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자는 비교적 낙후된 중국 국영기업을 M&A을 통하여 인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래서 한 달에 두어 번은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인 들과 협상 테이블에서 만나는 체험을 하고 있다. 필자가 현재 만나는 중국 인사들은 중국의 국유자산경영관리공사의 공무원들과 일반 중국 기업인들이고, 한국인들은 대개 한국기업의 최고경영자이거나 회사의 중요 간부들이다.


조급함은 금물이다.

협상에 임하는 중국인들의 태도를 살펴보면 상당한 부실이 쌓여 있는 국유기업들을 매각하는 협상이므로 중국측이 조급해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매사에 느긋한 태도와 원칙주의적인 사고로 임하는 것 같다. 반면 한국 기업인들은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이 기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고 빨리 결론을 내려고 서두르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부실 자산 매각이기 때문에 처리에 조급 할 것으로 여겨지는 중국인들은 느긋하고, 오히려 꼼꼼히 신중하게 업무를 처리하여도 별 문제가 없는 한국기업인들은 성급하게 추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심지어 최근 필자와 중국 출장을 함께 가는 한국의 대기업 간부는 사장에게 출장 보고를 하러 갔더니 이번 출장에서 협상을 끝내지 못하면 귀국하지 말라고 호통을 치더라고 전한다. 이게 무슨 막말인가?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외국 자산을 인수하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협상하러 떠나는 직원에게 최고경영자가 할 소리가 아니다. 국제협상에서 조급함은 금물이라는 대원칙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협상은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별의별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무역거래에서 많이 사용하는 신용장 제도도 이런 신뢰를 은행이 서비스 해주고 대가를 받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들이 거래하는 은행들이 중간에서 일정한 법칙을 정해서 믿음을 주기 때문에 생면부지의 거래처 임에도 불구하고 거래가 가능해진다. 국제간의 협상에서도 상대를 잘아는 인사가 중간에 서서 보증을 서거나 상대에 대하여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면 협상은 쉽게 풀리게 된다.

협상은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신뢰가 쌓이게 되면 어렵게 느껴지던 쟁점들도 한 순간에 풀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중국과의 협상도 이러한 기본적 범주를 멀리 벗어나는 것 같지 않다. 처음 만나 간단한 수인사에서부터 시작하여 협상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계약서에 서명하기 까지 적지 않은 우여 곡절을 겪게 되지만 조금만 유심히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상대에 대한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마음을 졸였거나 적지 않은 정력을 허비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술좌석

한국만큼 술을 좋아하고 즐기며 비즈니스에 철저하게 활용하는 민족들도 많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술 하면 중국인들도 빠지지 않는 민족임에 틀림이 없다. 중국을 남방 사람들은 대개 도수가 높지 않는 술을 즐기고 북방 사람들은 도수가 높은 술을 마신다. 북방이 우리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공무원이나 기업인들과 협상을 진행하다 보면 대개 점심이나 저녁식사 자리를 가지게 되는데 우리는 술좌석에서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협상이 진행되는 중이라면 중국인들은 식탁에 앉아서도 상대를 관찰하는데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내심으로 얼마나 내공을 쌓은 사람인지 살핀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술좌석에서의 실수에 관대한 우리의 문화와는 달리 중국인들은 상당히 엄격한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 작은 실수도 협상을 어렵게 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협상준비

중국인들은 협상에 임하기 전에 협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민감하거나 중요 사안에 대하여 사전 협의를 하고 나온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우리는 사전 준비 없이 빈손으로 임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위험천만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주요 쟁점에 대하여 사전 철저한 분석과 논리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협상 내용을 그때 그때 기록하고 의견 일치된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가 확인하여 날인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리고 협상에 임하기 전 관련법규, 중요정책, 기본방향, 컴퓨터 및 프린트기 등 각종 장비, 적당한 장소, 통역 등에 대한 사전 준비가 철저하게 이루어 져야 한다. 특히, 협상에 능숙한 협상 전문가 혹은 변호사 등을 협상에 투입시켜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협상의 성공조건

협상에 임하기 전 협상 관련해서 다양한 자료를 모으고 사소한 것일 망정 소홀히 하지 않고 철저히 준비하여야 한다. 준비된 전략을 바탕으로 사전에 협상 시물레이션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다음으로는 협상 상대로부터 인간적인 믿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부딪히는 협상이지만 상대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면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 된다. 조급함은 금물이다. 우리의 빨리 빨리라는 정서는 협상에 백해무익하다. 자기 분야의 업무에 정통하고 합리적인 사고와 유창한 중국어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기본기는 갖춘 것으로 판단된다. 협상 전 상대방 키(Key)맨들과 협상에 대한 대략적 협의를 해두는 정도의 역량이라면 협상에서 성공하는 지름길을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련한 협상 전문가들은 만나기 전 서로의 쟁점부분에 대하여 이미 충분한 의견 교환을 해두고 만나서는 그것을 확인하는 절차만을 거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중국과의 협상에서 사전 조율과 수순 밟기는 기본에 속하는 사항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조평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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