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주 주필
  지구상에 현존하는 포유류는 4000~5000종에 달한다. 대부분 자연적으로 진화해 왔지만 ‘인위적 진화’ 과정을 거친 동물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개다.


 개의 기원에 관한 학설은 다양하다. 하지만 길들여진 늑대(domesticated wolf)라는 공통분모 위에 길들여지기 시작한 시기나 지역 등만 달리할 뿐이다. 인류가 수만 년, 혹은 그보다 훨씬 오랜 기간 늑대를 인간친화적인 방향으로 선택적 번식과 품종 개량작업을 한 결과가 개라는 사실에는 학자들간 이론이 거의 없다.
개는 전 세계적으로 300여종이 분포한다. 몸무게가 불과 1㎏ 안팎인 애완견 ‘치와와’에서부터 체구가 웬만한 성인 남자보다 더 큰 사역견 ‘마스티프’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생김새는 이처럼 다양하지만 주인을 섬기는 충성심만큼은 한결같다. 그 충직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찬의 대상이다.


 미국의 작가 조시 빌링스(Josh Billings)는 ‘개는 인간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인간을 사랑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A dog is the only thing on earth that loves you more than you love yourself)’라고 했다. 가위 개 예찬론의 극치라 할 만하다. 우리 선조들도 반인륜적 행동을 한 사람 등을 빗대 ‘개만도 못한…’이라고 힐난함으로써 개의 충직성을 간접적으로 강조해 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개의 이같은 충직성은 ‘개 같은...’이라는 등의 극단적 비어(卑語)를 낳기도 한다. 오로지 주인에게만 꼬리를 치며 아첨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폭군으로 군림하는 맹견과 흡사한 사람들을 겨냥한 비어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개 같은 부류가 적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도 역시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동물적 속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재삼 깨닫게 해주는 저급한 인간형들이다.


 아무리 사나운 개라도 주인이 머리를 쓰다듬으면 눈을 게슴츠레 뜨고 꼬리를 흔들며 몸을 낮추는 것이 보통이다. 주인에 대한 무한복종과 아첨의 예를 갖추는 것이다. 그러다가 자기보다 약한 존재들에게 으르렁거릴 때는 눈빛부터 달라진다. 권력과 권한을 가진 상급자 앞에서는 비굴할 정도로 한없이 ‘작은 모습’만 보이다가 하급자들에게는 기세등등한 저질 인간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크든 작든 조직체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잠시 틈을 내어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 보라. 나는 이런 ‘개 같은 저급한 인간형’의 속성을 드러낸 적이 없었는지. 이런 속성을 수시로 발휘해 약자를 짓밟고 강자의 신임을 얻어 영광을 누려본들 뭘 하겠는가. 그 영광은 일시적이고, 자식들을 포함한 자기 가족이 뒤집어 써야 하는 누(累)는 얼마나 될지 모르는데.


 한데, ‘주인’의 입장에서는 주위 사람, 혹은 아래 사람들을 괴롭히는 맹견의 난폭성을 잘 알면서도 적당히 눈감아주고 내심으로는 즐기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맹견의 으르렁거림 때문에 상대적으로 리더로서의 자기 권위가 높아지고, 그들이 속한 커뮤니티 혹은 조직의 규율이 선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자기 대신 악역을 도맡아 해주는 개들 덕택에 참 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커뮤니티, 조직은 극심한 피로현상에 시달려 활력을 잃고 구성원들은 틈만 나면 이탈의 기회를 엿보는 줄은 왜 모르는가.


 괴롭힘을 당하는 약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개 같은 인간도 못된다. 인간 같은 개일 뿐이다. 견마지류(犬馬之類)...


 지금은 국제기구의 수장이 된 A씨는 오랜 공직생활 동안 간혹 ‘아첨의 달인’이라는 극단적인 비아냥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개 같은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 윗사람, 아랫사람 가릴 것 없이 그런 처신을 했다고 하니까. 사후 보상 등의 결과를 저울질하는 ‘의도된 아첨형’이 아니라 남에게 모진 소리를 못하는 천성을 바탕으로 한 ‘태생적 아첨형’은 견마지류의 범주에서 예외다. 그 같은 인간형은 오히려 속한 조직이나 커뮤니티의 윤활유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자, 과연 나는 ‘개 같은 인간’일까 아닐까. 다만 몇 명이라도 남을 거느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돌이켜 보라. “사실 나도 그런 적이 없지 않았지”라거나 “지금 그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라고 반성한다면 ‘개 같은 인간’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진짜 ‘개 같은 인간’들은 자신의 개 같은 처신에 남이 등 뒤에서 손가락질 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철판 감각의 소유자들이 태반이니까.


 개가 제 주인만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마구 짖어댄다는 척지구폐요(拓之狗吠堯), 걸견폐요(桀犬吠堯)라는 말이 왜 인간에게도 해당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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