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호 의료와사회포럼 홍보위원

 

한정호_의료와사회포럼 홍보위원, 청주성모병원 내과
 




당연지정제(필자는 강제지정제라 부른다)는 ‘북한의 전 국민 무상의료’란 선전에 대응하기 위하여, 1977년 전 국민 의료보험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며 만들어진 제도이다. 즉, 민간 의료기관을 정부에서 모든 의료행위와 의료비를 통제하여 ‘전 국민 의료보험 실시’란 간판으로 북에 대응하려 만든 유신시대의 유산이다. 돌이켜보면 국민소득 1000불의 어려운 경제 여건과 남북대결의 상황에서 당시 위정자들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불의 세계 13위권 경제 대국에 진입해 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늦은 1999년 의료보험을 실시한 대만에서도 당연지정제가 아닌 계약제를 실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우리나라 같은 획일적 당연지정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일부 사회주의국가를 제외하고는 없다.




태생적 한계로 인한 현행 건강보험체제의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어왔고, 이는 ‘산부인과, 흉부외과를 비롯한 생명에 필수적인 진료과의 몰락’과 ‘3분 붕어빵 진료’로 드러나 왔다. 30년간 변하지 않는 일방적 강제계약제는 동구권 사회주의의 몰락 이유인 관치행정의 폐단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한 의료왜곡은 필연적으로 의료수준의 퇴보로 이어지며,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강제지정제를 폐지를 반대하는 분들은 사회주의 국가 ‘쿠바’를 이상향으로 소개한 영화 ‘식코’를 앞세워 돈 없는 환자는 치료도 못 받는 미국식 의료제도로 대한민국이 갑자기 탈바꿈하는 것처럼 국민들의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사실일까?




첫째, 영국을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공보험의 기반 위에 민영의료보험과 의료기관의 계약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공공 대 민영의 경쟁, 민영 대 민영의 경쟁을 통하여, 부실한 의료기관/민영보험의 도태와 우수한 의료기관/보험서비스의 효율적 성장을 이루어 왔다. 민영보험만 있는 미국과 우리의 비교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사회체제를 ‘식코’의 프로파겐다, 쿠바처럼 할 것이 아니라면, 의료영역만 강제로 묶어둘 수는 없는 것이다. 전국민의료보험과 민영보험을 상호 보환시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선진국의 실례를 배워야한다.




둘째, 강제지정제가 폐지와 국민보험 탈퇴를 혼동시키지 마라. 암보험(민간보험)을 들었다고, 국민보험을 탈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즉, 소득에 따라 누진되는 현행 건강보험료는 계속 유지돼야하는 것이며, 일부 특수 목적으로 설립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자 할 경우 개인적으로 가입한 민영보험 또는 자비로 부담해야한다는 것이다. 임플란트, 한방보약, 성형수술을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것은 현재보다 10배 이상의 보험료를 내도 불가능하다. 여타의 고가의 특수치료를 건강보험의 적용에서 벗어나게 하여, 저소득층의 의료보장을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많은 의료혜택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길이다.




셋째, ‘돈보다 생명’이 중요하지만, ´돈이 없으면 생명을 살릴 수도 없다.´ 대한민국은 분명한 자본주의국가임에도 영리행위를 사회악처럼 손가락질하는 유교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 국민이 공무원이나 선생님만 하란 말인가? 산업사회에서 의료도 분명히 산업적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한 부가가치의 창출은 국민경제의 선순환을 이끌 미래의 성장동력이기도 하다. OECD 국가 중 보건의료 종사자 평균비율이 6.12%인 반면, 우리나라는 고작 3.1%로 44만429명이나 적다. OECD 평균수준으로 의료분야의 고용이 확대된다면 45만 명에 가까운 신규 고용창출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이미 2005년 한국인이 외국의료기관에 뿌리는 돈이 연간 1조원을 넘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까지 눈감고 있을 것인가. 지금 우리나라는 껍데기뿐인 이념논쟁 하느라, 소도 잃고 외양간 고칠 돈도 벌지 못할 형국이다.




지금도 잘 살고 있는데 왜 개방을 하느냐고 반대했던 조선후기의 양반과 백성들 덕에 우리 민족에게 내려진 형벌은 37년의 일제강점기였다. 급격하고 전면적인 국제화과 민영화가 우리나라가 당면한 모든 문제의 정답은 아니지만, 이미 변화된 현실과 다가올 미래를 30년 전 의료체계로 버티겠다는 것은 분명한 실책이다.




진료현장의 의사와 환자들은 현 제도는 빙산에 부딪힌 타이나닉호처럼 침몰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 구한말 위정자들처럼, 당파싸움하느라 국민을 배 안에 가두고 침몰하려 하지 마라. 노무현대통령과 참여정부에서도 현행 보험체계의 문제를 인식하고, 당연지정제 폐지와 민영보험도입을 추진할 때는 언제고 민주당은 지금 한입으로 두말을 하는 것인가?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은 수리 불가능한 큰 구멍으로 ´이미 배가 침몰한 줄도 모르고´ 있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부는 ´비난받느니 그냥 수몰 당하자´는 눈앞의 인기영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당리당략과 탁상공론을 그치고, 21세기의 대한민국에 맞는 지속가능하며 실현가능한 의료체계의 틀을 다지 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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