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위한 정치의 실종을 본다

국민을 위한 정치의 실종을 본다
얼어붙은 노숙자의 발등을 보니
고려시대나 지금이나 국민을 위한 민주정치는 꿈인가?

어제는 수도권에 한파(寒波)가 찾아와 보처럼 집에서 애들과 대화도 하고 TV를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문제에 대해서 이런 저란 생각을 곰곰이 해 보았다.

필자는 종종 사극(史劇)에 채널을 고정하고 다른 시대의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스스로 느껴보곤 했는데, 어제는 고려시대 공민왕 시절에 귀족과 서민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를 극중의 신돈이란 인물의 입을 통하여 느낄 수가 있었다.

극중에서 신돈 왈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의 곳간은 금은보화(金銀寶貨)로 넘쳐서 종을 몇 씩 데리고 시장에 비단옷을 두르고 호화 물건을 구입하는 등 귀부인 행세를 하지만, 일반 백성들은 삼시 세끼를 이를 먹 거리가 없어서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를 본지가 오래인 것을 군주가 알아야 한다”는 고언(苦言)을 기억한다.

그 시절은 이미 700여년 전 고려 말의 시점으로 원나라의 섭정이 극에 달하여 국고는 다 말라 없어지고 권문세가들의 일반 백성들에 대한 착취와 탄압이 극(克)에 달한, 우리가 소위 이야기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을 실천하는 민본정치(民本政治)와는 거리가 매우 먼 시점이었다.

그 시대의 흐름이 몇 백 년이 흐른 지금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사람의 차별과 귀천이 물질 및 권세에 의해서 암암리에 구분되는 차별과 갈등의 시대에 살고 있기는 마찬가지 인 것이다.

이렇게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고 지구촌화된 민주주의를 이론적으로 말하고, 이를 위한 안정적인 정치경제제도의 정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작 일반백성들이 골고루 이러한 부(富)의 성장을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누리지 있질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오늘 아침에 약속이 있어서 서울역 지하도를 건너는데, 한 노인이 이 추운 겨울에 다리가 다 얼은 상태로 찬 시멘트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처참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근본적인 모순을 생각해 보았다.

국민전체의 기준에서 볼 때, 과거에 비해 향상된 경제여건에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이지만, 아직도 성장의 그늘에 가려서 가장 기본적인 민생고(民生苦)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회의 약자들을 여기저기서 만나게 된다.

북한동포의 굶주림과 아사(餓死)문제를 바로 우리 지척에서도 집과 먹을 것이 없이 방황하는 노숙자를 통해서 느껴 보아야 한다.

올 들어 유난히도 추훈 겨울날에 서울역의 지하보도에서 다리가 꽁꽁 얼어 붙을 정도의 동상을 겨누지 못하고 시멘트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한 노숙자를 통하여, 어제 저녁 사극에서 신돈이 설파한 ‘같은 인간으로서 한 하늘아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지가 어찌 이리 다를까’하는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이 시대의 권문세가는 누구이고, 고통 받는 백성은 누구란 말인가?
2005-12.5 박태우 시사평론가(대만국립정치대학 외교학과 객좌교수, 국제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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