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담도내시경(ERCP)을 시술한 할아버지가 사망했다. 85세의 고령이기는 했지만, 시술 자체는 간단하게 끝났고 담도에 있는 작은 담도담석들을 간단하게 제거하고 병실로 올라갔는데, 2시간 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로 옮겨져 인공호흡기를 달았으니 오늘 새벽 운명하셨다.

 


점점 새로운 문제가 생기는 고령의 환자


피를 토하여 응급실에 왔고, 위궤양의 터진 혈관은 내시경 치료가 잘 되어 퇴원하려던 할아버지였다. 처음 병원에 온 문제는  해결되었는데 심하게 구토하고 혈액의 염증수치는 오르고 상태가 점점 안좋아졌다.


 


복부 CT에서 담도담석이 발견되었다. 이것이 지금 증상의 원인인지 확실 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이 높은 원인이므로 돌을 담도내시경으로 제거하기로 했다. 시술 직전에도 심하게 구토를 하여 흡인성 폐렴이 걱정되기는 하였지만, 시술도 일부러 옆으로 누워서 했고 위에 고인 위액 등을 미리 다 빨아내고 시술을 하였는데...... 급성 호흡부전으로 사망한 원인을 알지 못하겠다. 


 


 혈액검사에서는 급성 폐혈증에  합당한 소견이라 담도담석에 의한 화농성 담도염에 의한 전신 폐혈증과 폐렴과 급성 호흡부전이 동반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인공호흡기를 설치하고 있음에도 혈중 산소농도가 올라가지 않는 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 커다란 혈전이 폐동맥을 막은 폐색전증(pulmonary embolism)이 아닐까 의심된다. 하지만, 부검이나 CT를 찍기 전에 증명할 방법은 없다.


 


굳이 어제 담도내시경 시술을 이 할아버지에게 했어야할까?


혈액의 염증소견이 점점 심해지고, 심한 구토 등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와중이었다. 더 나빠지기 전에 그나마 시술을 할 수 있을 때, 시도하자는 의미로 시술을 한 것인데... 내가 이 할아버지의 죽음을 앞당긴 것은 아닐까?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전공의나 주변 선생님들은 어짜피 그냥 두었어도 1~2일 내에 죽었을 것이다라고 토닥여주지만, 정말 일까? 나의 선한 목적으로 나의 잘못된 결정을 감싸려는 인지부조화의 극복은 아닐까?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서 11시에 병원에 나왔다.


집에서 마음 불편하게 있고 전공의가 몸으로 떼우게 하는 것보다는, 내가 병원에 나와서 욕을 먹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보호자들(아들들과 딸들)은 당연히 이해를 하지 못한다. 멀쩡한 사람을 죽게 만든 것은 아니나며 나에게 달려든다. 어짜피 죽을 것이라면 당장 집으로 모시고 가서 덜 고생시키고 편하게 보내고 싶다고 할머니가 강력히 주장을 하시고 있었다. 결과가 안 좋으니 무슨 변명이 통하랴만은 나는 내 나름의 결정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설명을 하고, 아직은 포기할 것은 아니니 항생제도 더 쎈 걸로 바꿔보고 더 노력해 보자고 설득했다.


 


혈액응고인자 수혈도 해보고, 인공호흡기 모드도 바꿔보고, 항생제도 바꿔보고... 이것저것 하다보니 새벽 4시다. 저산소증이 교정이 되지 않는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다. 혈압도 이제 미약하다. 보호자들에게 죄송하지만 소생가망성이 없음을 설명했다. 청주 근교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시던 자택으로 모시고 가기로 했고, 집에서 임종을 지켜보기로 하여 인턴선생님을 함께 보내어 자택에서 사망선언을 하도록 했다.


 


 


그래도 어제는 보호자들에게 살인마라는 소리는 안들었다. 


많이 서운하고 납득이 안가겠지만 그래도 보호자들이 큰 무리없이 오늘 새벽 장례를 치르러갔다. 몇일뒤에 또 어떤 상황이 벌어질는 모르지만...... 10년이 조금 넘도록 의사생활을 하면서 익숙하게 들어온 말, 살인자, 돌팔이, 살인마...... 음주운전 사망사고 가해자에게도 살인자란 이야기를 안하는 사람들이 병원에만 오면 의사를 그렇게 부른다.


 


전세계에 이런 나라가 있을까? 없다. 물론 선한 목적으로 사람을 살리려했다고 하더라도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과 보상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선한 목적은 최소한만이라도 인정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추격자 압축.jpg


[살인마라며 달려드는 보호자들의 눈빛에서 우리를 그렇게 확신하는 것이 보인다. 그순간 나는 유영철과 동급이 된다. 추격자의 눈빛을 사람들이 나를 처다보는 눈속에서 발견한다.]


 


 


나이가 하나둘 들어가며 선배들이 왜 중환자나 고위험도 치료분야를 떠나가고, 후배들은 기피하는지 이해가 된다. 사명감이나 자기 원칙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에 버티기에 너무나 힘든 것 같다. 원가에도 못미치는 의료수가, 수익만으로 의사를 판단하는 이땅의 경영진들, 왜 바보같이 사냐는 다른 진료과 친구들, 그리고 치료결과만으로 판단하고 멱살을 잡는 사람들에게 들던 실망과 분노도 점점 무감각해지고, 그냥 귀챦고 싫어진다. 사람이 무서워진다.


 


나 때문에 할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하면 보호자들의 마음이 편해질 지도 모른다. 내가 지은 죄의 보상으로 할아버지가 천당으로 가게 될지 모른다. 차라리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내 위안이라며, 세상에는 정말 저승사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을 해본다. 죽을 것 같은 사람은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지만 살기도하고, 반대쪽의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면 할 수록 새로운 문제가 생겨 사망하는 것이 너무 많이 본다. 그냥 내 정신건강을 위한 변명일 뿐이지만......


 



집에 들어가니 새벽 5시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날이 너무 많아졌다. 7시에 일어나야하는데 단 2시간이라도 잠들려면 수


면제를 먹어야한다. 고맙다! 수면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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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7/08 내시경치료로 사람을 살리면, 병원은 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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