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바다와 싸우다(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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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32)
  • 온라인 뉴스팀
  • 승인 2005.09.2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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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 핵을 포기했다고?
북이 핵을 포기했다고?

지난 9. 19 베이징에서 6자회담 4차 회의가 끝나면서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국내에서는 모든 매체가 이 뉴스를 긴급 보도하면서 일제히 ‘북핵 타결’, ‘북한 모든 핵 포기’ 등 선정적인 제목을 달아 국민들로 하여금 북핵의 어두운 먹구름이 모두 걷히는 것으로 착각하도록 만들었다. 정부는 ‘한국 외교’의 승리라고 호들갑을 떨고, 언론은 어용, 비어용을 망라하여 일제히 이제 핵문제는 모두 해결된 것처럼 떠든 것이다.

이제 그 지긋지긋한 북핵 위기가 말끔히 사라진 것일까. 나는 잠시 머릿속에 혼란을 느꼈다. 그래서 공동성명의 텍스트를 구해 꼼꼼히 살펴보았다. 살펴보면서, 정부의 브리핑과 언론의 보도와는 전혀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을 두고 그토록 호들갑을 떨다니, 너무도 어안이 벙벙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첫째, 이번 발표문은 ´합의(agreement)´가 아니라 ´성명(statement)´이다. 즉, 법적 구속력 있는 약속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문건에 불과한 것이다. 다만 회담에 참석한 6개국이 공동으로 발표하는 만큼 그 채택에 관한 합의가 필요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정부와 언론은 온통 ‘합의’, 그리고 ‘핵무기와 핵계획 포기’에만 초점을 맞추어 북핵문제 해결을 향한 거대한 진전이 이루어진 것처럼 국민을 현혹하였다.

둘째, 물론 이 공동성명의 내용은 만일 6자회담이 성공하여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합의문’이 도출된다면 그 ‘이정표(里程標)’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이 점에서 중요하다면 아주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제 1항은 북이 모든 핵무기와 핵계획을 포기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핵확산금지조약과 국제원자력기구의 안전조치에 복귀한다는 것과 미국의 북한 불가침의사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내용이다. 동시에 북이 핵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주장하는데 대하여 다른 나라가 이를 존중하고 ‘적절한 시기’에 북에 대한 경수로 제공문제를 논의한다는 것이다.

제 2항은 북미, 북일 간의 관계정상화에 관한 내용이고, 제 3항은 참가국들의 대북 에너지 지원, 특히 한국의 200만 kw 전력지원 제안의 재확인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 4항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진다는 것이고, 제 5항은 참가국들이 ‘공약 대 공약(committment for committment)’, ´행동 대 행동(action for action)’의 원칙에 입각하여 상호 조율된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항에서는 제 5차 6자회담을 11월 초에 연다는 내용이다.

이 공동성명에서 그동안 논의 수준에 머물러 있던 북의 핵무기 및 핵계획 포기와 미국의 대북 불가침의사가 명문화 되었다. 이 점은 하나의 진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공동성명은 북의 궁극적인 핵 포기로 가는 이정표가 되기에는 너무나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1) 북은 지금도 핵개발을 계속하고 있다. 이에 대한 사과와 해명이 없다. 뿐만 아니라 북이 NPT나 IAEA에 가입하는 시기가 언제인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핵개발의 즉각적인 중단을 약속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1992년의 한반도비핵화선언의 준수를 요구한다. 스스로 깨버린 선언을 사과와 해명 없이 한국에 대해서만 지키라는 것이다. 이렇게 오만한 태도는 회담의 전도를 어둡게 한다.

(2) 포기의 대상을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북은 이미 지난 제네바 협정에서 플루토늄 추출 방식이 동결되자 새로이 우라늄 농축 방식의 핵개발을 시작한 전력이 있다. 그러면서 지금은 그 증거를 대라며 우라늄 농축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북이 언제 또 새로운 핵 계획을 추진할지 모른다. 미래의 핵 계획에 과하여는 왜 규정하지 않았는가.

(3) 북의 평화적 핵 이용에 관한 권리를 막연하게 규정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핵의 평화적 이용에는 핵 발전뿐만 아니라 핵연료를 위한 우라늄 농축이나 핵재처리가 포함되어 있다. 북이 이를 주장하고 나서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4) 북의 핵 포기 및 NPT, IAEA 가입시기와 경수로 건설 논의시기를 명확히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선후 관계도 규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북이 상투적으로 주장해 온 ‘동시행동의 원칙’을 표현만 바꾸어 ‘ 약속 대 약속’,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규정한다. 이렇게 되면 북은 경수로 건설, 에너지 지원, 송전, 관계정상화 등을 요구하면서 한 발짝도 움직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예상한대로 공동성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북은 벌써 경수로를 ‘제공’하기 전에는 NPT, IAEA에 복귀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고, 미국은 핵 포기를 검증하기 전에는 경수로 논의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이 NPT, IAEA에 복귀하고 사찰과 검증을 시작하더라도 핵무기를 모두 반환받고 핵계획을 폐기하는 데에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경수로 건설 논의를 시작하더라도 그 완공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런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놓고 시비가 붙으면 어떻게 되나. 결국 북이 필요한 시간만 벌어줄 뿐이다.

따라서 선 핵 폐기냐, 후 핵 폐기냐를 분명히 했어야 한다. 하지만 선 핵 폐기는 북이 할 수 없다. 자신들이 매달리는 유일한 생명 줄이 핵인데 무엇을 믿고 핵을 먼저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후 핵 포기는 미국이나 한국이 받아들일 수 없다. 북의 요구를 다 들어준 다음 북이 약속대로 핵을 포기한다는 담보가 없기 때문이다. 북은 이미 우리가 경수로를 건설하는 가운데 몰래 핵개발을 계속했고, 이 사실이 폭로되자 내놓고 핵무기까지 만들지 않았던가.

그러나 문제는 노 정권의 모호한 태도이다. 앞서와 같은 문제점투성이의 공동성명 채택에도 노 정권이 크게 한 몫을 한 모양이다. 이제 앞으로도 노 정권은 계속해서 북의 입장을 두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앞장서서 전력공급, 중유지원, 경수로 논의를 선도할 것이다. 무엇을 믿고 송전을 위한 발전설비와 송배전 시설 공사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을 것인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큰 국론분열이 일어날지 암담하기만 하다.

나는 이미 여러 차례 북이 왜 핵을 가지려 하는지 그 야망의 본질에 관하여 나의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지금도 북의 핵 야망에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전략, 전술만 변화가 있을 뿐이다. 이번 공동성명의 채택은 북의 전략, 전술이 새롭게 전개되는 시작에 불과하다. 나의 판단으로는 이번 공동성명을 통해 북은 칼자루를 잡았고, 한국은 칼날을 잡게 되었다. 미국은 복잡한 국내 정세 때문에 시간을 벌어 숨을 고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은 이제 북의 선 이행 요구에 시달리고 미국에 대하여는 소위 ‘민족공조’라는 공동전선 선동에 놀아날 일만 남았다. 미국은 북이 선 핵 포기를 하지 않는다며 언제든지 자신의 길로 가려 할 것이다.

왜 사태가 이렇게 진전되고 있을까. 북이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92년의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94년의 제네바협정을 깨트리고 핵을 개발하여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그 사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열린 이번 6자 회담에서 오히려 북의 큰소리가 먹혀들었으니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북은 이제 면죄부를 받고 한국을 종속변수로 전락시킨 가운데 미국과 당당하게 담판하려 들 것이다.

오늘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핵 소동의 본질은 북의 체제에 있다. 북이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때를 놓치지 않고 개방과 개혁을 통해 인류 보편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었다면, 북의 무모한 핵개발도 없었을 것이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이미 깊숙하게 진전되었을 것이다.

북은 지금도 자신들의 체제만을 고집하고 국제사회에 대하여 이를 보장하라고 요구한다. 사실 국제사회가 북의 체제를 무력으로 전복시킬 수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러나 그 체제로는 내부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지금도 계속해서 국제사회에 대하여 식량과 에너지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북은 자신들의 체제를 지키기 위하여 핵을 개발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핵을 지렛대로 생존을 위한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보다 더 큰 역설(逆說)은 없을 것이다.

북은 그들 헌법에 명시된 대로 전체주의 체제이다. 또 숨길 수 없는 세습체제이다. 수령과 당, 그리고 인민이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령의 지위는 세습된다. 이렇게 되고 보면 인민의 여론이란 큰 의미가 없게 된다. 여론에 따라 국가의사를 결정하는 민주정치하고는 거리가 멀다. 수령이 그 체제를 지키기 위해 어떤 수단도 선택할 수 있다. 더욱이 북은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 채택했던 당 우위의 원칙도 버리고 들어보지도 못한 ‘선군정치(先軍政治)를 내세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약속은 오래 지켜지기 어렵다. 특히 전체주의 국가는 처음부터 지킬 의사 없이 약속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거 나치의 독일이 영국이나 소련을 상대로 불가침조약을 체결했지만 그것이 처음부터 철저한 기만(欺瞞)이었음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이를 모르고 평화의 환상에 취했던 것은 영국과 소련이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말한다. 핵 문제 해결에 급급하여 본질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문제 해결의 길이 아니다. 상황을 미봉하면 잠시 환상에 젖을 수 있을지 모르나 더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6자회담을 비롯한 대북정책에 있어 확고히 원칙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힘들고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가장 확실하게 핵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와 통일에 이르는 길이다.

첫째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지 말 일이다.

둘째는 미국과의 동맹, 일본,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과 공조의 틀을 지켜야 한다. 민족공조란 이 장면에서는 전혀 적용될 수 없는 궤변일 뿐이다. 북의 핵개발이 바로 대한민국과 우리 민족의 생존에 위협이 되고, 따라서 북이 그 야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공조하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셋째는 상호 존중과 신뢰의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신뢰는 검증을 통해 확인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약속은 분명히 지키지만 북의 약속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개인은 속을 수 있지만 대한민국이 기만당해서는 안 된다.

끝으로 북이 개방과 개혁에 나서도록 설득하고 이끌어야 한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 한 것처럼 북도 인권이라는 가치와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체제를 향하여 변화를 이루어나가도록 해야 한다. 북이 한 번에 큰 변화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다. 이번 6자회담도 궁극적인 목표를 여기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의 전략 전술에 말려들어 핵 해결은 고사하고 더 큰 위기가 폭발할지도 모른다. 북에 대한 지원과 협력은 이러한 목표와 연계될 때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공동성명 채택으로 북핵문제 해결에 큰 진전이 이루어진 것은 없다. 오히려 북의 입장은 강화되고 우리의 입장은 어렵게 되었다. 6자회담의 전도에 어떤 암초가 기다리고 있는지도 벌써 북에 의해 분명히 드러났다. 특히나 노 정권과 이 나라의 언론들이 한 목소리로 북핵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국민들을 오도하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이다. 앞으로 심화될 우리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또 문제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국민의 위대한 저력과 우리 민족의 빛나는 미래를 믿는다. 좀처럼 물러설 것 같지 않은 먹구름도 이내 걷히기 마련이다. 그 뒤에 더 찬란한 태양이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 국민이 노 정권에게 명령해야 한다. 원칙을 지키며 걸어 나가라고 말이다.

2005. 9. 21

이 인 제

이인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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