가. 
 
시청에 모인 촛불이 정책을 반대하고 정권의 입지를 흔들려는 일부 좌파세력의 음모론으로 몰아세우는 소아병적인 판단이 득세하고 있는 마당이고 국민을 받드는 정치를 하겠다는 공약은 취임 즉시 국민 여망말살로 변질된 지금 이명박 정권의 정신 파탄이 어디까지 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정권초기에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국민 화합이다. 국민개개인의 능력과 애국의 정신을 한데모아 풍요와 자유가 넘치는 세상을 열어가는 기본을 잡아나가야 할 때에 민의를 독살하고 국민에게 불안을 강제로 이식시키고 있으니,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한숨뿐이다.
 
권력을 국민의 입을 막고 정당한 항변을 묵살하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행동인가, 자성을 촉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애국자이다.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고는 이렇게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 생업을 뒤로 하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올 수가 있겠는가.
 
대미 무역 간에 발생한 불리한 조건은 애당초 명문화되지 않아야 할 사안이었다. 그나마 시청에 촛불을 들고 나온 훌륭한 애국의 시민들로 인해 미국에게 실책을 만회하고 재협상  할 수 있는 명분을 안겨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이점을 활용하지 못하고 애초 대로  강행을 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보다 대미외교의 성공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저의는 무엇인가. 시청으로 쏟아져 나오는 국민들을 은근히 묵과하면서 더 많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도록 유도하여 재협상의 기회를 자연스럽게 삼아 나갔다면 국민의 저항이 드세서 도저히 약속을 지킬 수가 없다고 명분삼아 국민이 원하는 대로 진행을 해주었다면 얼마나 칭송받는 합리적인 결단이 되었겠는가.
 
그런데 오히려 애국의 촛불을 강제로 끄고 입을 막아 보려고 시대에 떨어진 권력을 휘두르고 있으니 이때 받은 국민들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하려고 하는가.
 
촛불 시위시민들을 강제 해산하면서 우리가 잃은 것은 너무도 많다. 수없는 사람들의 희생
이 바쳐진 권위적 경찰상을 자유 시대에 맞는 봉사자로 변화 시켜온 민주 경찰의

이미지를 미국 방문시 부시에게 선언한 교역 정책을 완성하기위해 시민을 강제 진압하게 함으로서 국민의

지팡이가 아닌 국민을 강제로 목을 조이는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킨 것은 가장 큰 아픔이요 역사적 손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국민들의 국가에 대해 불신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불행의 천국임을 선언케 하는 데 손색이 없다. 국민이 국가를 믿지 못하는 국가가 정말 제대로 된 국가인가는 이제 냉엄하게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그 잘난  미국소를 지키고 보호해 주기위해 발생한 일이다. 언제부터 정치가 국민의 요구를 묵살하며 소수 정치인의 결단에 좌우되는 운명을 걸어가게 되었는가. 국민의 저항을 이겨서 정책을 관철시킨다고 해도 그러한 정책이 국민의 행복과 삶의 질을 드높여 주는 것이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국민을 위해 살겠다는 공개 선약은 모두 거짓 이었담 말인가.
 
독재의 역사는 패배의 역사다. 민의를 외면하는 정치는 국력의 손실로 이어진다. 반대에 인색한 정권은 발전을 할 수가 없다. 잘못된 정책에 대해 국민이 심판하고 제재를 가하는 것은 국민의 애국이 살아있음을 확인케 하는 긍정적인 대목이다. 
 
그런데 강제 해산이라니 말이 되지 않는다. 역사는 과거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가는 열차이다. 그런데 지금 정권은 가던 길을  멈추고 역사의 방향을 과거로 돌려놓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국민의 가슴속에 타고 있는 반대의 촛불이 많음을 생각하여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정치의 도를 깨우쳐서 두 번 다시 국민들로부터 저항을 받는 저급한 정치를 하지 않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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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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