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 :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윤창현 교수>

[석유가스신문/뉴스캔]


 


가격변동성 대비 리스크 관리가 원래 목적
현물 가격 등락 부추겨 안정성 해칠 수도


서울시립대 윤창현교수


‘석유선물상장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접근하려는 목표가 틀렸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주관하는 석유제품 선물상장 T/F 위원인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윤창현 교수가 정부가 추진하는 석유 선물 상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서 주목을 받고 있다.


 


윤창현 교수는 유가 안정화 대책으로 석유 선물상장이 포함된 것은 출발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선물은 가격변동성 리스크를 관리하는 수단인데 유가를 내리고 안정화시키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면 실패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는 것이다.


 


때 마침 국제유가 급등의 배경으로 선물 시장 투기 세력이 지목되고 있어 윤창현 교수의 지적에 상당한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실제로 이달 들어 하루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불 이상 등락하는 현상이 잇따르면서 선물 투기 세력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고 글로벌 금융기업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이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또 기획재정부 최충경 차관은 13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8 재무장관 확대회의에 참석해  ‘국제 유가 급등에는 과잉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 선물시장의 투기 수요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내년 가동을 목표로 석유선물 상장 작업이 추진중인데 기획재정부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충경 차관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대해 윤창현 교수는 ‘선물 시장이 현물시장의 가격변동성을 오히려 부추기고 가격을 인상시키는 주객전도 현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석유 선물이 석유가격 하향 안정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해석과 일맥 상통하는 대목인데 윤창현 교수가 만나 석유 선물 상장을 왜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지 물어 봤다.


 


▲ 석유 선물 상장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 배경은 무엇인지.


 


-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많은 선물 상품이 도입돼 시행되고 있다. 가격변동성 리스크를 관리하는 긍정적인 기능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석유 선물은 출발부터가 잘못되어 있다. 석유선물을 왜 도입해야 하느냐의 문제에서 정부는 석유 가격의 하향 안정 효과를 얘기하고 있는데 선물의 원래 기능은 그렇지 않다.


‘하향(下向)’이라는 것은 가격이 떨어진다는 의미이고 ‘안정(安定)’은 가격변동이 잘 안된다는 뜻이다.


가격이 떨어지고 가격변동성이 줄어드는 것은 선물의 본래 기능이나 목적에는 맞지 않는 것인데 정부는 유가 안정 방안에 석유 선물 도입을 끼워 넣고 있는 것 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 그렇다면 선물의 기본적인 기능은 무엇인가.


 


- 선물이 도입되는 가장 큰 이유는 현물 가격의 변동성이 심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측에게 그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는데 있다. 가격 변동성이 심한 시장에 석유 선물이 도입되면 기름 공급자는 기름의 판매 가격을 미리 정하는 효과가, 기름의 소비자들은 구매 가격을 결정해 놓으면서 리스크를 해징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가격 변동성이 높은 현물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상쇄시키는 도구가 바로 선물이다.


하지만 선물시장이 만들어진다고 현물시장의 가격이 안정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전 세계적으로 여러 논문에서 그 효과를 검증해봤는데 선물시장이 개설돼 가격안정을 이뤘다는 것을 검증하지는 못한 것 같다.


 


▲ 무엇 때문인가?


 


- 선물은 기본적으로 현물가격의 변동성에 노출되어 있는 스스로를 보호해 리스크를 관리하거나 또는 그 변동성을 이용해 돈을 벌거나 하는 두 가지 요인에서 출발할 뿐 정부의 기대처럼 선물 시장이 현물시장의 가격 변동성을 줄이는 효과를 보이는 것 같지는 않다. 선물이 도입된다고 해서 가격 변동성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며 오히려 심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들어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이유로 선물시장에 투기세력이 개입한 것이 그 배경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하루 사이에 국제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불 이상 상승하기도 또 떨어지기도 하는 것은 선물 시장에 투기 세력이 개입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주객전도(主客顚倒) 즉 꼬리가 개를 흔든다(The tails wags the dog)는 용어로 설명된다.


즉 현물시장을 근거로 선물시장을 도입했더니 선물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가격이 크게 움직이면서 오히려 현물 시장이 크게 난리를 치는 주객전도 현상이 문제가 되는 것인데 우리가 석유 선물을 도입했을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석유 선물을 도입해야겠다면 유가 안정 효과를 얘기하지 말고 선물 그 자체의 논리에 충실해서 리스크 해징의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 석유 가격의 인하 효과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 석유 현물 가격을 하향시킬 것이라는 기대 역시 순진할 뿐이다.


정부가 석유 선물 상장으로 기름값 하향을 기대하는 배경에는 정유사나 주유소 같은 석유 사업자들이 선물 시장에 참여해 리스크를 해징하고 얻은 이익만큼 기름값을 낮춰 판매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담겨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정유사들이 설령 해징해서 이익을 얻었다고 또 주유소가 선물시장에서 얻은 이익을 포기하고 기름값을 낮추겠는가? 따라서 석유선물시장을 만들었다고 가격의 안정과 하향을 기대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내수 석유가격을 하향시키겠다면 차라리 석유수입을 장려하는 정책 등이 효과적일 수 있다.


 


▲ 석유 선물을 도입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인가?


 


- 그렇지 않다. 다만 석유 선물을 도입하기에 앞서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을 먼저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선물시장이 만들어지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석유를 선물시장에 상장시키고 기대할 수 있는 효과를 점검해야 한다.


석유 선물 상장을 유가 안정화 대책에서 빼고 가격변동성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 수단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 다음 단계로 현물시장이 잘 정비되고 가격이 비교적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선물 참여자들은 현물시장 가격을 보면서 매수도 포지션을 판단한다. 석유제품의 가격변동성이 커야 하고 거래 참여자들이나 거래량도 충분해야 한다. 이런 여건들을 면밀하게 점검해 보고 석유를 선물 시장에 상장해야 성공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 그렇다면 석유 선물 상장의 시점은 언제쯤이 좋겠는가.


 


- 최소한 지금 당장은 이런 여건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정유사들은 주유소의  거래 조건에 따라 공급하는 석유 가격이 제각각 다르고 특히 영업 기밀에 해당되는 공급 가격 자료를 내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휘발유 같은 석유제품의 가격 변동성도 크지 않다. 가격변동성이란 휘발유 가격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등락을 의미하는 것이지 지금처럼 휘발유 가격이 계속 오른다고 가격변동성이 증가했다고 해석할 수 없다. 따라서 석유 선물이 상장되기 위해서는 현물 시장이 잘 정비되고 휘발유 가격의 변동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이 들 때 즉 기름가격의 등락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 수단을 제공할 필요가 있을 때 추진해야 한다. 조만간 선물시장에 상장되는 돈육은 고기의 등급을 판정하고 가격을 매기는 ‘축산물등급판정소’라는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곳을 통해 돈육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현물 가격의 고시가 잘 되고 있기 때문에 증권선물거래소는 축산물등급판정소와 손잡고 선물 도입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인데 석유는 다르지 않는가?


그렇다고 석유 선물을 상장하겠으니 현물시장을 바꾸라고 강요해서는 안된다. 정유사에게 공급가격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파트 분양가 정보를 공개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선물시장에 석유를 상장시키겠다는 이유만으로 요구할 수 있겠는가? 석유선물을 이유로 석유 유통 제도를 인위적으로 바꾸라고 강요해서도 안된다.


석유 선물과 상관없이 현물 기름 가격의 고시 시스템이 잘 정비되고 석유유통산업의 필요에 의해 상표표시나 수평거래금지 같은 제도가 개선된다면 그 이후 가격변동성에서 출발하는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물 상장이 검토돼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선물시장에 상장된 상품중 성공한 경우는 10%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상품 선물 중 금 같은 경우는 이미 실패했다. 석유 선물 상장을 이유로 현물 시장에 인위적인 제도를 만들고 강요했는데 만약 선물 시장이 성공하지 못하게 되면 매우 위험하고 많은 비용을 낭비할 수 있다.



석유가스신문 김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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