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新黨)의 조건을 말한다.

신당(新黨)의 조건을 말한다.
폭풍의 바다와 싸우다(33)


신당(新黨)의 조건을 말한다


오랫동안 지지부진하던 신당 추진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나는 그동안 대국적인 견지에서 신당 추진의 중심인 심대평 지사와 자민련 대표인 김학원 의원에게 대동단결을 호소해 왔다. 하지만 작은 차이(小異)에 걸려 큰 같음(大同)에 이르지 못하였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나는 이 단계에서 국민들에게, 그리고 신당 추진에 동참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당에 관한 나의 입장을 분명히 말할 필요를 느낀다.


1. 대의명분(大義名分)의 깃발

무릇 당을 만들려면 깃발이 필요하다. 그 깃발에는 대의명분이 뚜렷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모이지 않고,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당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신당 추진세력에는 그런 깃발도 대의명분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대의명분을 뚜렷이 내세우고 다 함께 신당창당 대열에 나서자고 주장해 왔다. 신당은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의 노선을 배격하고,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노선을 극복하며, 계층적 이익을 대변하는 민주노동당의 노선을 반대하는 공간 위에 스스로의 대의명분을 세워야 한다.

분권형 정당이란 정당 운영의 방식을 의미할지언정 그것이 신당 창당의 대의명분이 될 수는 없다.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당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역패권구도에 갇혀있다. 이 지역패권은 국가경영의 왜곡을 부추기고 나아가 국민을 대립과 분열로 몰고 간다.

그러므로 신당은 지역주의를 반대하는 모든 국민들과 함께 지역패권을 해체하고 국민통합의 정치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시대적 소명에 충실해야 한다. 당을 만들기도 전에 무슨 다른 당과의 연대니 연합이니 하는 말은 독약과 같다. 정체성(正體性)을 세우기도 전에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의문이다. 연대나 연합은 후일 당의 발전을 위한 하나의 전략전술일 뿐 창당의 대의명분이 될 수 없다.

신당추진의 대전제는 대의명분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2. 대동단결의 원칙

신당 창당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하나로 단결해야 한다. 그것은 창당된 후의 신당이 생명력을 얻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이다. 정당은 선거를 통해 살고 죽는다. 국민의 지지가 있으면 생명이 유지되고, 국민의 지지가 사라지면 정당의 생명은 죽는다.

신당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지지를 놓고 어떤 세력과 싸울 것인가. 선거를 전쟁에 비유한다면 신당의 주적(主敵)은 의문의 여지없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다. 그들의 전력(戰力)은 막강하기 이를 데 없다. 신당추진세력이 내부에서 분열한다면 내년 선거에서 이 막강한 상대 정당들을 누르고 승리할 수 없다.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신당의 생명도 그로써 끝날 것이다. 그러므로 분열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상황이 이렇게 엄중한데도 대동단결의 원칙이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대동단결의 상징은 물론 자민련의 소멸이다. 자민련의 깃발이 흔들리고 있는 한 ‘우리는 단결했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자민련을 부정하고, 그 사람들을 배척하며 자민련의 깃발을 강제로 내릴 수도 없다.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진정한 대동단결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양측 사람들이 함께 신당을 만들고, 신당이 만들어지면 그 신당에 자민련을 흡수 합당시키자고 주장해 왔다. 자민련의 가치와 사람이 신당의 밑거름이 되는 이른바 융합(融合)을 상정한 것이다.

여기에서 집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소위 ‘도로 자민련’의 논리이다. 물론 걱정하는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나의 제안은 자민련의 개편이 아니라 먼저 신당을 창당하고 거기에 자민련을 융합시키는 것이다. 신당이 창당되지도 않았는데 또 무슨 통합인가.

보자. 자민련과 아무 상관도 없는 세력들이 자민련을 철저히 부정해야 창당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라면 정치선전의 슬로건으로 그런 논리를 동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엊그제까지 자민련의 틀 속에서 정치를 해 온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면 이는 누워서 침 뱉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이제 대동단결의 원칙을 확고히 하자. 대동단결의 길은 선(善)이고, 자기분열의 길은 악(惡)이다. 순하고 순한 얼룩말도 뭉치면 사자의 공격을 물리친다. 대동단결로 내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3. 공동 창당의 정신

끝으로 신당은 함께 만들어야지 혼자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원탁 테이블에 앉아 공동으로 창당을 선언하고, 공동으로 창당 실무기구를 구성하자고 제의했다. 그 실무기구는 국민의 여망, 지역주민의 기대, 시대의 소명을 받들어 투명하고 신속하게 창당절차를 추진하면 될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1인 정당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권력으로 만들었건, 지역패권으로 만들었건, 1인을 위해 1인에 의해 만들어진 정당은 모두 허망하게 종말을 맞는다. 자민련의 비극도 따지고 보면 1인 정당의 운명이다.

그런데 그 비극을 딛고 일어서려는 신당이 개인의 사당(私黨)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같은 경고를 되풀이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 앞에서는 수긍하던 사람들이 돌아서면 원점으로 돌아가 태연하게 사당 건설에 몰두한다.

무엇이 사당인가. 정당의 구조와 시스템, 정당 구성의 인적 요소가 한 사람의 지도력에 의존하고, 또 그 지도력의 담보를 목적으로 하는 당은 사당이다. 한 개인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참여를 사실상 배제한 가운데 적당히 설계하고 만드는 당을 사당이라고 부르지 공당(公黨)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한 줌 밖에 되지 않는 추종자로 당을 만들려 하지 말라. 그렇게 만들어진 당에 구차하게 참여할 사람이 누구인가. 깨어있는 국민들이 그런 정당에 믿음을 보내지도 않을 것이다. 또 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다 함께 손을 잡고 현대적이며 대중적인 정당, 널리 문호가 개방되고 당원과 국민의 지지가 있으면 뜻을 펼 수 있는 민주정당을 건설할 때에만, 신당은 그 정당성을 인정받고 국민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공동으로 창당 작업을 한다 하더라도 기득권이나 지분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낡은 정치유산이기 때문이다. 자민련의 김학원 대표도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나는 신당에 관한 공론(公論)이 시작된 올 봄부터 당사자들에게 쉬지 않고 대의명분, 대동단결, 공동창당을 주장해 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에게 동의를 보낸 후 시간이 지나면 태도를 바꾼다.

지난 10. 3 어렵게 만난 5인 회동에서 세 가지 항을 합의했다.

(1) 심 지사와 국회의원 5인이 공동으로 대의명분을 내걸고 창당선언을 한다. (2) 공동으로 실무기구를 구성하여 신속하고 투명하게 신당창당절차를 밟는다. (3) 신당이 창당되면 자민련은 여기에 흡수 합당시킨다. 그리고 이 선언은 10. 10 하기로 하였다.

이것이 합의의 전부이다. 유럽 국정감사 때문에 참석치 못한 김학원 대표로부터 내가 일찍이 동의를 얻어낸 내용이고, 김대표 스스로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내용으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심 지사와 김 대표가 만나 본질을 벗어난 문제로 논쟁을 벌이다 상황을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김 대표를 비롯한 자민련 소속 의원의 당적이탈 시기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석 달도 안돼 신당이 창당되고 자민련은 흡수 소멸되는데 그 당적이탈 시기가 무슨 문제인가. 법이 정하는 시한이 있을 것이고, 창당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시기를 선택하면 되는 절차적이고 기술적인 문제에 불과할 뿐이다.

기왕에 신당을 추진해 온 사람들은 공동창당선언, 공동실무기구 구성 합의를 뒤엎고 종래 그들이 견지해 온대로 자기들만의 신당을 만들고 현 자민련 소속 의원들은 탈당 후 개별 입당하라는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그러면서 난 데 없이 내가 자민련을 탈당하여 개별적으로 신당에 참여하기로 하였다고 언론에 유포시키고 있다.

이것은 전혀 진실이 아니다. 나는 시종일관 앞에서 밝힌 세 가지 조건을 주장해 왔고, 그 원칙을 합의한 일이 있을 뿐이다. 또한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이 원칙을 벗어날 생각이 추호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신당의 출범과 성공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의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열린우리당에 염증을 느끼고 한나라당에 만족하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믿음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뚜렷한 대의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대의명분의 깃발을 끝까지 지켜나갈 사람들이 대동단결해야 한다. 나아가 정당의 틀과 시스템을 천하의 공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 사람을 위한 한 사람의 정당은 시대착오적인 환상에 불과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2005. 10. 11

이 인 제

이인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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